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318화 (318/1,277)

##  318화

에르네스트는 빠른 걸음으로 베르체노프가의 저택 본관에서 정문으로 향하는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길은 오면서 봐 두었기 때문에 갈림길이 있어도 헤매거나 하진 않았다.

“…….”

일주일 정도 준비했던 일은 모두 끝났다. 모양은 영 안 나지만 그래도 전문 스튜디오를 대여해서 녹음한 그의 첫 음반은 다른 음반들 사이에 끼어서 무사히 타티아나의 손에 들어갔으니, 이제 그로선 할 일이 없었다.

타티아나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다릴 뿐이다.

어지간해선, 정말 어지간해선 이렇게까지 할 것 없었다. 타티아나의 음반에 대해 축하해 주고 진지한 감상을 전하는 것 정도로도 얼마든지 충분했고, 타티아나 역시 그것을 원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에르네스트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음반을 제작해서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유는 복잡하지 않았다. 그저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타티아나가 모종의 기대감을 품고 음반을 줬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 선물 상자를 가득 채워 준 것처럼, 에르네스트도 타티아나를 하여금 놀라고 기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

에르네스트는 음반을 준비하고 건네줄 때까지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지만, 모든 것이 마무리 된 지금은 극도의 쑥스러움과 긴장감을 느꼈다.

타티아나와 음악을 주고받는 것은 하루 이틀 있는 일이 아니었고, 이번 일 역시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이지 음반으로 서로의 음악을 교류하는 것과 똑같았다.

하지만 잠시 시공간에 흐르다가 사라지는 음악이 아니라 영원히 남을지도 모르는 음반이라는 형태로 묶어서 주고받는다는 것은, 어쩐지 굉장히 참기 힘든 기분을 가져왔다.

나쁘진 않았다. 간질거리고,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기분은 다만 약간만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이런 일도 기분도 처음인 에르네스트는 일단 베르체노프가를 벗어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더 빨리 걸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대로 했다고 해서 마냥 기분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에르네스트가 느끼는 긴장감은 여러 불안감에 기반하고 있었다.

타티아나가 자신의 음반을 아무렇지도 않게 끼워 넣어서 건네준 것은 분명 그것을 알아주고, 감상해 주고, 더 나아가 칭찬해 주길 바란 것이었다. 하지만 에르네스트는 그 모두를 무시해야만 했다.

타티아나가 몇 번이고 노골적으로 에르네스트를 떠보려고 하다가 결국 포기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 성격상 내색은 하지 않으려 하지만 속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녹음해 낸 음반이 타티아나의 마음에 들지도 걱정이었다. 사실상 일주일 중 하루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프로그램 선곡에 썼다.

연주회라면 수십 번도 넘게 해 봤지만, 음반을 만들어 본 적은 없는 에르네스트는 굉장히 고민해야만 했다.

결국 이전에 타티아나가 작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위로하기 위해 연주했었던 프란츠 리스트의 곡들을 꺼냈지만, 그걸 타티아나가 지금도 바랄지는 의문이다.

수천 명을 모아 놓고 연주회를 하면서도 이렇게 확신이 없고 불분명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에르네스트는 헛웃음을 흘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이런 일을 하진 않았다.

에르네스트는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을 떠올렸다.

적어도 타티아나는 서로 음반을 주고받았다는 것에 대해 기분 나빠하진 않을 것이다. 순수하게 기뻐하고 좋아해 줄 것이다.

에르네스트는 거기에 대해선 확신이 있었다. 그 때문에 간단히 감상을 전하고 마는 것 대신 음반을 만들 작정까지 한 것이다.

얼마나 기뻐해 줄진 잘 모르겠지만.

그냥 에르네스트가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피식 웃고 말지도 모르고, 혹은 정말 기뻐하며 소중히 여겨 줄지도 모른다.

가급적 후자였으면 좋겠는데.

타티아나가 했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몰래 건네주고는 이렇게 빠져나와 버린 에르네스트로선 타티아나가 어떻게 여길지 알 도리가 없었다.

“…….”

이미 지나간 일, 건네진 음반이다.

무대에서 연주가 끝나고 나서 시간을 되돌리거나 다른 곡으로 갈음할 수 없듯, 지금 역시 에르네스트는 다시 되돌아갈 수 없었다.

에르네스트는 연주회에서도 콩쿠르에서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에르네스트는 대로에서 택시를 잡아타고는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타티아나에겐 애초에 다른 볼일로 나왔다가 우연히 들렀다고 둘러댔지만, 베르체노프가에 들리는 것 외엔 아무 볼일도 없었다.

“…….”

집으로 가는 택시에 타서 좌석에 머리를 기대고도 에르네스트는 스마트폰을 멍하니 내려다보면서 혹여나 바로 메시지나 전화가 오진 않을까 생각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타티아나도 선물받은 음반을 대충 연습실에 던져 놓고 며칠 지나서나 들어 볼지도 모르지만, 바로 들어 봤다면 아마 지금쯤 다 들었을 시간이었다.

“미안하네.”

그간 일주일 내내 타티아나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몸소 체감한 에르네스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감상을 기다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는 미처 몰랐다.

에르네스트는 일단 생각을 비우고 집에 가서 뭔가 먹고 잠이나 자기로 마음먹었다. 선곡을 너무 오랫동안 고민하고, 하루 만에 녹음하느라 수면 부족인 데다가 식사도 제때 못했다.

당장의 허기는 타티아나가 대접한 차와 다과로 조금 달랬지만, 그래도 배고팠다.

에르네스트는 선물들 사이에서 초콜릿을 꺼내서 입에 넣었다. 타티아나가 먹을 것도 선물해 줘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초콜릿을 서너 개 까먹고 있자 택시는 아파트 앞에 섰고, 에르네스트는 집으로 올라갔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거실에서 사샤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샤는 슬쩍 고개를 돌려서 에르네스트를 확인만 하고는 다시 게임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순간 에르네스트는 왜 아버지가 종종 훈계를 하는지 알 것 같단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사샤는 연속 점프로 넘겨야 하는 주요 구간만을 클리어하고는 게임 패드를 놓고 에르네스트를 다시 제대로 돌아보았다.

“형. 왔어?”

“그래. 사샤. 너 오늘 연습은?”

“했어.”

“확인해 본다?”

“거짓말 아니야.”

사샤는 고개를 잘래잘래 저었다.

보통 애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땐 9할 이상의 확률로 거짓말이겠지만, 에르네스트는 사샤가 피아노 연습으로 거짓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사샤가 연습을 했다고 하면 그 말은 믿을 만했다.

하지만 방학 때 학생이 해야 할 일은 비단 그뿐이 아니다.

“숙제도 한 거지?”

“잔소리꾼.”

“잘 생각해, 사샤. 내가 잔소리하고 검사하는 게 나을지 어머니가 잔소리하고 검사하는 게 나을지.”

“형.”

“뭐.”

“사랑해.”

“집어치워.”

숙제는 안 했나 보군.

에르네스트는 피식 웃으며 대충 짐들을 방에 놓고는 거실로 나와 사샤가 앉은 소파 옆에 앉았다.

잠시간 형제는 말이 없었다. 사샤는 게임패 드를 잡고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고, 에르네스트는 동생이 플레이하는 게임 화면을 보며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숙제야 지금 하는 게임이 끝나고 해도 될 일이고, 사실 방학 숙제만큼 하기 귀찮은 것도 없었다. 에르네스트는 사샤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렇게 동생을 놀게 두고, 에르네스트는 아무 생각 없이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게임에서 흐르는 배경음악이 귓속으로 파고들면서 자동적으로 각각의 코드들로 분석되고 형식이 잡혔다.

어떻게 편곡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지까지 생각하는 에르네스트에게 사샤가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어디 갔다 왔어?”

“뭐 그냥, 개인적인 볼일.”

“무슨 볼일일까.”

“개인적인이라는 단어는 아직 학교에서 안 배웠냐?”

“사람은 호기심의 동물이랬어. 선생님이.”

“호기심은 만악의 근원이기도 하다는 건 안 가르쳐 줬나 보네.”

“어렵네.”

사샤는 중얼거렸다. 여전히 게임 화면에서 눈을 떼고 있지 않는 것을 보면 사실 크게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두어 시간 나갔다 온 형이 뭘 하고 왔는지 동생에겐 그리 흥미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동생들과 달리, 사샤는 가끔 기가 막힐 정도로 날카로운 예리함을 보이곤 했다.

“음반 만든 건 맞지?”

이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고, 응 혹은 아니로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것을 대답할 수 있는지 에르네스트는 모르지 않았다.

이 영악한 꼬맹이는 방학 동안 에르네스트가 집에서 리스트의 곡들을 연습하는 것과, 전날 늦게 들어온 것만으로도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짚어 내고 있었다.

물론 에르네스트는 퉁명스레 쳐 냈다.

“……네가 상관할 바 아니지?”

“…….”

사샤는 그렇게 영리한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에르네스트에겐 약간 조급하게 구는 경향이 있었다. 에르네스트는 그때마다 단호하게 사샤에게 상관하지 말라고 했다.

그 때문에 사샤는 에르네스트가 모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상대도 못 될 것이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마지막으로 손을 딱 뗀 상태이긴 했다.

사샤가 화면에서 잠시 눈을 떼고 에르네스트를 올려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알겠어. 상관 않기로 했으니까.”

“…….”

“난 조심하라고 했고 형은 알아서 잘 하……. 아! 죽었잖아.”

“되게 못하네.”

에르네스트는 처음으로 훈수를 뒀고 사샤는 징징거렸다.

그 후 사샤는 자신이 하는 부분이 너무 어렵다면서 에르네스트에게 깨 달라고 하기도 하고, 에르네스트는 막히는 부분에 대해 사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거나 직접 게임 패드를 잡고 깨 주기도 하면서 함께 게임을 했다.

“잘 좀 피해 봐.”

“너무 어려워.”

“보고 피하기 어려우면 패턴을 외워 버리면 되잖아.”

“형은 게임도 외워?”

어이없다는 듯 사샤가 중얼거렸다.

그렇게 동생과 놀아 주던 에르네스트는 슬슬 게임을 도와주는 것보단 숙제를 도와줘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느끼고는 사샤에게 이쯤 하자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스마트폰이 바르르 울면서 에르네스트의 신경을 가져갔다. 에르네스트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음반 다 들어 봤어요.]

“…….”

타티아나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에르네스트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면서, 바짝 긴장한 상태로 스마트폰을 쥐었다. 옆에서 사샤가 돌아보았다. 에르네스트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답장을 해야 하는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평생을 손가락 움직이는 일만 하면서 살아온 에르네스트로선 기가 막힌 일이었다.

하지만 타티아나가 바로 다음 메시지로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고 따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사이, 다음 메시지가 날아왔다.

[베토벤도 슈만도 정말 마음에 들어요. 베토벤은 처음 보는 연주자였는데 해석이 독특하고 마음에 들더군요. 이 연주자의 다른 음반들도 찾아볼 생각이에요. 간만에 멋진 연주자를 찾아낸 것 같아요.

그리고 슈만도 굉장히 아카데믹하고 담백하면서도 슈만 특유의 감성이 잘 녹아 있는 연주여서 아주 감명 깊었어요. 좋은 음반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해요.]

타티아나의 메시지는 정확히 거기에서 딱 끝났다.

에르네스트는 그 뒤로 잘린 메시지가 없는지 앱을 껐다 켜 보고, 이어져 온 건 없는지 기다려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추천 음반들에 대해 고맙다는 말은 기뻤지만, 입맛이 살짝 썼다.

그리고 깨달았다. 모든 것을 깨달은 타티아나에게 철저히 복수당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한 번만 봐줘.”

아무도 없는 방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는 모습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량했지만 에르네스트는 당장 전화를 걸어서 미안하다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 뒤로 에르네스트는 몇 번이나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하면서 갈등했고, 타티아나는 말이 없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겨우 5분 남짓.

에르네스트는 다시는 상대가 기다릴 걸 알면서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겨우 5분이었다.

타티아나는 친구에게 그리 독한 성격이 되지 못했고, 딱 5분이 지나니 다음 메시지를 보내 왔다.

[그리고 세 음반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따로 있었는데요.]

에르네스트가 눈을 크게 떴다.

잇달아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리스트의 곡들을 모아 놓은 음반이 있었죠? 이 음반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프로그램도, 연주도.]

“……!”

에르네스트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반복해 읽으면서 기억했다.

적어도 싫어하진 않을 것이란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에르네스트는 아직 긴장을 풀 순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안도했다.

타티아나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연주회용 연습곡 3번 탄식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게 잘 연주하는지 제가 따라 할 수 있다면 따라 하고 싶을 정도였고요, 위안 3번은 제가 종종 우울하고 잠을 못 이룰 때 듣곤 하는 곡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음반으로 들을 수 있게 되어서 기뻤어요.]

“…….”

[사랑의 꿈 3번은 이 음반의 백미였죠. 너무나 감동적이고 예쁜 음악이었어요. 전 그래서 앞의 두 음반보다 이 음반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좋은 음반이에요. 추천해 주셔서, 선물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에르네스트는 기쁨과 죄책감 사이에서 약간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이렇게까지 호평을 받아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타티아나가 음악을 가지고 빈말을 하거나 장난을 치는 성격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했고, 그렇다면 이 메시지들은 모두 진담이었다.

에르네스트는 여전히 답장을 한 마디도 못 하고 메시지를 읽기만 했다.

그렇게 다섯 번쯤 읽었을 때.

[그런데 에르네스트. 에르네스트는 음반 안 내시나요?]

이번엔 답장할 수밖에 없는 질문을 해 왔다.

에르네스트는 웃어 버릴 뻔했다.

이젠 다 알면서도, 타티아나는 이렇게 둘 사이의 모르쇠를 이어 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건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 주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에르네스트는 약간 남아 있던 불안도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이해해 주리라 믿고 있었을 뿐인데, 정말 이렇게 이해해 주고 받아 주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뭐라 답장해야 할진 애매했다. 내 음반이라면 이미 받아 보지 않았느냐고 하는 건 최악의 답장이었다. 타티아나가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 재미없게 굴긴 싫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에르네스트는 타티아나를 너무 기다리게 할 순 없어서 일단 대충 썼다.

[감상 진짜 장문으로 보내 줬네.]

보내놓고 보니 얼간이 같은 답장이었단 걸 깨닫고 에르네스트는 얼굴을 감쌌다. 머리가 맛이 간 것 같다.

타티아나는 빠르게 답장했다.

[그렇게 약속했으니까요. 전 약속은 잘 지키는 편이라서요.]

[미안.]

[왜 미안해하시나요? 제게 잘못한 것이라도 있으신가요?]

타티아나는 잘 걸렸다는 듯이 장난을 쳐 온다. 이모티콘 같은 것도 전혀 쓰지 않는 타티아나의 메시지에선 묘하게 즐거움이 묻어 나왔다.

에르네스트는 멍청이 같은 짓은 이쯤 하기로 했다.

의자에 제대로 앉아서, 제대로 답장했다.

[추천 음반 좋게 들어 줘서 고마워. 다행이네.]

[저야말로요. 고마워요.]

[내 음반은…… 글쎄. 조금 더 있다가 낼 생각이었는데. 솔직히 지금은 전혀 생각이 없기도 하고.]

그도 연주자이니만큼 첫 음반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꽤 많았지만, 비공식적인 첫 음반을 만들어서 선물하고 나니 사실 그렇게까지 공식적인 음반에 집착할 생각이 별로 없어졌다.

그래도 언젠가 큰 콩쿠르에서 수상이라도 하고 계약을 하게 된다면 제대로 디스코그래피를 쌓아 나갈 수 있게 되겠지만, 그때 공식적으로 어떻게 디스코그래피를 시작하든지 간에, 에르네스트에겐 두 번째 음반이 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타티아나는 능청스럽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래요. 그래도 빨리 내 주셨으면 좋겠어요.]

[생각해 볼게.]

[언젠가 음반을 만드시게 된다면 꼭 말씀해 주세요. 음반 만드실 때도 제가 도와 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아나스타샤가 제게 그랬던 것처럼요.]

장난스러운 메시지가 꽤나 기분 좋아 보인다.

그런데 에르네스트는 그 메시지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아나스타샤가 뭐 도와줬어?]

[직접 스튜디오에 와서 밤을 새기까지 했는걸요.]

처음 듣는 말이었다. 미처 몰랐다.

그 애들이 친하게 지내면서 무엇을 했는지 미주알고주알 남자인 에르네스트에게 알려 줄 의무는 없었으므로 지금까지 모를 만도 했다.

에르네스트는 별생각 없이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다 그 애도. 아나스타샤가 타티아나와 정말 친하게 붙어 다닌다는 것은 이미 유럽 여행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그 전에 음반을 만들 때도 밤새 같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음반에는 연주자의 영혼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타티아나의 음반엔 아나스타샤의 혼도 어느 정도 들어가 있는 것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

에르네스트는 훗날 음반을 만들게 되었을 때, 만약 타티아나가 도와줄 생각이 있다면 꼭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밤새 작업을 하는데 계속 있어 달라고 뻔뻔하게 굴 순 없겠지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에르네스트에겐 큰 의미가 될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는 그것을 일찍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일이 잘된 것 같다는 기분으로 기분 좋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무튼, 알았어.]

[예.]

[그런데 내 음반 필요해?]

에르네스트는 툭 물어 보았다.

물론 타티아나는 즉답했다.

[아뇨.]

“하하하하!”

에르네스트는 폭소를 터뜨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