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404화 (404/1,277)

##  404화

이 정도 입고 가면 되지 않나?

에르네스트는 거울을 확인했다. 캐주얼 재킷이 마음에 들어서 거기에 맞추다 보니 약간 추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야외에서 파티를 할 것도 아니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그의 아버지 스테판은 어떻게 베르체노프가에 가면서 캐주얼하게 갈 생각을 할 수 있냐는 투로 아예 턱시도를 입으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에르네스트는 깔끔하게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에르네스트는 아버지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실제로 타티아나가 하고 싶다면 전교생을 모두 초대해서 드레스코드를 정해 놓은 성대한 생일 파티를 며칠씩이나 열 수도 있겠지만, 그 애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사람들을 많이 초대하지도 않고 친한 친구들만 몇 명 간소하게 초대했다. 심지어 크리스마스와 겹친 것을 배려해서 그녀의 생일 파티는 점심에 시작해서 빠르게 끝날 예정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친구들끼리 하는 작은 파티였다. 그런데 그런 프라이빗한 파티에 포멀한 복장을 한다면 얼마나 튈지 상상도 안 간다. 에르네스트는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

모든 것을 빠르게 판단해서 결정하는 에르네스트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그가 바라보는 책상 위엔 악보 몇 장과, 잘 포장된 선물 상자가 있었다.

둘 중 하나를 오늘 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음.”

에르네스트는 책상 앞에 앉아선 펜을 들었다. 그리고 아직 제목도 없는 악보 위에 헌정사를 먼저 쓰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걸 가지고 가는 건 턱시도를 입고 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곡은 구세프 선생님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지난 일주일간 쓴 곡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헌정하기엔 완성도가 떨어졌다. 에르네스트가 추구하는 완성도는 겨우 이 정도가 아니었다.

역시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시험을 통과하는 용도로만 써야 할 것 같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에르네스트는 그냥 그렇게 결정했다.

결정을 내린 에르네스트는 포장된 선물 상자를 들고 나왔다. 문가엔 사샤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 사샤.”

“응.”

집 밖으로 나오니 베르체노프가에서 보낸 검은 벤츠가 기다리고 있었다. 에르네스트는 운전기사와 짧게 인사를 나누곤 차량에 올랐다.

베르체노프가에 도착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커다란 철문이 자동으로 열렸고 차는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섰다. 넓은 정원은 눈으로 하얗게 뒤덮여 있어도 멋졌다. 한창 여름에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는 사이, 차가 저택 앞에 섰다.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차가 떠나고, 에르네스트는 기사가 안내한 대로 저택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발걸음을 채 딛기도 전에,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피아노 소리였다.

“…….”

사샤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에르네스트를 올려다보았다. 저쪽으로 가 보자는 것 같았다. 역시 이 녀석도 누가 피아노과 아니랄까 봐,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일단 가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리고 에르네스트는 조금 더 정확하게 이 소리의 정체를 파악해 냈다.

“아나스타샤가 와 있나 보네.”

“어떻게 알아?”

“지금 피아노 치고 있잖아.”

사샤는 조금 황당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는 누가 연주하는 것인지 모호했다.

심지어 이 곡은 사샤가 아는 곡이었다.

“이 곡 이슬라메이 아니야?”

“맞아.”

“저번에 타티아나 누나가 음악회에서 쳤던 곡인데?”

“그런데 지금은 아나스타샤가 치고 있네. 가 볼까.”

여긴 타티아나의 집이고, 불과 일주일 전에 타티아나가 음악회에서 연주했던 곡이 바로 지금 연주되고 있었다. 사샤가 생각하기엔 지금 연주자는 타티아나일 것 같았다.

만약에 틀렸으면 잔뜩 놀려 줄 생각을 하며 사샤는 입을 꾹 다물고 에르네스트를 따라 별관으로 향했다.

별관의 연습실 앞에 다다르자마자 때마침 피아노 소리가 멎었고, 에르네스트는 최소한의 매너로 문을 툭툭 두어 번 노크하고는 바로 열었다.

타티아나와 아나스타샤가 깜짝 놀란 눈으로 돌아보았다. 에르네스트가 손을 들었다.

“안녕.”

“왔니?”

“아, 에르네스트. 어서 오세요.”

터틀넥 스웨터에 캐주얼한 복장의 아나스타샤와 롱 원피스를 입은 타티아나는 피아노 의자에 함께 앉아 있었다.

사샤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빠르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누나, 그런데 방금 그거 누가 연주한 거예요?”

“응? 난데.”

아나스타샤가 바로 대답했고, 사샤는 바로 에르네스트를 돌아보았다. 진짜 맞혀 버렸네.

대체 그 멀리서 어떻게 들은 건지 아직 사샤는 이해가 안 갔다. 그만큼 특색이 있는 건가?

사샤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데?”

“아니, 밖에서 들으니까 네가 연주하는 게 들리더라고.”

“알겠어?”

“어, 미스 좀 줄여.”

“……연습 중이었거든?”

아나스타샤가 인상을 팍 쓰며 중얼거렸다. 에르네스트는 그 멀리서도 아나스타샤의 미스 터치 등을 정확하게 들었던 것이다.

갑자기 분위기가 피아노로 한 판 붙을 것 같은 느낌으로 흘러가자 타티아나가 급히 일어섰다.

“어, 앉으실 곳이……. 잠깐 저기 앉으실래요? 제가 의자를 더 가지고 올게요.”

“됐어. 여기 방석 있네. 대충 앉아 기다리지 뭐.”

“…….”

타티아나의 개인 연습실엔 피아노 의자와 안락의자뿐이었으므로 의자가 부족했다. 하지만 굳이 타티아나가 의자를 더 가지고 올 필요까진 없었다.

에르네스트는 창가에 있는 방석에 대충 앉았다. 햇빛도 잘 들어오고, 딱 보니까 이렇게 앉으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앉자마자 갑자기 타티아나가 등을 돌렸고,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고개를 숙인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풉…… 크흐흑…….”

“……왜?”

“으흑윽…….”

에르네스트가 묻자 아나스타샤는 숫제 거의 흐느끼기 시작했다. 뭔진 몰라도 화가 났다. 내가 지금 창가에 앉고 싶어서 앉았어?

짜증스럽게 노려보자 무언가에 고문당하는 것처럼 끅끅거리던 아나스타샤가 간신히 고개를 들고는 한마디 했다.

“그거 벨카 거야.”

“벨카가 누군데?”

“있어, 너보다 훨씬 귀엽고 착한 애.”

“뭔데 갑자기?”

다짜고짜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쁜 애 성깔 한번 보여 줘?

옆에 타티아나만 없었으면 진짜 한바탕했을 텐데, 에르네스트는 꾹 눌러 참았다. 그나저나 벨카가 누군데? 왜 그런 놈 방석이 여기에 있어?

에르네스트는 혼란과 짜증을 동시에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제야 등을 돌리고 있던 타티아나가 다시 돌아서선 말했다.

“그…… 에르네스트. 벨카는 저희 집 말라뮤트예요.”

“뭐?”

말라뮤트? 개?

에르네스트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분명 본 적이 있었다. 타티아나는 엄청나게 큰 알래스칸 말라뮤트를 키우고 있었다.

그 개의 이름이 벨카라는 걸 이제 알았을 뿐이다.

상황을 파악하고 나자 짜증도 가라앉고 혼란도 싹 사라졌다. 하지만 그다음으로 밀어닥친 건 창피함이었다.

에르네스트는 간신히 무표정을 유지하며 물었다.

“아니, 그게 왜 창가에 있어?”

“햇볕에 말리고 싶어서…….”

타티아나는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에르네스트는 할 말이 없어져서 창문을 바라보았다.

“……날씨 좋긴 하네.”

그 말에 결국 타티아나가 못 참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나스타샤는 거의 기절할 듯 웃어 댔다.

에르네스트는 웃지 말라고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저 두 애가 웃는 것을 보는 건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

***

타티아나의 개인 연습실에서 네 사람이 잠시 시간을 보내는 사이 하나둘 그녀가 초대한 친구들이 도착했다.

모두 피아노 소리에 이끌리듯 별관으로 모여든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하하하, 어서 와요 아나톨리. 저야말로 와 주셔서 기뻐요.”

발렌티나와 한승우, 류보비, 아나톨리까지 총 여덟 명이었다. 영국에 있는 리처드나 본가로 돌아간 막심, 니콜라이는 오지 못했다.

타티아나는 올 수 있는 손님들이 모두 왔음을 확인하고는 모두를 이끌고 연회장으로 향했다.

거기엔 벌써 파티를 위한 만찬 세팅이 정확하게 되어 있었다. 모두 각자 자리에 앉자 타티아나가 말했다.

“크리스마스인데 이렇게 제 초대에 응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저녁엔 돌려보내 드릴 테니까 조금만 함께해도 될까요?”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한 농담기가 섞여 있었다. 자기 생일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조금 더 멋대로 해도 될 텐데, 타티아나는 늘 어떠한 선을 지키듯 말하곤 했다.

이런 그녀의 화법에 익숙한 친구들은 농담과 웃음으로 답했다.

“그러려고 왔어.”

“난 그냥 오늘 자고 가도 되는데.”

“나도.”

아나스타샤와 발렌티나가 자고 가고 싶다고 하자 타티아나는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지내야 하는 날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아나스타샤는 그래도 칭얼거렸다. 진짜 키는 저렇게 큰데 애처럼 굴어서 어쩌려는지 모르겠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활발하게 분위기를 띄울 줄 아는 발렌티나가 흐름을 끌어 나갔다. 류보비가 속한 교회 합창단이 상을 받았고, 아나톨리가 또 몇 달 사이 4cm나 컸다. 한승우는 급속도로 말이 늘더니 농담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굴기 시작했다.

시끌시끌한 분위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에르네스트도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말을 많이 하고 많이 웃었다. 타티아나도 즐거워했다. 그녀는 확실히 이런 작은 모임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이 보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길 잠시, 유리와 루슬란이 연회장에 들어섰다.

순간적으로 말이 뚝 멎었다. 그만큼 두 남자의 존재감은 아직도 무거웠다.

“이야기들 나누거라. 떠들썩해서 좋구나.”

하지만 유리는 드물게 웃음을 보이며 무언가를 거둬 내듯 슥 손짓했다. 그것만으로도 무거웠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아버지, 루슬란 오빠. 오늘 정말 감사해요.”

타티아나가 일어나 포옹으로 감사를 전했고, 다시 테이블 위로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 유리와 루슬란은 말이 많진 않았지만 대화에 조금씩은 참여하기도 했다.

만찬들이 차례로 나오고, 슬슬 오늘의 주인공을 축하해 줄 때가 되었다.

유리가 말했다.

“건배사는 짧게 하마.”

모두들 각자 잔을 들었다. 그 안에 든 건 샴페인이 아니라 주스였지만, 엄숙한 유리가 주도해서 그런지 분위기만큼은 확실했다.

천천히 좌중을 바라보며 유리는 말을 이었다.

“오랜 격언에 건강과 좋은 친구, 두 가지만 얻으면 모든 것은 얻은 것이라는 말이 있지. 지난 타티아나의 한 해는 모든 것을 얻은 한 해였을 것 같구나.”

진지함과 애정이 공존하는 짧은 말이 무척이나 깊게 와닿았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의 건강과 우정을 위해.”

모두의 잔이 테이블 가운데로 쭉 뻗어졌다가, 돌아갔다. 무슨 신성한 의식이라도 하는 기분이라서 묘했다.

하지만 그 의식 같은 분위기도 잠시, 아나스타샤가 벼락같이 외쳤다.

“생일 축하해! 타티아나.”

그 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순식간에 생일 파티 분위기로 되돌아갔다.

축하 인사들이 쏟아졌다. 타티아나는 조금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모두들 정말 고마워요.”

심지어 그녀는 조금 울먹이기까지 했다. 파티 주인공이 감동하는 건 좋지만, 에르네스트는 타티아나가 웃었으면 했다.

그런 마음은 그뿐만이 아닌 듯했다. 아나스타샤가 빠르게 무언가를 타티아나에게 안겨 주었다.

“자 이거, 내 선물.”

“아.”

“열어 봐.”

타티아나는 포장지가 상하지 않게 조심스레 포장을 뜯고는 그 안에 있는 상자를 꺼냈다.

아나스타샤가 귓가를 톡 치며 말했다.

“이어폰이야. 얼마 전에 망가졌다고 해서 괜찮은 걸로 하나 골랐어.”

“아…….”

“어떨지 모르겠네? 클래식 듣는 용도로 골라서 플랫한 건데.”

묘하게 눈치를 보는 것 같은 아나스타샤를 보며 타티아나는 환하게 웃었다.

“분명 좋을 거예요. 잘 쓸게요. 아나스타샤.”

그 후에도 약속한 것처럼 생일 선물을 전달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악보에 펜보단 연필로 필기하는 편인 타티아나를 위한 연필, 스카프, 사탕 등으로 종류도 다양했다.

에르네스트도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건네주었다.

“와, 슬리퍼네요?”

“평범한 거야. 막 신기 편한 거.”

에르네스트는 여러 콩쿠르나 연주회에서 벌어들인 것으로 꽤 여유가 있는 편이었지만, 어차피 부족한 물건이 있을 리가 없는 타티아나에게 비싼 물건을 줘 봐야 어렵게만 여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어폰이 망가졌다는 기밀 정보를 아나스타샤처럼 미리 알고 있었다면 비슷하게 헤드셋이라도 준비했겠지만, 몰라서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무난하게, 몇 개 가지고 있어도 별 상관없고 부담 없이 편한 물건에서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결론이 왜 실내 슬리퍼인진 선물을 주고 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냥 어쩐지 주면 좋아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정말 고마워요.”

“…….”

그래도 슬리퍼가 가당키나 한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타티아나는 3천 루블짜리 슬리퍼에 너무 감격해했다. 에르네스트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음을 분명하게 느꼈다.

그리고 타티아나는 고맙다는 말을 말에서 그치지 않았다.

“저도 여러분들께 드리려고 준비한 게 있어요. 잠시만요.”

타티아나는 잠깐 일어나더니 연회장 구석에 놓여 있던 작은 박스에서 종이가방들을 꺼내 왔다. 그리고 테이블을 빙 돌면서 한 명 한 명에게 손수 그것을 전해 주었다.

에르네스트에게도 차례가 왔다. 그가 바라보자 타티아나가 작게 소곤거렸다.

“마음에 드실진 모르겠는데…… 다 똑같은 거니까 양해해 주세요.”

“양해……? 무슨 양해?”

선물을 주면서 무슨 또 양해까지 구해? 에르네스트는 조금 황당해하면서 종이 가방 안쪽을 보았다. 그 안엔 향초와 디퓨저로 보이는 것들이 들어 있었다.

왜 양해해 달라는지 알 것 같다. 에르네스트는 향초 같은 것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불을 붙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은은하게 느껴지는 향기는 왠지 모르게 에르네스트의 신경을 자극했다.

일단 마음에 들었다. 에르네스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 어디서 맡아 본 것 같아. 신기하네.”

“피아노 음향 판으로 쓰는 스프루스 나무의 오일로 향을 냈으니 익숙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네요. 다행이에요.”

“향을 냈다는 게 무슨 말이야? 혹시 직접 만들었어?”

“예. 아직 잘하진 못하지만요.”

“…….”

생일 파티에 참석해 준 친구들에게 작은 선물을 들려 보내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일은 정말 드물었다. 세상에 누가 이 정도로 정성을 쏟아?

직접 슬리퍼를 만들어 올 걸 그랬나 후회하는 사이 타티아나는 모두에게 향초와 디퓨저를 전해 주고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날씨가 앞으로도 추워질 텐데, 모두들 따뜻하게 지내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짧지만 따뜻한 진심이 전해져 왔다. 언제나 그렇듯 타티아나의 한마디는 진지하고 분명하게 모두의 가슴에 와닿았다.

에르네스트는 작은 향초를 내려다보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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