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1140화 (1,140/1,277)

##  1140화

홀 안 청중들의 반응은 종종 정직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일반적으로 티켓을 사서 들어간 청중들은 음악에 대한 에티켓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콘서트라면 연주자가 티켓값에 걸맞지 못한 음악을 선보였을 때 비판하는 것도 용납되겠지만, 콩쿠르는 연주자가 실수하더라도 관용적인 태도로 안타까워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문화는 기본적으로 음악이라는 것을 모두가 함께 향유하고 있다는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홀 밖으로 나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 반응이야말로 솔직한 걸지도.’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이곳에 있는 것이다.

물론 나나 마누엘처럼 콩쿠르 중계를 보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도 없진 않겠지만, 좌석이 있는 홀이 아니라 밝고 개방된 이곳에서 사람들은 굳이 점잖을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무대에 선 연주자가 볼품없으면 단 몇 초 만에 흥미를 잃고 고개를 돌리거나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는 일도 흔했다.

피아노 소리를 그저 배경 음악 삼아서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거나 웃기도 하고, 그렇게 집중력이 떨어진 분위기는 금방 전염된다.

아담 마테유와 알레한드로의 연달아 이어지는 무대를 보면서 이곳 카페의 분위기도 천천히 관찰한 결과, 나는 사람들이 정말로 솔직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느꼈다.

아마 전 세계에서 영상으로 무대를 보고 있을 수많은 사람도 바로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어수선하게 무대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홀 밖의 사람들도 완전히 사로잡을 정도로 특별함을 증명해야만 한다.

알레한드로는 해냈다. 그리고 아나스타샤는 더 제대로 해냈다.

『□□ □□ □□□□?』

『리스트?』

『□□□□ □□□.』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 기교 연습곡이 끝나자 카페 안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텔레비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중 잡담으로 들리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소곤거리는 것 자체가 지금 감상자의 에티켓을 의식한다는 뜻이었다.

지금 이 작은 카페는 콘서트홀이나 다름없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모두 아나스타샤가 이곳에 음악을 뿌려 놓은 덕분이었다.

‘다행이야…….’

난 아나스타샤가 평소 실력대로라면 멋진 연주를 보여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혹여 모를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 가슴을 졸이며 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잘 해내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앞선 알레한드로 못지않은 대단한 연주자였다.

그리고 날 안심시킨 또 한 가지는 아나스타샤의 음악에 그녀만의 고유한 음악성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는 점이었다.

친구끼리는 닮는다고 한다. 하물며 음악가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난 그녀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연이 내게 영향을 받은 만큼 아나스타샤 역시 나와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아나스타샤의 음악에서 내 영향을 뚜렷하게 찾아보긴 어려웠다.

아나스타샤는 본래 구사하던 화려하고 기교적인 연주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그건 솔직히 말해 나보다 나았다.

아나스타샤와 난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며, 그건 음악에도 여실히 반영되었다.

마치 무대 위에 툭 떨어진 태양처럼 밝게 빛나며 모든 것을 불사르는 그 열기는 나로선 따라 할 수조차 없었다.

그건 아나스타샤만의 강렬함이었다.

내가 무엇을 내어 놓더라도 그녀는 그 천재적인 재능으로 집어삼키고는 자신의 칼날을 가는 숫돌로 이용하겠지.

난 숫돌이 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날카롭게 간 칼날이 결국 어디로 향할지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사실이었다.

‘아나스타샤의 목표는 확고해…….’

보통 동기엔 긍정적 동기와 부정적 동기가 있다.

내게서 익힌 몇몇 노하우나 힌트 등이 그녀의 긍정적 동기가 되어 주었다면, 아마 에르네스트를 피아노로 이기고 싶다는 의지는 부정적 동기에 가까울 것이다.

에르네스트가 연주자의 길에서 조금 멀어진 지금, 그 동기는 흔들려 버리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나스타샤는 작곡가인 에르네스트조차 가만둘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동기가 단순히 연주자란 입장에 국한되지 않음을 뜻했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고민이 있었고, 적어도 난 도망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나스타샤가 무엇을 하는지 곁에서 똑바로 지켜볼 생각이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큰 무대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그녀의 곁에 있으려면 나도 일단 내 무대를 확실하게 해야만 했고.

또다시 결론은 피아노로 귀결되었다. 이게 구제 불능이 아니면 무엇이 구제 불능일까.

교수님이 세연을 나처럼 키우지 않으려고 진지하게 노력하시는 것이 절절히 이해가 간다.

양손을 내린 채 목을 살짝 까딱이며 마지막 곡을 준비하는 아나스타샤를 보면서 내 머릿속엔 정말 많은 생각이 오갔다.

다행히 몇 초 지나지 않아 아나스타샤는 다시 음악으로 잡념들을 모조리 날려 주었다.

그녀가 연주하는 곡은 알캉의 마이너 에튀드 op.39의 12번이었다.

‘어려운 곡이야.’

아나스타샤가 알캉의 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 역시 알캉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직접 연습해 본 건 몇 곡 안 되었지만 그중에서도 바로 이 곡, 에튀드 12번은 살짝 쳐 보기도 했던 곡이다.

내가 잠깐 만져 본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아나스타샤의 연주엔 깊이가 있었다.

마치 동요를 떠올리게 하는 익살스러운 느낌으로 기본 주제가 시작되었다.

이 짧은 주제는 앞으로 25번이나 되는 변주를 거쳐서 9분에 달하는 음악을 이루게 된다.

그 첫 시작인 만큼 그리 어려운 화법으로 이야기하진 않는다.

단지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들이 기대되도록 청중들을 끌어모으는 소리였다. 아나스타샤는 지금 이야기꾼 이솝에 몰입하고 있었다.

‘아마 우린 이야기꾼과 비슷하겠지.’

현대에 이르러 영어로 이솝이라고 불리지만 사실 기원전 그리스에 살았던 이야기꾼의 이름은 아이소포스였다.

이솝은 곱사등에 추한 외모를 가졌지만 총명했으며, 은총을 받아 모든 언어를 말할 수 있고 심지어 동물들과 소통하기까지 했다고 전해졌다.

아마 우화를 주로 이야기한 것 때문에 동물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전해진 것 같지만, 중요한 건 그가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이었다.

그건 연주자의 일과도 사뭇 닮아 있었다. 연주자들은 음악이라는 언어를 빌려서 이야기나 감정 등을 구체화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

때론 청중들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과장하거나 변화시키기도 했다.

아마 알캉도 이와 비슷한 생각으로 이솝이란 인물을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난 앞서 공부했었던 지식들을 떠올리며 아나스타샤의 연주를 지켜보았다.

‘짧게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으로…….’

변주곡 형식을 하고 있는 곡들은 기본 주제를 변화시키고 확장시키면서 음악을 이어 나간다.

그러나 이 곡의 초반부는 변주가 되어도 많이 길어지지 않고 주제를 반복하고만 있었다.

아무리 변주가 되더라도 같은 주제가 이렇게 반복되면 조금 지루해질 만도 한데, 아나스타샤의 눈부신 실력은 그저 감탄만 자아낼 뿐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기대감은 끝없이 고양되었다.

마치 피아노 독주가 아니라 연극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아나스타샤가 무대에 세운 이솝은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동원하면서 청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모여든 청중들이 슬슬 안달이 날 즈음, 이솝은 갑자기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5변주.’

이솝의 이야기는 우화들이 유명하지만 그의 일화 역시 유명했다. 그중 하나는 이솝이 노예로 있던 시절 주인이었던 크산토스와의 일화였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크산토스는 명석한 노예인 이솝이 탐탁지 않았기에 잔치를 열면서 어려운 명령을 한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으로 잔칫상을 전부 채우란 명령이었다.

그 무리한 명령에도 이솝은 불평하지 않고 잔칫상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가 차려 놓은 것은 삶은 돼지 혀, 구운 돼지 혀, 맵게 양념한 돼지 혀 등 전부 돼지 혀 요리뿐이었다.

빠르게 제시된 6번째 변주에선 같은 돼지 혀로 조리한 다양한 요리, 이솝의 웃음소리 그리고 크게 펼쳐 놓은 잔칫상의 표현을 느낄 수 있었다.

압권인 것은 다음으로 이어지는 제 7변주였다.

‘정말 굉장해.’

분노한 주인 앞에서 이솝은 유려하게 혀를 놀리며 말한다.

혀는 철학을 가르치고 율례와 법도를 세우니 모든 생명이 혀로 말미암았다.

혀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으니 모든 요리를 혀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였다.

이 담대한 이솝의 답변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른 스케일 연주로 표현되었다. 32분 여섯잇단음표로 구성된 바람과도 같은 연주였다.

아무리 기상천외하게 들리는 말이라도 결국 듣는 사람이 거기에 넘어가 버린다면 그 말은 힘을 가지게 된다.

아나스타샤의 연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음악은 청중 모두를 멍하니 뒤따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넋이 나간 크산토스의 모습과 그의 초대를 받고 왔다가 혀 요리만 잔뜩 먹고 배탈이 나 버린 크산토스 제자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재미있다.

이솝은 더욱 익살스러운 표현으로 자신의 지혜와 대범함을 뽐냈다.

하지만 철학자 크산토스 역시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제 14변주에서 크산토스는 다시 벼락처럼 화를 내며 이솝을 불러들인다.

노예인 그의 버릇을 제대로 고쳐 놓겠다는 심산이 과격한 음악에서 무섭도록 가깝게 느껴졌다.

크산토스는 다시 명령했다. 이솝은 이번엔 가장 열등하고 나쁜 것으로 잔칫상을 채워야만 했다.

그러나 이솝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시장으로 나가서 이번에도 돼지 혀를 사 왔다.

잔칫상에 차려진 요리들은 조금 더 화려하게 꾸미긴 했지만 여전히 혀만을 이용했다는 것은 바뀌지 않았다.

기가 막힌 크산토스는 정말로 모든 요리가 혀인지 확인하고는 이솝을 돌아본다.

노예의 목숨은 이제 주인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어지는 제 17변주에서 이솝의 대답이 이어졌다. 이 연주 역시 환상적이었다.

‘속도가…….’

두려움도 없이 이솝은 주장했다. 적의, 음모, 싸움이 있는 것은 이 가증스러운 혀 때문이니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고 말이다.

기다렸다는 듯 쏟아 내는 음들은 64분음표로 나타나 있다. 제 7변주보다 더 빠르다.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속도였다.

그러나 아나스타샤는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이솝의 겁 없는 모습을 기민하게 표현해 냈다.

초월적으로 빠르지만 크게 소리치거나 억지를 쓰는 모습처럼 보이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잇는 아티큘레이션을 지키는 건 기술적으로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아나스타샤가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인지는 이 음악을 귀로 듣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이미 크산토스는 물론이고 청중 중에서도 설득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즐거운 이야기를 마친 이솝은 이어 자신의 다른 우화들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곡은 이솝의 향연이라는 부제답게 연회와 관련된 이솝의 일화를 담고 있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바로 이어서 청중들에게 선사하는 이 음악이 곧 근사한 향연이었다.

‘지금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야.’

제 20변주에 이르러 아나스타샤는 본격적으로 동물들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육중한 무게의 소와 경쾌한 말, 그 위엔 오리가 올라타선 꽥꽥거리고 울고 있었다.

이윽고 이솝과 모든 동물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려서 날아가는가 싶더니 마지막 변주에서 합창했다.

아나스타샤의 연주는 조금도 무뎌지거나 어설퍼지지 않았다.

처음 그리했던 것처럼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그녀의 손에서 피어나는 음들은 하나하나 생생하게 모두 살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청중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화음을 마무리로 연극과도 같던 음악이 끝났다.

{브라바!}

연주를 마치자마자 아나스타샤는 벌떡 일어났다. 미련 없이 무대를 등지고 화사하게 인사를 보내는 그녀에게 굉장한 찬사가 쏟아졌다.

홀 안이든 카페든 상관없이 그녀의 음악을 들었던 모두가 똑같이 열광했다.

난 가볍게 박수를 치며 친애하는 아나스타샤의 성공적인 무대를 축하했다.

그녀가 이렇게 잘해 주었으니 나도 힘을 내야 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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