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331화 (331/1,277)

##  331화

왜 눈물이 났던 걸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지독한 체념과 비아냥이 섞인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른 슬픔과 공허함이 마음에 가득 찼고, 그전에 마음에 차 있던 것들이 밀려나와 눈물로 흘렀다.

하지만 친구들을 옆에 두고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해시켜 줄 것이 아니라면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건 모두를 곤란하게 만들 뿐이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니 빠르게 진정을 찾을 수 있었고, 난 아나스타샤로부터 손수건을 받아 눈가를 슥슥 문질렀다. 얼마나 바보 같아 보일지 모르겠다. 거울이 있으면 좋겠는데.

“괜찮니?”

“……예.”

하지만 이 애들을 두고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이젠 늦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들었다. 난 짧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모두들.”

“……나야말로.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

한승우가 후회막심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하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내 앞에선.

그 부분에 대해서, 난 약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연신 입 밖으로 내어서 해결되거나 후련해지는 것이 아니라 되레 더 깊고 어둡게 파고 들어갈 뿐인 주제는 차라리 내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증오란 입을 열어 언어로 말하면 말할수록 구체화되고 단단해진다. 되도록 덜 끌어내는 것이 좋다.

“…….”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머리가 냉정하게 식는 게 느껴졌다. 지금 이 상황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내 친구들보단 내가 조금이나마 잘 알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 감정의 파도에 무너졌던 정신을 가다듬었다.

난 일단 이 처참해진 분위기를 어떻게 회복시켜야 할지 고민했다.

그냥 이대로 우울하게 있을 순 없었다. 정말 대책 없이 멍청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한승우에게 있어서 지금은 스스로 내디딘 첫 시작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피아노를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지고 나왔다. 그런 한승우의 입장에서 지금 친구들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그가 나올 수밖에 없게 한 부모에 대한 공분? 이건 증오만 키울 뿐이고 내가 못 버티니 안 된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렇게 되었지만 나중엔 부모님에게 이해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 아직 머리에 열이 식지 않았을 한승우에게 그런 말은 화가 되면 화가 되었지 절대 도움이 안 된다. 그도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상냥한 위로? 이것도 지금은 마취제처럼 기분이 나아지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중엔 더 비참하게 느껴질 뿐이다.

친구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정말 많았고 지금 카페에서 몇 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증오로 한 번 눈이 멀었었던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난 아나스타샤에게 손수건을 돌려주고, 허리를 곧게 폈다. 계속해서 꼴사나운 모습만 보일 순 없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열었다.

“자, 괜찮아. 물론 괜찮지 않겠지만 이젠 되돌릴 수 없으니 괜찮게 만들어야겠지. 할 수 있을 거야.”

“어……?”

“왜 그렇게 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모르겠……는데?”

“피아노.”

갑자기 냉정한 어조로 말하는 내 모습에 조금 당황했는지 한승우는 더듬거리며 대답하다가 마지막에 충격을 받았는지 멈칫하며 굳었다.

이제 그는 그에게 허락된 시간과 재능 전부를 피아노에 쏟아부어야만 했다. 그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앞을 바라볼 때였다. 그리고 그렇게 집중할 수 있을 때, 에너지를 사람이 아닌 피아노에 쏟아붓고 음악으로 승화시켜 탈진해 버릴 수 있을 때, 마음이 차츰 차분해질 것이다. 난 그것을 믿었다.

다른 곳에 눈 돌리지 못하도록, 보다 매섭고 냉철하게 그가 현실을 바라보게 만든다.

변명이나 화를 낼 대상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아니라 앞을 바라보게 붙잡는다.

“솔직히 말해 볼래, 한승우. 방학 동안에 피아노 얼마나 연습했니?”

“그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는 말은 하지 말고.”

“거의 못 했지.”

“그렇다면 넌 우리에 비해 3개월 뒤처졌어.”

“……!”

상황이 굉장히 나빴고, 따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십분 이해하지만 그래도 독하게 마음을 먹고 마치 동생을 혼내듯 말했다.

한승우는 날 바라보며 제대로 무어라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인지하는 눈빛이 서서히 깃든다.

난 이어 말했다.

“애초에 너나 난 편입생이고 피아노 실력이라는 것이 연습량에 비례해서 차곡차곡 올라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3개월 동안 제대로 연습하지 못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야.”

“……알고 있어.”

“오늘부터 시작해.”

친구로서 이런 식으로 말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안 그래도 힘들 아이에게 이렇게 대하는 것은 말하는 것만으로도 나 역시 마음이 아프고 힘겹다. 지금은 그저 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달래 주고 상냥하게 대해 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한승우가 이런 말도 듣길 원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내가 해 주겠다.

난 마지막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미칠 거라면 피아노에 미쳐.”

“…….”

“그렇게 해 줄 거지?”

살살 긁으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말은 그렇게밖에 안 나왔고, 한승우는 약간 자존심에 영향을 받은 듯 눈빛을 달리했다.

그가 처음으로 똑바로 대답했다.

“내가 장난으로 집을 떠나 이곳에 왔다고 생각해? 타티아나.”

조금 빛이 바랬던 순수한 열망이 다시 확 불길을 되살린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다시금 깨닫고 어깨를 폈다. 난 일단 한시름 덜 수 있었다.

약간 도전적으로 눈을 치뜬 그를 보며 싱긋 웃어 주고 말했다.

“좋아. 일단 네 교육 방침은 예브게니아 선생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만, 연습량은 조금 늘리는 편이 좋을 거야.”

“늘려야겠지.”

“거기에 대해선 내가 도와줄게. 저녁에 학교 문이 닫고 나면 갈 곳이 없잖아? 기숙사에도 연습실이 있긴 하지만 부족하고. 그러니 기숙사 근처의 연습실을 빌려 놓을게. 네가 이름만 대고 쓸 수 있도록.”

“뭐?”

열심히 하라고 말만 할 생각은 없었다. 난 한승우가 가진 환경적 불리함을 조금이나마 없애 줄 생각이다.

너무 깊지 않고 적절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물론 그는 내가 연습실을 대신 빌려서 쓸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에도 부담스러워했다.

“그럴 필요는 없…….”

“없다고?”

“…….”

“아침에도 일찍 일어날 수 있다면 일찍 일어나도록 해. 1시간, 아니 30분이라도 연습하는 게 좋아.”

부담스럽긴 하겠지만 내가 내민 손을 지금 붙잡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그도 이해하고 있다. 난 평소에 친구들을 곤란하게 만들거나 자존심 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이런 제안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말을 꺼냈다면 그건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승우는 한참이나 갈등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연습량이 부족하다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내 제안을 승낙하고도 머뭇거리고 있었다.

난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성가시지?”

“어? 뭐? 아니, 전혀. 그건 아니야.”

“후후…….”

괜히 널 위해서라느니,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미안해.”

“왜 자꾸 사과를 하는 거야…….”

“그냥. 미안해.”

서글프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말하자 한승우가 눈에 띄게 난감해했다. 쓸데없이 말한 것 같다.

내일부턴 하지 않을 말이다.

한승우는 커피를 홀짝이더니 헛기침을 하며 일어섰다.

“음,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그가 혼자서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한승우가 잠시 자리를 떠나고 에르네스트와 리처드, 아나스타샤, 그리고 내가 테이블에 남았다.

우린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모두의 시선이 향한 것은 내 쪽이었다. 내가 마지막에 한승우에게 말한 것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에르네스트가 찻잔을 손끝으로 톡 치더니 말했다.

“현실적이네. 타티아나.”

“저 애에겐 이제 자기 실력 외엔 아무것도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을 테니까요.”

현실적이어야 했다. 많은 것들을 등진 한승우는 정말 자신의 길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렇게 인생 전부를 건 길을 걷다가 도중에 지쳐서 포기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는 것을 난 안다. 스스로가 택했고 무서울 정도로 집중했지만, 결국 지치거나 한계에 부딪힌 사람들.

난 내 친구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무엇이든 헤치고 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 지닌 재능과 실력을 예리하고 단단하게 갈고 닦아야 했다.

연주자가 걷는 길에서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의 실력뿐이다.

하지만 에르네스트는 삐딱하게 턱을 괴고 말한다.

“넌 가끔 보면 정말 이상한 말들을 해.”

“……제가요?”

“그래.”

난 그의 눈을 바라보고 나서야 내가 너무 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게 말하면 현실적이었지만 나쁘게 말하면 메마르다. 그리고 내가 그간 겪고 느꼈던 것들을 떠올려 보면 아주 나쁘고 건방진 소리였다.

적어도 나는,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혼자서는 절대 이렇게 연주자로 서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혼자 다 해냈다는 듯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급히 사과했다.

“말실수를 했네요.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지는 않죠. 여기 리처드와 에르네스트도 계시고.”

“너도 있잖아.”

에르네스트는 손가락을 들어 날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지금 여기에서 우리들의 관계를 지켜 내려고 가장 노력하는 건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너야.”

“……그럴지도요.”

딱히 부정하진 않았다. 그의 말대로 난 내 친구들 중 단 한 명도 학교에서 떠나길 바라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에르네스트가 모스크바 음악원에 조기 진학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말리고 싶었고, 한승우가 문제에 부딪혔을 때 돌아오길 기도했다.

난 정말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중하고, 지키고 싶었다.

“나쁜 건 아니잖아요?”

“나쁘다고는 안 했어. 그래서 나도 지켜 주기로 한 거잖아.”

“에르네스트도요?”

“어……. 음, 뭐 그냥 그렇다고.”

에르네스트는 묘한 반응을 보였다.

생각해 보니 그는 훨씬 더 직접적으로 한승우를 돕기도 했다. 내가 친구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을 그 또한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내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듯 에르네스트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됐어. 어쨌든 현실적으로 앞을 보자는 네 말은 지금 가장 필요한 조언이긴 했어. 잘 했어, 타티아나.”

“칭찬해 주시는 건가요?”

“……그걸 그렇게 물어보면 내가 뭐라고 해?”

어이없어하는 그에게 난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칭찬이었다고 해 주세요.”

“……칭찬이었어.”

“고마워요.”

에르네스트는 말을 맺자마자 다시 찻잔을 들었다. 난 기분이 훨씬 나아짐을 느꼈다. 잔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한승우가 그런 말에 상처받고 좌절하기보단 더욱 열렬하게 성큼 걸어 나갈 사람이란 것은 알 수 있었고, 에르네스트의 말에서도 조금 기운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옆에서 무언가 와락 덮쳐 들었다. 난 놀라서 짧게 비명을 지르며 거의 넘어질 뻔했다가, 꽉 붙들렸다.

아나스타샤가 까르르 웃으며 날 잡고 말했다.

“나도 칭찬해 줄래, 타티아나. 자, 이리 와 봐.”

“예? 아, 갑자기 왜…….”

“꼭 이유가 있어야 하니?”

이유가 있어야죠.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하지만 무어라 반론하기도 전에 난 아나스타샤가 끌어안는 것에 무저항으로 끌려갔다.

리처드와 에르네스트는 이쪽을 보고 있다가 약속이라도 한듯 서로 고개를 돌렸다. 남자애들이 그냥 보고 있기엔 어색한 듯했다.

“야, 리처드.”

“왜.”

“종업원이 이쪽엔 잘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은데, 불러 봐.”

“뭐? 내가 왜. 싫어.”

“홍차 더 주문해야 한다니까.”

“알게 뭐야. 네가 해. 에르네스트.”

“하, 귀찮게 하네, 진짜.”

“지금 귀찮게 하는 건 너 아니냐?”

리처드와 에르네스트 두 남자는 또 괜히 쓸데없는 것으로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이전 같았으면 불안해서 어떻게든 말리고 싶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진 않는다. 난 아나스타샤에게 안긴 채 웃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한승우가 중앙음악학교로 돌아온 후로 일주일이 넘게 지났다.

그가 학교에 다니기 위해 집을 나와 버렸단 소문은 교내에 쫙 퍼졌다.

사실 그리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한국에서 꽤 잘 사는 집이면서도 러시아에서 음악을 배우기 위해 모든 것을 던져 버렸다는 것은 애석하게도 약간 미담처럼 퍼져 나갔다. 난 그 소문이 조금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한승우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도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1년 전에 잠깐 있었다가 사라진 이야기들이다.

나와 같이 8학년 편입생이라는 것과, 학기 초부터 초인적인 수준의 절대음감으로 6성부 청음을 한 번에 해내서 구세프 선생님에게 한 방 먹였다는 것 등등.

그때 당시에도 상당히 이슈가 되었던 것처럼, 한승우에겐 이 천재들의 학교에서도 눈에 띌 만한 부분들이 있었다.

물론 그러한 이슈성에 맞게 실력도 갖춰야 했다.

3개월 동안 연습을 거의 못 했다는 건 사실이었는지 한승우는 기초 테크닉부터 꽤나 무뎌져 있었지만, 부끄러워하면서 독하게 연습을 하는 것으로 불과 며칠 만에 기존의 컨디션을 되찾아 냈다.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더 원숙해지기도 한 것 같았다.

예브게니아 선생님이 어떻게 지도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한승우는 갑자기 늘어난 과제량에 부쩍 피곤해하곤 했다. 사실 교실이 아니면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내가 빌려주기로 한 연습실에 그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락날락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선택한 현실을 똑바로 보고, 자신의 길로 집중해서 나아가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한승우의 부모님에게선 특이할 만한 일이 없다.

아직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이 아니기에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한승우는 부모님과 전화 통화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지금은 무슨 대화 같은 것으로 일이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한승우는 물론이고 그의 부모님도 흥분하여 머리에 열이 몰려 있을 테고, 그럼 대화는 불가능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서 양측 모두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을 때, 다시 천천히 대화해 보길 종용해 볼 생각이었다.

“…….”

난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상황이 되어 버린 이상 완전히 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포기해 버리면 이후에 얼마나 큰 흉터가 남게 될지 모른다. 그 흉터는 죽어서도 지워지지 않는다.

되도록 그렇게 되진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었다.

방법은 몇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긴 하지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으로는 어떻게든 잘 되게 하고 싶었다. 조금 현실적으로는 한승우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만 버티면 그의 부모님도 현실을 깨닫고 고집을 꺾으실 것이란 생각이 있었다.

대부분의 진로가 대입으로 결정되는 그 특성상, 대학 입학 전까지 음악 공부에만 집중했다면 사실상 의과대학에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한승우는 벌써 3개 국어를 프리토킹이 가능할 정도로 자유롭게 하고 암기력은 천재적인 데다가 머리도 굉장히 좋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한국 의과대학의 문턱을 공부도 안 하고 넘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

어쨌든 지금은 시간을 조금 번 것 같으니 각자 열심히 하면 된다. 난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레슨실 문을 노크했다.

“들어가겠습니다. 미하일 선생님.”

오늘은 내 레슨이 있는 날이었다. 내 피아노에 집중할 때였다.

“들어오려무나.”

안에서 미하일 선생님의 허락이 있었고 난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레슨실 안에 선생님이 세 분이나 있는 것을 보곤 문손잡이를 잡은 채 멈칫했다.

“어서 오렴.”

“왔느냐.”

“안녕하셔요? 타티아나.”

각각 미하일 선생님, 구세프 선생님, 예브게니아 선생님이 레슨실 책상 앞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계셨다. 앉아 계신 모습을 보니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던 것 같다.

난 세 분 다 모르는 분들이 아니었기에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들.”

예브게니아 선생님이 안경을 고쳐 쓰고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레슨 시간이군요. 시간 뺏어서 미안했어요. 미하일, 구세프.”

“괜찮습니다.”

미하일 선생님이 말했고, 구세프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헛기침을 했다.

“크흠, 일단 나가서 이야기 하죠. 예브게니아.”

“그래요.”

그리고 미하일 선생님의 레슨실에서 모여 앉아 차를 마시던 두 선생님은 나와 미하일 선생님만을 남겨 두고 레슨실에서 나갔다.

“…….”

고요해진 레슨실.

미하일 선생님은 무언가 생각하시는 듯 앉아 계셨다. 내가 오면 반갑게 맞아 주시면서 홍차부터 타 주시는 선생님이 오늘따라 조금 고민이 있으신 듯하다.

난 생각에 잠긴 선생님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레슨실 구석에 가방을 놓고는 옆의 의자에 앉아서 얌전히 기다렸다.

잠시 후, 미하일 선생님이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차부터 한 잔 할까? 타티아나.”

“예. 선생님.”

난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포트에 물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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