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816화 (816/1,277)

##  816화

오전 수업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잘 모르겠다.

친구들은 말을 걸어오는 일이 없었고, 심지어 선생님들마저 내 눈치를 본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 있었던 사고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에르네스트가 계단에서 혼자 구른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교내에선 이미 그가 나 때문에 그렇게 되었음이 소문으로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일로 날 안 좋게 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 날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봤다.

어느 정도 수습이 가능한 수준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이것저것 물어볼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사고가 너무 커져 버리니까 되레 말도 걸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학교에 도는 소문으로는 그 애와 내가 친구 이상으로 되어 있는 것 같고.

대체 무슨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는지 다 파악할 순 없겠지만, 조만간 이 소문들이 학교 밖으로 퍼져나간다면 나도 알 수 있게 되겠지.

“…….”

음악이론 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모두들 식사를 하거나 각자 할 일을 하러 반을 빠져나갔다.

“타티아나. 같이 식사하러 갈래……?”

발렌티나가 다가와서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에르네스트와 아나스타샤를 걱정하고 있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나 또한 그만큼 걱정해 주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안심시켜 주려면 같이 가서 한 스푼이라도 무언가 먹는 모습을 보여 주면 될 일이지만, 난 지금 식욕이 별로 없었다.

정말 미안하고 할 말도 없었다. 난 발렌티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알겠다는 듯 두 번 묻지 않고 내 곁을 떠나갔다.

사실 지금은 친구와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난 아침에 계단에서 만났던 두 남학생들에게 분노를 터뜨렸을 때, 순간적으로 계단을 바라보며 느꼈던 기분을 떠올렸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누군가가 또 다친다면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선생님들이라면 조금 괜찮을 것 같다.

오랫동안 음악가로 계셨던 분들인 만큼,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한 사람인 선생님들은 내게 그리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난 곧장 교실을 나와 미하일 선생님의 레슨실로 향했다.

“……왔구나.”

레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미하일 선생님은 마치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선생님을 찾아뵙는다고 해서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침에 구세프 선생님을 만났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난 사과를 할 수 있지도 않았고 감사를 표할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그저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이유로 학교에 나와선 친구들을 만나고 선생님들을 뵙고 있다.

누군가 날 넘어뜨려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어두운 기분이 날 잠식하고 이곳저곳으로 끌고 다니고 있었다.

“…….”

이런 나쁜 생각을 가지고 선생님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울적하다.

아무 말도 없이 앉지도 않고 서 있자 미하일 선생님은 내 말문을 열어 주기라도 하려는 듯 말씀하셨다.

“오늘 학교에 나와 주어 고맙구나.”

그 말엔 나도 모르게 또 울컥하게 되었지만, 미하일 선생님에게 표출할 감정은 아니었다.

선생님은 지금 나와 가장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분 중 한 사람일 테니까.

“할 말이 참 많았는데…… 네 얼굴을 보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구나.”

“……하셔도 괜찮아요.”

“아니다.”

한참을 주저하던 미하일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그간 선생님을 봐 왔던 난 지금 어떤 복잡한 심정을 느끼고 계실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작년에 선생님은 옛 제자를 한 명 잃으셨다.

만약 올해 내가 크게 다치거나 잘못되었다면 선생님은 정말 큰 충격을 받으셨을 테지.

생각만 해도 아찔한데, 그렇게 되지 않은 것에 대해 다행이라 생각하시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 대신 다치게 된 것은 구세프 선생님이 지도하시는 에르네스트라는 사실이 미하일 선생님을 괴롭게 하는 것 같았다.

안도감조차 편히 느낄 수 없다. 어떻게 되더라도 그건 이기적인 안도가 될 테니까.

나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너무나 잘 알았다. 바로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난 천천히 선생님과 눈을 마주했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선생님도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신 것 같았다.

잠시 후 선생님이 넌지시 제안했다.

“에르네스트 병문안은 갔었니? 내가 같이 가 줄 수도 있는데.”

“어제 갔었어요.”

“……혼자?”

“예.”

짧은 헛웃음 후에 경탄 어린 칭찬이 이어졌다.

“강하구나. 타티아나.”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지만, 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정작 그래 봐야 내가 한 일은 아버지의 지원을 전해 주었을 뿐이고.

난 전혀 강하거나 한 사람이 아니다.

에르네스트와 구세프 선생님은 그 이상을 말하기도 했지만, 내겐 불가능한 일이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이야기했다.

“그렇지 않아요. 제가 정말 강했다면 연주회도 할 수 있었겠죠.”

“……뭐라고?”

말하자마자 미하일 선생님이 날카롭게 반응하셨다.

선생님은 평소에 그리 내색을 안 하셔서 그렇지, 사실 정말 예리하신 분이다.

“누군가 네게 연주회를 하라고 말했구나.”

순식간에 내가 이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 파악하신 선생님은 이어서 그다음 내가 대화를 했을 법한 사람들도 추리하셨다.

“누구지? 구세프인가?”

“…….”

“이 친구 참…….”

하지만 그 대상이 구세프 선생님이라는 걸 안 뒤에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말을 흐릴 뿐이었다.

구세프 선생님께서 정말 연주회를 더 중요시하여 내게 강요하신 게 아니라는 건 충분히 아시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극복과 연주자로서의 강인함. 내가 들었던 이야기는 그러한 것들이었다.

이해할 순 있지만 도저히 실행할 엄두는 나지 않는 것들.

하지만 그 일련의 상황을 단번에 이해한 미하일 선생님 역시, 내게 그런 것들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눈빛을 보이고 계셨다.

그 생각을 말로 하시기 전에, 난 고개를 저었다.

“…….”

선생님은 안경을 벗어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렌즈를 통하지 않고 날 바라보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조언해도 될까. 타티아나.”

“……예, 부디.”

“결국 네 판단대로 해야 할 일이겠지. 누군가 강제로 해선 아무 의미도 없으니. 다만, 책임감이 아닌 죄책감으로 무대에 오르진 말거라.”

해라 혹은 하지 마라 하고 정해 주셨으면 아무 생각도 할 필요 없었겠지만, 미하일 선생님은 그렇게 정신적으로 죽은 연주자를 키우는 분이 아니셨다.

살아 있는 내가 고통을 느끼며 고뇌하는 걸 직접적으로 치유해 주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돌부리에 걸려 심하게 넘어지진 않도록 그 위치를 일러 주실 뿐이다.

차라리 누군가 날 넘어뜨려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난 지독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도움이 못 되어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선생님.”

나약한 내가 결국 무대를 포기한다 하더라도 선생님은 그렇게 된 내게 실망 같은 걸 하시지 않고 다른 방향을 짚어 주실 분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날 믿어 주실 거라 생각하며, 난 조금 더 진지하게 상황을 되새겨보고 판단할 수 있었다.

“…….”

레슨실을 나와 복도를 한참이나 걸으면서 난 다시 한번 모든 것들을 돌이켜보았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에르네스트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아나스타샤는 연락도 안 된다.

그런데 내가 지금 연주회를 이어 나갈 생각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청중들도 알겠지. 그리고 음악이 아니라 나 개인에게 집중하게 될 것이다.

모두들 내 행동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겠지.

그 관심은 그리 달갑지 않다.

함께 무대를 준비하던 친구에게 큰 사고가 생겼는데도 이를 악물고 무대에 오른 연주자에게 오로지 긍정적인 응원만이 있으리라 생각할 순 없었다.

분명 그만두지 않고 왜 억지를 쓰며 무대에 올랐느냐고 성토하는 사람도 많겠지.

비난이 두려운 건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되어 버리면 이미 연주회 본연의 취지는 모두 엉망이 되어 무의미하니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감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어떻게 생각해도 할 이유가 없다.

난 계속 복도를 걸었다.

어딘가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교내를 배회하는 유령처럼 돌아다닐 뿐이었다.

중간에 몇몇 학생들과 마주하기도 했지만 모두들 내게 말을 걸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갔다.

그 눈빛에서 보이는 안타까움 등이 날 고통스럽게 했다.

이만 집으로 돌아갈까.

가서 오후 내내 틀어박혀 있다가 해가 지면 병문안을 가는 것이다.

난 스스로에 대한 관대함 따윈 전혀 없이 그렇게 상황에 날 던져 놓고 몰아세우고 싶었다.

지금처럼 동정을 모으는 건 전혀 바라던 바가 아니다.

“아, 타티아나 선배님…….”

그렇게 막 돌아가려고 돌아선 난 뒤편에서 날 따라오다가 깜짝 놀라는 한 여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8학년의 샬롯 린스키였다.

그녀와는 이전에도 이런저런 깊은 이야기들을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샬롯은 복잡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샬롯은 흠칫 놀랐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고 몇 걸음 더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난 그녀가 조금 있으면 날 껴안을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렇게 날 위로하려는 것이다.

“다가오지 마세요.”

“……!”

난 그녀가 더 가까이 오기 전에 냉정하게 말했다. 상처 입은 표정으로 샬롯이 우뚝 멈추어 섰다.

얼마나 어렵고 선한 마음으로 내게 다가오려 했는지 모르지 않는다. 잘 안다.

하지만 지금 난 그 마음을 받아 줄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리고 지금 내게 가까이 오는 친구들이 불행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원래 당하지 않아야 할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건 굳이 사고 같은 것이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난 소문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일 테니까, 거기에 휘말리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좋지 않다.

고개를 저으며 샬롯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나중에 이야기해요.”

“…….”

착한 샬롯은 이 와중에도 내게 괜찮으냐고 묻는 듯한 눈빛을 했다.

난 그 눈빛을 마주하는 것이 힘들어서 뒤돌아섰다. 다시 걸음을 옮겨도 그녀는 따라오지 않았다.

그대로 난 배회를 멈추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연습실을 찾아 들어갔다.

아직 식사 중인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무도 없이 비어 있는 연습실이 많았다.

“…….”

고요 속에 들어온 나는 우두커니 서서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날 좋아하는 친구들과 만나는 게 겁이 난다.

그렇다면 난 도대체 뭘 할 수 있지.

주변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고 바르게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난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 중 하나라 생각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결과적으로 언젠가 나쁘게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숨이 턱 하고 멎는 기분이 든다.

분명 좋은 일을 하는데 왜 나쁘게 되느냔 이유는 아무리 찾으려 해도 소용없었다.

실제로 그리되었고, 그건 내 저주 때문일지도 모르니까.

‘여기에 있으면 안 되었던 걸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어두운 생각은 곧바로 학교뿐만 아니라 내 음악도 잡아끌어선 묶기 시작했다.

손의 떨림이 커져 간다.

“!”

전화벨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연습실 한가운데에서 떨고 있던 나는 갑자기 주변을 울리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스마트폰을 꺼내다가 실수로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

허리를 굽혀 천천히 들어 올리니 액정이 산산이 깨져 있었다.

걸려오던 전화도 충격으로 끊어졌는지 더 울리지 않았다.

2년 넘게 써 오면서도 한 번도 떨어뜨리거나 한 적이 없었는데, 한 번의 실수로 이렇게 부서졌다.

그저 1m쯤 되는 높이에서 떨어뜨렸을 뿐인데, 너무나 쉽고 허무한 일이었다.

난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웅크려 앉은 채로 멍하니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잠깐 상념에 빠져 있기도 잠시, 다시 화면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

스마트폰은 멀쩡히 잘 작동했다. 액정이 깨지긴 했지만 그 화면을 읽을 수도 있었다.

난 그 화면에 임세연의 이름이 발신자로 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 전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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