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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닉 x 네크로맨서-5화 (5/152)

5화 오해

심장에서 시작된 변화는 동맥을 타고 뻗어나가더니 모세혈관에 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러자 힘겨웠던 호흡이 가뿐해지더니 온몸으로 개운한 기운이 뻗어나갔다.

< 골격계를 재구축합니다. >

< 재료가 부족합니다. >

< 더 많은 영혼을 확보해주십시오. >

< 더 많은 에너지원을 확보해주십시오. >

< 더 많은 기계장치를 확보해주십시오. >

< 더 많은 시체를 확보해주십시오. >

< 더 많은 생명체를 확보해주십시오. >

시스템은 생명체와 시체를 언급하며 테리의 몸 주변에 밝은 선을 그려 반짝이게 만들었다.

마치 그녀를 산 채로 흡수하라는 것처럼...

'멈춰!'

끔찍한 상상에 난 시스템을 멈춰세웠다.

'사람을 죽일 지 말 지는 내가 정한다.'

단호하게 명령하지 않으면 배고픈 시스템이 산 채로 테리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테리는 내 가슴에 칼을 들이댄 채 위협해왔다.

"안돼! 당장 내 마력로를 돌려주지 않으면 가슴을 갈라서라도 가져갈 거에요!"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나니 그녀가 함부로 칼을 휘두르지 못할 거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허공에 있던 마력로도 가져가지 못해놓고 내 배를 가르면 가져갈 자신은 있고?"

"도대체 어떻게 한 거죠? 마력로가 분명 내 눈앞에 떠 있었는데, 내 손을 그냥 통과해버렸어요."

"맨입으로 마법운용에 대한 가르침을 구하는 건가?"

난 라이프 포스 베슬 구축과정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퉁명스럽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빨강머리 소녀 테리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다, 당신이 마법사라도... 그건 내 물건이었어요. 제 허락도 받지 않고 가져가셨으니, 돌려주셔야죠."

***

그는 마력사용자였다.

그것도 마력으로 단순히 육체를 강화하는 수준이 아니라 외부로 힘을 투사하는 마법사!

놀라운 건, 그가 주문 한 마디 외우지 않고 모두 합치면 10톤에 가까운 사이보그 사체들을 들어올렸다는 점이었다.

그건 테리의 상식을 파괴하는 장면이었다.

무거운 사이보그 시체를 화살처럼 끌어들이는 모습.

그 시신과 기계장치들이 순식간에 입자 수준으로 분해되는 모습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었다.

'경지를 가늠할 수 없는 마법사였어...!'

테리는 눈 뜬 채로 자신의 보물을 빼앗겼지만, 감히 그에게 칼을 들이댈 용기가 나지 않았다.

***

소녀는 다급히 칼을 집어넣고 공손한 태도로 대가를 요구해왔다.

라이프 포스 베슬을 형성하는 과정을 보고 태도가 확연하게 달라진 것이다.

그녀가 날 두려워하는 이상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네가 날 도와주면 이런 불량품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마력로를 만들어주지."

난 이미 내 멋대로 고친 마법식을 저장해놨기 때문에 자신있게 제안했다.

하지만 아직 몸을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내 겉모습은 남들에게 신뢰를 주기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 몸으로 초소형마력로를 만들어 준다고요?"

테리는 팔다리조차 없는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따져댔다.

"마력로를 흡수하는 과정을 코앞에서 보고도 못 믿겠나?"

"정말 초소형마력로를 만들어주실 수 있어요?"

"재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어줄 수 있지."

근거없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재료만 있으면 내가 흡수한 초소형마력로의 결함을 개선해서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순간, 치트 프로그램의 경고를 무시하고 메카닉 직업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못 믿겠으면 내가 2천만 크레딧 빚진 걸로 해두지."

묘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는 테리에게 제안하자, 그녀는 팔짝 뛰며 항의해왔다.

"암시장에 급매물로 내다팔았을 때 2천만 크레딧이지. 제 값을 받으면 1억 크레딧도 받을 수 있는 물건이었어요!"

"그래. 불량품이 아니었다면 1억 크레딧도 받을 수 있었겠지. 그럼 가동하는 즉시 폭발하는 결함품은 얼마쯤 받을 수 있었을까?"

내 질문에 테리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주워온 초소형마력로는 제작자조차 해체해서 재사용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쓰레기장에 버려버린 물건이었다.

제 값도 받지 못할 마력로 때문에 수십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동안 숨겨왔던 비장의 무기까지 사용했다.

문제는 이 곳이 몸의 반 이상을 기계로 개조한 사이보그들조차 쓰레기장이나 뒤지는 세상이란 점이었다.

값나가는 물건이 나오면 같이 술잔을 기울이던 동료에게도 서슴치 않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무법지대.

그런 사회에서 비장의 무기를 내보였다는 건, 다음 번 위기에선 상대가 그 무기에 대한 대비책을 들고 올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사방을 두리번 거리는 빨강머리 소녀의 시선에서 그런 불안함을 엿볼 수 있었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어?"

"믿을만 한 사람인지가 중요하겠죠."

"믿을만 할 지는 지켜봐야알겠지만, 쓸만한 능력을 지녔다는 건 이미 확인했잖아?"

"내가 주워온 결함품 덕분에 목숨을 건진 건 사실이죠?"

그녀는 어느새 상처도 회복하고 숨도 고르게 쉬는 날 보며 따지듯 물었다.

"그래. 인정하지."

"그럼 당신은 내게 목숨을 빚진 거에요. 이것도 인정하시겠죠?"

그녀는 어느새 내게 존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부분을 언급해서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할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인정할게."

그녀는 내 대답을 듣고나서야 주변 쓰레기더미에서 잡동사니들을 주워왔다.

그리곤 가방과 잡동사니를 묶더니 순식간에 지게를 만들어 날 등에 맨 후 급히 전투현장을 벗어났다.

내 몸 안엔 끝을 짐작하기 어려운 힘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팔다리조차 만들지 못했으니, 당장은 그녀에게 신세를 지는 수밖에 없었다.

난 그녀에게 업히고나서도 왜 그녀에게서 달큰한 좀비냄새가 나는 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볼에 솜털도 가시지 않은 그녀의 옆모습은 좀비라기엔 너무 생기가 넘쳤기 때문이다.

***

매립지를 벗어나면서 만난 사람들의 시선이 한번씩 테리와 나를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테리와 친한 사이는 아닌지 안부를 묻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그러다 입구에 도착했다.

수십 대의 바이크가 세워진 입구엔 중기관총과 허벅지보다 굵은 미사일 발사대 그리고 레이더로 보이는 탑이 설치되어있었다.

"어이, 빨강머리."

미사일 런처 조종석에 앉은 스킨헤드가 테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들어갈 땐 한 사람이었는데, 나올 땐 하나가 늘었네? 그리고 저 놈은 입장료도 안 낸 것 같은데?"

나를 보는 스킨헤드의 눈이 순간적으로 붉게 빛났다.

< 정체를 밝히지 않은 레이저가 사용자님을 스캔합니다. >

빛나기 전까지는 기계안이란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정교한 눈이었다.

'설마 코어의 존재까지 들킨 건 아니겠지?'

< 코어는 반물질 형태로 심장과 결합한 상태입니다. 레이저 스캐너는 반물질의 존재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

난 시스템 메세지를 읽고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몇 걸음만 더 다가갔으면 기계안이란 걸 알아차렸을텐데...'

하지만 테리는 스킨헤드를 경계하는듯 그들과 상당한 거리를 벌린 채, 대화를 이어갔다.

"쓰레기장에 버려진 사이보그에요. 팔다리랑 기계안 같은 비싼 부품은 남들이 다 가져가고 전 몸통만 주웠어요."

"사람이 아니라 주운 물건이니 입장료를 못 내시겠다?"

위협조로 말하면서도 스킨헤드는 테리의 단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 단검이 사이보그 스무 명을 어떻게 베어버렸는지 두눈으로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테리가 변명하려는데, 네 대 중 두 대의 미사일 포구가 우리에게 향했다.

< 위험감지! >

< 로켓런처에 조준됐습니다! >

< 빠르게 미사일 사선에서 벗어나주십시오! >

시스템 메세지는 불가능한 요구를 해댔다.

매번 도움도 안되고 뒷북만 치는 시스템의 존재에 한숨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로켓 런처가 우리를 겨누자, 테리는 다급하게 외쳤다.

"낼게요! 이 사람 몫까지 낸다고요!"

"팔백 크레딧이야."

스킨헤드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팔백 크레딧이라고요? 입장료는 백 크레딧이잖아요!"

"저 놈은 들어갈 때도 무단으로 입장했잖아. 원래 무단입장은 벌금만 천 크레딧인데, 빨강머리는 단골이니까 깍아준거라고."

테리는 억울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마에 바코드 문신을 한 스킨헤드는 예외는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집했다.

결국 테리는 금속재질의 코인 여덟 개를 건네고나서야 매립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심 테리가 한바탕 난리를 쳐서 스킨헤드와 일행들을 도륙하길 바랐던 난 속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저 정도 시체와 기계장치면 사지를 확보하고도 남을텐데... 아쉽군.'

< 훌륭한 레이더입니다. >

< 레이더를 확보해주십시오. >

< 잃어버린 기계안을 재구축하겠습니다. >

물론 놈들의 잔해를 원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점이라면 내가 스킨헤드의 기계안을 원한 것과는 달리 시스템은 레이더 탑을 원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테리가 싸움을 피하는 순간 우리의 희망도 산산조각나버리고 말았다.

코인을 건네는 과정에서 난 스킨헤드에게서 달짝지근한 좀비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아무리봐도 사이보그인데, 왜 좀비냄새가 나는 거지?'

시스템은 내가 묻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대답을 내놓았다.

< 좀비의 악취와 유사도 6% >

< 더 자세한 분석을 원하시면 좀비의 피와 살을 섭취해주십시오. >

물론 끔찍하고 말도 안되는 대답이었다.

'한번만 더 좀비 살을 뜯어먹으라는 소리를 하면, 내가 전뇌를 통째로 바꿔버리고 만다.'

문제는 시스템에게 호통친 것과는 달리, 스킨헤드의 살과 피가 달짝지근한 냄새만큼이나 맛있을 것 같다고 느끼는 나에게 있었다.

내가 시스템을 교육시키려는데 테리가 억장이 무너진다는 듯 소리쳤다.

"더러운 패밀리놈들!"

우리는 이미 쓰레기 매립지에서 한참 벗어난 후였다.

'팔백 크레딧이 꽤 큰 돈인가보군.'

이렇게까지 멀리 떨어진 후에야 욕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스킨헤드 일행은 테리가 상대하기엔 버거운 놈들인 것 같았다.

한걸음에 10미터씩 내달리며 체인소드를 휘두르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했다.

그런데 눈깜짝할 사이에 수십 명의 사이보그를 처치해버린 테리가 패밀리라는 놈들을 두려워하는 걸 보니 놈들의 전력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여긴 쓰레기장에도 주인이 있나보군."

그 순간, 테리가 멈춰섰다.

***

'쓰레기 매립지에 주인이 있는 게 신기한 일인가?'

그가 보여준 중규모 마법부터가 상식을 벗어난 형태이긴 했다.

하지만 이 제 8 매립지는 스캐빈저 수천 명을 먹여살리는 자원의 보고였다.

수십만 명의 5등 시민들과 셀 수도 없이 많은 불법체류자들은 그런 스캐빈저가 되기위해 오늘도 골목길을 떠돌며 훔치고 약탈할 기회만 노리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매립지에 가치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이상하게 여긴다?

그가 3등 시민이라고 가정해도 이런 반응은 이상했다.

'한달에 적어도 서너 차례는 매립지를 두고 전쟁이 벌어져.'

F 구역을 경멸하는 선거권자들도 지겹게 벌어지는 매립지 쟁탈전에 대해서는 뉴스를 통해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들이 알기 싫어도 뉴스에서 매주 이에 대한 뉴스를 방영하고 시의원 선거때마다 그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 정치인들 때문이라도 모를 수가 없었다.

3등 시민이라면 결코 모를 수가 없는 일을 이상하게 여긴다?

테리는 그 사실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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