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751화 (751/1,277)

##  751화

마차의 출발을 알리는 종소리.

그 소리에 덧붙여 재촉하듯 마부는 발을 구른다.

마차에 막 올라타는 아이들과 손을 뻗는 남자들. 기타나 바이올린 등을 든 집시들이 그 뒤를 따르고 몇 마리의 양이 이 땅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짐작한 듯 마지막으로 근처의 풀을 뜯는다.

“…….”

프란츠 리스트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걸작으로 일컬어지며 연주되고, 또 그만큼 악랄하게 요구되는 기교로 유명한 곡.

헝가리 광시곡hungarian rhapsodie 2번. S.244

헝가리를 주제로 한 19개의 광시곡 중 하나인 이 곡은 1847년 본래 피아노 솔로로 작곡되었지만 초연부터 굉장한 성공을 거두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여러 버전으로 편곡되었다.

오케스트라 버전으로의 편곡은 프란츠 도플러에게 맡겼지만 리스트 자신도 편곡에 일가견이 있었던 만큼 피아노 듀엣 버전은 1874년에 직접 편곡하여 출판하게 된다.

솔로 연주를 할 때에도 손가락이 20개인 사람처럼 연주하는 것 같다는 평가를 듣던 리스트가 정말로 두 연주자를 가정하며 편곡한 이 듀엣 버전은 그야말로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했다.

솔로로 연주해도 어려운 헝가리 광시곡 2번을 보다 확장시켜서 다른 연주자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호흡을 맞춰야 한다는 점에선 같이 연주할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우린 서로를 찾아냈다.

나도 에르네스트도 솔로로 헝가리 광시곡 2번을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 연주자들이었다.

난 작년까지만 해도 테크닉의 문제로 이 곡을 제대로 연주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레퍼토리에 넣고 템포를 다운시켜서 할 수 있었고, 지금은 상당한 숙련도로 연주할 수 있다.

에르네스트는 그간 보여 준 적은 없었지만 프란츠 리스트의 곡들이라면 정말 어려운 곡들도 전부 섭렵 중인 그가 이 유명한 곡을 연주해 본 적 없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서로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를 확인한 우리는 그 최상단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헝가리 광시곡 2번을 골랐고, 그것도 모자라 한 대의 피아노가 아니라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하도록 조금 더 손봤다.

안 그래도 어려운 곡을 두 단계나 더 난이도를 올린 것이다.

“…….”

그러나 전혀 무모한 도전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백지에서부터 시작했다면 정말 어려웠겠지만, 이미 솔리스트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히 파악하고 있는 우리는 서로 파트가 나누어져 있는 악보를 보고 익히는 것도 빠르게 해냈고 거기에 필요한 음형은 덧붙여서 강화하기도 했다.

이 또한 작곡을 배운 에르네스트가 검수를 한 부분이었다. 난 그가 정말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그러나 그가 그만큼 애써준 덕분에, 우리가 준비한 이 곡은 세상의 존재하는 듀엣 피아노 곡 중 가장 화려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수준이 올라가 있었다.

‘천천히.’

카프리치오로 시작된 음악은 헝가리어로 천천히를 뜻하는 라싼lassan으로 발전되어 집시들의 음악으로 변화한다.

피아노는 이동을 할 수 없으니 당연히 떠돌아다니는 집시들의 악기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리스트가 피아노로 펼쳐 낸 음악은 바이올린과 기타, 그리고 노랫소리와 풍경까지 그 모든 소리를 대변했다.

퀸텟이 연주했던 스페인의 민속적 선율과는 또 색다른 헝가리만의 민속음악이다.

난 이 부분에서 분명한 차이를 두고자 노력하며 건반을 컨트롤했고, 에르네스트는 혹시 헝가리인의 피가 섞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분위기를 일구어 냈다.

헝가리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프란츠 리스트의 음악을 깊게 연구한 그는 그 피는 아닐지라도 음악적 정신은 어느 정도 옮겨 왔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마치 증명하겠다는 듯 그는 퍼스트 피아노로서 비애 어린 집시의 노래를 아름답게 그려 냈다.

“…….”

춤을 추듯 걷는 걸음걸이. 마차는 천천히 굴러간다. 현을 완전히 개방한 바이올린은 리듬만을 전 세상에 울리게 하겠다는 듯 깊게 울린다.

난 거기에 세세한 디테일을 추가했다. 단지 사람만을 그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말과 양 같은 동물들의 불규칙한 움직임마저 정확한 타이밍에 추가하며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메에에 하는 울음소리를 덧붙이니 건너편의 에르네스트가 웃는 것 같다. 난 아이들이 양을 몰아오는 음형을 주변에 깔아 놓고, 그 중앙으로 파고들어갔다. 집시들의 바이올린은 서글프게 운다.

생명력이 넘치는데도 어딘가 지쳐 있는 것 같은, 질긴 가죽과도 같은 음악이었다.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계속 튀어나오려다가 힘없이 사그라들길 반복한다. 진득한 애잔함이 가죽 위의 얼룩처럼 묻어 있다.

그렇게 헝가리 민속음악 특유의 스케일로 나아가던 음악은 조성이 올림바단조로 바뀌며 분위기를 달리했다.

‘지금부터.’

템포 지시는 비바체vivace. 빠르게.

그리고 지금부터의 분위기를 뜻하는 지시 또한 똑같이 헝가리어로 빠르게를 뜻하는 프리스카friska이다.

하지만 프리스카는 집시 음악에서 라싼 다음으로 폭발되는 정열을 뜻하는 빠름으로서 그 맥락에 속도만이 아닌 문화적 음악적 특성 또한 정교하게 내포하고 있었다.

에르네스트가 먼저 선율을 붙잡아 당겼다. 마차 뒤를 천천히 쫓던 집시들은 그 위에 올라탔고 본격적으로 악기를 잡았다.

바이올린을 목에 더 가까이 붙이고, 허벅지로 기타를 받쳤다. 보다 빠르고 화려한 기교로 현들을 연달아 연주한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처음의 그 느릿한 목가적 분위기는 야성적인 본능으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음악에 너무 집중한 에르네스트가 순간적으로 착각한 것 역시 이상한 일은 아니다.

“?”

중간에 내게 넘겨주어야 하는 구간이었는데 에르네스트는 무언가 착각했는지 그대로 연주하며 이어 나갔다. 순식간에 퍼스트와 세컨드가 뒤집혔다.

내가 잘못 생각했나 싶었지만 이어지는 흐름에서도 위화감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연습하면서도 헷갈린 적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

아마 너무 많은 음악을 다루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 하루 종일 음악에 파묻혀 지쳐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새 곡을 작곡하기도 하면서 이 곡의 편곡을 검수하는 일도 했으니 여러 가지 선율이 뒤엉켜서 자연스럽게 손으로 나온 모양이다.

겨우 몇 초 지났을까. 1초에도 수십 개씩 스쳐 지나가는 음들 사이에서 딱 한 음이 머뭇거렸다. 난 에르네스트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프로인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고 다만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볼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그 표정에 변화는 없지만, 나는 그가 난감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천재인 그가 이렇게 실수를 하고 쳐다보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후후.”

사실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난 가벼운 미소로 그를 안심시켰다.

순서가 꼬였을 뿐 음악이 꼬이진 않았다. 에르네스트는 여전히 완벽한 리듬과 터치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드러난 문제는 하나도 없다.

그가 실수를 하긴 했지만 내가 잘한다면 얼마든지 도와서 수습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시간이 더 늦으면 안 된다.

난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고는 손을 뻗었다.

내게 날아오는 공을 잡는 순발력은 없지만, 날아오는 음을 붙잡는 순발력은 있다.

“…….”

에르네스트의 연주에 맞추어 난 본래 그의 파트를 연주했다.

파트를 나누기 전 몇 번 서로 독주곡으로 연주해 보면서 익혔던 부분들, 그리고 에르네스트가 연주하던 선율의 흐름이 뇌리에 남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이렇게 빠른 연주 중에 상대와 말 한 마디 없이 역할을 주고받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에르네스트와 하는 음악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리란 생각으로 한 일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 현실적으로 가능함을 난 증명해냈다.

그렇게 시간을 번 뒤엔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그와 연주를 이어 나갔다. 음악은 고조된다.

나와 에르네스트는 주저하지 않고 템포를 올렸다.

질주와도 같은 이 프리스카의 서두가 끝나고 조성이 올림바장조로 바뀌며 본격적인 하이라이트로 향하기 시작할 때, 나는 그 순간을 노려 정확하게 에르네스트의 선율을 낚아챘다.

한 번 뒤집혔던 두 대의 피아노가 다시 돌아온다. 그것을 확인할 새도 없이 난 양손으로 건반을 찔렀다.

‘되었죠?’

손으로는 복잡한 음악을 최고의 기술을 다해 연주하면서도 난 고개를 들어 상대편을 바라보았다.

에르네스트는 이쪽을 보지 않고 이번엔 실수하지 않기 위해 오로지 피아노에만 집중하며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격렬하게 정확한 음을 연주하면서 내 음악에 완벽하게 화답하고 있다.

정말 무서울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살짝 고개를 숙인 그의 표정은 분명히 웃고 있었다.

***

비디오 디렉터이자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이기도 한 데니스는 연주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믿을 수가 없군.’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연주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주로 해 왔다.

당연히 본 것도 많고 들은 것도 많았다. 클래식 음악에도 어느 정도 조예가 있었으므로 그는 지금 연주되고 있는 음악이 얼마나 고난도의 음악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테크닉. 그것을 두 사람은 마치 정확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구사해 냈다.

“…….”

데니스는 자기도 모르게 작동시켜 놓은 카메라 화면을 확인했다. 분명 기가 막히게 잘 나올 것이다.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연주회 중간에 삽입되는 인터미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게 그의 일이었으므로 인터뷰나 회의가 아닌 실제 연주를 촬영하는 건 별 의미가 없었지만, 그는 무언가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이 순간을 그냥 흘려보낸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 기록이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뿐이다.

저 두 사람의 돋보이는 모습이나 화려한 테크닉 정도는 잘 잡히겠지. 하지만 이 음악이 실제로 현실에 끼치는 강렬한 감정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집시 음악의 편곡으로 작곡된 헝가리 광시곡 2번은 처음 가슴 먹먹한 부분만으로도 정말 감동적이었는데, 보다 빠른 구간으로 넘어오고 나니 숨이 벅찰 정도로 음악을 쏟아내고 있었다.

데니스는 의무감으로 카메라만 켜 놓고는 다른 아무런 조작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 음악의 폭력에 휩쓸렸다.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지?’

시작부터 전력을 다 쏟는 줄 알았건만, 광시곡은 몇 번의 변주를 하면 할수록 더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세찬 바람이 아닌 폭풍이 되어 버린 음악이 모두를 덮친다.

집시들을 태운 마차는 빠르게 달려간다. 폭풍이 몰아치고 양들이 하늘로 날아갔다.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한 그 상황에서 집시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소리 높여 웃으며 악기들을 연주했다.

그것은 그들이 통째로 하늘로 날아오른다 하더라도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정말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낄 정도가 되었을 때, 갑자기 폭풍이 뚝 멎으며 잔잔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치 모든 것이 농담이었던 것처럼 분위기가 급변하자 집시들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때, 하늘로 날아올랐던 양들이 바람을 타고 빙그르르 돌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눈이 어지러워지는 그 광경에 입을 떡 벌리고 있자니 양들은 사뿐히 땅에 내려와선 다시 천연덕스럽게 메에에 우는 것이었다.

“브라바!”

환상적인 연주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믿기 힘든 기적을 모두 같이 목격한 사람들이 된 것처럼, 모두 호들갑스럽게 자신들이 본 기적을 떠들며 이야기했다.

잔뜩 들떠 있는 분위기와 박수 소리에도 불구하고 에르네스트와 타티아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 엄청난 연주를 하고도 별로 지친 것 같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다만 서로를 힐긋 보고는 미소를 나누더니 이윽고 청중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

데니스는 이 어린 두 사람이 가을 연주회의 주인공으로 발탁된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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