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1화
연주회가 끝나고도 홀 밖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사인회는 어디서 합니까!?”
“음반이 없다고요? 왜요?”
“실황 녹음 나중에 어디서 공개합니까?”
족히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공연 관계자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잔뜩 흥분한 사람들은 클래식 공연이 아니라 록 페스티벌에 와 있는 것 같다.
시끌벅적한 사람들 무리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에르네스트가 중얼거렸다.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그렇게 혼을 빼놓았는데 정신이 붙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정말 대단한 거지.”
곁에 서 있던 아나스타샤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당연하지 않냐는 듯한 어투였다.
가끔 보면 이 애는 타티아나에 대해 맹목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타티아나의 팬 1호가 있다면 아마 아나스타샤가 아닐까.
에르네스트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녀를 불렀다.
“아나스타샤.”
“응.”
“타티아나, 대단했지.”
“난 그 애가 멋지게 해낼 거라 믿고 있었어.”
“뭐, 실력이야 확실하니까.”
“너보다 낫지.”
“왜 갑자기 시비야?”
아나스타샤는 다 좋은데 갑자기 이렇게 말로 옆구리를 툭 찌를 때가 있어서 문제다.
에르네스트는 짜증스럽게 시비 걸지 말라고 대꾸해 놓고, 잠시 고민했다.
진짜 그런가?
종종 연습실에서 타티아나와 피아노로 대결을 해 보면 서로의 실력 차는 거의 취향 차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의미했다.
그리고 오늘 타티아나의 연주회는 어느 프로 연주자의 연주회라 하더라도 손색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심지어 에르네스트에겐 별로 없는 팬서비스 정신도 투철한 타티아나는 풍성한 앙코르로 청중들을 열광시켰다.
당장 지금은 에르네스트가 인지도가 더 높겠지만, 타티아나가 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건 시간문제로만 보였다.
때 아닌 생각으로 잠시 침묵하고 있자, 아나스타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 바로 멀었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봐?”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해?”
“그냥, 경력이나 수상 이력으로 보면?”
에르네스트는 연주회 경험도 많고 콩쿠르 입상 경험도 많았다. 객관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열다섯 살의 나이에 러시아 공로 예술가 훈장을 갖고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랑스러운 경력이지만, 에르네스트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딴 건 아무 의미 없어.”
이 또한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타티아나의 실력과 음악성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도 천재 이상의 그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로 비교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에르네스트는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길어도 2년 안에 타티아나는 내가 가진 공로 예술가 훈장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장담해.”
“그건 네가 무슨 자격으로 장담해?”
“오늘 연주 들어 봤으면 알잖아.”
말 그대로, 들어 보면 안다.
저 애는 아직 경력이 그리 많지 않지만 2년이면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예술인들을 키우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러시아에서 타티아나를 놓치려 할 리가 없다. 이미 한참이나 어릴 때 그런 경험을 겪어 본 에르네스트는 타티아나 또한 조금 늦었을 뿐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나스타샤는 가만히 듣다가 툭 말했다.
“2년?”
“그래.”
“음…… 그럼 나도 열심히 해서 받아 볼까.”
“뭘.”
“공로 예술가 훈장.”
“뭐?”
저도 모르게 되묻는 듯한 소리를 낸 에르네스트는 친구에게 실례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가볍게 웃을 뿐이었다.
“왜. 그거 아무나 주는 거 아니라고 하고 싶어?”
“뭐? 그런 말 안 했는데?”
“아하하, 괜찮아. 나도 아니까.”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 예전 슬럼프에 빠졌을 때 보였던 모습을 떠올리면 미처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어른스러운 태도로, 아나스타샤가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의 프라이드는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서 있다. 아나스타샤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그래도 나만 뒤처지는 건 싫어.”
“……야, 아나스타샤. 그깟 훈장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에르네스트는 정말 그런 훈장 같은 건 아무 상관 없으니 뒤쳐진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말라고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설득할까 생각하다가, 이미 모종의 마음을 먹은 듯한 아나스타샤에겐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녀는 고집도 세고, 마이페이스로 자신이 정한 것은 어지간해선 지켜 나간다.
요 근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영 불안하기도 하고 이상한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쩐지 예전 그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서 에르네스트는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은 로비의 상황을 지켜보며 잠시 잡담을 나누었다. 실없는 이야기가 두서없이 나오다가 방학하면 뭐 할 거냐는 말이 나왔을 때, 아나스타샤가 말했다.
“에르네스트.”
“왜.”
“타티아나 나온다.”
“어?”
연주자 대기실 입구 쪽에서 막 단원들과 타티아나가 나오고 있었다.
금색 드레스의 타티아나는 멀리에서도 한눈에 확 보였다.
이대로 달려가서 잘했다고 말해 주고 싶지만, 오늘 연주자들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구름처럼 모여서 흩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청중들을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돌려보낼 책임이 있는 것이다.
타티아나와 오케스트라는 로비 중앙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향했다.
아나스타샤는 그쪽을 보다가 말했다.
“난 유리 아저씨 부르러 갈게. 마무리 인사가 그리 길진 않을 것 같으니까.”
“그래.”
에르네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인사는 무대에서 충분히 했다. 지금 로비에서까지 아우성인 것은 연주 외의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에르네스트가 알기로 타티아나는 음악 말고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어쨌든, 연주자들이 로비 가운데에 서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브라보! 브라보!”
“완벽한 무대였어요!”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스타니슬라프 올레고비치!”
각 연주자들의 이름을 연호하고, 연주회가 얼마나 훌륭했는지에 대해 저마다 목소리를 높여 주장한다. 에르네스트는 상황을 조금 더 실감 나게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져서 살짝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군중들 사이에 끼어서 가운데를 보니 이미 타티아나의 경호원들이 세 명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회자 마이크를 잡고 주변을 향해 말했다.
“진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흠, 잠시 안내 있겠습니다. 오늘 사인회는 연주자 사정상 없을 예정이오니 간단한 인사 후에 행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
“하면 안 됩니까? 이렇게 많이 기다리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냥 짧은 마지막 인사뿐이라는 말에 곳곳에서 아쉬운 소리가 일었다.
굶주린 사람들 사이에서 에르네스트는 혼자서 정반대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연주회를 마친 연주자가 얼마나 피곤한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입장이 다르니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앙코르 곡을 그만큼 치는 걸 봤으면 보내 줘도 되지 않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래도 타티아나는 모두를 이해한다는 듯 상냥하게 웃더니 살짝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음……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사인이 없어서요. 그리고 이렇게 사인도 음반도 없이 부족한 제가 사인회를 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무대 위에선 그렇게나 자신 있게 청중들을 위한 음악들을 선보이고는, 이제 와서 겸손의 말이다. 에르네스트는 저런 모습도 참 타티아나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주자의 이런 말에도 불구하고 에르네스트의 바로 옆에서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래도…….”
“아, 아쉽네요.”
에르네스트는 자기도 모르게 끼어들어 옆 사람의 말을 끊었다.
“아쉽긴 해도 그 대신 오늘 앙코르를 그만큼 연주해 줬으니 만족해야겠어요. 사인회까지 하면 피아니스트가 손 아파 죽을지도 모르고.”
“…….”
에르네스트는 실제로 연주회 후에 사인회를 하느라 손이 터져나갈 것 같은 고통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예전 기억에 울컥해서 그냥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말했더니 옆 사람이 잠잠해졌다.
옆 사람도 피아노 협주곡 두 곡에다가 앙코르 곡까지 연주해낸 타티아나가 이 많은 인원들을 대상으로 사인회를 하면 힘들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듯했다.
사인회가 없다는 것을 납득했는지 사람들이 진정했고, 이어서 사회자가 옆을 향해 손짓했다.
“자, 스타니슬라프 올레고비치. 오늘의 지휘자. 한 말씀 해 주시죠.”
“흠.”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지휘자, 스타니슬라프가 앞으로 나왔다.
에르네스트는 조금 조용해지면 스타니슬라프와 제대로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과거에 함께 협연을 한 적이 있었고 그 후로도 잊을 만하면 연락을 주고받곤 했다.
저번에 보았을 때보다 조금 더 머리가 하얗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이젠 중년이 아니라 노년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에르네스트는 그렇게 조금 예의 없는 생각을 하면서 스타니슬라프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좋은 연주회가 될 수 있게 도와주어서 모두 고맙습니다. 오늘 다시 한 번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저 양반은 나이를 먹어도 변하는 게 하나도 없네.
에르네스트는 숨죽여 웃으면서도, 나중에 나이를 먹는다면 저런 남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게감 있고 카리스마 있지 않은가? 스타니슬라프는 정말 강인하고 견고한 음악가였다.
하지만 저런 무뚝뚝한 사람이 되는 걸 바라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고, 에르네스트는 고민이 많았다.
지휘자를 향한 박수가 있었고, 다음으로 사회자가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스타니슬라프 올레고비치. 자 그럼, 피아니스트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혹시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
타티아나는 살짝 고민하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수백 명의 시선이 타티아나에게로 향했다.
평소 부끄러움도 많은 성격이지만, 인사를 해야 하는 연주자로서 선 타티아나는 떨지 않는다. 수많은 청중들을 앞에 두고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이렇게 멋진 청중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제 마음을 조금이나마 앙코르로 들려 드리려 했는데…… 잘 전달되었을까요?”
“분명하게 들었습니다!”
굳이 대답할 필요 없었는데 누군가 크게 대답했다. 좌중에 웃음이 번졌다. 재미있는 사람이네.
타티아나 역시 웃음을 머금은 채 이어서 말했다.
“감사드려요. 청중 여러분의 열기와 응원 역시 무대 위로 잘 전달되었답니다. 제가 드린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연주자는 일방적으로 음악을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다. 객석에서 뿜어지는 모든 에너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에너지가 얼마나 값진지 아는 타티아나는 최선을 다해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했다.
“너무 기분 좋은 연주회였네요. 평생 이 연주회를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에르네스트도 따라서 사람들과 함께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청중 중 한 사람으로서.
모든 순서가 거의 마무리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연주자들에게 꽃다발을 선물했다. 스타니슬라프와 크리스티나는 물론이고 다른 연주자들에게도 모두 전해졌다. 타티아나는 몇 개나 되는 꽃다발을 받아 들고 약간 난처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이나마 연주자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남아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긴 앙코르 때문에 급히 돌아가야 할 사정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북적였던 군중들은 거의 다 돌아가고 몇 사람만 남아 있었다.
한산해진 가운데 연주자들은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때였다.
“제가 찍어 드려도 되겠습니까?”
군중 가운데에서 누군가 나오더니 카메라를 잡아 주었다.
“저기…… 감사합니다.”
“이 정도야. 제 직업인데요.”
“예?”
“무즈카야의 기자입니다. 혹시 취재 가능하겠습니까?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자연스러운 접근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잠잠해지길 기다렸던 것 같다.
타티아나는 취재를 위해 기다려 준 기자를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가 말했다.
“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아,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오늘 정말 훌륭한 연주회였습니다. 기사로 나갈 것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기자가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실례지만 혹시 프랑스 파리에서 연주를 하신 적 있지 않습니까?”
“!?”
타티아나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한눈에 봐도 크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기자는 더더욱 은밀하게 타티아나 쪽으로 다가갔다. 더 다가가서 경호원이 제지하기 직전의, 딱 적정의 거리였다.
“듣기로 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가 무명의 연주자를 한 번 파리에서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소녀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현을 두 가닥이나 끊어 놓았다는 믿기 힘든 소문이 함께하더군요.”
“…….”
“그거 혹시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아닙니까?”
타티아나는 말이 없다.
에르네스트는 그녀가 파리에서 한 일이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러가고, 기자가 물었다.
“한 번 더 보여 주실 수 있으십니까?”
“……예?”
“그냥 물어보는 겁니다.”
“…….”
기자 역시 타티아나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느끼고 있었다. 그냥 직업 정신으로 물어본 것 같았다.
타티아나는 정중히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거절할게요.”
“파리에선 누가 시켰던 겁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음…….”
또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흘러간다. 기자는 이쯤에서 물러나려고 하면서도 조금 아쉽다는 듯 타티아나를 살폈다. 타티아나는 불편하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그때 오케스트라 단원들 중에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에르네스트도 아는 얼굴이었다. 다네르라는 이름의 바이올리니스트다.
“기자님. 기삿거리가 필요하다면 제가 재미있는 걸 하나 보여 드리죠.”
다네르는 호방하게 선언하고는, 뒤돌아서 동료 단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담배 한 대 줘 봐.”
“다네르, 뭘 하려고.”
“줘 봐.”
어쩔 수 없다는 듯 건네준 담배를 귓등에 꽂고, 다네르는 옆에 놓인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내들고 연주 준비를 했다.
뭐야 도대체?
에르네스트가 황당해하기도 잠시.
“!”
다네르가 굉장한 속도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목소리뿐이던 로비 안에 갑자기 바이올린 소리가 쩡하고 울려 퍼졌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옆을 지나치던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한꺼번에 다네르 쪽으로 쏠렸다.
다네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활을 움직였다.
정말 신들린 듯한 속도였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연주하는 것처럼 활이 잔상을 남기며 움직였고,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음악에 소름이 다 돋을 정도였다.
“…….”
다네르가 굉장한 실력자라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었지만, 정말 대단한 기교였다. 그 누구도 로비에서 연주하지 말라고 불만을 표하지 못했다.
불과 30초 남짓.
짧지만 강렬한 연주를 끝마친 다네르는 활을 내리고, 귓등에 꽂아 두었던 담배를 바이올린 현에 대었다.
“……?”
마찰열로 가열된 현으로 담뱃불을 붙이는 것을 보여 줄 모양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담배엔 불이 붙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체면만 구기게 생겼다.
“빨아야지.”
그때 뒤편에서 단원 한 명이 조언했고, 다네르는 담배를 입에 물고 빨아들이면서 현에 가져다 대었다. 곧바로 불이 붙었다.
성공적이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훌륭한 퍼포먼스였다.
“콜록콜록!”
하지만 담배 연기를 훅 빨아들인 다네르는 거칠게 기침을 했다. 한 번이 아니라 정말 미친 듯이 기침을 했다.
방금 보여 주었던 퍼포먼스는 황당함을 타고 증발했다.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정신을 차린 다네르가 아직 불이 붙은 담배를 들고 기자에게 말했다.
“저희는 이렇게 담뱃불을 붙입니다.”
대번에 뒤편에서 단원들이 한 마디씩 던졌다.
“라이터 써. 라이터. 이 야만인아.”
“담배도 처음이면서 뭐 하는 짓이야. 다네르.”
“너 전에 블라디미르가 하는 거 봤었구나?”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다네르를 보며 기자가 갑자기 박장대소를 했다.
“하하하, 하하하하.”
정말 기분 좋게 웃더니, 그는 다네르와 타티아나를 한 번씩 돌아보고는 씩 웃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인상적인 퍼포먼스였습니다. 걱정 마시길.”
다네르가 왜 타티아나 대신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는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이해하고 있었다. 기자는 그것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네르에게 미소를 보내는 타티아나를 보며 에르네스트 역시 이해했다. 파리에서 있었던 일로, 그리고 오늘의 연주회로 오케스트라와 타티아나 사이엔 상당한 신뢰 관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에르네스트는 그것이 기쁘다가도, 피아노를 그렇게나 아끼는 타티아나가 왜 파리에서 현을 끊어야 했는지에 대해 약간 트집을 잡고 싶기도 했다.
이 감정의 이름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