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2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다급한 사람들의 소음과 무대 위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피아노 연주자의 모습은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여러 콩쿠르를 봐 왔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정말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냉정하게 상황을 짚어 보았다.
일단 비탈리 선배에겐 잘못이 없다. 청중석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었으니까.
원칙적으론 소음에 방해를 받더라도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지진 않지만, 선배가 연주를 계속하려는 것을 심사 위원이 중단시킨 것이니 아마 상황이 진정되고 나면 예외적으로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연주자의 상황을 조금 더 고려해 준다면 저녁 세션으로 옮겨 줄 테고.
많은 협조와 융통성을 얻어 다시 한번 잘하면 된다.
“심각해 보여…….”
하지만 그런 냉철한 판단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연주자는 매번 무대에 아무렇게나 올려도 똑같이 연주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카메라에 잡힌 비탈리 선배는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청중석에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궁금해서라도 돌아볼 법한데, 선배는 청중석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심사 위원이 소리를 쳐서 연주를 끊어 놓은 탓일까. 저대로는 다시 연주를 재개하더라도 완전한 기량을 보이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똑바로 해내는 것이 프로의 소양이겠지만…… 이제 첫 출전인 열여덟 살에게 그건 너무 과한 바람이다.
“…….”
할 수만 있다면 가서 정신 차리라고 다독여 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폴란드에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고, 걱정만 하며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보는 사이 홀을 비추는 방송도 꺼지고 쇼팽 콩쿠르 예선을 알리는 안내 화면만 나왔다.
상황이 심각하니 아예 방송을 잠깐 셧다운 한 것 같았다.
“…….”
그와 동시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교내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방음 처리가 된 연습실 안인데도 그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가만 앉아 있자니 걱정되는 마음을 추스르기가 힘들어져서 난 조심스레 연습실 문을 열고 복도를 살폈다.
“방금 봤어?”
“당연히 봤지! 무슨 일이래?”
“사고 같은 게 난 것 같던데……? 혹시…….”
“이상한 생각 마. 그런 거였으면 앞 열 사람들은 왜 가만히 앉아 있었겠어?”
창가에 모인 아이들은 다들 빠른 목소리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문제가 생긴 건진 아무도 모르고 그저 추측만이 난무할 뿐이었다.
“…….”
“아, 타티아나 선배!”
“타티아나?”
“저쪽에…….”
그런데 그중 한 아이가 문을 빼꼼 열고 있는 날 발견했고,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알은척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지금 반갑게 웃으며 인사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가 알았다.
심지어 모두 어색해하며 날 피하려고 하기까지 했다. 나 역시 국제 콩쿠르 참가를 앞두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난 걱정이 증폭되는 걸 원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예 복도로 나와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도 방송 보고 있었어요.”
“아…… 놀라셨겠어요.”
“놀랐죠.”
“무슨 일이죠, 이게 정말? 어떡해요 이제?”
딱히 대답을 바라고 묻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나까지 이런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휩쓸리면 이렇게 나온 의미가 없다.
표정 관리에 신경 쓰며 말했다.
“아마 연주자 귀책으로 돌아가진 않을 거예요.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재연주를 할 수 있게 기회를 주겠죠.”
말을 해 놓고 보니 너무 냉정하게 들린다.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고 있어서 빠르게 몇 마디 더 덧붙였다.
“문제는 멘털을 추스르는 건데…… 아마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요. 걱정이네요.”
“그래요! 제가 저 상황이라면 진짜…….”
그제야 아이들은 모두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런 대형 사고가 터진 무대를 보고도 내가 동요하지 않고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한 느낌이었다.
물론 나도 속내는 그렇지 않다.
비탈리 선배와 개인적으로 그렇게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같은 학교 선배이고, 처음 오르는 무대에서 잘 해내길 응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주자로서 평생의 트라우마가 될 만한 상황을 보고도 뻣뻣하게 다시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난 냉혈한이 되지 못했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난 쉽게 불안에 빠지지만 그것을 컨트롤하는 것에도 능한 편이라서 괜한 불길함은 외면하고 묻어 버리곤 했다.
신경 쓰지 않고 내 음악에 충실하면 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잘못 하나 없이 생긴 트러블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
친구들의 판단이 옳았다. 지금 쇼팽 콩쿠르에 나가 있는 네 명의 상황에 따라서 난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들에게 닥치는 불행이 언제라도 나나 아나스타샤, 임세연에게 오지 말란 법이 없다는 게 점점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괜찮으세요? 타티아나 선배님.”
“아,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나도 모르게 표정 관리가 안 된 모양이다. 아이들이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내게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괜찮다는 의미로 난 옅게 웃어 보이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
“모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잠시 후면 아마 재개될 테고…… 운이 좋다면 저녁 세션에 비탈리 선배님이 무대에 다시 오를 수 있을 거예요. 그때 다시 응원하는 게 저희가 할 일 아닐까요?”
“아, 그렇죠. 맞아요!”
“아까 전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야죠.”
“따지고 보면 기회를 두 번이나 얻은 거니까요.”
다행히 아이들은 금방 내 말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떠들썩해졌다.
다들 불안하기 때문에 그것을 떨쳐 내려고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한동안 아이들은 그렇게 멀리 있는 비탈리 선배를 응원하다가 다시 삼삼오오 흩어졌다. 나 역시 다시 혼자서 연습실로 돌아왔다.
“…….”
돌아오자마자 난 바로 스마트폰부터 들고 쇼팽 콩쿠르 실황 방송을 켰다.
지금은 내 연습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상황이 어떻게 정리되는지 제대로 확인하고 나서야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잠시 기다리자 다시 카메라가 홀 안을 비추었고, 사회자가 담담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폴란드어와 영어로 번갈아 가며 안내하기 시작했다.
{자리에 계신 청중 여러분께 협조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방금 전 한 청중분께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시며 쓰러지셔서 콩쿠르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디어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스마트폰 벨이 울리는 등의 단발적인 문제라면 콩쿠르를 중지시킬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쓰러졌다면 분명 심각한 문제다. 콩쿠르가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사회자는 손바닥을 펴서 청중석 쪽 한곳으로 향하며 말했다.
{다행히 저희 호출에 응해 주신 의사께서 빠르게 도움을 주신 덕분에 긴급하게 응급조치를 할 수 있었고, 지금은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의료진으로부터 소식을 들은 바로는 다행히 양호한 상태라고 하십니다.}
청중들의 단결이 얼마나 수준 높은지, 폴란드어로 안내할 땐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도 모두 조용히 듣다가 영어로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마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환호와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안도와 뿌듯한 고양감으로 가득한 그 소리는 정말 뜨겁게 울리고 있었다.
따라 박수를 치며 거기에 응하던 사회자는 한참 지난 후에 소리가 조금 잦아들자 다시 마이크로 이야기했다.
{다시 한번 협조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빠르게 도움을 주신 의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깔끔한 감사 멘트로 마무리를 지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남아 있었다. 사회자가 이어 안내했다.
{그리고 심사 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중단된 무대는 처음부터 다시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난 특별히 다행이라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어진 말은 날 충격에 빠뜨렸다.
{피아니스트는 저녁 세션을 수정하여 참가하지 않고 곧바로 무대에 오르길 희망했으므로…… 그 의사에 따라 지금 바로 오전 세션 마지막 무대를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잠깐만! 왜!?”
나도 모르게 화면을 보며 소리쳤으나 무의미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녁 세션에 참가할 수 있게 시간을 주는 건 콩쿠르 측에서 정말 많은 양해를 해 준 것이었다.
방금 그 일로 비탈리 선배가 엄청나게 쇼크를 받았다는 점은 멀리서 화면으로 봐도 명백해 보였다.
그럼 시간을 좀 두고 휴식하면서 흔들린 멘털을 가다듬는 게 훨씬 나을 터였다.
저녁 세션의 첫 주자로 하더라도 4시간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사이 도와줄 사람도 곁에 많을 테고.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비탈리 선배는 바로 무대에 서는 것을 택했다.
‘대체 왜……?’
당장 지금 조금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나?
다른 게 아니라 비탈리 선배의 선택 때문에 난 무척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결국 연주자의 의사에 따라 콩쿠르는 진행된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많은 박수로 맞이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회자가 무대 쪽으로 손을 뻗자 다시 한번 비탈리 선배가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이미 잠깐 사이 정신을 다잡았는지 그 발걸음은 무척이나 다부졌다. 그러나 억지로 꽉 지탱하고 있는 온몸은 경직되어 있었다.
비탈리 선배가 여유 있는 태도를 완전히 잃어버렸음을 알아 버린 나는 마치 예지처럼 머리에 스치는 무언가를 느꼈다.
“…….”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꺼 버렸다가 이대로 안 볼 순 없단 생각에 다시 켰다.
그리고 그 잠깐 사이 비탈리 선배는 아까 마주르카 op.30의 3번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 음악은 아까 들었던 것과 사뭇 달랐다.
마주르카는 리듬감이 무척이나 중요한 음악이다. 때문에 연주자들의 실력이나 개성, 컨디션 등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야속하게도 비탈리 선배는 이 곡을 너무 잘 알았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신이 이 곡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걸 투명하게 증명해 버렸다.
차라리 마주르카가 아니라 에튀드처럼 속도로 밀어붙일 수 있는 곡으로 시작했다면 나았을까.
이제 와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난 착잡한 기분을 느끼며 미적지근한 연주를 지켜보았다.
‘저번에 봤던 실력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하고 있어…….’
이어진 녹턴과 에튀드, 그리고 발라드까지 전부 서서히 침몰하는 배처럼 자신감을 잃고 무너져 내렸다.
앞선 연주들이 엉망이었다는 걸 지금 그 누구보다 비탈리 선배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선배도 훈련받은 연주자로서 평소 마인드대로였다면 앞선 곡을 망치면 뒤에서 만회하려고 했을 텐데, 지금은 그렇게 침착하게 할 정도의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되레 지금 침착한 건 나였다.
열여덟 살의 연주자가 지금 이 상황을 겪고도 곧바로 무대에 올라 저 정도로 연주한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런 정성 평가로 예선에 통과시킬 수 있나?
“…….”
냉혹한 내 머리는 순식간에 결론을 냈다.
그리고 저기 앞에 앉아 있는 심사 위원들이 나보다 덜 냉혹하리라 바랄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