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6화
파리 고등 음악원의 교수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지금은 예술감독이나 심사위원직을 맡으며 여행을 다니길 좋아하는 음악가인 브누아 랑베르는 낭트 교외의 시골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러시아의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연주회 기획자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친구의 부탁은 이번 연주회에 초연하게 될 곡을 한번 봐 주었으면 한다는 부탁이었다.
본래 휴가 중엔 일에 관련된 부탁은 전혀 받지 않는 브누아였지만, 그 작곡가가 겨우 열여섯 살의 소년이라는 데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시간을 들여 만든 곡도 아니고 시험을 치듯 몇 주 만에 만들어선 러시아 문화부에서 주최하는 가을 연주회의 첫 곡으로 초연을 한다고 한다.
그 당돌함도 대단하고, 곁에 있을 다른 사람들이 냈을 우려의 목소리도 잠재웠을 거란 점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그래서 완성은 언제 되는 건가?’
마당에 나와 책을 읽던 그는 문득 날짜를 확인했다. 가을 연주회의 시작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슬슬 완성하지 않는다면 아마 연주자들도 굉장히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렇게 먼 곳의 일을 걱정하던 브누아는 알렉산드라에게 전화라도 해 볼까 고민하다가 곧 킬킬 웃으며 낡은 핸드폰을 옆 테이블에 던져 놓았다.
그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브누아가 깜빡 기분 좋은 낮잠에 빠져 있을 때였다.
『……꺼 놓을 걸 그랬군.』
투덜거리며 잠에서 깬 브누아는 핸드폰을 들어서 일단 어떤 사람인진 확인했다. 시답잖은 용무라면 자신을 낮잠에서 깨운 대가로 화풀이나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화면엔 알렉산드라 일리예브나 세르넨코라는 이름이 분명하게 떠 있었다. 언젠가 함께 일했을 때, 분명히 가르쳐 주겠다며 등록해 준 풀네임이었다.
브누아는 기다리던 소식임을 예상했다.
『알렉산드라.』
- 『아, 랑베르 교수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여전히 유창한 프랑스어로 깍듯하게 그를 랑베르 교수라고 부르는 목소리를 들으며 브누아는 껄껄 웃었다.
『나야 잘 있고말고. 낭트는 좋다네. 다음에 우리 기획자도 이쪽에 한번 와 보게. 마음의 안식이 되는 곳이니까.』
- 『꼭 그러고 싶네요.』
잠시 두 사람은 웃음과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바쁜 알렉산드라가 오랜만에 인사나 하자고 전화를 한 건 아니었다.
전화를 받아 든 브누아 역시 본론에 집중하고 싶은 건 마찬가지였다.
『바쁜 기획자께서 내게 전화를 걸 이유는 몇 가지 안 되겠지.』
- 『음, 저번에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시죠?』
『그럼.』
곡을 봐 달라고 부탁해 오는 사람들은 많았고 브누아는 늘 그들을 친절하게 대했지만, 그들은 모두 프랑스의 음악가들이었고 브누아에게 존경을 표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작곡가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열여섯 살밖에 안 되었으면서 자신의 곡을 큰 무대에서 초연하려 하는 야심찬 작곡가의 음악이라면 흥미가 돋지 않을 수 없었다.
브누아는 마치 선물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기대하고 있었다.
『완성되었나?』
그 물음에 혹시라도 안 되었다고 한다면 잔뜩 화를 낼 심산이었는데, 다행히 알렉산드라는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 『예.』
『기대되는군. 그럼 주소를 보내 줄 테니 가장 빠른 특급으로 부치게. 난 이곳에 오래 머물 예정이니.』
- 『아, 우편으로요?』
『그럼 어쩔 셈인가?』
작곡가인 브누아에게 곡을 평가해 달라는 말인즉슨 악보를 보내 줄 터이니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평가해 달란 말과 같았다.
브누아는 당연히 우편으로 악보를 받아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국제 우편으로 가장 빠르게 보낸다면 일주일 정도 걸릴 테니 연주회 전엔 다시 전화로 이야기해 줄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 중인 브누아와 다르게 알렉산드라는 다른 방법들을 제안했다.
- 『메일이나 스마트폰으로 보내 드리면 어떨까 싶은데…….』
브누아는 안경을 올려 쓰며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닭 몇 마리가 울타리를 맴돌고 있었다.
음악원이라면 알렉산드라가 원하는 방법을 쓸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선 아무래도 힘들어 보였다. 거기에 아날로그에 익숙한 브누아는 살짝 스트레스를 느끼며 말했다.
『여기엔 컴퓨터가 없다네. 내 핸드폰은 너무 낡았고.』
멀리 러시아에선 보이지 않겠지만 브누아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슬쩍 흔들었다. 이런 작은 화면으로는 악보를 이 위에 띄우더라도 브누아의 시력으로는 읽는 것이 불가능했다.
시대가 빠르게 바뀌어 간다는 걸 느끼곤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브누아는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음…… 빠릿빠릿하지 못해서 미안하군.』
- 『아닙니다, 그럼 우편으로…… 아. 마지막으로 교수님, 혹시 팩스는 어떻습니까?』
『팩스?』
- 『예, 혹시 주변에 도와줄 곳이 있다면…….』
『음.』
그 정도는 익숙했다. 그리고 팩스로 받은 악보는 일단 종이일 테니, 읽는 데에도 문제가 없을 테고.
『내 한번 부탁해 보지.』
브누아는 그렇게 알렉산드라와의 전화를 끊고는 허리를 일으켰다. 잠깐 산책을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날씨는 선선했지만 약간 습해서 금방 땀이 흘렀다.
근처에 보이는 벤치에 잠시 앉아 쉬던 브누아는 문득 휴가까지 나와선 러시아에서 오는 팩스를 받기 위해 부탁을 하러 가야 하나 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덩달아 그의 기대는 점점 더 삐딱해지고 있었다. 한숨을 내쉴 때마다 그 공기가 기대의 풍선 안으로 들어가 부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만약 받아 본 곡이 마음에 안 든다면 그는 알렉산드라는 물론이고 작곡가 역시 잔뜩 혼을 내 줄 생각이었다.
아직 누군지 이름은 듣지 못했지만, 차라리 악보를 보여 주지 않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브누아는 피식 웃었다. 물론 그것도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일 테니 길진 않을 터다.
『…….』
다시 몸을 일으킨 브누아는 이번엔 쉬는 일 없이 가끔 들르던 약국에 도착했다.
테이블에 팔을 기대고 앉아 있던 약사가 반갑게 인사했다.
『교수님 오셨습니까?』
『줄리앙.』
약사 줄리앙은 브누아를 반갑게 맞이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스런 얼굴을 했다. 그의 직업은 아무리 반가운 손님들이라 할지라도 자주 안 보는 것이 좋다는 아이러니를 지니고 있었다.
『어디 아프십니까?』
『아니, 오늘은 그게 아닐세.』
브누아는 손을 내저으며 다른 부탁을 했다.
『팩스 좀 빌릴 수 있겠나?』
『팩스요?』
『친구가 악보를 보내 주겠다고 하는데 우편으로 받으면 너무 늦을 것 같아서 말일세.』
그 말을 이해한 줄리앙의 표정이 밝아졌다. 교수가 아파서 찾아온 것이 아니란 것만으로도 기쁜 듯했다.
이 착한 약사가 얼마든지 도와주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브누아는 킬킬거렸다.
『휴가인데도 너무하지?』
『하하하, 그러네요. 그래도 필요하신 거죠?』
할 생각 없는 일이라면 정당히 거절할 수 있는 일임에도 브누아는 이렇게 방법을 찾아왔다. 줄리앙은 빠르게 종이를 한 장 꺼내선 크게 숫자를 적어 보여 주었다.
『저희 팩스 번호입니다. 이 번호를 보내면 알아서 해 줄 겁니다.』
『고맙네.』
브누아는 그 번호를 그대로 알렉산드라에게 메시지로 보내 주었고, 잠시 후 약국 구석에 있던 팩스기가 끼익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팩스기를 확인한 줄리앙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엄청나게 많은데요? 그리고…… 국제팩스네요? 러시아입니까?』
『응. 맞네.』
낡은 팩스기가 한 작곡가의 사념을 인쇄하는 데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시간은 줄리앙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보내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딱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정도 시간이 되자 줄리앙이 십수 장의 종이 뭉치를 브누아에게 건넸다.
『다 되었습니다.』
『고맙네. 얼마나 주면 되겠나?』
『그냥 가세요. 제가 돈 벌자고 도와드렸겠습니까?』
『내 다음에 선물이라도 하나 사 와야겠군.』
『그런 거라면 환영입니다.』
가볍게 손을 흔들며 줄리앙은 다시 테이블에 기대었다.
약국을 나온 브누아는 악보 뭉치를 보고는 일단 순서를 확인했다. 귀퉁이에 넘버링이 제대로 되어 있어서 페이지가 헷갈릴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정리가 똑바로 된 것을 확인한 브누아는 머물고 있는 집에 가서 제대로 확인을 할 생각이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첫 페이지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트리플 피아노?’
무대에서 세 대의 피아노를 사용하는 음악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대로도 몇 개나 되는 다중화성을 펼칠 수 있고 크기도 큰 피아노를 그렇게 많이 쓸 필요는 일반적으로 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브누아는 작곡가의 이름을 확인했다. 거기엔 러시아어로 이름이 쓰여 있었다.
브누아는 에르네스트란 이름을 읽어내자마자 열여섯 살의 한 피아니스트를 떠올렸다. 혹시 잘못 생각했나 싶어서 다시 이름을 끝까지 읽어 보았더니, 그가 떠올린 사람이 맞았다.
꽤 오래 전 연주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벌써 인상적인 피아니스트였다.
러시아의 피아니스트들은 그렇게 어려서부터 강점을 보이곤 하는 일이 많았으니 시간이 흐른 지금은 더 대단한 연주자가 되어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언젠가 또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악보에서 이름을 발견하니 기묘한 기분이었다.
『독주곡도 아니고 이런 곡을…….』
차라리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의 기교를 더더욱 잘 떨칠 수 있게 화려한 독주곡을 썼다면 이해가 갈 것 같았다.
그러나 에르네스트는 그가 돋보일 독주곡도, 협주곡도 아닌 세 명이 동시에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곡을 썼다.
이런 곡을 택한 것도 놀라웠지만, 브누아는 에르네스트를 하여금 이런 곡을 쓰게 한 이유가 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연주하게 될 두 명의 피아니스트에게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
점점 더 기대는 커져만 갔다.
휴가지에서 부탁을 받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는데, 약국까지 발길을 하여 부탁을 해 팩스로 악보를 받았다.
이미 브누아의 기준치는 거의 한계치까지 도달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거기에서 작곡가의 이름과 이 곡의 구성을 보고 나니 그의 기대감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만약 이 기대감을 제대로 해소시켜 주지 못하고 시시하게 끝나고 만다면, 브누아는 자신이 어떻게 할지 스스로도 모르겠단 기분이었다.
돌아갈 생각도 못하고 브누아는 근처 벤치를 찾아선 그 자리에서 악보를 읽기 시작했다.
『…….』
한참 동안 손과 눈만 움직이는 동상처럼 악보를 읽어내리던 브누아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
한창 회의를 하던 도중 알렉산드라는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곤 전화를 받았다. 잠깐 쉬어가도 될 타이밍이어서 우린 한숨 돌리며 기지개를 켰다.
『□□□? □□ □□□□?』
무슨 말을 하는진 알 수 없었지만 작년에 프랑스 여행을 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았던 경험 덕분일까, 난 알렉산드라가 하는 언어가 프랑스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지금 프랑스어로 말을 걸 만한 사람은 내가 생각하기론 한 사람 정도뿐이었다.
“에르네스트.”
“응.”
“지금 알렉산드라가 전화 중인 분 말이에요…… 혹시, 아까 전 말씀하셨던 심사위원분일까요?”
로마 대상은 프랑스에서 주는 것이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된 거지? 벌써 악보를 보내서 평가를 다 받은 걸까? 회의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30분 정도인데?
그런데 에르네스트는 평온하게 대답했다.
“아마 그렇겠지.”
왜 내가 대신 긴장하고 있는 것 같지?
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긴장할 시간을 지나갔고,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겠다는 것 같다.
『□□□□□?』
그런데 전화가 꽤나 길어졌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꽤 격양된 목소리가 전화 저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난 알렉산드라를 바라보았다. 설마 비판받고 있는 걸까?
뭔가 물어볼 수도 없이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전화를 살짝 내려놓으며 알렉산드라가 고개를 들었다.
“에르네스트.”
그녀의 입에서 곧 평가가 나올 분위기가 되자 에르네스트도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알렉산드라는 곡에 대한 평가가 아닌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예민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는데…… 혹시 모스크바 음악원에 가지 않고 중앙음악학교에 있는 이유가 작곡과를 희망하여 음악원에서 받아 주지 않기 때문인가요?”
인터뷰 자리도 아닌데 왜 갑자기 이런 걸 묻지?
옆을 돌아보니 인터미션 다큐멘터리 촬영을 맡은 데니스 프로듀서가 이쪽을 보고 있긴 했다.
하지만 지금 알렉산드라의 질문에 대해선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만약 인터뷰 자리라면 조금 더 그에게 중점적으로 카메라들이 초점을 맞췄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갑자기 나오기엔 너무 민감한 질문이었다. 사람에 따라 기분 나쁠 수도 있었다.
에르네스트도 살짝 경계하는 것 같은 눈빛을 보였지만, 그래도 알렉산드라가 이상한 의도로 묻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진학 경로는 어떻게 하실 예정이죠?”
“왜 그런 걸 물으시죠……?”
결국 그도 못 참겠다는 듯 물어보았고, 알렉산드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브누아 랑베르께서 혹시 당신이 원한다면 파리 음악원에 무조건으로 즉시 특례 입학시켜 주겠다고 하시네요.”
“?”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녀의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동시다발적으로 놀라움에 찬 탄성들이 터져 나왔다.
“우리 연주회에 초연하겠다는 곡에 대한 평가인 것 맞지?”
“진짜로?”
게오르기와 카일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고 다른 사람들, 심지어 관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우리가 여러 음악들을 공유하며 듣긴 했지만, 음악회의 서곡으로 나올 음악에 대해선 다들 말은 않아도 조금씩 불안감을 느꼈던 것이다.
에르네스트의 실력은 신뢰할 만하니 그래도 잠재울 수 있긴 했지만, 작곡가로서의 그의 곡을 초연한다는 건 모두가 감수해야 하는 모험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곡에 대한 첫 평가가 먼 프랑스에서부터 나왔다. 곡에 대한 언급은 아직 못 들었지만, 곡 하나로 바로 파리 음악원에 입학시켜 주겠단 말은 엄청난 극찬임이 분명했다.
“대단한데?”
“축하해요 에르네스트!”
“우리도 보여 줘!”
당연히 모두들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에르네스트가 작곡가로서도 그 역량을 높게 평가받았다는 것이었으니까.
나도 그가 이렇게 성과를 거둔 것에 대해선 가슴이 벅찰 정도로 기뻤다. 심지어 그 음악엔 나와 아나스타샤의 역할도 들어가 있으므로 더더욱.
그런데 난 이 와중에도 그가 혹시나 프랑스에 가 보겠다고 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그에 대한 염려나 걱정이 아니라 나 자신의 나약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가 뻐근해져 온다. 그가 여기에 있을 거란 걸 믿으면서도 어쩐지 떠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분명 저번에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진 모르겠다. 난 멍하니 에르네스트를 바라보았다.
“…….”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던 에르네스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을 마주친 그는 아무 말도 않고 있는 날 잠시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알렉산드라를 향해 말했다.
“말씀은 고맙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그는 깔끔하게 프랑스로부터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 목소리에서 난 안도를 얻었다. 그리고 안도하는 스스로에게 조금 화가 났다.
에르네스트가 날 돌아보고 확인한 건 밖으로 새어 나간 내 불안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내 미숙함이 그에게도 불안을 전염시키는 건 원치 않는 일이다.
난 조금 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며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