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342화 (342/1,277)

##  342화

미리 메시지로 전달받은 합주 연습실에 도착했다. 작은 실내악을 연습하기에 안성맞춤인 적당한 크기의 연습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낯익은 남학생이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가 반색했다.

“안녕, 타티아나.”

“안녕하세요, 막심 선배님.”

웃으며 인사하자 선배가 손을 흔들었다.

호쾌한 태도의 바이올린과 11학년 막심 선배는 언제 봐도 인상이 좋았다. 시원시원한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막심 선배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잘 와 줬어. 어디 보자, 일단 차부터 한잔 끓여 줄게. 디카페인?”

“캐모마일이 있다면 그걸로 부탁드릴게요.”

“알았어.”

서비스를 해 주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생각은 없어서 간단하게 주문했다. 선배는 전기 포트에 전원을 넣고 찻잔을 준비했다.

찻물이 끓는 동안 난 가방을 내려놓고 코트를 벗어 놓았다.

막심 선배는 벽에 기대어 서서 그런 날 바라보았다.

“코트 멋지네.”

“고마워요.”

“넌 추위를 타는 편이라고 했었으니까……. 그래, 슬슬 정말 춥지. 겨울이야, 겨울.”

“선배님은 괜찮으신가요?”

“아직은. 뭐, 더 추워지면 나도 껴입고 다니겠지만.”

“아하핫.”

우리는 그간 있었던 재미있던 일들에 대해 잡담을 나누었다. 오다가다 복도에서 만나 인사를 하긴 했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찻물이 다 끓었고, 막심 선배는 차를 타서 내게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피식 웃으며 선배가 답하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말없이 우리는 동시에 찻잔을 기울였다. 난 따뜻한 홍차를 즐기며 웃었다.

선배는 곧 찻잔을 내려놓곤 날 보며 말했다.

“네가 와 줘서 정말 다행이야. 오늘 혹시 네가 못 온다면 혼자서 또 연습하다가 미칠 뻔했거든.”

“미쳐요?”

“다른 곡들과 달리 이 곡은 혼자선 도저히 음악다운 음악이 만들어지지가 않는 기분이라서 말야.”

난 그 말을 이해했다. 실제로 악보를 읽고 곡을 들어 보면서 이 곡이 혼자 연습하는 것과 두 명이 연주하는 것이 완전히 다르게 들리는 곡이라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선배는 반주자가 정말 절실했다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래서 우리 반 반주자한테 말했더니 도무지 기약이 없잖아. 아니, 상대해야 할 학생들이 많으니 바쁘다는 건 이해하겠는데 곡 읽는 데에 시간을 좀 달라고 한 게 벌써 일주일이야. 대체 연습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시간이 조금 걸리는군요.”

“조금 정도가 아니라니까? 그렇다고 다른 반주자를 구해 보자니 피아노과 애들은 다들 바쁘다고 하고, 곡을 읽어 본 적도 없다고 하고…….”

관현악을 전공하는 반에는 각각 전문 반주자가 붙어 있다. 전문 반주자이니만큼 초견이 강하고 어지간한 곡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반주를 하곤 하지만 가끔은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래도 일주일은 조금 심했다. 11학년이니 일이 많은 것은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사이 피아노 없이 혼자 연주하는 것이 꽤나 답답했는지 보기 드물게 선배는 불평을 했다. 난 선배를 다독이듯 말했다.

“바로 저에게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나요.”

“네 생각이 나긴 했지. 하지만 바로 말하긴 미안하잖아.”

선배는 불평을 뚝 그쳤다. 친한 피아노 연주자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 내게 연습 반주자를 해 달라 부탁하는 건 쉬운 일이겠지만, 그 전에 할 수 있는 만큼 해 본 모양이다.

난 막심 선배의 마음도 알 것 같아서 생긋 웃었다. 선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이렇게 냉큼 부탁해 버렸네.”

“언제든 괜찮아요. 이것도 얼마나 큰 연습이 되는데요.”

“피아노과 애들이 다 너 같은 생각만 하고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하하…….”

과제곡이나 합주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단순히 다른 학생의 연습을 도와 반주를 해 주는 것은 사람에 따라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법도 했다. 하지만 난 학교에서 시키지 않은 낯선 곡이라도 모두 경험과 연습이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막심 선배와는 그간 친분이 꽤나 있기도 했고.

선배는 예전 생각이 나는지 손으로 악보를 휙휙 넘기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나저나, 곡 빨리 읽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대단하네. 어제 하루 봤을 것 아냐?”

“예. 집에서 봤어요.”

“혹시 암보했어?”

“음……. 아뇨. 악보는 봐야 할 것 같아요.”

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악보를 정말 빨리 읽고 외우는 편이었지만 그건 다 일련의 화성적 체계를 따라 움직이는 흐름을 읽어 내고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기억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조성도 선율도 분명하지 않은 근현대 곡들은 익히는 데에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막심 선배는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푸흐흐.”

“……왜 웃으시나요?”

“아니 그냥…… 보통 반주자들은 다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데 왜 너는 암보를 했을 거란 생각을 했나 싶어서.”

자주 연주되는 합주곡들이 아닌 이상 반주자들은 보통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편이다. 반주자의 역할로 피아노 앞에 앉아야 할 땐 상대적으로 연습량이 적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난 그간 막심 선배와 함께했었던 모든 곡들을 거의 암보해서 연주해 왔다. 조금 특이해 보일 만도 했다.

막심 선배는 묘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다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찻잔을 다 비우고는 옆에 내려놓았다.

“어쨌든, 네가 읽어 왔다면 그건 내 기대 이상으로 제대로 봐 온 것이겠지. 좋아. 한번 재미있게 해 보자고.”

“좋아요.”

“음……. 일단 곡 해석을 맞춰 볼 필요가 있을까?”

첫 연주 전에 앞서 충분한 대화로 서로 이 곡을 어떻게 해석하고 풀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맞춰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보다 원활한 첫 연주를 위한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난 막심 선배의 성격을 잘 알았다. 선배는 악기를 두고 입으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성격이었다.

나 역시 그렇고.

“아뇨. 일단 한번 해 보도록 해죠. 인템포로요.”

“역시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연주에 대한 이야기라면 연주 후에 해도 된다.

일단은 연주자끼리 악기로 부딪쳐 볼 뿐이다.

막심 선배가 경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바로 시작해 볼까.”

그 말과 동시에, 이 작은 방의 분위기는 담소와 티타임을 즐길 수 있는 카페에서 순식간에 음악학교의 연습실로 바뀌었다.

찻잔은 옆으로 치워 놓고, 선배는 바이올린을 꺼내 들고 컨디션을 확인했다. 난 선배에게서 받았던 악보를 꺼내 놓고 짧게 스트레칭을 했다.

우리는 빠르게 집중력을 되찾았다.

그 집중력이란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에 있지 않았다.

목과 어깨, 팔, 손목의 긴장은 부드럽게 릴랙스시키면서, 느슨하게 풀어졌던 머리만 긴장시켜 나간다. 훈련받은 연주자가 할 수 있는 연주 전의 준비다.

이 일련의 준비 과정은 몸과 정신을 각각 다른 방향으로,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지점을 향하도록 준비시킨다.

보면대 위에 악보를 올리고 의자를 조정한다. 이전에 나와 비슷한 체구의 학생이 앉았었는지 크게 조정할 필요는 없었다.

어느 한 곳 흐트러지지 않게 옷매무새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난 꼿꼿하게 허리를 폈다.

“준비되었어요.”

옆을 보니 막심 선배가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리고 있었다.

선배가 말했다.

“시작하자.”

우리는 그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양손을 들어 건반 위에 살짝 내려놓았다.

“…….”

돌체 소스테누토dolce sostenuto. 달콤하고 느리게. 곡의 시작을 알리는 화음이 막을 연다.

작지만 풍성하게 울리는 피아노 소리 위에 바이올린이 감미로운 선율을 얹는다.

클로드 드뷔시의 바이올린 소나타 사단조.

수많은 명곡을 남긴 드뷔시의 하나뿐인 바이올린 소나타가 천천히 연주되었다.

그 화성과 선율은 익숙한 체계에서 벗어나 있었다.

인상주의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몽환적인 애수가 듬뿍 담겨 있는 음악은 기존의 음악에서 벗어난 드뷔시다운 목소리를 내어 준다.

여러 색이 느껴지지만, 단지 드뷔시였다.

“…….”

열한 살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을 정도의 신동이었으며, 프랑스 인상주의의 시초이자 완성자로 평가받으며 굉장한 명예를 얻은 클로드 드뷔시, 하지만 그의 말년은 불행했다.

40대에 걸린 암으로 건강이 좋지 못했고, 이혼 후 재혼한 부인 사이에 있었던 딸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1914년에는 전 유럽을 휩쓴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그의 인상주의 사조는 맥이 끊어졌고, 1918년에 파리가 독일군으로부터 공격받는 도중에 말기 암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렇게 사망하기 직전 1917년 완성된 마지막 곡이 바로 이 바이올린 소나타 사단조였다. 곡을 완성한 그해 드뷔시가 직접 연주했던 초연은 드뷔시의 마지막 연주회가 되었다.

“…….”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 음악가가 닥쳐온 온갖 불행들과 맞서 싸우면서 작곡한 곡은 난해하면서, 그 자체로 마음에 파고든다.

심도 깊은 우울함이 펼쳐졌다. 죽기 1년 전 말년의 드뷔시가 그간의 작곡경험으로 얻어 낸 노하우와 깨달음이 깃들어 있는 고상한 음울함이 스며 나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나 러시아, 심지어 인도네시아의 음악까지 섭렵한 드뷔시의 음악은 독특하고 다채로운 색채감을 나타낸다. 인상주의 특유의 짧은 프레이즈와 톡톡 터져 나오는 음들은 단순히 우울하지 않고 몽환적이며 변덕스럽다. 재미있지만 까다롭다.

“…….”

보다 집중해서 연주를 이어 나갔다. 사단조에서 올림다단조, 가단조, 다시 사단조로 조성이 바뀐다. 하지만 특유의 무조음악처럼 들리는 커다란 음악은 꿈틀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물컹거리는 큰 덩어리처럼 느껴지는 음악이지만 그 근간이 허술한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느낌이 환상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더더욱 그 바탕에 깔리는 소리는 깔끔하고 아름답게 자아내야만 했다.

빠르게 양손을 정확한 템포로 옮겼다. 난 박자감각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이 혼란하고 환상적인 음악에 정신이 팔려 잠시만 신경을 흐트러뜨리면 바로 박자를 잃기 십상이었다.

침착하게 건반을 터치했다. 내 역할은 반주자였지만 이 곡에선 상당히 큰 역할이 주어져 있었다. 사실상 바이올린 소나타가 아니라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라고 칭해야 할 정도로 내게 맡겨진 부분이 컸다.

단순히 머리 위에서 달려 나가는 바이올린의 밑에 카펫을 펼쳐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행하지 않는 독자적인 음악을 바로 옆에서 그려 나가야 했다. 대립하고 도전하는 듯한 바이올린과 피아노. 하지만 결국 하나로 뭉쳐 음악을 이룬다.

이러한 특유의 구조 때문에 피아노 없이 바이올린만으로 연주하는 음악은 완전히 다른 음악처럼 들리고, 바이올린 없이 피아노로만 연주하는 음악 역시 다른 음악처럼 들린다.

막심 선배가 반주자를 반드시 필요로 했던 것도, 또 반주자를 구하기 힘들었던 이유도 이 곡의 특성과 까다로움에 있었다.

그 까다로움은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핵심이 되었다. 난 막심 선배에게 제안하듯 피아노를 연주했다. 막심 선배는 순식간에 내 의도를 캐치해 내곤 답을 내어놓는다. 난 한쪽 귀로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서 다른 한쪽 귀로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그 중간점에 해당하는 지향점을 찾아낸다.

첫 연습이었지만 곡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음악의 법칙으로 하나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합주를 할 때 이루어지는 이 일련의 과정은 정말 즐거웠다. 독주곡을 연주하는 것과는 또 다른 몰입감을 가져다준다.

“…….”

악보가 끝났다. 손끝으로 음을 쿡 찍어 누르고, 재빠르게 오른손으로 악보를 넘겼다. 곧바로 손을 떨어뜨리듯 건반을 친다.

귀로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를 동시에 듣고, 악보를 읽으며 손과 발로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전신을 완벽하게 사용해야 하는 연주를 위해 난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 음악의 한 축을 유지하기 위해선 아주 약간의 미스나 절뚝거림도 용납할 수 없었다.

“…….”

막심 선배의 연주는 언제나 그렇듯 호쾌하고 비르투오시티가 넘친다. 테크닉적으로는 완성이 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엄청난 빠르기와 깔끔함이 돋보였다.

바이올린이 낼 수 있는 최고 피치의 음이 아주 선명하게 울려 퍼진다. 수준 높은 기교와 고풍스러운 음색이 반짝반짝 빛난다. 내 피아노는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거기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보다 몰두하면서 피아노 건반을 강하게 터치했다.

2악장에 이르러선 러시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신비로운 음악이 흐른다. 글린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지지만 이 또한 드뷔시였다.

약간 길어진 프레이징을 확실하게 구현해 내고, 긴 회상 중에 갑자기 등장하는 듯한 파편들을 가볍게 음악 위에 올려서 장식한다. 막심 선배는 여유롭게 내 의도를 따라와 주었다.

3악장은 물결치는 피아노 소리로 시작한다. 난 오른손을 빠르게 트레몰로하여 새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바이올린이 굉장한 속도로 따라온다.

우리는 환상적으로, 때론 변덕스럽게, 그러면서도 분명하게 음악으로 서로를 끌어당겼다.

드뷔시는 프랑스의 음악가이지만 정말 다양한 음악적 색채가 드러났다. 때론 러시아, 혹은 집시, 이탈리아, 카프카스 등 어우러지기 어려울 것 같은 색들이 드뷔시의 팔레트 위에서 한데 섞여진다. 나와 막심 선배는 그 색을 캔버스 위에 올려 그림을 그려 냈다. 우리는 이 색의 이름도 그림의 이름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난 혼자선 알 수 없었던 다양한 색들을 느끼면서 재빠르게 조금 변화된 내 음악을 표현해 냈다. 막심 선배 역시 내 해석을 맞받아 전체적인 음악의 색을 살짝 비틀었다.

처음엔 질병과 고통, 마음의 상처, 전쟁의 포화 등에서 우울한 색으로 시작되었던 곡은 점점 뻗어나가면서 보다 활동적이고 밝은 색채를 띤다.

난 드뷔시의 말년이 불행했다는 것을 책에 적힌 활자로 읽어서 알 수 있었으나, 악보에 적힌 음표로 읽어 낸 드뷔시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작곡가로서 음악에 최선을 다해 그만의 정열을 불태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라 나와 막심 선배는 보다 빠르고 열정적으로 악기들을 연주했다. 지금까지 해 온 합주로 우리는 어떠한 음악을 추구하는지 교류하고, 이해하고 있었고, 때문에 끝으로 나아가는 데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게 낭만주의의 종막이자 근현대 음악의 서막을 알리는 최후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

양손으로 크게 화음을 끝내고, 약 13분간의 연주를 마친 나와 막심 선배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선배의 얼굴엔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난 나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선배가 말했다.

“진작 널 불렀어야 했는데.”

“후후.”

난 나지막하게 웃었다. 그러게 말이죠.

막심 선배는 바이올린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최고였어. 네 느낌은 어때?”

“저도요.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소리와 이렇게 합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네요.”

“나도 그래.”

“이것도 다 막심 선배님이 좋은 바이올린 연주자이기 때문이겠지요.”

“타티아나 너야말로 모든 바이올리니스트가 원하는 이상적인 피아노 연주자에 가까워.”

“어……. 너무 과찬이신데요.”

“진짜야.”

막심 선배가 지난 트리오 때부터 날 합주자로 꽤나 치켜세워 주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약간 부끄러워질 정도로 칭찬을 해 오면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난 우물거리며 살짝 시선을 낮췄다.

막심 선배는 그런 날 보며 킥킥 웃었다.

“너와 함께할 오케스트라가 부럽네. 리허설이 언제라고 했지?”

“아, 이번 주 주말이에요.”

“그래. 그것도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야.”

막심 선배는 내가 오케스트라와 협주곡을 협연하는 것이 처음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협연에 대해 꽤 관심이 많았다. 이런 관심은 고마웠다.

“격려 고마워요.”

“당연한 말인데 뭘. 오늘 시간 되면 오케스트라랑 리허설 하기 전에 네 곡도 같이 연습해 줄게.”

“아, 정말인가요!?”

“그럼.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지.”

막심 선배 같은 실력자와 같이 연습을 하는 것은 홀로 피아노 협주곡을 연습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난 환하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했다.

선배는 내 인사를 받고는 피식 웃었다.

“어쨌든, 너 지금은 내 협연자 맞지? 일단 이 드뷔시 소나타에 대한 이야기나 하자. 듣고 싶은 것이 많아. 피드백해야 할 것도 많을 것 같고.”

“좋아요. 이야기하도록 해요.”

끝나고 막심 선배가 내 연습도 도와주겠단 말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의욕적으로 악보를 다시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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