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불법 치트 프로그램
난 어려서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 속에선 달랐다.
그게 내가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게임에 빠져있는 이유인 것 같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현실에 치이다보니, 게임을 플레이할 시간이 점점 부족해져만 간다는 점이었다.
- [던전 오브 어비스]
내가 중학교 때 출시된 게임이니 거의 반평생을 플레이해온 게임이었다.
오래된 게임이지만 여전히 많은 유저들의 사랑을 받아 커뮤니티도 활발한 편이었다.
'그래. 너로 정했다!'
난 편의점에서 사온 네 캔 묶음 맥주를 따며 플레이할 게임을 정했다.
중세 판타지 게임.
10년 넘게 가지고 놀았지만, 아직도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모두 정복하지 못했다.
문제는 내일 출근해야해서 키워본 직업이라도 마음 놓고 육성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래! 이번엔 치트엔진 한번 사용해봐야지.'
난 진작 다운받아놓기만 하고, 아직 한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새로운 버전의 치트프로그램을 켰다.
다행히 고전 명작게임 '던전 오브 어비스'도 치트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치트프로그램의 캐릭터 생성목록에는 내가 한번도 본 적 없는 직업들까지 펼쳐져 있었다.
- [전사]
- [마법사]
- [프리스트]
- [정령술사]
- [야만전사]
- .
.
.
- [데스로드]
수 많은 신규직업들 사이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가장 하단에 위치한 직업이었다.
'응? 데스로드? 데스로드를 선택할 수 있어?'
내가 지금까지 해금한 직업은 전사, 마법사, 프리스트뿐이었다.
하지만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서 공개된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영상은 무수히 봐왔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직업이 있는지, 그 직업들이 내가 플레이해본 세 직업보다 얼마나 황홀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커뮤니티에서도 네크로멘서 계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네크로맨서는 NPC뿐이라고 들었는데?'
아무도 플레이해보지 못한 직업이란 뜻이었다.
그것도 네크로맨서 계열 최고 등급의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기회!
'고민할 것도 없다!'
직업은 당연히 지금까지 던전 오브 어비스에서 어떤 플레이어도 경험해보지 못한 데스로드로 선택했다.
- [죽음의 군주](고유권능)
- [혼돈의 별](고유권능)
- [외차원의 던전](고유권능)
- [영혼불멸](에픽)
- [아크리치 소환](에픽)
- [데스나이트 소환](에픽)
네크로맨서 직업을 선택하자 그 아래로 검은색 글씨의 스킬들이 펼쳐졌다.
'고유권능? 권능이면 몬스터가 아니라 신이었던 거였네!'
난 프리스트 캐릭터를 플레이해봤기 때문에 '자기희생 주문'을 사용하면 여신의 권능을 일시적으로 빌려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던전 오브 어비스 내에서 권능을 부릴 수 있는 건 신뿐이란 걸 알았다.
필드에 이유없이 출현해서 플레이어가 소중하게 키운 캐릭을 무참히 살해하는 공략불가의 몬스터 데스로드.
'제작사 놈들 미친 거 아니야? 여신급 괴물을 왜 필드에 풀어놔?'
제작사에선 끝까지 데스로드의 정체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난 데스로드의 정체를 불법 치트프로그램을 사용하고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난 제작사를 욕하면서도 고유권능 위로 마우스 커서를 올려놓았다.
도대체 고유권능이란 스킬은 얼마나 강력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 [죽음의 군주](고유권능) : 소환물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소환자와 소환물들의 모든 능력치와 스킬효과가 1%씩 상승한다.(소환물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스킬설명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이게 무슨 개사기 스킬이야!'
스킬설명이 사실이라면 가장 약하고 소환하는 데 적은 마력을 소모하는 스켈레톤만 수백 마리 소환해도 모든 능력치와 스킬효과가 수백 퍼센트씩 상승한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소환자뿐만 아니라 소환한 언데드들까지도!
'잠깐, 이거 왜 소환물 한계가 안 정해져있어?'
죽음의 군주란 고유권능의 스킬설명을 아무리 뒤져봐도 몇 마리까지만 허용된다는 제한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난 그제야 데스로드가 등장하면 필드가 순식간에 언데드들로 가득차버렸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버그도 아니고 무슨 이딴 스킬을 만들어?'
물론 데스로드는 등장자체가 아주 드물긴 했다.
데스로드가 등장하는 동영상을 촬영해서 올리는 것만으로도 조회수를 상당히 빨 수 있을 정도였다.
'자주 등장했으면 던오어가 고전명작게임이란 타이틀을 달지도 못했겠지.'
하지만 개사기 스킬은 죽음의 군주뿐만이 아니었다.
- [혼돈의 별](고유권능) : 데스로드의 막대한 생명과 영혼 그리고 마력이 모여 별을 이루었습니다. 데스로드의 아공간 '혼돈'을 찾아내 혼돈의 별을 파괴하지 못하면 죽일 수 없습니다.
- [외차원의 던전](고유권능) : 던전에 저장한 소환수의 수만큼(소환수 × 1%만큼 데미지 반사) 적의 공격을 반사합니다. 소환수를 무한대로 저장할 수 있습니다.(0/∞) 외차원 던전에 귀속된 언데드는 소멸하더라도 마력을 소모해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 [영혼불멸](에픽) : 물리력, 마력, 신성력, 주술, 원시저주, 봉인 등 어떤 스킬로도 영혼을 손상시키거나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불사도 모자라서 소환수를 무한대로 저장하고 데미지를 반사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마음대로 부활시키기까지 해?'
고유권능 자체가 너무 터무니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던전 오브 어비스의 최종 보스몬스터인 고대신 바알만큼 강하다는 아크리치를 소환할 수 있다는 에픽등급 스킬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 아래 펼쳐진 스킬설명들을 읽으며 점차 변해갔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에픽등급 스킬들.
그리고 그 아래로 하나만 얻어도 세계랭킹급 스피드런이 가능하다는 '레전드' 등급의 스킬들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난 어느 순간 이성을 잃어버렸다.
'이거 유튜브에 올리면 대박이겠는데?'
불법 치트프로그램을 사용한 결과만 아니라면 곧바로 영상촬영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 [스켈레톤 소환](커먼)
검은색의 갓급 스킬부터 하얀 글씨로 적힌 커먼등급 스킬까지 모두 클릭한 나는 스킬레벨을 올리기 시작했다.
'뭐야? 스킬레벨을 1천까지 올리니까 숫자가 깨져버리네?'
- 3e8
수 많은 치트플레이를 해본 결과, 이렇게 숫자가 깨지면 게임이 망가져버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럼 좀 내려보자. 11만 찍어도 개이득이야!'
어차피 게임 내에선 스킬레벨은 10레벨이 한계였기 때문에 큰 욕심은 없었다.
그 결과!
- 255
"에이~ 255면 치트 한것도 아니지."
256까지는 써넣는 족족 숫자가 영문으로 깨져버리더니, 딱 255에서 깨지지 않게 됐다.
'255는 안 깨지네? 이거 제대로 적용되는 건 맞겠지?'
게임제작자가 10레벨까지의 능력치변화만 설정해놨다면?
11레벨 이상은 그냥 10레벨과 똑같은 스킬효과만 제공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치트 프로그램 없이는 선택할 수도 없는 직업이고, 난 다른 스킬도 7레벨 이상 올려본 적이 없어.'
전사, 마법사, 프리스트를 모두 플레이해봤다.
하지만 내가 가장 높게 올린 스킬은 스톰어택뿐이었다.
'레어 등급 스킬도 7레벨까지 올리니까 엔딩을 볼 순 있었어. 하지만... 255레벨의 데스로드 고유권능이라면 어떨까?'
정상적으로 플레이해도 아이템으로 떡칠하고 온갖 물약으로 가방을 가득 채우면 엔딩을 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고유권능을 익힌다면?
'템이나 물약 같은 건 필요도 없겠어!'
그동안 온갖 똥꼬쇼를 하며 어렵게 잡았던 보스몬스터를 순삭할 상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필드의 재앙'이라고 불리는 처치불가 보스몬스터나 쓸 수 있는 스킬을 한계 이상으로 위력을 올려서 사용한다?
치트를 썼으니, 금방 질리겠지만 오히려 좋았다.
'화끈하게 플레이하고 자야지.'
다시 생각해봐도 내일 출근하려면 치트플레이가 제격이었다.
그렇게 네크로맨서의 모든 스킬을 255레벨까지 올려놓았더니, 다른 직업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많은 직업들 중 내 눈길을 사로잡는 직업이 있었다.
- [메카닉](레전드)
'뭐야? 드워프 전용직업?'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종족 드워프의 전용직업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프리스트가 언커먼 등급이니까 레전드면 세 등급 위야!'
물론 굳이 따지자면 갓급인 데스로드보다는 두 등급 낮은 직업이긴 했다.
하지만 데스로드는 애초에 제작단계부터 천재지변 같은 재앙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했다.
- [마장기 제작](레전드)
- [마장기 개조](레전드)
- [마력로 연구](레전드)
- [소재공학](레전드)
- [분자구조연구](레전드)
게다가 아직 업데이트도 되지않은 레전드 등급의 직업과 스킬들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뭐야? 치트프로그램 제작자가 임의로 넣은 직업인가? 아니면 게임 제작자가 미리 업데이트를 준비해놨는데, 치트 제작자가 공개해버린 건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 [마장기 제작](레전드) : 연금술과 마법공학의 궁극기술로 빚어낸 결전병기 마장기를 제작합니다.
난 메카닉의 스킬설명을 읽고나서야 전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건 던오어랑은 배경부터 안 어울리네.'
메카닉이란 직업은 중세 판타지라는 던전 오브 어비스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메카닉의 스킬들이 현대보다 더 발전한 기계공학을 다루는 엔지니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 [분자구조연구](레전드) : 냄새를 맡으면 해당 금속의 구조와 특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설정단계에서 버려진 직업이란 증거는 스킬설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데스로드의 권능들이 시전했을 때, 얻는 효과에 집중된 것과 달리 메카닉의 스킬설명은 모두 두루뭉술한 것들뿐이었기 때문이다.
'로봇과 네크로맨서의 만남...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난 그 미완성 상태의 스킬설명을 보고서도 레전드 등급의 직업 메카닉을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경고 알림메세지가 떴다.
< 게임에서 허용한 종족과 직업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이대로 진행시 게임 플레이 도중 오류가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
< 무시하고 진행한다. >
< 취소. >
'게임에서 허용한 한계를 지킬거면 내가 치트를 사용하겠냐?'
난 고민할 것도 없이 무시하고 진행한다는 선택지를 클릭해버렸다.
아무도 플레이해보지 못한 메카닉 네크로맨서로 플레이할 생각에 흥분한 나는 순식간에 메카닉 직업의 스킬들을 모두 배우고 스킬레벨도 255레벨까지 올려버렸다.
그리곤 곧바로 변경사항을 저장한 후 윈도우 화면으로 돌아왔다.
"자, 손맛 좀 봐볼까?"
난 바탕화면에서 익숙한 던전 오브 어비스의 아이콘을 찾아 더블클릭했다.
< 경고! 비정상적인 접근입니다. >
검은 화면 위로 경고메세지가 올라왔다.
난 자연스럽게 닫힘 버튼을 눌러버렸다.
하지만 경고메세지가 연이어 올라왔다.
"이 자식! 나랑 한번 해보자는거야?"
난 계속해서 닫힘버튼을 연타해버렸다.
< 비정상적인 접근으로 클라이언트가 종료됩니다. >
그러자 붉은색 메세지가 올라왔다.
'아... 치트가 좀 과하긴 했나?'
난 닫힘버튼이 사라진 메세지창을 보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메카닉 네크로맨서... 꼭 플레이해보고 싶었는데!'
난 아쉬운 마음에 사라져버린 닫힘버튼이 있어야 할 경고메세지 모서리를 연타했다.
그러자 갑자기 붉은색 경고 메세지가 사라지더니 화면에 노이즈가 발생했다.
그와 동시에 강렬한 어지러움이 날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