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6화
승부는 꽤 치열했다.
난 탁구 룰에 대해선 아주 기본적인 것밖에 몰라서 스핀이라든지 드라이브라든지 하는 단어들에 대해선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일단 두 사람 다 실력이 꽤 있다는 건 옆에서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그중 조금 더 잘하는 건 루카였다.
{6 대 10이에요.}
난 두 사람의 경기를 보며 스코어를 세어 주고 있었다. 누가 시킨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버렸다.
현재 스코어는 렌스키가 6점, 루카가 10점이었다. 탁구는 11점을 먼저 내면 끝난다고 한다. 렌스키는 궁지에 몰려 있는 것이다.
{힘 좀 빼지?}
{충분히 빼고 있는데요. 제가 보기엔 비소츠키 씨야 말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시끄러워.}
렌스키는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서브를 넣었다.
하지만 루카는 여유롭게 그 서브를 받아 냈고 이어 몇 번이나 주고받더니 갑자기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탁구채를 휘둘러선 게임을 끝내 버렸다.
{6 대 11. 아르젠토 씨의 승리예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감사야!}
렌스키는 화를 냈지만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연주자들은 승부욕이 강한 편이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중요했다.
한동안 분해하던 렌스키는 탁구 게임 결과 같은 건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 모습을 보며 루카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제가 실력이 조금 더 나은 것 같으니까…….}
{뭐라고?}
{다음 세트는 비소츠키 씨에게 어드밴티지를 드리는 게 어떨까 싶군요.}
{그딴 거 필요 없어. 애초에 어드밴티지를 어떻게 줄 건데. 점수로?}
간단히 생각해 봤을 때 스포츠 경기에서 실력으로 뒤떨어지는 상대에게 몇 점을 미리 주고 시작하는 건 공평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건 결과에 대한 무게를 더 크게 가중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점수 어드밴티지를 받으면 이겨도 온전하지 않고 지면 최악이기 때문이었다. 되레 주는 쪽에서 상대를 가지고 노는 것에 가깝다.
스포츠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생각해 봐도 그건 그리 좋은 방법 같지 않았다.
그런데 루카도 아무 생각 없이 어드밴티지란 말을 꺼낸 것이 아니었다. 그의 방향성은 완전히 경기 밖으로 향해 있었다.
{아뇨. 음…… 베르체노바 양이 응원해 준다든가?}
{어?}
미처 생각도 못 한 이야기였다. 렌스키가 놀라며 내 쪽을 바라보았고, 나 역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쩌다 보니 옆에서 구경하며 스코어를 세어 주고 있긴 하지만 특별히 어느 한쪽 편을 들 생각은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난 가장 공평한 심판과도 비슷한 것이다. 그런데 응원을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지?
사실 나와 렌스키는 그리 친밀한 관계도 아니었다. 악연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내가 조금 용서해 준 상태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고 있는 렌스키에게 힘내라고 하는 것도 조금 우습고 그렇게 할 기분도 아니었다.
{그건 좀…….}
어떻게 생각해 봐도 아닌 것 같아서 난처해하며 대답했더니 렌스키가 충격받은 얼굴로 굳었다. 사실 그는 한마디도 안 했으니 죄가 없었다.
모든 건 우릴 가지고 놀려고 하는 루카의 탓이었다. 내가 바라보자 루카는 폭소했다.
침착하고 정중한 태도였던 그가 이렇게 웃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푸하하하하.}
{……응원할까요?}
{됐습니다. 여기까지 하죠.}
나름대로 무언가 만족했는지 루카는 손등으로 이마를 닦더니 탁구채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간신히 풀려났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는 렌스키에게 물었다.
{슬슬 식사할 때도 되었고……. 비소츠키 씨,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침 식사도 같이 하실…….}
{난 아침 안 먹어.}
{배고프실 텐데.}
{전혀.}
렌스키는 상상만 해도 싫다는 듯 인상을 쓰며 딱 잘라 거부했다. 그는 정말로 지금 그냥 방으로 돌아가 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가 가 버리기 전에 난 중간에 끼어들기로 했다. 마침 두 사람에게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저기…….}
{뭐죠?}
{두 분,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아침 식사로 무언가 만들어 드릴까요?}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는지 루카가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려는 듯 루카가 물끄러미 날 바라보았다. 그런데 난 정말 별생각 없었다.
오늘 하루 일정이 없다고 하니까 연습 외의 기분 전환 거리를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어제 파이널리스트들의 모임에 나오지 않았던 두 사람이 여기서 탁구를 치고 있는 걸 보니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어제 다른 사람들에겐 요리를 해 주기도 했는데 여기 두 사람만 못 먹인 건 조금 아쉽기도 했고.
물론 이런 속내를 아나스타샤에게 이야기하면 그녀는 대체 그걸 왜 네가 신경 쓰느냐고 황당해하겠지만……
난 12명의 파이널리스트가 모두 동등한 조건으로 이곳에서 지내며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거기에 콩쿠르 측에서 연주자들을 대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연주자들을 대하는 태도도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루카는 피식 웃더니 내게 물었다.
{응원을 해 달라고 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바라진 않았는데요. 갑자기 무슨 일이죠?}
{그런 의미가 아니라…… 다른 분들에겐 어제 해 드렸었거든요.}
그냥 난 공평하게 모두를 대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 의지가 조금은 전해졌는지 루카는 날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제야 조금 편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런데 두 분은 어제 왜 안 오셨던 건가요?}
루카는 별것 아니라는 듯 농담조로 말했다.
{오늘 베르체노바 양에게 특별 대접을 받고 싶어서요.}
공평하게 대하겠다는 생각으로 두 사람에게도 권하긴 했지만 막상 받는 입장에선 그렇게 안 느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어제 여러 사람에게 해 주었던 것과 확실히 다른 상황이긴 했다.
그래도 이미 말한 것을 무를 순 없었다. 난 이미 마음을 어느 정도 정해 놓은 상태였다.
루카에겐 빚진 부분을 갚고 렌스키와는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공동 주방 사용 허가에 대해선 마리우스에게 부탁했다. 3명이 사용하게 될 것이라 전했더니 루카가 웃으며 농담했다.
{비소츠키 씨는 아침 식사 안 하신다고 하셨던가?}
{그건 당신이랑 안 먹는다고 한 거고.}
{전혀 배고프지 않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
렌스키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지만 다행히 진짜로 안 먹겠다고 하거나 하진 않았다.
만약 그가 오늘도 거절했다면 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기회가 생겨 다행이었다. 나도 아침에 할 일이 생겨서 좋았고.
{두 분 다 오셔요. 음…… 저도 어차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니 씻고 나서 공동 주방으로 오시겠어요?}
{그렇게 하죠. 드레스 코드는?}
{없어요, 그런 거.}
요리라고 해도 그리 대단한 걸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난 두 사람에게 되도록 편하게 오라고 전했다.
***
요리를 하는 건 생각보다 준비 과정이 길고 손도 많이 간다.
그리고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도 그걸 먹는 건 순식간이고 그 끝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음악과 무척이나 비슷했다.
그래서 난 요리에 더더욱 빠져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든 여력을 다 음악에 쏟아부으면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음악만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된 지금이 난 인간으로서 조금 더 건전하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순식간에 씻고 온 루카와 렌스키는 주방에 와서 기웃거리다가 그냥 가서 기다리라는 내 말을 듣고는 테이블에 얌전히 앉아 있는 중이었다.
스마트폰이 없는 환경에선 말을 안 하고 있으면 금방 어색해져 버린다.
때문에 억지로라도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비소츠키 씨는 아실 것 같은데. 냄새로 한 번 맞혀 보시죠. 무슨 요리입니까?}
{그걸 맞히면 내가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요리사가 되지 않았을까?}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를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걸 들으니 조금 재미있기도 했다.
어쨌건 나 역시 본업은 아니지만 지금은 요리사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요리에 집중했다.
다행히 난 손이 빠른 편이라서 루카와 렌스키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여기 나왔어요.}
{오.}
내가 내놓은 건 스프인 솔랸카와 만두인 펠메니였다.
어느 한쪽만 하려고 했는데 냉장고를 보니 재료들을 잘 조합하면 두 가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욕심을 좀 부려 봤다.
솔랸카와 펠메니 모두 러시아 요리였기에 렌스키는 보자마자 바로 알아차리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단 겉보기엔 잘 만든 모양이다.
{맛있게 드세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식기를 들었고, 바로 탄성이 이어졌다.
{베르체노바 양은 본래 요리에도 재능이 충만했었나?}
{정말 맛있네…….}
두 사람이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을 확인한 후에 나 역시 식사를 시작했다.
혼자 만들어 먹는 건 별로였지만 역시 이렇게 같이 먹는 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었다.
식사를 모두 마치는 데엔 1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두 사람이 워낙 잘 먹기도 했고 식사 속도도 굉장히 빨랐다. 미리 감안해서 양을 조금 더 많이 만들 걸 그랬다.
{혹시 부족하셨나요?}
{아니, 괜찮아. 정말 잘 먹었어.}
{간만의 미식이었네요.}
그런 찬사를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칭찬을 듣고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내가 웃으며 차를 끓이겠다고 일어서자 그런 날 루카가 만류했다.
{손수 식사까지 대접받았는데 차는 제가 끓이죠. 앉아 계세요, 베르체노바 양.}
{아, 감사합니다.}
루카는 가볍게 웃으며 주방으로 가서 주전자를 달그락거렸다.
렌스키는 옆에서 묘하게 불안에 떨고 있었다.
{난 뭘 하면 좋지?}
{음…… 뒷정리요?}
{빌어먹을, 차를 내가 끓였어야 했는데.}
그는 계속 당하기만 한다는 듯 중얼거렸다. 난 그런 그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