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0화
드뷔시의 곡을 연구하고 있다 보면 교묘하다는 기분이 든다.
현대인의 시점에서 보면 드뷔시의 곡 역시 100년은 된 곡이지만, 드뷔시의 시대에서 보면 그의 음악은 낭만주의 시조에서 계속되던 음악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300년은 더 된 르네상스 시대까지 되돌아간 파격 그 자체이기 때문이었다.
19세기엔 이미 장단조로 구성되는 일반적인 조성이 확립되었고 그전 르네상스 시대에 쓰이던 음악 체계인 선법은 오래된 과거의 산물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드뷔시의 도전은 그야말로 클래식의 클래식을 되살린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선법에 기초한 음형을 가져와선 당시 가장 잘 어울리던 낭만적 화법에 융합시키고 그것으로 보다 또렷한 이미지를 그려 내고자 한 것이 드뷔시가 개척한 길이었다.
현대에 이르러선 이 인상주의도 흐릿해지고 아예 선법도 장단조도 아닌 무조성의 현대 음악들이 많이 나오고 있었지만 난 드뷔시의 도전과 그 결과물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가들이 하는 일도 드뷔시가 한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수백 년간 쌓인 유물들을 그저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통용될 수 있도록 다시 잘 재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드뷔시를 되살리는 데에 꽤 자신이 있었다. 특히 지금 이 곡과 함께라면.
‘멋진 곡이야.’
기쁨의 섬.
이 작품을 연주하면서 난 지중해에 있는 작은 섬을 떠올렸다.
안개가 끼어 있어 멀리서 보면 희미하게 보이지만, 배가 점차 가까워질수록 그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섬에서 보내온 안내자임이 분명했다. 그 새는 배 주변을 맴돌며 섬 쪽으로 인도했다.
춤을 추는 것 같은 새의 안내에 따라 섬에 다다른 사람들은 배에서 내려 섬을 한 바퀴 돌아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작은 섬임에도 언덕과 나무 그리고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이 작고 아름다운 생태계 안에 사람도 함께할 수 있음에 기쁨의 노래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난 새소리나 사람 목소리의 모사를 연구한 지 오래되었다. 그 모든 연구는 지금 내 자산으로 남아 이 곡의 해석과 연주를 이끌어 주었다.
‘기쁨의 노래는 저번 주에도 한 적 있었지.’
준결승에 올라오기 위해 내가 연주했었던 마지막 곡은 올리비에 메시앙의 모음곡 중 하나인 기쁨의 성령의 시선이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지켜보며 무대를 맴도는 성령의 이미지는 꽤 잘 이루어졌었고, 덕분에 난 이곳에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
메시앙과 마찬가지로 드뷔시도 프랑스 사람이었다.
물론 시대가 많이 차이 나긴 했지만 이 기쁨의 노래를 묘사하는 두 작곡가에게서 난 공통점을 느낄 수 있었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에서 느낄 수 있는 거대한 기쁨이 아닌 보다 내면적인 풍요에서 비롯되는 정적인 기쁨이 주로 그려졌다.
난 그 비슷한 부분을 고려하며 음을 자아내면서도 결정적으로 조금 더 느긋한 분위기가 있는 드뷔시 특유의 흐름을 두드러지게 표현하려 애썼다.
‘표현에 더 집중해야 해.’
양손이 엇갈리는 폴리리듬이나 순간적으로 박자를 벗어나는 음 등 이 곡은 구조적인 완성도를 깨뜨리지 않도록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복잡한 곡이었다.
워낙 다양한 소리가 섞여 있어서 그것들을 놓치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각각의 소리를 바라보고 독립적으로 구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한곳에 합쳐야만 비로소 음악이 된다는 것 또한 잊으면 안 된다.
새소리에 집착하여 무작정 그 뒤꽁무니를 따르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완성할 수 없는 곡인 것이다.
다행히 내 기술적 역량은 집중력을 전부 쏟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폴리리듬을 구사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고, 남아 있는 여유를 모두 긁어모아 더 섬세하게 손가락을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표현력을 끌어 올리는 데에 투자할 수 있었다.
뭔가 이전보다 더 잘되는 것 같았다.
건반이 알아서 올라와 손가락 끝에 착 하고 달라붙는 느낌.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바를 음악으로 그대로 옮길 수 있다는 건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조금 더.’
복잡하게 늘어선 리듬들을 따라 풀어 헤치며 왼손을 크게 들어 움직였다. 머리카락이 등허리를 감쌌다.
기껏 잘 세팅했던 머리를 푼 건 감각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앞서 모차르트 협주곡과 라가 주제에 의한 판타지를 연주할 땐 머리를 풀어야 할 이유를 딱히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드뷔시로 옮겨 오면서 나는 머리를 푸는 것이 조금 더 이 곡을 가깝게 접하는 데에 유리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기술적인 근거 같은 건 없었다. 청중들을 의식한 것도 아니고 그저 현장에 있는 내가 순간적으로 느낀 직관적인 판단이었다.
이 판단이 적절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서늘했던 목덜미가 조금 차분해진 느낌이 드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난 자신 있게 연주를 이어 나갔다.
‘더 앞으로.’
중반부에 이르러 기쁨의 섬은 그 모습을 보다 더 풍성하게 드러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들판의 꽃과 풀들. 그리고 언덕 너머로 걸쳐지는 노을의 따뜻함까지.
쉴 새 없이 변하면서 약동하는 리듬 모두가 마치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내 손에 닿은 리듬들은 더더욱 그 생명력을 뽐내며 음악의 객체가 되어 주었다.
이대로만 있어도 행복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드뷔시는 까다로운 음악도 상당히 잘 만드는 사람이었다.
미약하지만 빠른 속도로 아르페지오가 이어졌다.
리듬감 있게 튀어 오르던 아르페지오는 이어 피아니시모까지 줄어들었다가 다시 베이스의 협조를 받으며 함께 날아올랐다.
양손의 아티큘레이션과 리듬을 달리 하며 합치는 건 내 전문 영역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리 어려울 건 없었지만, 문제는 너무 다양한 그림을 그려 낼 수 있어서 그중 하나를 꼽기가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물론 충분한 연구 끝에 결론을 내었기에 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럼에도 무대에 오르면 또다시 연주의 흐름에 따라 최선의 그림을 바뀌게 된다.
신중하게 음을 꼽아 뿌리던 난 꽤 마음에 든다고 생각한 마음속 음악을 옮겨 냈다.
그 결과물은 산뜻한 바람을 몰고 왔다. 가볍게 거기에 편승한 나는 다시 역동적인 리듬을 따라 활기차게 연주했다.
‘자신 있어.’
조금의 의심이나 나약함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콩쿠르 준결승 무대에 올라 있는 나에겐 그 어떤 고민도 없었다.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과 반드시 와야 한다고 약속을 받아 내던 신뢰만이 내 어깨와 등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앞서 제시되었던 테마가 살짝만 형태를 바꾸어서 다시 되풀이되고 음악은 점점 끝을 향해 나아갔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동물들의 발소리와 행진곡풍의 드럼 소리, 그 뒤로 거대한 화성이 등장해서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모았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을 다 어우를 것 같이 이어지는 음악이었다.
난 피아노를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드뷔시의 바람을 실현시켰다.
크게 폭발하고, 스며들었다가, 엉키고 뒤섞이고 이내 흩날린다.
이 환상적인 섬의 추억을 다시 돌이켜 보는 듯 음들을 흘려보낸 나는 허리를 틀고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모아 피아노의 왼쪽 끝을 내리찍었다.
선법과 현대적 작곡법이 어우러진 인상주의의 걸작은 그렇게 피아노에서 허락하는 가장 낮은 음으로 마무리되었다.
“하…….”
그제야 난 참고 있던 숨을 길게 내뱉었다.
콩쿠르 중이라서 환호성이나 박수 등은 없었다. 그러나 침묵은 웅장했고 청중들의 시선에선 열정적인 에너지가 어른거렸다.
그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으면서 난 충분한 만족감을 느꼈다.
연주 내용에 아쉬운 점이 있었는지 다시 짚어 보아도 그런 건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후회 없이 잘 해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었다.
고개를 들고 어깨를 살짝 돌려 피로를 푸는 와중에도 난 마음속으로 박자를 세고 있었다.
홀 안의 모든 물리적 잔향이 사라지고도 내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 넣은 리듬은 아직 흐르고 있다.
지난 6분 동안 내 음악을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흐름 속에서 난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다 왔어.’
협주곡도, 미발표 의무곡도, 첫 번째 독주곡도 잘 마무리 지었고 이제 내겐 두 번째 독주곡 한 곡만이 남아 있었다.
물론 앞서 연주한 기쁨의 섬은 6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곡인 것에 비해 이다음 곡은 25분이 넘는 대곡이었다.
당연히 연주자로서 부담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난 이 곡을 처음 레퍼토리에 넣도록 기획했을 때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었다.
정말 내가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곡인지 의문이 많았기 때문이다.
연습을 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그 고민은 이어졌고,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야 난 이 곡을 다른 사람들 앞에 보여 줄 수 있을 만큼 완성했음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준비 과정에서 꽤 어려움이 많았던 이 곡을 이제 무대에서 펼쳐야 하는 상황을 코앞에 마주하고도 난 전혀 부담이나 긴장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다.
되레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때보다 편안했다.
‘할 수 있겠어.’
적어도 지금까지 해 왔던 것들이 헛되진 않았던 것 같다.
이 정도로 넘치는 자신감을 안고 이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될 줄은 몰랐기에 정말 기뻤다.
난 마음속 타이밍에 맞추어 모든 것을 결정할 첫 소리를 가늠하며 손가락을 건반에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