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1화
우리는 골프 연습장을 나와서 점심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한숨 돌리며 무엇을 할지 찾아보았다.
아나스타샤는 우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긴 했지만 골프 다음으로 할 디테일한 계획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하루 묵고 갈 것도 아니었고, 이곳에 있는 시설들을 사용하면 한나절 정도 시간 보내는 데엔 아무 문제 없으리라 생각한 듯 보였다.
컨트리클럽을 소개하는 책자를 펼쳐 놓곤 그녀가 말했다.
“승마도 할 수 있고…… 테니스, 당구, 사이클 등 할 건 많네.”
“저쪽엔 아예 스포츠 컴플렉스도 갖춰져 있더라고. 어지간한 건 다 될 것 같던데.”
활동적인 액티비티라면 아직 할 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나도 방금 전 골프를 치며 꽤 즐거웠기 때문에 다른 것들에도 흥미가 있었다.
하지만 난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을 활동적이고 경쟁적인 놀이보단 휴양 쪽에 두고 싶었다.
두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모처럼 주말에 놀러 와선 무슨 김새는 소리냐고 할지도 모른다. 운동신경이 없는 내가 지쳐서 딴소리 한다고 생각할지도.
난 그저 신경이 곤두서 있는 두 사람이 여유를 가지고 풀어지는 주말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경쟁적으로 무언가를 하다가 무리를 하게 될까 염려되기도 했고.
슬쩍 책자를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거기엔 조금 느긋하게 즐길거리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게 아니면요 수영장, 노래방, 사우나…….”
하나하나 짚어 가면서 난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둘 다 그렇게 내켜 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아나스타샤는 이런 걸 해도 별로 재미없을 것 같단 분위기였고, 에르네스트는 약간 어색해하기까지 했다.
“난 DVD나 보고 있을까.”
혼자 어색해하는 건 이해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서로 갈라지는 건 결코 바라지 않았기에 난 급히 다른 부분을 찾아냈다.
“낚시가 있네요? 낚시 어떠신가요?”
“정말 별게 다 있네……?”
“인공 낚시터가 있나 봐.”
혹시나 해서 던져 본 마지막 미끼를 두 사람 다 덥석 물었다. 동시에 흥미를 보인 두 사람은 책자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평소에 낚시를 좋아하던가?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낚시 해 보신 적 있나요?”
“어…… 없어.”
“나도.”
난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워낙에 못하는 것 없이 잘하는 편이라서 평소 잊고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아직 세상의 많은 것들을 다 해 보기엔 어린 나이였다.
처음으로 접하는 것들도 분명 많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륙인 모스크바에 살면 낚시 같은 건 평범하게 하기 어렵다. 어떤 계기로 낚시터에 가거나 여행지에서 하지 않는 이상 기회가 잘 없었을 테지.
이참에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건 정말 공평하겠네요. 해 보러 가요 우리.”
“그럴까?”
“대신 누가 큰 물고기를 잡았나 시합하기 없기예요.”
“왜? 시합하면 좋잖아.”
아나스타샤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반문했지만 난 확실하게 못 박았다.
“그건 운에 맡기는 거잖아요? 제가 운이 안 좋다는 건 알고 계시면서.”
실력으로 하는 시합이나 내기에서 지는 것이라면 설령 백 번 지더라도 승복할 수 있다.
그건 공정한 일이니까. 때문에 난 내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종목인 피아노와 공부 등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온전히 운으로 정해지는 것이라면 이겨도 그렇게까지 좋지 않고 져도 억울했다.
특히 난 내기 운이 정말 나쁜 편이어서, 나보다 더 나쁜 리처드가 옆에 있지 않는 한 꼴등은 항상 맡아 놓는 일이 많았다.
놀러와서까지 운이 나쁨을 확인하고 가진 않겠다는 뜻으로 눈을 부릅뜨니 아나스타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런데 에르네스트 쪽에서 반론이 나왔다.
“큰 물고기를 낚는 것도 실력이라 하던데.”
“……그런 거예요?”
잡히는 어종 같은 건 수심 등에 영향을 받지만 크기는 완전히 운 아닌가? 하지만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안다고 할 순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에르네스트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말했다.
“아무튼 무슨 말인진 알겠어. 느긋하게 해 볼까.”
그는 책자를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또 거기에 동조하는 모습이었다.
그 역시 정말 원했던 건 휴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낚시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무 장비도 없었지만 낚싯대부터 미끼까지 모든 것들을 렌탈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거기 손님들…… 그런데 낚시하실 줄은 아시나?”
“아뇨.”
“전혀요.”
우리 세 명이 척 봐도 초심자처럼 보였는지 낚시용품점 사장이 슬쩍 끼어들었다.
이때다 싶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저었고, 사장은 이럴 때를 위해 준비했다는 듯 장비들을 여럿 가지고 와서 늘어놓더니 빠르게 설명했다.
이 낚시터에 사는 물고기 종류와 사용해야 하는 낚시 방법부터 시작해서 낚싯대를 세팅하고 찌와 바늘 등을 매는 매듭법, 써야 하는 미끼, 그 외 자잘한 노하우까지…….
한순간에 듣고 이해하기엔 너무 많은 정보들이 쏟아들어져 온다. 용어들을 알아듣기 어려운 건 물론이고 매듭을 매는 건 직접 보고도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그렇게 속성으로 설명을 한바탕 해 준 사장은 그다음은 직접 해 보고 잘 모르겠으면 다시 오라고 말하곤 세 명 분의 장비를 들려주었다.
“자리는…… 오늘은 이곳이 제일 좋겠네. 이쪽 가서 하시죠.”
“감사합니다.”
난 낚시에 대해 0.1% 정도 이해한 상태로 샵을 나왔고, 약간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상태였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면 무작정 뭔가 해 보려 했을 텐데, 낚시가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고 나자 더 막막해졌다.
몇 걸음 앞서 걷던 아나스타샤가 물었다.
“어떻게 하는지 알겠니?”
“아까 설명 들었잖아.”
에르네스트는 그 정도 들었으면 알지 않느냐는 듯 대답했고, 난 솔직히 말하기가 창피해서 그냥 따라갔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진짜 넓네. 생각보다 훨씬 좋아.”
바깥쪽에 갖추어진 낚시터는 마치 넓은 수영장처럼 보였다. 하지만 수심이 얼마나 깊은지 물이 파랗게 보일 정도였다.
당장 눈에 물고기가 보이거나 하진 않지만, 무언가 안에 가득 차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공간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고 물고기들을 풀어놓은 건 약간 잔인하게 느껴졌지만, 물고기를 양식하거나 가축들을 기르는 것 역시 비슷한 일이니 특별히 어렵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곳에선 물고기를 잡아도 무한정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고 딱 바비큐 등으로 먹을 만큼만 잡고 나머지는 놓아주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고 한다.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 마리라도 잡고 나서야 이런 자연보호에 관한 걱정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난 지금 물고기를 잡긴커녕 매듭 묶는 법을 하루 종일 연습해야 할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일단 여기 앉자.”
아나스타샤가 우리 자리를 찾아냈다. 꽤 넓고 좋은 자리 같았다.
가지고 온 간이 의자들을 에르네스트가 펼쳤고, 아나스타샤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그녀는 잠깐 멈칫하지도 않고 낚싯대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사장이 보여 주었던 방식 그대로 낚싯줄을 당기곤 찌와 바늘을 매달아 매듭을 묶는다.
난 마술이라도 보는 듯한 기분으로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정말 처음인 것 맞나요?”
“응.”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잘 하세요?”
“신발끈 묶는 건 매일같이 하잖아.”
“……??”
그거랑 이거랑 같나요?
요령이 좋아도 이렇게 좋을 수 있는 건가 싶다. 음악을 한 번 듣고 따라서 치는 건 나도 어렵잖게 하는 편이지만 그건 훈련된 음악가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아나스타샤는 생전 처음 보는 일도 어떻게 이렇게 잘 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신기하다는 듯 보고 있으면 당연히 내가 무슨 심정인지 금방 알아차린다. 아나스타샤는 싱긋 웃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대신 해 주겠다는 것 같다.
난 직접 해 보고 싶었지만 일단 처음은 그녀가 하는 걸 보기로 했다. 조금 더 유심히 바라보자 아나스타샤는 천천히 보여 주었다.
……다시 봐도 모르겠다.
“자, 여기.”
“와…… 고마워요.”
일단 첫 시도를 해 놓고 나중에 다시 물어보든가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미끼를 끼우는 일이었다. 매듭을 묶는 건 어려워도 바늘에 미끼를 끼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전했다.
난 비닐장갑을 끼고 미끼통에서 지렁이를 한 마리 꺼냈다. 무척이나 징그러웠지만 꾹 참을 만했다.
미리 아무것도 겪어 본 것 없이 처음이었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리를 하면서 이런저런 재료들을 다뤄 본 나는 이런 것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역치가 높아져 있었다.
무언가를 자르거나 찌르는 감촉도 소름이 돋아서 여전히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 몸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면 버틸 만했다.
눈을 감고 하면 손을 찌를 것 같아서 한 번에 끝내기로 마음먹고는 똑바로 바라보며 바늘에 쿡 찔러 끼웠다.
이젠 이런 거라도 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으…….”
“?”
그런데 옆에선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전문가처럼 낚싯대를 세팅했던 아나스타샤가 미끼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아까 아저씨가 이런 거 말고 새우 같은 것도 있다고 했었는데…….”
아나스타샤가 소름이 돋는다는 듯 중얼거리는 건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막 장난을 치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징그럽나요? 아나스타샤.”
“당연하…… 어라? 넌 끼웠어?”
“예.”
“어, 어떻게?”
“그냥 직접 했어요.”
“뭐??”
내가 뭘 하는지도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는지 이제야 내 바늘을 본 아나스타샤는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 옆엔 막 낚싯대를 세팅한 에르네스트도 미끼통에 손을 어떻게 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난감해하다가 날 보고는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남자애라고 해서 징그러운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저 애들 같은 반응이 평범하고 내가 특이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못 한다고 할 수도 없고……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대신 해 드릴까요?”
“괜찮니? 비위 상하지 않아?”
“예. 작은 소시지 꼬치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견딜 만해요. 어, 이건 살아 있기도 하고 물고기들이 먹을 것이긴 하지만요.”
“제발 자세히 설명하진 말아 줄래?”
아나스타샤는 울상이 되어 부탁하더니 결국 내게 바늘을 내어 주었다. 난 아까 했던 것과 똑같은 요령으로 미끼를 끼워 주었다.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냐는 듯 아나스타샤는 계속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난 그녀가 하는 게 훨씬 더 신기한데,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른 모양이다.
난 에르네스트에게도 제안했다.
“해 드릴까요?”
“아니…… 난 직접 할게.”
힘들면 맡겨 줘도 괜찮은데, 그는 굳이 직접 해야겠다며 미끼통에 손을 뻗었다.
그래도 내가 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 줘서인지 그는 몇 번 시행착오 끝에 미끼를 꿰는 것에 성공했다.
기나긴 준비 끝에 낚시를 할 준비가 갖추어졌다.
“자, 멀리 던지자.”
물속은 보이지 않지만 멀리 던져야 물고기들이 많이 있는 곳에 떨어질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가 먼저 낚싯대를 뒤로 젖히더니 유연하게 앞으로 던졌다. 처음 하는 일이라 했는데도 자세가 너무나 좋았다. 당연히 그녀의 찌 역시 먼 곳에 날아가 떨어졌다.
그 뒤로 에르네스트도 던졌고, 나도 최대한 두 사람을 따라 해서 잘 하려 해 봤다. 물론 가장 앞에 떨어진 건 내 찌였지만.
난 살짝 시무룩해져선 의자에 앉았다. 하나라도 잡히려나 모르겠다.
“…….”
모두들 물을 바라보면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갇힌 공간에선 시간이 갈수록 그저 무겁게 내리누르기만 하는 침묵이, 이 탁 트인 곳에선 바람에 실려 옅어지고 멀리 날아갔다. 우린 말없이 있으면서도 자연스러움을 느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소리들 사이에서 살았다는 기분이 든다. 가끔은 이렇게 조용한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옆을 보니 에르네스트와 아나스타샤도 긴장이 풀어졌는지 축 처진 어깨를 하고는 수면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잠시나마 힘을 풀고 푹 쉬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
그런데 문득 에르네스트가 날 바라보았다. 쉬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말없이 가만히 있으려니 심심했던 걸까.
뭔가 가볍게 잡담이라도 할까 싶어서 먼저 말을 걸었다.
“저기, 에르네스트…….”
“물려는 것 같은데.”
“!?”
그가 날 바라본 건 심심해서가 아니었다.
에르네스트는 손가락으로 내 낚싯대 끝을 가리켰고, 난 그제야 찌가 흔들거린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손에도 감각이 전달되어 온다.
그리고 살짝 손에 힘을 주어 낚싯대를 당기자, 갑자기 줄이 팽팽해지면서 찌가 사라졌다.
아무것도 몰라도 이게 물고기가 문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어, 어떡하죠?”
요동치는 낚싯대를 잡고 두 사람을 바라보자 갑자기 토론이 벌어졌다.
“쭉 당기기만 하지 말고 당겼다 놨다 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건 바다낚시 이야기 아니니? 릴을 가지고 하는.”
“그럼 이건?”
“그냥 당기면?”
“그래도 돼?”
“나도 몰라.”
다들 문외한이니 당연히 답은 하나로 일축되었다.
“그냥 당겨! 타티아나!”
그 소리에 힘을 얻은 나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고, 생각보다는 훨씬 쉽게 물고기는 우리 앞으로 끌려왔다.
에르네스트가 가서 채로 물고기를 받아 주었고, 우린 처음 잡은 물고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손바닥보다 작은 물고기였다. 보기에 그리 크진 않지만 이렇게 잡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저, 정말 잡혔네요?”
“한 번에 말이야!”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아나스타샤는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 누가 들으면 큰 물고기라도 잡은 줄 알겠다.
그래도 오늘 한 마리라도 잡을 순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게 어디냐 싶다.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질 정도로 난 들떠 있었다.
에르네스트도 웃으며 축하해 주었다.
“네가 1등했는데? 타티아나.”
아까 전 내가 시합은 하지 말자고 못 박았던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난 아쉬워하며 말했다.
“아하하, 내기 할걸 그랬네요.”
“이미 늦었어.”
그는 호승심에 불이 붙은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낚싯대로 돌아가선 괜히 한 번 흔들어 댔다. 난 그가 묘하게 기운을 되찾은 것 같아 보여서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