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7화
에르네스트와 나는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연주자들을 위한 연습실로 할당되어 있는 공간이라 그런지 홀 쪽처럼 북적이진 않았다.
난 잠시 말없이 걷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에르네스트, 아까 했었던 이야기 있잖아요.”
“무슨 이야기?”
“거리의 피아노로 연습했던 이야기 말예요.”
에르네스트는 제발 그 이야기는 그만해 달라는 듯 대답하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난 웃으며 그의 옆에 따라붙었다.
“그때 말고도 또 거리에서 연주했던 적이 있으시나요?”
“아니.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 거고. 홀이 아닌 밖에서 업라이트로 제대로 연주 안 된다는 건 잘 알잖아?”
전문 피아노 연주자에겐 피아노뿐만 아니라 홀 역시 중요하다. 에르네스트는 내가 그런 음향적 조건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난 제대로 된 조건들이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의견을 내밀었다.
“그래도…… 거리 연주는 나름의 멋이 있잖아요?”
“……그래?”
“저도 기회가 된다면 해 보고 싶어요.”
물론 티켓 없이 사람들에게 음악을 선사하고 싶다면 메세나 협회를 통하면 될 일이지만, 거리에서 연주하는 건 또 색다른 느낌일 것 같아서 흥미가 생긴다.
에르네스트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그런 마음도 이해하겠다는 듯 작게 키득이며 말했다.
“이 근처엔…… 별로 없을걸.”
“예, 아르바트 쪽 악사분들이 계신 거리에도 길거리 피아노는 없었던 것 같아요.”
“조금 멀리 나가야…… 아, 피아노 있는 카페는 있는데.”
“정말요? 어디인가요?”
뭐든 상관없다면 가르쳐 주겠다며 에르네스트는 그 근처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사실 건물과 상호들이 섞여 있어서 잘 모르겠다. 나중에 직접 데리고 가서 물어봐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휴게실 쪽으로 걸으면서 에르네스트와 드문드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커다란 자판기가 보였다. 에르네스트가 성큼 다가서선 지갑을 꺼냈다. 나도 가방에서 지갑을 빼냈다.
“동전은 제가…….”
“괜찮아. 내가 살게. 거리에서 80유로나 벌었거든.”
“예? 아하하하.”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난 한참이나 웃으며 그가 음료를 뽑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음료를 5개나 뽑으려니 시간이 조금 걸린다. 딱히 도와줄 것도 없어서 난 살짝 물러나서 에르네스트를 기다렸다.
휴게실엔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저편 벤치에 누가 앉아 있었다.
일부러 들으려 하지 않아도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영어로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그들만의 축제라 보는 게 맞을걸.}
{그럼 루카스는?}
{나가고 싶다잖나. 그럼 어쩔 수 없지. 도전도 경험이니까.}
그냥 상관할 일이 아닌 건 아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신경이 벤치 쪽으로 쏠렸다. 눈치채지 않게 보니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였다.
무슨 일일까? 혹시 문제를 겪고 있다면 도와줄 순 없을까 싶어서 듣고 있는데, 남성분이 시니컬하게 말했다.
{애초에 이 대회 자체가 냉전 때 만들어진 대회야.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말이지.}
영어로 말하고 있어서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내가 다 듣고 있다. 지금 자판기 앞에 있는 에르네스트도 영어를 무척 잘하니 다 듣고 있을 것이다.
난 그냥 듣고 넘겨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제 오프닝은 훌륭했는데…….}
{그거야 뭐 그렇지만…… 연주자들 봤지? 모두 러시아인이잖나.}
여성분께서 우리를 신경 쓰는지 말리려고 해도 도통 통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에 확신을 가진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더 으름장을 놓는다.
{수상자 갈라 콘서트도 마찬가지겠지.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진 나중에 보라고.}
결국 내가 벤치 쪽을 돌아본 건 어쩔 수 없었다.
모욕당한 기분이 들어서도 아니고, 에르네스트가 나설까 싶어서도 아니었다. 콩쿠르에 출전한 아이를 제대로 응원할 마음도 들지 않을 정도로 오해가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면, 풀어 드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나와 관계없는 일인 건 맞지. 그러나 난 이런 상황을 그냥 모른 체 무시할 수가 없었다.
{…….}
가만히 바라보니 눈이 마주쳤다. 순간 뜨끔하는 기색이 느껴지지만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고 미소가 떠오른다. 미국인 특유의 악센트의 인사가 내 쪽으로 향했다.
{안녕, 여기 학생인가?}
분명 심성이 나쁜 분은 아닌 것 같다. 난 고개를 저으며 짧게 대답했다.
{아뇨.}
너무 짧게 대답한 탓인지 내가 영어를 잘 못 한다고 받아들인 것 같다. 툭툭 털고 일어나며 이번엔 작별인사다.
{음…… 미안하지만 난 영어밖에 못 해서. 그럼 콩쿠르 잘 하고, 좋은 결과 거두길 바란단다.}
{괜찮으시다면,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
유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알아들을 만한 영어로 조심스레 말을 걸었더니 두 부부 모두가 깜짝 놀랐다. 내가 모든 걸 다 듣고 있었다는 것도 이해했을 것이다.
멀찌감치에서 이러고 있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가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중앙음악학교의 학생인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베르체노바라 합니다.}
{……잭슨이라 하네.}
이름을 주고받고 나면 보통은 더 친밀해져야 하는데, 잭슨은 내 소속과 이름을 듣더니 한층 더 당혹스러워했다. 방금 했었던 이야기들을 내가 좋게 듣진 않았으리라 생각하는 표정이다.
잭슨은 당황했는지 한 번 더 잡아뗐다.
{그런데 아가씨랑 딱히 할 이야기는 없는데.}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실 거라 생각해서요.}
내가 직설적으로 묻자 옆의 부인이 갑자기 잭슨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당신이 말실수한 건 맞아.}
{당신 누구 편이야?}
잭슨은 억울하다는 듯 퉁명스레 말하더니 그냥 말 돌릴 것 없이 나오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큰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사실 그런 오해들을 가진 사람들은 꽤 있기도 했다.
{내가 틀린 말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언뜻 뻔뻔하게 들리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맞는 부분도 있었으니까.
난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미국을 의식하고 만들어진 대회라는 건 옳을지도 모르겠어요. 당시 분위기뿐만 아니라 공식적으로도 문서가 있으니.}
1950년대 러시아 문화부에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를 기획하면서 만들어진 문서가 있다. 문화부 장관이 서명한 그 문서엔 이 콩쿠르가 정치적으로 중요하다는 문장이 분명하게 들어가 있었다.
그 정치적인 필요성이란 건 당연히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대응하기 위한 문화적 위상 향상이었다. 국제적인 클래식 콩쿠르엔 그만한 힘이 있었으니까. 예나 지금이나 예술을 도구로 사용하려는 건 개인보다 국가인 경우가 훨씬 많았다.
냉정하게 볼 부분은 냉정하게 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잭슨이 내 말을 덥석 물었다.
{봐 봐, 틀린 말이 아니라니까.}
{그렇지만 첫 우승자가 누구인진 아시나요?}
그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보나 마나 러시아인이겠지. 라고 바로 말하지 않은 건 그가 그래도 분별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50년대 이야기는 잘 몰라서…….}
{미국인 반 클라이번이에요.}
잭슨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 반 클라이번이라면 나도 알 정도로 유명한 사람인데.}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1회 우승자로 유명세를 탄 대표적인 연주자이기도 하죠.}
러시아의 문화적 위상을 끌어올리고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첫 회 우승자는 반 클라이번이라는 23세의 텍사스 출신 청년이었다.
1950년대의 냉전에서 그 우승은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당연히 반 클라이번은 러시아를 정복한 텍사스인이라 불리며 영웅이 되었고, 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환영 퍼레이드를 받으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음반은 클래식 음반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를 했고, 62년부터 텍사스에서 4년마다 열리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북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콩쿠르가 되었다.
난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미국 클래식 애호가들 중엔 반 클라이번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잭슨은 황당해했다.
{대체 왜 미국인을 우승자로……?}
난 짤막하게 답변했다.
{반 클라이번이 당시 피아노를 가장 잘 연주했기 때문이에요.}
{그런 단순한 이유라면…….}
{단순하지 않아요. 절대적인 이유죠.}
줄리어드 음악대학에서 반 클라이번이 사사한 로지나 레빈은 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피아노 연주자였다.
그리고 그가 결승 무대에서 연주한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는데, 라흐마니노프 역시 미국으로 망명한 작곡가이다.
하지만 출신이 어디인지, 누구에게 배웠는지,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는 최고의 음악성을 가리기 위해 모인 음악가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절대적인 이유라는 건 믿지 않는 편인데.}
{당시 러시아 최고의 음악가들이었던 심사위원들께선 믿으셨던 모양이에요.}
{…….}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조직위원장은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였고, 피아노 심사위원장은 강철 타건으로 유명한 에밀 그리고리예비치 길렐스. 그리고 스비아토슬라프 테오필로비치 리히터 같은 저명한 음악가들이 심사를 맡았다.
당시 한 자리에 마련할 수 있는 거의 최고의 심사위원단이었다.
이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굉장히 명료했다.
길렐스는 클라이번이 러시아인보다 더 완벽하게 러시아 음악을 연주한다고 평했고, 심지어 리히터는 클라이번에게만 만점을 주고 나머지 모두에게 0점을 줬다. 러시아 참가자들도 피할 수 없었다.
심사위원단이 모두 미국인의 손을 들어 주었다는 이야기는 당시 서기장 흐루쇼프에게까지 보고되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탄생 비화를 생각한다면 상당히 심각한 사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흐루쇼프는 그가 최고라면 그에게 1등상을 주라는 말만을 남겼다고 한다.
“…….”
물론 이후로도 모든 심사가 늘 완벽하게 공정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었다.
스포츠처럼 숫자로 된 절대적인 기준을 놓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콩쿠르 심사에 대한 이슈는 늘 있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물론이고 쇼팽 콩쿠르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도. 그 어떤 콩쿠르도 심사에 대한 논란을 피해 가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다수의 심사위원들은 음악이라는 하나의 가치를 두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믿어야 최선을 다 해 그 다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음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잭슨은 할 말을 잃었는지 침묵했다. 난 자꾸 이렇게 참견하는 버릇 좀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 시작한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괜한 참견을 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공정성에 대한 의심 때문에 자제분을 응원하지 못한다면 너무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실례인 걸 알면서도 모자란 영어로 말을 걸고 말았어요.}
{아니, 전혀. 전혀. 굉장히 잘 하니 걱정하지 말고. 난 러시아 사람들 중에서 이렇게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처음 본…….}
{당신 또 말실수하는 거야.}
{아차.}
고정관념이 있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약간이나마 희석이 되었다면 좋겠다.
참견은 이쯤 하기로 했다. 난 생긋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좋은 시간이 되길 바랄게요. 두 분. 자제분께서도 최선의 결과를 얻으실 거예요.}
{…….}
{고마워요, 타티아나라고 했죠? 덕분에 살았어요. 정말.}
잠깐 나눈 이야기로 도움이 되었다면 그보다 기쁠 수 없었다. 난 용기를 내어 참견한 게 생각보다 잘한 일일지도 모르겠단 생각했다.
그리고 뒤를 돌았을 때, 에르네스트와 눈이 마주치고는 모든 것을 후회했다.
“다…… 보셨나요?”
“어떻게 안 봐?”
머릿속에 온통 반 클라이번에 대한 이야기만 떠올리느라 막상 뒤에 있는 에르네스트를 생각하지 못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광경을 에르네스트가 전부 봤다고 생각하니까 말이 안 나오고 어깨가 다 떨렸다.
그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으며 손에 든 캔을 던졌다 받았다 했다.
난 가까스로 한마디 했다.
“못 보신 걸로 해 주세요…….”
“오늘 반 클라이번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음반 살 생각인데?”
“그, 그럼 에르네스트도 밖에서 피아노 연주해 주세요!”
“무슨 소리야 갑자기??”
그는 당혹스러워했다. 나도 지금 이 상황과 에르네스트의 연주가 무슨 관계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가 당황해하는 것 같아서 더 억지를 썼다.
에르네스트는 내가 다가서자 화들짝 놀라서 뒷걸음질 치더니 결국 캔을 하나 떨어뜨렸다.
깡 하는 쇳소리가 정신을 확 들게 했다.
“…….”
“……미안해요.”
“아니…… 안 터졌으니까.”
그가 다시 주섬주섬 캔을 주우려 하길래 난 대신 몇 개 받아 들어 주었다. 애초에 도와주려고 따라 나온 것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