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2화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 아래에서, 새해 인사를 나눈 뒤엔 각자 잔을 들었다.
두 분은 딱히 소원 종이를 태우는 일은 하지 않으셨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신 마음속으로 소원을 비는 것 정도는 했다. 아마 모두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많은 일이 있었던 한 해였다.
과거의 아픔들을 다시 마주하고 새로이 시작하길 바랐던 내 바람은 아버지와 오빠에게 분명하게 닿았고, 후회와 현명함의 저울을 두고 두 분은 많은 선택을 했으리라.
일부는 안고 일부는 덮었다.
그 위로 회한만이 지나쳐간 것은 아니었다.
내가 조금 더 마음을 열고 나서게 되면서 우린 보다 가깝게 눈을 마주 보면서 조금 더 솔직한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일상 전체에 큰 영향을 주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안정되어간다는 걸 체감할 때마다, 난 살아있어야 할 이유를 느낀다.
“마지막으로 할까.”
아버지와 오빠는 기분 좋게 술잔을 한 번 더 건배하고는 깔끔하게 비웠다. 평소 술을 잘 드시진 않는 편인지만, 이럴 땐 또 마다하지 않으신다.
텔레비전에선 막 이제 새해의 모스크바 풍경을 담은 현장 중계가 나오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조금 더 술을 드시려나 했는데, 아버지는 반쯤 비워진 술병을 보더니 소파에서 일어나셨다.
“난 이만 들어가마.”
“벌써 주무시려고요?”
루슬란 오빠가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는 듯 말했다. 오늘 정도는 투정을 조금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버지도 그것에 대해 무어라 하진 않으셨다. 술 한 잔도 안 하신 것 같은 담백한 태도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실 뿐이었다.
“너희도 너무 늦진 않게 잠자리에 들거라.”
난 그제야 아버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이쯤에서 슬슬 파하고 가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리를 비켜주려는 것이었다. 나와 오빠가 편히 놀 수 있도록.
아버지가 옆에 계시다 하여 딱히 불편한 건 아니었기에 난 슬쩍 아버지를 붙잡았다.
“늦게 잘 생각은 없어요. 그러니 푸른빛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계시면 안 되나요.”
“…….”
살짝 고민하시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오빠에게도 그랬듯 옅은 미소만 보이셨다.
“피곤하구나.”
더 잡을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인사를 올렸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침에 뵈어요.”
“그래, 그러자꾸나.”
그렇게 아버지는 침실로 올라가시고, 나와 오빠만이 텔레비전 앞에 남았다.
붉은 광장을 비추는 화면에선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반짝이는 조명과 수많은 사람들 위에서 화려하게 터지는 폭죽들은 화면으로 봐도 장관이었다.
직접 봤다면 더 멋졌을 것 같지만……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이곳에선 폭죽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귤을 하나 더 까 놓고 있자 오빠가 물었다.
“저기 가지 그랬어?”
“저기? 광장에요?”
“그래. 축제 분위기인데. 친구들과 가서 놀면 좋았을걸. 넌 작년에도 못 나갔었잖아.”
그런 거라면 아까 물었어야 하지 않나요?
난 이제 와서 무슨 말이냐는 투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연주회가 있었던 작년엔 당연한 일이었고, 올해도 당연한 일이에요. 친구들도 모두 동의했어요. 연말은 집에서 보내기로.”
사실 아나스타샤나 발렌티나에게 이야기한다면 밖에서 축제를 즐기는 것도 괜찮았겠지만, 음반을 낸 직후였기 때문에 조금 자중하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오빠는 그렇게 생각한다면 마음대로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내가 까 놓은 귤을 빼앗아 먹었다.
내가 눈썹을 까딱이며 흘겨보자 불만 있냐는 듯 되레 압박을 준다. 아버지가 주무시러 가자마자 다섯 배는 더 유치해진 것 같다.
괜한 장난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서 새로운 귤을 하나 집어들고 텔레비전에 일부러 더 시선을 집중했다.
축제 현장 중계가 끝나고 다시 연말 특집 프로그램인 푸른빛이 이어졌다.
해가 바뀌고 첫 곡이라 그런지 요즘 가장 주목받는 가수가 무대에 섰다. 얼마 전 결혼발표를 했던 올리거 리보비치였다.
“…….”
난 귤을 입에 넣으며 멍하니 그 무대를 지켜보았다.
텔레비전 앞에 앉았을 때부터 루슬란 오빠는 내가 원한다면 연말 클래식 연주회 프로그램을 틀어도 좋다고 하긴 했지만, 난 딱히 가족들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피아노를 연주했던 것이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음악을 선사해주고 싶었던 것이라면, 지금 채널을 클래식 연주회로 돌리는 건 내 만족을 위한 일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고 있을 팝 음악이 지금 오빠와 함께 보기엔 적당할 것 같았다.
“올리거네. 저 사람 요즘 자주 보인단 말야?”
“그렇죠?”
“아직도 좋아해?”
그런데 오빠가 갑자기 짓궂게 물어보았다.
그냥 저 사람 자체에 대해선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었는데, 굳이 그런 질문을 들으니 여러 생각이 든다.
예전에 즐겨 들었던 것과, 결혼 발표 후 외모가 바뀐 것을 보고 기억 속에서 혼동이 온 것 등.
사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아직도냐고 묻는 이유가 뭔진 잘 모르겠다. 내 팬심을 묻는 거라면 별로 안 남아있긴 하다.
“글쎄요? 음악은 괜찮지만 턱수염이 좀…….”
“푸하하하, 그게 문제야?”
“문제죠.”
농담이 아니라 결혼만큼이나 그게 내겐 큰 문제였다. 과거로부터의 모든 기억들이 철저하게 그것을 부정한다.
난 그 기억과 굳이 맞서 뜯어고칠 생각은 없어서 그냥 느끼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텔레비전을 보며 사소한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을 때였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나와 오빠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울었다.
우린 서로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친구분이신가봐요?”
“너도 그런가봐.”
즐겁게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거기엔 아나스타샤의 메시지가 제일 먼저 와 있었다.
[해피 뉴 이어!]
간단한 문장과 이모티콘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이 느껴져온다.
그리고 막 답장하려는 찰나, 연달아 메시지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먼저 온 건 학교 친구들이었다. 발렌티나와 한승우, 라리사, 바르바라 등 순서를 가리지 않고 내 번호를 아는 아이들은 모두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중엔 에르네스트의 것도 있었다.
[올해도 잘 부탁해.]
짧고 무뚝뚝한 어투였지만 그 문장에선 마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난 왜 이런 기분을 느끼는지 잘 알았다. 바로 작년에도 그가 했었던 인사였기 때문이었다.
에르네스트는 그 말을 지키려는 것처럼 나와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했고, 힘든 일도 겪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또다시 시작되는 1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 한마디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느끼며 난 가만히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계속 연이어 오는 메시지들 때문에 조용히 답장을 궁리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난 답장은 조금 이따가 하기로 하고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막심, 그리고 니콜라이 선배의 안부 메시지도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막심 선배는 시큰둥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식이었고, 니콜라이 선배는 후배님이라고 부르는 점잖은 말투였다.
두 사람이 음악원으로 진학한 후엔 좀처럼 연락을 자주 하진 않는 편이었지만, 난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몇 초 안에 합주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그동안 보냈던 시간들은 뚜렷하게 내 음악에 녹아 있었다.
그 위엔 예카테리나의 메시지가 쌓였다.
[모스크바에 있지? 거긴 지금 시간일 것 같으니까 보낼게. 새해엔 행운이 깃들길!]
그녀는 10월부터 시작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 투어 콘서트 일정으로 전 세계를 다니는 중이었다.
얼마 전 들은 바로는 미국에 가 있다고 했는데, 연락을 할 때마다 나라가 바뀌는 터라 아직 거기에 있는진 모르겠다.
예카테리나에게도 다시 전화를 해봐야겠다 생각하며 메시지를 올리자 시차를 계산하여 맞춰 보내 준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었다.
한국에 있는 임세연이었다. 번역기를 썼는지 어색한 러시아어가 무척 재미있다.
“…….”
작년엔 연주회를 하면서 스마트폰을 볼 시간이 없기도 했고, 또 홀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많아서 이렇게 많은 메시지들이 연달아 오는 일을 겪진 않았다.
아침에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답장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가 바뀌면서 실시간으로 날아오는 메시지들을 보고 있으니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이 시간을 공유하며 나란히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즐거웠다.
“메시지가 끊이질 않네?”
“오빠도 그렇네요.”
“난 일 관련해서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오빠는 시큰둥하게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 역시 연주자로서 알게 된 사람들에게 온 메시지도 굉장히 많았다.
[새해 축하 음반 축하 최고 축하]
우선 마카로프 프로듀서의 메시지는 보자마자 잔뜩 취해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어제 내 음반이 발매되고 나서 반응이 꽤 좋았던 건 분명한가 보다.
그건 그렇고 대체 얼마나 마셨길래 이런 메시지를 보낸 걸까……? 평소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잘 상상이 안 간다.
표트르의 메시지도 새해와 음반 발매에 대한 축하를 담고 있었다.
물론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봐야 알 일이겠지만, 일단 두 사람의 반응이 이렇다면 별로 걱정 같은 건 들지 않는다.
“모스크바 메세나 협회에서도 왔어요.”
“아, 그래?”
난 그간 활동을 많이 하진 못했지만, 일단 모스크바 메세나 협회의 후원 연주자였다.
올해는 콩쿠르를 마치고 나면 후원 연주회도 자주 해야겠다 생각하며 긴 메시지를 읽어보고, 다른 것들도 확인했다. 에이전트인 베르너가 보낸 것도 있었다.
그 역시 날 다방면으로 정말 많이 도와주었던 사람이었다.
반대로 내가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의 에이전시에 소속되거나 아니면 그가 기획하는 연주회에 참가하는 것 정도이리라.
그 부분에 대해선 박하게 굴 생각이 없었다. 나쁜 일도 아니었고.
“…….”
난 차근차근 메시지들을 하나씩 정독해나갔다.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곳,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온 메시지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 제대로 된 길을 걸어오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의 악장 크리스티나.
연말 음악회에서 만난 율리아.
리빈스크 시립 오케스트라의 악장 요나스와 첼리스트 카밀레.
퍼시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악장 시어도어.
가을 연주회에서 친해진 콘서트 디렉터 알렉산드라.
내가 개인 번호를 교환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도 이 정도로 메시지가 쌓인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의미였다.
난 지금 메시지가 온 사람들 말고도 그 모든 이들을 정확하게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그 인연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
답장을 할 것이라면 내 쪽에서 먼저 하는 것도 있어야 할 것 같다. 특히 내가 협연했었던 오케스트라들의 지휘자님들이라면 더더욱.
스타니슬라프와 아르투르 지휘자님의 번호는 있었다. 하지만 김성조 지휘자님 것은 없어서 나중에 시어도어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머리를 쓰면서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고 있자 옆에서도 앓는 소리가 들렸다.
“이걸 언제 다 답장하지.”
“지금부터 천천히 하면 되겠죠?”
“그럴싸한 멘트 없나?”
오빠는 뭔가 같은 말을 복사해서 다 똑같이 보내려는 것 같았다.
물론 우리가 답장한 것들을 받은 사람들이 서로 비교해보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 큰 문제는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성의의 차이라 생각한다.
난 각각 다른 음악과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렇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
오빠는 알아서 하도록 두고, 난 일단 먼저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던 스타니슬라프에게 무어라 정성스레 보내야 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단어 하나하나 크게 신경 쓰진 않으실 거란 걸 알지만 그래도 고민이 된다.
물론 내가 메시지를 모두 손수 보내면서 고민했던 건 개인 연락처로 온 사람들에 한해서였다.
밤늦게까지 오빠와 함께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건지 일을 하는 건지 모를 시간을 보내다가 잠들었다.
적당히 자고 일어나니 이미 아침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 지나 있었다.
어제 늦게 잠든 것에 대해서 봐주시는지 아버지는 딱히 아침에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다.
대신 빅토르의 전화가 날 잠에서 깨웠다.
“으음…….”
-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조금요…….”
멍하니 대답하고 나니 무슨 말을 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고개를 휘휘 저으며 잠을 떨쳐내고 있는데, 빅토르가 물었다.
- 나중에 말씀드릴까 했는데, 새해 벽두부터 휴일도 없는지 전화 오는 곳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요? 빅토르.”
- 지금 아가씨를 찾는 곳이 정말 많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내 음반 발매는 어제, 그러니까 마지막 날 시작되었다.
그러고 나선 사회가 멈춰버리는 신년 연휴가 와 버렸으니 음반매장들이 쉬는 곳도 많고, 무언가 취재 등을 하려고 해도 영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기자들뿐만 아니라 평론가나 음악가들 중에서도 내게 무언가 확인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 같아선 그들 모두에게 성실하게 답해주고 싶다. 의문이 있다면 바로바로 풀어주고 싶다.
하지만 이미 마카로프 프로듀서와 이야기하면서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일환으로 내가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난 프로듀서도 참 무서운 사람이라 생각하며 웃었다. 그리고 빅토르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오늘부터 휴가에 들어가니 이후에 연락 달라고 전해 주시겠어요? 빅토르. 혹시 일이 힘들다면 그냥 제 번호는 잠깐 내려 두셔도 좋아요.”
빅토르는 정말 그렇게 해도 되는지 의문이 드는 모양이었지만, 내가 정말로 휴가에 들어간다는 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다른 물음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해주었다.
난 목 근육을 풀어주며 눈을 감았다. 내일부터 떠날 여행을 준비하려면 오늘도 바쁘게 움직여야 할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