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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닉 x 네크로맨서-3화 (3/152)

3화 메카닉 네크로맨서

말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읽어내는 시스템.

그건 뇌 일부 또는 전체를 전뇌화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내 후각을 통해 접한 냄새를 분석하기까지 했으니, 기계안은 잃었어도 시스템 자체를 잃어버린 건 아니란 뜻이었다.

기계로 개조한 팔다리와 기계안 그리고 전뇌까지.

난 몸의 반 이상을 기계로 개조한 사이보그인 것이다.

거기에 좀비의 악취를 달큰하게 느끼는 감각기관까지 더해지자, 내가 조금 전까지 했던 어떤 행동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설마 치트프로그램에서 메카닉 직업을 선택해서 내 몸이 사이보그화 된 거야? 데스로드를 선택해서 좀비 썩은 냄새를 달콤하게 느끼는 거고?'

< 데이터 베이스에서 관련된 정보를 찾을 수 없습니다. >

<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

시스템이 내놓은 대답은 알 수 없음이었다.

하지만 냉정한 사고는 지금 내 몸의 변화가 치트 프로그램에서 선택한 직업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걸 확신했다.

"씨발, 아크리치 소환!"

난 데스로드의 에픽스킬 중 날 도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소환물을 떠올리고 곧바로 스킬을 발동시키기 위해 소리쳤다.

< 소실된 주문입니다. >

< 해당 소환수를 소환하시려면 [아크리치 소환] 주문서를 확보해주십시오. >

시스템 메세지는 모른다거나 할 수 없다가 아니라 소실됐다고 표현했다.

주문이 사라져 없어졌다?

그것만으로 내 추측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그 많던 주문들은 다 어디가고... 콜록! 몸은 왜,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거야!"

흥분해서 소리쳤더니, 기침과 함께 진한 핏물이 솟구쳐올랐다.

눈에 핏물이 튀었는지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

누가 내 몸을 이꼴로 만든건지 모르겠지만 원망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몸을 기계로 개조하려면 호흡기관이고 나발이고 생체기관 따위는 남겨두지 말고, 전부를 기계로 만들어버리지! 왜 일부분만 의체화해서 이 따위 고통을 겪게 만드는 거냐고!'

그때, 땅이 울릴만큼 큰 발걸음 소리들이 대지를 울렸다.

몸 이곳저곳을 기계로 개조한 스캐빈저들이 소녀를 쫓아온 것이다.

소녀는 자신을 쫓아온 사람들을 노려보며 그들에게 보란듯이 남자의 목에서 천천히 칼을 뽑아내고 있었다.

그 칼에선 붉은 피와 푸른 기름이 파바박 소리를 내며 튀었다.

"초진동나이프? 씨발년! 그런 명품을 살 돈이 있었으면 이 프레드릭 님께 술 한잔쯤은 대접했어야지!"

입과 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몸을 개조한 사이보그가 따지자, 소녀가 허공에 숏소드까지 휘두르며 오히려 그를 타박했다.

"혓바닥까지 개조해서 메탄올을 처먹던 빗물을 쳐마시던 맛도 구분 못하는 자식이 무슨 술을 바라는 거야?"

그러자 추격자들 사이에서 참지 못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프레드릭한테 술을 사먹이느니 엔진오일을 사주는 게 낫긴 해."

"저년도 마지막엔 옳은 소리를 하는군?"

동료들이 소녀의 말에 동조하자, 프레드릭이 광분해서 소리쳤다.

"다들 닥치지 못해!"

그와 동시에서 그의 어깨에서 미사일사출구가 튀어나왔다.

"네 년이 입을 함부로 놀리지만 않았으면, 네가 훔쳐간 마력로만 뺏고 끝났을 일이다!"

그의 눈이 붉게 물든 순간, 양팔 대신 1미터가 넘는 블레이드를 단 남성이 프레드릭 앞을 가로막았다.

"테리, 명품을 쥔다고 아무나 헌터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마력로와 초진동나이프를 내게 돌려주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묻어두지. 어때?"

그는 은근슬쩍 본래부터 소녀의 물건이었던 초진동나이프까지 넘겨받으려고 들었다.

"내가 넘기면 그 사마귀 손으로 받을 수는 있고?"

빨강머리 소녀가 칼날 사이보그의 눈을 겨누며 도발하자, 칼날 사이보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년이군. 뭣들 해? 쳐!"

칼날 사이보그가 양팔의 칼날을 부딪혀 불꽃을 일으키며 소리친 순간이었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강철장갑이 칼날 사이보그의 머리를 내려쳐버렸다.

그러자 칼날 사이보그의 머리는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터져나가버렸다.

"벌레 같은 놈이, 감히 내 앞을 가로막아? 마력로와 초진동나이프 모두 내 몫이다. 함부로 손을 올리는 놈들은 모두 이 꼴을 만들어주지!"

추적자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위협한 프레드릭이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이잉! 하는 진동음을 듣고 고개를 돌린 프레드릭을 반긴 건 하늘에서 떨어지며 초진동나이프를 내려치는 빨강머리소녀였다.

카창! 하는 소리와 함께 프레드릭의 몸이 이마에서 가랑이까지 반토막이 나버렸다.

프레드릭의 거체가 좌우로 넘어지며 굉음을 냈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 분노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 이 병신들 말고 또 이 칼이 욕심나는 사람?"

프레드릭이 미사일도 쏴보지 못하고 죽어버리자, 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의기양양해진 소녀는 프레드릭과 칼날 사이보그의 몸을 뒤지며, 으르렁거렸다.

"겁 먹었으면 꺼져, 이 병신들아!"

그 순간 추적자들이 동시에 움찔거렸다.

"프레드릭의 두개골은 마그니움 합금으로 유명한데 그걸 한번에 반으로 쪼개버리다니... 과연 80만 크레딧을 받을만 한 물건이야."

하지만 머리카락 끝을 칼날로 장식한 여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오자, 그들의 얼굴에 서린 두려움이 탐욕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마리카! 내 칼이 탐나면 앞으로 나와서 떳떳하게 얘기해! 뒤에 숨어서 쥐새끼처럼 찍찍거리지 말고!"

테리의 칼끝이 마리카라는 여성을 가리키자, 그녀는 즉각 머리카락을 마치 메두사의 뱀머리카락처럼 곤두세웠다.

테리를 향해 수백 개의 칼끝을 세우고도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마리카는 추적자들의 두려움을 대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만큼 탐욕 또한 강렬했기때문인지 물러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난 D 구역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랄프다. 초진동나이프는 80만 크레딧에 불과하지만 초소형마력로는 암시장에 급매물로 넘겨도 2천만 크레딧 이상이야!"

그때, 왼팔 대신 헤비머신건을 단 대머리 남성이 추적자들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우리 열여덟 명이 공평하게 나눠도 각자 110만 크레딧씩은 쥘 수 있는 물건이라고! 나 랄프가 랄프 철물점의 명예를 걸고 공평하게 나누겠다고 약속하지."

그가 나서서 소리치자, 추적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랄프? 뭐하는 자식이야?"

"D 구역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데 왜 스캐빈저짓을 해?"

"나도 랄프 철물점에서 거래한 적 있어."

"프레드릭이면 몰라도 랄프라면 믿을만하지."

랄프에 대한 증언이 쏟아질수록 추적자들의 눈에서 두려움은 사라지고 있었다.

추적자들의 탐욕스러운 시선이 소녀가 앞으로 맨 가방으로 향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황이 변했음을 느낀 빨강머리 소녀가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리자, 추적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미사일을 쏘아올렸다.

부왁! 하는 소리와 함께 매립지 하늘이 한순간에 백수십 발의 미사일로 뒤덮였다.

그 모습을 본 소녀는 결심한 듯 이를 악물고 추적자들을 향해 달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칼날받이에서 차라락! 하는 마찰음이 들렸다.

그녀가 허공에 칼을 휘두를 때마다 칼날이 채찍처럼 낭창거리며 길어지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그녀가 땅을 박찰 때마다 10미터 가까이 이동해버렸다는 점이다.

'인간이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다고?'

빗살처럼 쏟아지는 총탄을 자유자재로 피하는 빨강머리 소녀.

그녀는 마치 뼈가 없는 사람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파바박 하고, 땅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소녀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사이보그와 미사일들이 동시에 썰려나갔다.

꽈광! 하는 소리와 함께 잘려나간 미사일이 뒤늦게 폭발했다.

그때 소녀는 이미 사이보그의 몸 뒤로 숨어 폭발의 여파를 견디고 다시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어찌나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이는지 난 어느 순간부터 소녀의 움직임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기다란 칼날이 하늘에 그린 은색 그물망이었다.

그 순간 꽈르릉! 하는 엄청난 폭발음이 터져나왔다.

드드드드! 하는 굉음과 함께 땅이 울리고, 쓰레기 산이 무너져내릴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쓰레기 산에서 굴러떨어진 내 옆에 고개를 처박은 마리카의 얼굴이 위치해 있었다.

"초...진동나이프가 아니라... 체인...소드였어...!"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듯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숨이 멎어버렸다.

칼날로 장식한 머리카락은 이미 반 이상 잘려나가고 폭발화염에 눌러붙어서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이 아니었군. 인공근육인가?'

난 얕게 잘려나간 그녀의 뒤통수를 보고나서야 전뇌화한 뇌로 칼날머리카락을 조종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 너머로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가녀려보이기만 했던 소녀가 백수십 발의 미사일과 스무 명에 가까운 사이보그 추적자들을 칼질 몇번으로 토막내버린 것이다.

쓰레기 더미에서 굴러떨어진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열여덟 명을 한 칼에 썰어버린 소녀가 언제 일어나 내 목을 자를 지 알 수 없었으니까!

< 위험! 다수의 폭발이 감지되었습니다. >

< 외부 충격으로 내부출혈이 발생했습니다. >

< 불상의 철조각이 좌측 하복부를 관통했습니다. >

< 상처를 방치하면 4분 이내에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가 찾아올 예정입니다. >

< 위험! 생명이 경각에 달했습니다. >

< 조속히 치료해주십시오. >

시스템 메세지가 요란하게 떠들어댔다.

가뜩이나 초조한 상황인데, 도움도 안되는 경고로 날 더 애타게 만들기만하는 시스템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소녀가 반파된 사이보그의 잔해를 내던지며 일어났다.

겉으로 보기엔 상처 하나 없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사이보그를 방패로 써서 폭발의 충격을 해소했다고?'

그야말로 괴물 같은 판단능력이었다.

그 순간 한번 휘청인 그녀는 다시 땅을 짚고 한참 숨을 골랐다.

다행이 한번에 열여덟 명을 처리한 건 소녀에게도 무리였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곧 길게 늘어진 체인소드를 숏소드로 바꿔 허리춤에 집어넣더니, 다른 시신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나를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몸을 반 이상 로봇으로 개조한 사이보그들조차 그녀의 한칼을 막아내지 못하고 죽어버린 상황이었다.

벌레처럼 바닥을 나뒹구는 나 하나쯤 죽이는 건 모기잡는 것만큼 쉬울 것이다.

이제 더는 죽음을 유예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엔 그녀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죽어가던 심장이 터질듯 뛸만큼 두려웠다.

심장이 거세게 뛰니 복부를 적시는 핏물도 한층 거세게 뿜어져나왔다.

하지만.

그녀가 열 걸음 안으로 들어왔을 때, 다른 의미로 가슴이 뛰었다.

무감정한 소녀의 시선이 아니라 그녀가 앞으로 맨 가방.

그 안에서 약동하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하지만 소녀의 가방에서 뭔가를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 새로운 [동력원]을 발견했습니다. >

< 남은 에너지로 가동할 수 있는 시간 2분 11초. >

< 강력한 마력을 감지했습니다! >

< 새로운 동력원은 마력로로 판단됩니다. >

< 사용 가능한 에너지원입니다. >

< 적극적으로 [배터리]를 확보해주십시오! >

시스템은 살길을 찾은 말기암 환자처럼 야단을 떨어댔다.

'내부출혈 때문에 죽을 위기라고 했잖아! 갑자기 에너지가 부족하다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 가동 가능시간 2분 4초! >

< [마력로]를 확보해주십시오! >

< 사용자님의 생존을 위해 확보해야할 에너지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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