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5화
파티장을 정리하고 찬바람을 피해 별장 안으로 들어와서도 우린 한동안 분주했다.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치우기도 하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씻기도 했다.
난 복도를 돌아다니면서 혹시 불편한 것이 있는지 묻기도 하고, 하품을 하며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러한 호스트로서의 케어는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부분들이었다.
그러고도 인사를 해야 할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접시 몇 개를 마저 챙겨 들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거기엔 여전히 이안과 몇 명의 사람들이 한창 정리 중이었다.
내가 온 걸 본 그들은 슬쩍 알은체를 하며 눈인사를 보내왔다.
그러고는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대표로 고개를 들고 날 상대한 건 이안이었다.
난 웃으며 다가가 물었다.
“이안, 늦게까지 계시네요.”
“혹시 모르잖습니까. 아, 접시는 이리 주시죠.”
“감사합니다.”
이안은 접시를 옆에 내려놓으며 내 등 뒤 너머를 바라보듯 고개를 기울이더니, 이내 말했다.
“파티는 끝나신 겁니까? 정리하시는 것 같던데.”
“예. 이제 막 마쳤어요.”
파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데도 이안과 다른 사람들은 이곳에서 정리를 하거나 우리의 부탁을 들어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좋은 시간이 되었음을 내가 직접 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난 그에게 감사의 뜻으로 악수를 청했다.
이안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고는 내 손을 맞잡았다.
여전히 물기가 느껴지지만 상관없었다.
“오늘 감사했어요. 아침부터 준비해 주신 샤슬릭에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하던데요.”
인사와 찬사를 전달하자 이안은 기분 좋은 듯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그랬습니까?”
“특히 양고기 샤슬릭이 정말 인기가 많았어요.”
“특별히 심혈을 기울인 보람이 있군요.”
“양념을 어떻게 하신 건가요? 그렇게 부드러운 건 처음이었어요.”
자칭 샤슬릭 전문가라 하던 막심 선배나 리처드는 양고기 샤슬릭에 그야말로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샤슬릭엔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도 대체 어떻게 이런 맛을 구현해낸 것인지 분석하려고 하다가, 결국은 그 맛에 집중력이 무너져서 그저 심취해버리는 데에만 그칠 정도였으니까.
이랬던 건 음악에 국한하더라도 정말 드물었다.
때문에 진심으로 감탄하기도 했고, 미처 알아내지 못한 비밀에 대한 궁금증 등으로 난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날 바라보던 이안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요리도 하시다보니 배워서 써먹을 생각이신가 보군요.”
“아…… 특별한 비법이라면 더 이상 묻지 않을게요.”
“푸하하, 그런 게 아닙니다. 되레 더더욱 가르쳐드리고 싶어서요.”
“예?”
“그래야 다음에 또 파티에서 친구분들에게 샤슬릭을 맛보여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안은 오늘의 일은 비단 여기서 끝낼 것이 아니라 다음에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난 이곳에서 보낸 며칠간의 추억을 샤슬릭으로 배우고, 다른 어느 곳에서도 떠올려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이안은 주방 서랍 한 곳에서 수첩과 펜을 꺼냈다.
“지금 직접 가르쳐드리긴 어렵고……. 중요한 건 양념과 손질 방법이니 제가 레시피만 지금 바로 써드리도록 하죠.”
“정말인가요!?”
“원래 요리를 하셨던 아가씨 수준이라면 금방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내 요리 실력은 드미트리로부터 기초적인 것부터 전수받은 것이었고, 이안은 내 실력을 굉장히 높게 평가해주었다.
레시피만 가지고도 충분히 만들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에 지금 가르쳐주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안은 바로 수첩에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난 흥미진진하게 그의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 레시피엔 탄산과 파인애플 등 뭔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원래 손이 많이 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신기하게 보고 있는데,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곳에서 우릴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고개를 드니 주방 입구 쪽에서 막심 선배가 주먹으로 벽을 툭툭 노크하고 있었다.
“어, 선배?”
“뭐 하고 있어?”
잠시 양해를 구하고 선배 쪽으로 간 나는 주방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샤슬릭의 주인공이시니 감사를 전해야죠.”
“아, 그런 거라면 나도 해야지.”
그리고 막심 선배는 성큼 들어서더니 오늘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면서 이안에게 찬사를 보냈다.
내가 호스트 대표고, 선배가 게스트 대표라면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다.
이안은 정말 고맙다는 듯 웃더니 손을 내저었다.
“두 분 말씀 나누시죠. 전 이것 좀 깔끔하게 쓰겠습니다.”
“아…… 그럴게요.”
우리를 배려해 준 이안의 말에 따라나와 선배는 잠깐 앞의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선배는 아까 입고 있던 것과 같은 옷차림이었다. 아마 자고 갈 것이라곤 예상을 못 해서 다른 옷이 없는 것 같았다.
편한 옷이라도 빌려줄까 하다가, 일단은 이 자리에 없는 다른 한 명에게 신경이 쓰였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신가요? 리디아는요?”
“방에 있어. 난 커피 한 잔 할까 해서.”
“커피요?”
“카페가 있다길래 먼저 가 봤는데 이미 아무도 없어서, 주방에서 한 잔 부탁해도 될까 싶어서.”
호텔이었다면 방마다 간단한 취식이 되거나 어메니티로 커피 정도는 제공되었겠지만, 이곳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래서 밖까지 나온 것 같은데…… 물론 커피 정도야 별로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지만 난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주무시기 전에 커피를 드시면 잠을 설치실 거예요.”
“난 원래 자기 전에 커피 마시고 자. 잠 잘만 오던데.”
“개인차로 잠드는 것까진 상관없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카페인은 깊은 수면을 방해해요. 그것도 다 수면 장애의 원인이 되니까 마시지 않는 편을 권할게요.”
차분하게 이야기하자 막심 선배는 입을 비죽 내밀고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윽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맨날 잠 깊게 못 자는 게 그것 때문인가?”
“자각하고 계셨다면 원인이 명백하지 않나요……?”
“그러게.”
“그럼 원인을 고치셔야죠. 램 수면만으론 불충분할 거예요. 특히 체력과 정신력이 중요한 연주자라면 더더욱.”
나도 모르게 가르치려는 듯 말이 나오다 보니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기분이 든다.
난 선배에게 그럴 입장도 아닌데. 쓸데없는 간섭 말라며 한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할 말은 해야겠단 생각으로 말을 맺었다.
“주의하셔야죠. 앞으로 할 일이 많으신데.”
막심 선배는 굉장히 주목받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콩쿠르 우승 후 아직 세계 투어 콘서트가 다 끝나지도 않았다고 하니 컨디션 조절 같은 건 잘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스키도 안전하게 타고 자기 컨디션 정도는 챙길 줄 아는 프로이니 내가 걱정할 위치는 아니겠지만…… 이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던 선배는 내가 한 말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엉뚱한 감상을 꺼내들었다.
“……너 의사 같다?”
“예?”
“얼마 전에 건강검진도 받아봤거든. 그런데 그때 의사가 너랑 비슷한 말투였던 것 같아.”
“……그저 같은 연주자로서의 의견이에요. 몸 관리는 알아서 하셔야죠.”
내가 카페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건 나 스스로가 카페인에 약한 까닭이었다. 약한 부분일수록 잘 알아야 컨트롤할 수 있으니 공부를 해둘 필요가 있었다.
또다시 딱딱한 소리를 한 것에 대해 막심 선배는 마치 재미있다는 듯 웃더니 말했다.
“그래, 네가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난 참 보기 좋더라.”
“예?”
“……에르네스트의 일은 안 됐어.”
난데없는 말에 난 살짝 굳었다.
지금까지 막심 선배는 그 부분에 대해 전혀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같이 놀거나 이야기를 할 때도 다른 친구들과 전혀 다르지 않게 에르네스트를 대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선배 역시 마음속으론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그 앞에선 못 말하겠지만 내 앞에서만 슬쩍 드러내었다.
난 어째서 내게 대신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잠자코 듣고 있자 선배는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녀석도 조심 좀 하지. 네가 이렇게 걱정이 많은 애라는 걸 알 텐데.”
“……그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래, 누구 잘못이겠어.”
막심 선배는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두자는 듯 조용히 고개를 숙이더니, 내게 말했다.
“그래도 너희들이 옆에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
“이런 걸 이겨내는 건 마음가짐에 달려있는 거거든.”
사실 거기에 대해선 완전히 공감하기 어렵다. 연주자의 기능성은 정신력만으로 전부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보다 깊은 무언가에 기반한 이야기라는 것이 내겐 큰 위안이 되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보자 막심 선배는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오늘 내 예전 이야기하자고 한 건 누구 아이디어였어?”
“……예?”
“내가 밴드 활동 했었던 것 말야.”
갑자기 분위기를 싹 바꾸며 막심 선배는 마치 취조하듯 내게 물었다.
“발렌티나가 영상까지 구해서 리디아에게 보여주던데…… 설마 우릴 초대한 네가 기획한 건 아니겠지? 타티아나.”
“무, 무슨 오해를 하고 계신 건가요?”
“그럼 아나스타샤와 발렌티나란 말이지…….”
음산하게 중얼거리는 모습이 꽤 무섭다.
아까 에르네스트의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처진 대화의 텐션을 다시 팽팽하게 당기려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기에 그대로 동참해주면 선배가 복수의 명분을 확인하는 것을 도와주는 일이 되고 만다.
난 곧장 반격에 나섰다.
“그보다, 선배야말로 절 리디아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건가요?”
“갑자기 뭔 소리야?”
“제 성격이 나쁘다고 하신 것 아닌가요?”
“그, 그……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럴 리 있어요. 심지어 선배는 제 앞에서 직접 그런 말씀을 하신 적도 있었고.”
“그건…… 어……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하나…….”
예전 일을 생각하는지 선배는 떨떠름하게 반응했다.
원래대로라면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사람이지만 리디아의 입에서 전해들었다고 하니 반응이 조금 다르다.
그 후에 이어질 대화를 예상하고 있는 탓이었다.
선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아까 두 사람 그런 이야기 하고 있었던 거야?”
“글쎄요.”
“……무서운데. 리디아가 도대체 날 뭐라고 말했을지.”
그 불안해하는 모습을 그냥 둘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 리디아에게 돌아가서 그 불안을 묻게 할 순 없었다.
때문에 난 슬쩍 생각난 질문을 얹으며 대화의 분위기를 틀어놓았다.
“선배는 리디아를 어떻게 좋아하시게 된 건가요?”
“갑자기 뭔데?”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서요.”
그제야 선배는 맥락을 파악한 듯 보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덥석 대답하자니 부끄러운 듯 대답을 회피했다.
결국 나온 건 두루뭉술한 이야기였다.
“그야 성격 좋고 착하고……. 나랑 잘 놀아주고. 음악도 잘하지. 네가 봐도 정말 좋은 사람이지 않아?”
“여자친구분 자랑이 무척 서투신데요. 연습 좀 하셔야겠어요.”
“좀 봐줘…….”
대답은 성의가 없었지만 그 태도는 내 마음에 꽤 들었다.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자 막심 선배는 도저히 안되겠는지 금방이라도 도망갈 듯 의자를 움찔거렸다.
그래서 난 선배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말로 붙잡았다.
“얼굴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했었어요.”
“리디아가?”
“예.”
“진짜?”
“와, 정말로 좋아하시네요. 나르시즘이 극에 달하신…….”
“아니! 그 애가 종종 그런 말을 하긴 했었으니까…….”
방금 전까지 짐짓 인상을 쓰고 있던 사람이 맞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배는 풀어진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내가 무표정하게 바라보자 약간 정신이 들었는지 뒤늦게 팔짱을 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급격히 좋아진 기분을 가라앉히는 데에 도움이 되진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기뻐하는 선배를 보니 나 역시 기뻤다. 때문에 난 웃으며 이어 이야기했다.
“전 선배의 얼굴은 잘 모르겠지만, 바이올린 실력은 좋아하니까요.”
“……뭔가 욕 같은데.”
“그럴 리가요? 후후, 아까 아나톨리를 가르쳐주신 것……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짧은 순간이긴 했지만 난 그것이 아나톨리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심 선배는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이야기했다.
“그 정도 되는 원석이라면 누구라도 가르치고 싶어 할 거야.”
그 말투와 달리 담긴 뜻은 가볍지 않았다. 그만큼 선배도 아나톨리에게 거는 기대가 꽤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두 사람은 한동안 나지막이 웃으며 저녁의 추억들을 공유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시간까지 이어져서 끝나갈 무렵, 선배가 덧붙여 말했다.
“크리스마스 땐 생일이지? 타티아나.”
“예, 맞아요.”
“그땐 못 가서 미안해. 연주회라서.”
“괜찮아요.”
작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를 세상이 가만둘 리가 없다.
막심 선배는 지금 여기서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찾는 곳이 많은 사람인 것이다.
설산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되어 이렇게 초대한 것까지 그 모든 우연과 인연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난 응원을 전했다.
“좋은 연주회 하시길 바랄게요.”
“고마워.”
선배 역시 오늘을 오랫동안 기억해주리란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