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1화
다양한 종류의 고기와 야채들이 꽂힌 쇠꼬치들은 모두 그릴 위로 올라갔다.
세 개의 숯불이 내는 연기와 고기가 익는 냄새가 은근하게 내 주위를 휘감는다.
인원이 열두 명이나 되다 보니 한 번에 먹을 만큼의 샤슬릭을 굽는 광경은 그 자체로 진풍경이었다.
거기에 더해지는 친구들의 목소리는 아무리 듣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
샤슬릭 요리는 보기엔 단순하지만 손도 꽤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요리다.
본격적으로 고기를 양념에 재놓는 건 오늘 아침부터였고, 숯불 위에서 굽는 것도 한참이나 걸릴 테니까.
그러나 그사이에 파티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건 결코 단점이 아니었다.
되레 오래 걸릴수록 좋을지도 모른다.
난 아까 야채를 써느라 엉망이 된 테이블 위를 대충 정리해놓고는 주변을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야 모두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이런 시간도 즐겁다고 생각할 무렵, 참을성이 없는 몇몇은 먼저 샤슬릭에 손을 댔다가 혼이 나기도 했다.
“여기 덜 구워졌잖니.”
“어디? 모르겠는데.”
“……너희들은 먹기 전에 나한테 허락 받고 먹어.”
아나스타샤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한승우는 반발했지만 그런다고 그녀가 눈 하나 깜빡할 사람도 아니다.
그녀의 통제 아래에서 덜 익은 고기를 먹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 같았다.
약간 안심하면서 난 그 옆쪽을 살폈다. 거기엔 에르네스트만 살짝 떨어져선 불구경을 하고 있었다.
아까도 멍하니 이러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이런 걸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런 그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에르네스트.”
살짝 다가가서 이름을 부르자 그의 시선이 불에서 내게로 향한다. 풀려 있던 눈빛도 곧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말을 걸기 잘했다 생각하며 난 샤슬릭 중 하나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이거 괜찮아 보이는데요?”
“허락해주는 거야?”
옆에서 아나스타샤가 하는 말들을 듣고 있긴 했나 보다.
난 입가를 비집고 나오려는 미소를 참으며 대답했다.
“그냥 드세요…….”
“아니, 나도 사실 잘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그도 요리엔 별로 자신이 없는 사람이었다.
난 다가서선 다시 한번 샤슬릭을 뒤집어가며 확인해주었다.
제대로 요리를 할 땐 온도계를 쓰기도 하지만, 이런 건 눈으로 보면 안다.
여기 이 닭고기 샤슬릭은 당장 먹어도 될 정도로 잘 익어 있었다.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에르네스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믿고 먹을게.”
그는 닭고기 샤슬릭을 오른손에 쥐었고, 천천히 끝부분부터 입으로 가져갔다.
난 혹시나 그가 불편해하진 않나 유심히 지켜보다가, 휙 하고 시선을 돌렸다.
저 정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꾸 나도 버릇처럼 챙기려는 건 고쳐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환자 취급을 받는 걸 정말로 싫어하니까.
가끔 정말로 필요할 때만 도우면 된다.
내가 느끼는 그 기준은 그의 자존심과 내 걱정 가운데의 아리송한 부분에 걸쳐져 있었지만, 그 균형은 묘하게 어느 한쪽으로 넘어가지 않고 잘 지켜지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이 아니라 하더라도 시선은 나도 모르게 다시 그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 눈길을 느낀 에르네스트는 우물거리던 것을 삼키며 말했다.
“맛있네.”
“그렇게 보여요.”
샤슬릭도 맛있어 보이고, 그걸 먹는 에르네스트가 맛있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난 그냥 그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대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는 이어서 다음 고기를 먹는 대신 부담스럽다는 듯 이야기했다.
“타티아나, 그렇게 보고 있지만 말고…….”
“아, 다른 것들은 조금 덜 익은 것 같아서요.”
다시 한번 확인해봐도 조금 더 익어야 할 것같이 보였다.
난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의자에 앉았지만 에르네스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대로면 정말 내가 내 걸 집기 전까지 그는 어색해하기만 할 것 같아서 절충안을 냈다.
“그럼 그거 하나만 주실래요?”
“이거?”
“드시던 것 뺏어가려는 건 아니고…….”
“가져가. 빨리.”
난 접시와 포크를 가져와선 그가 먹던 샤슬릭의 두 번째 닭고기만 포크로 살짝 빼냈다.
“진짜 하나만 가져가네.”
“두 개 가져가면 화내실 거잖아요.”
“내가 왜!?”
“후후후.”
괜히 장난을 치며 어깨를 틀었더니 에르네스트는 제발 그러지 말라는 듯 투덜거리다가 이윽고 다시 샤슬릭을 입에 물었다.
우린 한동안 같은 닭고기를 우물거리며 말이 없었다.
역시 양념이 잘 되었다는 생각 등을 하다가 그를 돌아보았다.
그 양념이 입가에 묻어 있었다. 왼손으로 쉽게 닦아내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가만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저편에서 루슬란 오빠가 소리쳤다.
“슬슬 구워졌으니 다른 것도…… 그럼 리처드, 승우. 잠깐 먹던 것 놓고 따라 와. 뭣 좀 가지러 가자. 거기! 에르네스트도!”
이제 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굳이 에르네스트에게 일을 시키려는 건 오빠 나름의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냥 괴롭히고 싶어 하는 게 아니란 믿음 정도는 있었다.
에르네스트는 들고 있던 샤슬릭 꼬치를 옆의 접시 위에 내려놓고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아냈다.
난 그가 일어서서 하는 일련의 행동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고개를 까딱이던 에르네스트는 날 잊고 있진 않았는지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갔다 올게.”
“다녀오세요.”
난 포크를 내려놓고 그를 배웅했다.
따라가서 도와주고 싶기도 했지만, 오빠가 불러내지도 않았는데 괜히 따라가서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진 않았다.
일단 당분간은 오빠를 건드리지 않아야겠단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남은 나는 다시 포크로 남은 닭고기를 푹 찍어선 입에 넣었다.
그리고 에르네스트가 먹다가 내려놓은 샤슬릭은 그대로 다시 만갈 위에 올려놓았다. 적당히 가장자리에 올리면 식지 않고 온도만 유지할 수 있다.
원래는 먹던 걸 이렇게 올려놓으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돌아온 그에게 식은 샤슬릭을 마저 먹게 하고 싶진 않았다.
다른 것들도 잘 익도록 돌려놓으면서 앉아 있을 때였다.
“타티아나.”
“아, 리디아.”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저 앞에서 발렌티나와 이야기하던 리디아가 어느새 내 뒤에 서 있었다.
난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배시시 웃더니 옆으로 휙 다가왔다.
“옆자리 앉아도 되는 거지?”
“예, 앉으세요.”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 보기에 안 좋았나……? 그렇게 보였다면 그냥 내가 친구들 쪽으로 갈 걸 그랬다.
괜한 걱정을 끼친 건 아닌가 싶어서 그녀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리디아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또 감사인사 하고 싶어서 왔어.”
“감사인사요?”
“응. 저녁에 이렇게 북적이는 파티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 정말 고마워.”
리디아는 이곳을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열 명이나 있는 곳에 초대받으면 낯을 가리거나 남자친구인 막심 선배의 옆을 따라다닐 만도 한데, 아까부터 아예 선배는 뒷전이고 아나스타샤나 발렌티나와 붙어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한층 더 활발해진 목소리로 리디아가 즐겁게 이야기했다.
“어디 그뿐이니? 아까 산에 날아와서 우릴 구해주기도 했잖아. 난 정말로 하늘에서 구세주가 떨어진 줄 알았다니까?”
그녀는 호들갑스럽게 말했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나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 것 같긴 하다.
3,200미터에서 아는 사람을 헬리콥터로 만나는 일이 흔하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 역시 기쁜 건 마찬가지였다.
“인연이 있는 것이겠죠. 저야말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빙그레 웃으며 답하자 리디아는 약간 머뭇거리더니 조금 더 찰싹 달라붙으며 물었다.
“원래 이렇게 착하니? 막심이 사실 너 만만찮은 아이니까 조심하라고 하던데…… 어떤 면에서 만만찮은 거야?”
“……선배에게 전해 주세요. 다음에 따로 이야기 좀 하자고.”
“아하, 그런 면이구나.”
싸늘하게 대꾸했더니 리디아는 너무 재미있다면서 박수까지 쳐가며 웃었다. 난 농담한 게 아니었는데…….
아무튼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마구 하고 다니는 막심 선배에 대한 원한은 차치하고, 애인분 앞에서 따로 보잔 말을 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니 리디아는 키득거리다가 손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아무튼 그 깐깐한 남자가 그토록 극찬하는 피아니스트가 누굴까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 정말 팬이 되지 않을 수가 없네.”
그 말에서 난 리디아가 날 직접 보기 전까지 꽤 여러 궁금증을 안고 있었음을 느꼈다.
내 팬이라는 건 진심이겠지만, 막심 선배의 입으로 듣는 내 이야기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으리라. 난 그 부분을 이해하면서 약간 불편함을 느꼈다.
그런데 리디아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짜로 팬이야. 타티아나.”
“아…… 감사해요.”
“그러니까 혹시 나한테 실수하진 않을까 조심할 필요는 없어. 애초에 난 너와 막심의 우정이 정말 음악가들간의 우정이라고 믿고 있거든.”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나온 그 말은 그녀가 이미 이곳의 모든 상황과 내 기분까지도 모두 이해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서 초대하기도 했지만, 그게 방해가 될지도 모른단 생각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때문에 난 정말로 리디아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의 확인 같은 건 전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기쁜 미소와 거리감을 보였다.
내게 혹시라도 있을 조심스러움 같은 건 모두 거둬버리려는 움직임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거기에 답할 의무가 있었다. 난 지금까지의 신중함을 조금 더 내려놓으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맞아요. 리디아.”
“응. 그럴 것 같았어. 그리고 애초에 너한텐 다른 애가 있기도 하고.”
“……다른 사람요?”
“에르네스트 말야.”
순간적으로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멍하니 바라보니 리디아는 뒤편 어디론가를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역시나 듣던 대로 그 애랑 사이좋아 보이던데?”
듣던 대로? 이것도 혹시 선배가?
하지만 그게 아니란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선배가 아무리 경솔하게 말하더라도 그런 이야기까지 쉽게 할 사람은 아니었고, 리디아는 그저 세간의 소문을 접하고 있을 뿐일 테니까.
그녀는 이제 슬슬 이야기의 초점을 자신과 막심 선배에게 두지 않고 내게 돌려도 되지 않겠냐는 듯 말했다.
“아까 산에서 봤을 땐 조금 놀랐거든. 남자애 두 명이 내리길래. 그런데 역시 그중에선 에르네스트 쪽인 거지?”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가…….”
“어라? 싫어하니? 이런 이야기?”
나도 모르게 어색하게 중얼거리자 리디아는 깜짝 놀라며 허둥거렸다. 내가 부담스러워할 줄은 전혀 몰랐다는 태도였다.
리디아가 잘못하거나 착각을 크게 한 건 아니었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할 만한 원인 제공은 이미 충분히 해버렸으니까. 난 그 부분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즐거운 분위기에서 속닥거리며 이야기하기엔, 걸려 있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조금 주저하자 리디아는 당황했는지 입술을 움찔거리며 괜히 샤슬릭을 만지작거리다가, 갑자기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혹시…… 어…….”
“?”
“아니야 아무것도…… 그,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상황인가 싶어서.”
“……무슨 생각이신데요?”
“말 못 해.”
“리디아?”
난 대체 그녀가 무슨 오해를 한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집요하게 물어보았으나 리디아는 입을 열면 죽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도리도리 젓기만 했다.
제대로 설명이 안 되면 오해를 산다. 그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마주하니까 정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