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9화
앞장서 걸으면서 살짝 가방을 들어 안을 봤다. 초대권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평소처럼 빅토르가 다 처리해 준다면 내가 신경 쓸 일은 하나도 없겠지만, 오늘은 우리 셋뿐이었고 이 애들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었다.
충분히 확인하고 준비해 온 그대로, 헤매는 일 없이 오셔너리움의 카운터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세 분이신가요?”
“예. 초대권이 있어요.”
원래는 입장료가 있지만 초대권이 있다면 대신할 수 있다. 초대권 세 장을 꺼내서 건네주니 잠시 직원이 무언가 확인하듯 키보드를 쳤다.
그러고는 다시 내 얼굴을 바라본다. 그녀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곧 직원이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베르체노프 콘체른의 타티아나 유리예브나이시군요? 크로커스 시티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대권에 이름이 적혀 있었나요?”
확인해 봤을 땐 분명 무기명 초대권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직원이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혹시나 하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저 이 VIP 초대권을 받으실 만한 분들이 그리 많지 않은 덕분이죠.”
“그런가요…….”
“예, 그리고 저는 타티아나 유리예브나를 청중석에서 뵌 적이 있거든요.”
“청중석…… 무대에서 말씀이신가요?”
“작년 자선 연주회는 정말 인상 깊었어요.”
그녀가 날 알아본 건 내 초대권이 일반적이지 않은 특별한 초대권이었던 것과, 연주회에서 한 번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족관에 왔을 뿐인데 직원이 날 안다는 사실에 약간 혼란스러워졌다. 그냥 티켓만 받아 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머뭇거리다가 짧게 감사인사만 전했다.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오늘 바로 알아보지 못한 게 죄송하네요.”
직원은 다시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쳤고, 곧 티켓을 내 주었다.
“티켓 세 장 여기 있습니다. 이곳의 모든 시설은 이 티켓만 보여 주시면 됩니다.”
“아, 감사해요.”
내가 그것들을 받아 들자 그녀가 다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저희 시티에서 좋은 인상을 받고 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자부심이 묻어나는 미소를 마주하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기대 이상의 것들을 보고 갈 수 있을 것 같단 기분이 들었다.
티켓을 받고 카운터에서 나와 두 사람에게도 티켓을 주기 위해 고개를 드니, 에르네스트가 장난스레 웃고 있었다.
“직원이 빨리 알아보던데.”
모든 대화를 다 듣고 있었던 것 같다. 난 빠르게 부정했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저…… 제가 가지고 있던 초대권이 루슬란 오빠에게 받은 거라서…….”
“그래도 그것만으론 네 이름까지 바로 알진 못했을걸? 안 그래?”
그 말대로 직원이 날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다면 그저 베르체노프의 관계자로만 알았을 것이다.
내 이름을 바로 불러 준 건 그녀의 머릿속에 내 이름이 이미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르네스트는 받아 든 티켓을 흔들거리며 말했다.
“작년에 이야기했었지? 넌 네 생각보다 훨씬 빨리 유명해질 거라고.”
난 작년 가을 즈음을 떠올렸다. 에르네스트와 트베르스카야 거리에 갔었던 때였다.
올빼미들을 만져 볼 수 있는 카페도 갔었고, 음반들을 사기 위해 음반매장에도 갔었다.
거기에서 에르네스트는 유명인사답게 가게 주인과 인사도 나누고 사인도 해 주었었는데, 그때 그는 머잖아 나 역시 그리될 거라 예언한 바 있었다.
“묘한 기분이네요.”
“곧 익숙해질 거야.”
“글쎄요 저는…….”
물론 익숙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한다. 난 예전보다 훨씬 더 청중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연주자로서의 정체성도 단단해졌다.
밖에서 누군가 연주자로서의 날 기억해 준다면 정말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단순하게 이 아이들의 친구로 있고 싶었다.
“저는 그저 두 분과 함께 있는 지금 이 시간에 충실하길 바라요. 그뿐이에요.”
“얘는 또 낯부끄러운 소리를 하고.”
아나스타샤가 작게 투덜거렸다. 괜한 소리를 했나?
하지만 곧 그녀의 얼굴엔 이전보다 훨씬 더 밝은 미소가 찾아왔고, 에르네스트 역시 한층 편안하게 웃었다.
무언가 결정한 듯한 눈빛. 그는 무언가에 동조하듯 짧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경쾌하게 말했다.
“그럼 나도 충실하게 둘러보도록 할까.”
“어디부터 갈까?”
처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1층의 터널식 대형 수족관이었다.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해저에 툭 떨어진 것처럼 온 주변이 바다로 가득해졌다. 예전에 류비그에서 봤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였다.
현실감이 무시무시했다. 세상이 바뀌어 버리는 것 같은 감각은 팔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물고기들이 수십 마리씩 돌아다닌다. 작게는 내 팔 정도 길이에서, 크게는 날 한 번에 집어삼킬 수도 있을 것 같은 상어도 있었다.
상어 한 마리가 우리 옆을 따라온다. 상어와 나란히 걷는 기분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지만, 난 최대한 터널 통로의 가운데 쪽으로 걸으면서 눈길만 줬다. 두꺼운 유리가 있는데도 가까이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에르네스트는 겁도 없는지 터널 유리에 가까이 갔다.
“지금까지 봤었던 수족관들 중에서 제일 큰 것 같네.”
“크기만 한 게 아니라 꽤 다양하게 갖춰 놨네.”
아나스타샤도 감탄하며 걸음을 옮겼다. 나만 괜히 무서워하고 있는 것 같다. 내색하지 않기 위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기다란 터널 수족관을 지나자 천장에 매달린 수십 개의 해파리 모형이 우릴 맞이했다.
돌로 쌓은 듯한 기둥으로 떠받쳐진 넓은 공간 안에는 각 카테고리별로 구별 지어진 섹션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주말을 맞아 오셔너리움을 찾은 손님들이 시끌시끌하다. 가족들끼리 온 사람들이 많아 보이지만, 우리처럼 친구끼리인 것으로 보이는 무리도 많았다.
“저쪽부터 가 보자.”
아나스타샤를 따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곳으로 갔다.
유리 너머에 바다가 있었다.
해양생물이라고 해서 물고기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알록달록한 산호를 배경으로 화려한 열대어가 있다면 근엄해 보이는 거북이도 그 존재감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었다.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도 않았다. 비록 조성한 자연일지라도 이 거대한 조화는 그 자체로 감탄을 자아낸다.
“…….”
한참 동안 바닷속을 구경하던 나는 살짝 옆을 바라보았다. 친구들이 제대로 즐기고 있을지 궁금했다. 두 사람은 가까이 달라붙어선 심도 깊은 토론 중이었다.
“저건 스내퍼snapper종의 하나겠지.”
“아나스타샤. 미안한데, 내가 저건 확실히 알아. 그루퍼grouper야.”
“어떻게 아는데?”
“입 모양을 봐. 저렇게 못생긴 건 그루퍼 종의 특징이라니까?”
“못생기다니? 개성 있게 생긴 거지. 에르네스트. 국제 그루퍼 애호단체에서 널 고소할 거야.”
“그런 것도 있냐?”
“있을걸?”
“네가 첫 번째 회원이고?”
다행히 아나스타샤도 에르네스트도 꽤 진지하게 빠져 있는 듯했다.
난 두 사람이 물고기의 종류를 말하는 것에 대해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 봐도 즐거워서 가만히 구경했다.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에르네스트가 슬그머니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물고기를 놓고 아웅다웅한 게 조금 부끄러운 모양이다.
난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에르네스트는 동물들을 좋아하시는 편이었죠?”
“그냥 그래.”
그는 태도를 휙 바꾸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좋아하는 걸 쉽게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나이답게 굴고 싶어진 모양이다.
그래도 조금 더 물어봐 주지 않으면 섭섭해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저 중에선 어떤 종이 마음에 드나요?”
“글쎄…….”
에르네스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렇게 바다 쪽으로 향했던 시선은, 다시 내 쪽으로 향했다.
“타티아나 너는?”
“저요?”
대답을 원하면 먼저 말해 보란 건가?
난 해양생물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예전에 잠깐 알아본 것을 계기로 좋아하게 된 생물이 한 종류 있긴 했다.
그런데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
“전…… 저기 있는 바닷가재요.”
“……?”
조금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단 생각 때문에 약간 주저하면서, 바닥에서 기어 다니고 있는 바닷가재 한 마리를 가리켰다.
에르네스트는 바로 의아해하거나 날 놀리지 않고 진지하게 바닷가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좋아할 만한 구석을 어떻게든 찾아내려는 모습이다.
이윽고 고민하던 그가 이유를 도출해 냈다.
“맛있어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인 것 같기도 하지만, 듣기에 따라선 잔인하게 들린다.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잡아먹을 생각부터 하다니?
아나스타샤가 눈을 흘기며 중얼거렸다.
“너 진짜 너무한다 에르네스트…….”
“농담이야 농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아니다 싶었는지 에르네스트가 사과했다.
난 괜한 오해를 사기 전에 입을 열었다.
“예전에…… 바닷가재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었거든요. 저 애들은 영원히 노화하지 않고 살면서 영원히 성장한다고 해요.”
작년에 음반을 녹음하면서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말한 영생이라는 단어에 대해 찾아본 적 있었고, 그때 알게 된 지식이었다.
에르네스트는 아나스타샤와 물고기를 가지고 토론을 할 정도로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듯했지만, 이 이야기는 처음 듣는지 조금 흥미를 보였다.
“영원히?”
“예. 하지만 노화가 멈추어 있다고 해서 죽지 않는 건 아니죠.”
“잡아먹히나?”
“천적들에게 공격당하기도 하겠지만…… 보다 본질적인 내적 문제가 있어요.”
내가 바닷가재에게 푹 빠져 버린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영생하는 생물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장할 때마다 껍데기에서 탈피해야만 해요.”
모처럼 영생을 지니고 태어난 바닷가재들에겐 그에 걸맞은 무거운 의무가 주어져 있었다.
“그런데 햇수가 늘수록 크기가 커지면서 껍데기도 계속 단단해지고…… 결국 탈피에 실패하는 시점이 오게 되죠.”
“……그러면?”
“그때 바닷가재는 죽어요. 자신의 껍데기 속에 갇혀서.”
살아 있는 동안 멈추지 않고 바닷가재는 스스로와 싸워야 한다. 영원히. 죽을 때까지.
“자신의 한계를 갱신하지 못하는 순간 죽는 거죠.”
난 바닷가재의 그러한 숙명을 슬프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난히 영생을 즐길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은 그 삶에서 격렬한 투쟁과 섭리 등을 느낀다.
“…….”
여러 생각에 잠겨 유리 너머의 바닷가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난 말이 너무 많았음을 깨달았다. 괜한 소리를 했다.
그냥 이 이야기는 어물쩍 웃어넘기고 더 화려하고 멋진 해양생물들을 구경하러 가자고 할 참이었는데, 아나스타샤가 엉뚱한 질문을 했다.
“타티아나…… 혹시 영화 봤니?”
“무슨 영화 말씀이신가요?”
“아냐, 혹시나 해서. 음…… 그래도 바닷가재가 되려는 건 아니지?”
아나스타샤는 크게 신경 쓰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바닷가재가 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농담조로 대답했다.
“전 사람인걸요? 집게발은 불편할 거예요.”
“……그렇지.”
아나스타샤는 옆머리를 만지작거리더니 더 이상 할 이야기는 없는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막 끊어지려는 대화의 흐름을 에르네스트가 이었다.
“본받을 점이 있는 생물이네.”
그는 직설적으로 그렇게 표현했다. 내가 바닷가재에 대해 알게 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그 역시 조금은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난 거기에 다시 한 번 동조하려다가, 살짝 틀어서 웃으며 말했다.
“맛있기도 하고요.”
“그건…… 농담이라고…… 나 지금 네 이야기 듣고 났더니 지금까지 먹어온 바닷가재들에게 조금 미안해지기도 했어.”
“아하하하, 그거 아세요? 스위스에서는 바닷가재를 죽이거나 기절시키지 않고 살아 있는 그대로 요리하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벌금형에 처한다고 해요.”
“기절시키는 건 또 뭐야? 전기충격기라도 쓰라고?”
“예.”
“?”
에르네스트가 어리둥절해했지만 이번엔 농담이 아니었다. 실제로 스위스에선 바닷가재를 요리하기 전에 전기충격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종종 느끼는데, 그 나라는 좀 이상한 나라 같아.”
에르네스트에게 스위스에 대한 편견만 더 심어 준 건가……? 그가 작년에 스위스로 연주회를 갔다 온 이후로 좋은 이야기를 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저쪽도 가 볼까요? 어서요.”
난 그가 괜한 생각에 더 빠지기 전에 얼른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려놓았다. 아직 이 오셔너리움은 넓고 볼 것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