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809화 (809/1,277)

##  809화

우리 둘 사이에 그간 잘 맞지 않고 어긋나 있던 부분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 놀라진 않았다. 기이할 정도의 평정 속에서 난 아나스타샤를 조금 더 자세히 눈에 담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충동적이고 대담한 이야기를 꺼내고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나와 눈을 마주하고는 곧 진정했다.

그 차분함 속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감정은 기쁨이었다.

난 내가 기쁨을 느낀다는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어떠한 간섭도 없는 즉흥적인 감정이 긍정적이라는 건 그녀를 대하는 내 태도에 거짓이 없어도 된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난 그녀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내가 그만큼 열려 있다는 걸까.

스스로 자각은 별로 없었지만 분명 그런 이유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았다.

긴 유예를 거치면서 내겐 생각을 할 시간이 많았다.

난 그사이 검은 새의 입장을 따져보기도 했고, 내가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보기도 했다.

결론적으론 내 한계가 이미 통념적인 기준을 이미 한참 전에 벗어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었다.

사회적인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만, 그게 날 속박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곁에 두고 싶은 것이 어떤 사람인지가 내게 있어선 훨씬 더 중요했다.

하지만 그러한 내 결론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만약 상대를 바꿔서 아나스타샤가 아니라 발렌티나나 다른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똑같은 말을 내게 했다면 분명 놀랐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난 아나스타샤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난 아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

그간 잘 이해할 수 없었던 아나스타샤의 언행들이 다시 떠오르면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대화를 하는 사이에도 아나스타샤는 내 차분한 모습을 보며 안도하는 것 같으면서도 계속 실수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저질렀다는 느낌이다.

평소 실수를 잘 하지 않는 그녀가 이렇게까지 하게 된 건 내가 그렇게 몰아붙였기 때문이었다.

이유를 듣지 않았으면 훨씬 심각한 오해를 했을 테니 그 자체에 대해선 어쩔 수 없었다. 언젠가 들었어야 하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나 역시 조금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기쁜 건 사실이었지만 마냥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아니었다.

난처함 역시 분명 느꼈고, 약간은 안쓰러움도 든다.

어쩌면 내가 그녀와 두었어야 할 거리 감각을 헷갈렸을 가능성도 다분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잘못일 리는 없지만, 괴로워하면서까지 그러했다면 그건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아나스타샤는 좋은 건 좋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평소 성격답지 않게 먼저 에르네스트를 앞장세우려고 했다.

그건 내게 그를 알아보라고 하거나, 그를 먼저 낙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알아보란 의미였다.

만약 내가 에르네스트와 그대로 관계를 진전시켰다면 아나스타샤는 절대로 오늘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예상컨대, 머잖아 자연스레 내 곁을 떠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무너질 것 같았다.

“…….”

앞서가는 아나스타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한데 올려 묶은 그녀는 꽤나 경쾌한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수업 시간이 가까우니까 빨리 가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 나누었던 이야기에 매듭을 짓지 않고 일단 뒤로 미루어 넘기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다.

연주회도 일주일도 안 남았으니 그쪽에 신경 써야 한다.

심지어 세 명이 함께 연주해야 하는 곡이 연주회 맨 처음의 서곡으로 등장하니, 지금 만약 우리 사이에 문제가 생기는 건 정말 최악의 일이었다.

그리고 연주회가 끝나면 곧바로 내년 국제 콩쿠르를 본격적으로 준비할 시즌이었다.

심사용 DVD도 제작하고, 서류들을 검토하거나 내년에 가져갈 곡들을 제대로 고르려면 연말까지 시간은 정말 촉박했다.

난 아나스타샤에게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재촉하지만 않는다면 시간을 버는 게 불가능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 균형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진 알 수 없었다.

그 냉철한 아나스타샤도 지금 아슬아슬하게만 보인다.

그녀가 에르네스트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다행인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 두리라 믿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

무의식중에 머릿속의 저울이 까딱인다.

난 사랑하는 친구들 사이를 저울질한다는 것만으로도 약한 현기증을 느꼈다.

여러 가지 기준들로부터 난 자유롭다고 느끼지만 그건 그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긋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보다는 친구들이 훨씬 더 중요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 지금은 모르겠다.

다만 막다른 길에 몰려 모두가 지쳐 버리기 전에 답을 내어야 한다는 모종의 책임감이, 시계처럼 내 손목에 채워져 짤깍거리고 있다는 걸 살짝 자각할 수 있었다.

‘오늘은…… 그냥 쉬었으면 좋겠어.’

아나스타샤도 그래야 할 것 같고. 에르네스트를 봐도 조금 어색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처럼 오늘은 단체 연습 없이 각자 하기로 한 날이었으니까 오전 수업만 잘 넘기면 그다음은 혼자서 생각할 시간이 조금 더 생길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만나서 가장 난감할 사람이 우리가 내려갈 계단 밑에 서 있었다.

“……너희 어디 갔다 와?”

에르네스트 계단 중간에 멀뚱히 서서 물었다. 나야말로 묻고 싶었다. 지금 왜 여기에 있나요?

내 마음속 질문은 아나스타샤가 대신 해 주었다.

“너야말로? 여기서 뭐 하니? 수업 시작하는데.”

“구세프 선생님 만나고 왔어. 아침에 잠깐 할 이야기 있다고 해서.”

“아, 그러니.”

“너희도?”

아나스타샤는 태연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난 그 뒤편에서 좀처럼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심지어 우린 방금 전 둘이서 에르네스트의 뒷담화까지 한 상태였다.

물론 그를 싫어해서 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불과 몇 분 전에 건방지다고 한 주제에 이제 와서 친근하게 이야기하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난 그가 그동안 무엇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아버린 터라,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 앞에 무슨 심정으로 서 있는 건지 더 알 수 없어져 버렸다.

여러 이유로 머뭇거리면서 서 있는 사이 아나스타샤가 내 쪽을 슬쩍 보더니 대답했다.

“우린…… 연습실.”

“이 아침에?”

“아침에 연습하면 안 되니?”

“그건 아니지만…… 혹시 내 곡에 문제라도 있어? 만약 결론 낸 것 있다면 지금 알려 줘. 검토해 볼 테니까.”

연주회에서 나와 아나스타샤의 교집합은 에르네스트의 곡에 있다.

우리 두 사람이 동시에 연습실에 갔다는 것만으로도 에르네스트는 쉽게 그 이유를 추론해 냈다.

하지만 우린 연습은 전혀 안 했다.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결론은 아직 안 났어. 그냥 의견만 확인했을 뿐.”

“……연주회까지 얼마 안 남았어. 뭔데?”

“비밀이야.”

“작곡가가 나라는 건 알지?”

“어머, 이제 와서 쥐락펴락하려고?”

그녀가 농담조로 이야기하자 에르네스트는 인상을 팍 썼다.

이런 패턴에 몇 번이고 놀림당한 적이 있자 이젠 아예 미리 피해 버리는 듯하다.

아나스타샤는 일단 대화 주제를 멀리 떨어뜨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보다, 연습실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아니?”

“비밀이라며.”

“그거 말고. 선생님이 갑자기 한 분 들어오셔서 우릴 쫓아내려고 했거든. 연습 안 하고 이야기나 하고 있을 거면 나가라고.”

에르네스트는 무슨 상황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이해할 건 없다는 듯 아나스타샤가 이어 말했다.

“그런데 타티아나가 거꾸로 선생님을 쫓아내 버렸다?”

“……뭐?”

“아나스타샤……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어리둥절해하는 에르네스트를 보니 이 농담에 조금쯤 동참해 주고 싶었지만, 가슴 속 깊이 박혀 있는 죄책감이 그러지 못하게 만들었다.

난 그녀 옆으로 나와선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내 파트를 선생님 앞에서 연주했더니 그 연주를 들은 선생님이 편의를 봐 줄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해 주겠다고 제안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들은 에르네스트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여태 학교 다니면서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네.”

“그렇지?”

그땐 아나스타샤와의 일로 머리가 복잡해서 무심결에 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말로 하니 정말 황당한 상황이긴 했다.

나 스스로도 사실 희한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에르네스트는 날 올려다보더니 팔짱을 끼며 말했다.

“하지만 타티아나가 그랬다니까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저 놀리시는 거죠.”

“아니, 칭찬이야. 넌 원래 우리 상상을 늘 뛰어넘잖아.”

그는 웃으며 나와 아나스타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너희 둘이 같이 있으니까 좋은 시너지가 나기도 했을 테고.”

이전 같았으면 단순하게 받아들였을 말이었지만, 지금은 들리는 바가 조금 달랐다.

난 에르네스트가 정말 어떤 생각으로 여기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세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밤새워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이유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나 못지않게 우리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충분히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식으로는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공정하고 당당한 태도였다.

“아나스타샤.”

“응?”

난 조용히 아나스타샤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 했던 이야기, 에르네스트도 다 알고 있다고 하셨죠.”

“…….”

무언가 죄책감에 못 이겨서 더 말해 주고자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에 대한 고마움 등을 되새기려는 생각이었다.

아나스타샤도 내가 여기서 모든 걸 진전시키려는 뜻이 없다는 건 알아차렸는지 옅게 웃으며 말했다.

“뒷담화 내용에 대해선 모를 거야. 이야기해 줄까?”

“아, 안 돼요.”

“왜? 그렇게 신랄하게 말해 놓고선.”

“그러지 마세요. 제발.”

난 그를 좋아하기에 한 말이었지만, 단어와 문장만 놓고 좋지 않게 전하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었다.

물론 그건 아나스타샤도 잘 안다. 그녀는 우릴 곤란하게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걱정 마. 안 그럴 테니까. 비겁한 짓은 이제 질렸어.”

“……아나스타샤.”

“앞으로 시간은 충분히 있을 거야. 여유도 충분할 테니 하나하나 신경 쓰진 마. 지금은 이대로도 괜찮아.”

아주 아슬아슬하고 미묘한 균형이 우리 사이에 이어져 있다.

정말 한 사람만 까딱 실수하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릴 균형이다.

난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내가 이 아이들과 가까이 있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우리끼리 속닥거리고 있자 에르네스트가 삐딱하게 물었다.

“무슨 이야기야?”

“네 이야기.”

“또 그러네. 진짜.”

정말이었는데도 그는 믿지 않았다.

아나스타샤는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 웃고는 훌쩍 계단을 뛰어내렸다.

“몰라, 난 먼저 갈게.”

마치 도망치듯 아나스타샤는 우리보다 앞서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려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진 잘 모르겠다.

계단을 딛자마자 미끄러진 걸까. 순간적으로 그녀의 전신이 앞으로 휘청거렸다.

표범과도 같이 밸런스가 좋은 아나스타샤도 균형을 잡지 못하는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바로 한 걸음 옆에서,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난 그녀가 앞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

내 약하고 느린 반사신경이 반응했다.

평소엔 날 배신하기만 하지만. 필요할 때, 그러니까 피아노 앞에 앉으면 그간의 모든 집중력을 모아 쏟아내듯 움직여 주는 내 모든 신경이 바로 지금 곤두섰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를 찾았다는 듯.

한 번의 망설임이나 주저 없이 난 팔을 뻗어 아나스타샤를 낚아채어 위쪽으로 당겼다.

난 훨씬 작고 약하니까 어설프게 당겨선 어림도 없었다.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 당겨야만 했다. 다행히 위쪽으로 끌려오는 느낌이 든다.

본래 균형감각이 좋은 아이였으니까, 내가 약간 힘을 실어주는 것만으로도 다시 균형을 되찾은 데에 성공한 것 같았다.

그리고 아나스타샤를 위쪽으로 끌어올리면서, 반작용에 따라 내 몸은 계단 쪽으로 휙 기울어졌다.

‘아.’

이 계단이 어느 정도더라.

죽으려나.

어지간하면 다치는 것으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더 운이 좋다면 적어도 피아노 연주자로 기능하는 데에 별문제가 없었으면 좋겠고.

하지만 어떻게 되든 간에 후회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 순간에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손을 뻗어 행동할 수 있었다는 것에 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검은 새는 무슨 짓이냐고 조금 타박하겠지만, 결국은 잘했다고 말해 줄 테지.

일찍 끝났어야 할 우리에게 때가 왔을 뿐이다.

“!?”

그런데 상념으로 침잠하는 날 누군가가 확 당겼다.

잠깐 사이 나는 죽음에서부터 강제로 끌어올려지는 기분을 체감했다.

공포가 멀어진다. 그러나 그 사실에 안도를 느낄 새도 없이 내 눈에 에르네스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가 날 계단 위에 무사히 올려놓고, 밑으로 떨어지는 것까지도.

***

구세프는 학생들의 데이터 정리를 마치고는 노트북을 닫고 일어섰다. 그도 수업에 들어가야 할 차례였다.

요즘은 학교 분위기도 괜찮아서 수업 할 맛이 났다.

지금까지 여러 학년을 가르쳐 본 구세프는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데에 특별한 영향력을 끼치는 학생들이 있다는 걸 안다.

단 몇 명이 학교 전체를 바꾸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 이 분위기를 조성해 놓은 것은 당연히 두 명의 피아노과 학생이었다.

에르네스트와 타티아나. 그 두 사람은 마치 피아니스트의 교과서와도 같은 모습으로 모범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곁의 학생들 역시 영향을 받아 태도에서 음악성까지 모든 것이 좋아졌고, 그런 영향은 다시 음악을 타고 옆으로 퍼져나갔다.

“그 녀석은 어디까지 하려는지.”

방금 전 아침에 찾아와선 이번 연주회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계획 등에 대해 상담하던 에르네스트를 떠올린 구세프는 피식 웃었다.

정말 전 세계 음악계에 한 획을 긋고 싶긴 한 모양이다.

그렇게 수업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

사납고 불안한 사이렌 소리가 멀리에서부터 들려오더니 학교 앞에 멈춰 섰다.

응급 앰뷸런스가 학교에 오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드물게 오는 날엔 가볍게 끝나는 일이 없다.

구세프는 창가로 다가가서 앰뷸런스를 내려다보았다.

이 거리라면 적어도 환자가 어떤 상태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학교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사이렌은 멈추지 않았다.

빌어먹을 사이렌 좀 멈추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구세프는 못 박힌 듯 그 자리에서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팔을 붙잡은 에르네스트가 앰뷸런스 뒤에 올라탔다.

구세프는 멀리에서도 그 광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스멀거리던 끔찍한 불안감이 머리 뒤편에서부터 휙 감싸들며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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