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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닉 x 네크로맨서-6화 (6/152)

6화 유니크 스킬

"쓰레기장을 차지하고 돈까지 걷다니, 다시 생각해보니 참 웃기는 일이긴 해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외곽을 향해 걸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온 신경은 등에 업은 남자가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에 집중하고 있었다.

"황당하긴 하더군. 폭력배들 따위가 미사일 런처도 모자라서 레이더탑까지 무장한 것도 어이가 없는데, 기피시설이긴해도 쓰레기장을 차지하고 돈까지 걷다니!"

남자의 말을 들을수록 테리의 목덜미에는 오소소 하고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그는 테리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는 지 나무라는 듯한 어투로 말을 맺었다.

"시경찰이란 놈들은 이런 기본적인 치안유지도 안하는 건가? 혈세를 받아먹는 놈들이 하는 짓이라곤...!"

그녀는 결국 움찔거리고 말았다.

"왜 그래?"

그녀가 움찔거리자, 남자는 낮고 낡은 빌딩숲을 돌아보며 위험을 감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경계할만한 적의를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별 거 아니에요. 다른 생각을 하다 발을 잘못 디딜 뻔했어요."

테리는 두려운 마음을 가다듬으며 태연함을 가장했다.

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찻잔 속의 태풍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폭력배라고? 알마티 패밀리를 폭력배라고 표현하다니...!'

매립지를 차지할만큼 강력한 패밀리는 용병단에는 못 미치지만 엄연히 준군사조직이었다.

어느 골목길을 차지하고 삥이나 뜯는 불량배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무장단체란 뜻이다.

문제는 이 도시에서 '폭력배'나 '기피시설' 또는 '혈세' 같은 단어를 쓰는 사람이 아주 드물다는 점이었다.

D 구역이나 F 구역에 사는 하층민들은 그런 단어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나마 그런 단어를 들어볼 수 있는 장소는 선거철의 TV 토론이나 사회지도층들이나 참석할 수 있는 정책회의 정도였다.

'패밀리도 모자라서 시경찰까지 아랫것들처럼 표현했어. 그리고 기본적인 치안유지라니? 대체 지금까지 어디서 살아온 거야!'

순간 테리의 뇌리에 중무장한 사람은 출입 자체가 불가능한 구역에 대한 정보가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내심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그의 신분을 단정짓기는 일러.'

어려서부터 예비 정치인으로 키워진 1등 시민들이나 사용할 법한 귀족적인 어휘 사용.

3등 시민들조차 선망하는 직업인 시경찰을 내려다보는듯한 태도.

F 구역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 따위는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한 태도.

그게 가리키는 바는 명확했다.

'도대체 당신... 정체가 뭐죠?'

테리는 자신이 괴물을 등에 업은 건 아닌지 두려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런 사람에게 빚을 지웠다고 생각하니, 어떤 대가를 받아낼 수 있을 지 기대가 돼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

'내가 무슨 말 실수라도 한 건가?'

테리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경직된 근육과 그녀의 피부에서 베어나온 식은땀 때문에 한층 진해진 달콤한 좀비향기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어떻게 땀이 이렇게 향기로울 수 있는 거지?'

테리 몰래 마른 침을 삼키며 참는 것도 이제 한계였다.

< 위험! 이성을 되찾아주십시오! >

< 데스로드의 유니크 등급 스킬 [언데드 탐구]가 사용자님의 이성을 마비시켰습니다. >

< 시스템이 제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

< 테리 양의 행동기록을 토대로 반응을 예측합니다. >

< 방어수단이 전무한 상황에서 테리 양의 땀을 핥으실 경우, 살해당하실 가능성은 77%입니다. >

그녀의 목에 코를 파묻고 이성을 잃으려는 내게 시스템이 다급한 경고 메세지를 띄웠다.

시야 전체를 붉고 하얀 빛으로 번갈아가며 물들이는 시스템.

그와 동시에 귀가 아플 정도로 울리는 경고음.

필사적인 시스템의 도움 덕분에 난 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위험했다.'

좀비향기에 대한 갈구는 이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했다.

<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유니크 등급 패시브 스킬 [언데드 탐구]의 욕망을 이겨내셨습니다. >

< 메카닉 직업의 유니크 등급 스킬 [연구자의 인내]를 습득하셨습니다. >

< 마장기의 발전은 위대한 종족 드워프의 인내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

< [연구자의 인내] 스킬의 효과로 연구 시 정신과 육체의 피로가 큰폭으로 경감됩니다. >

< [연구자의 인내] 스킬의 효과로 연구 시 저주와 정신공격에 면역됩니다. >

< [연구자의 인내] 스킬의 효과로 연구 시 보다 높은 집중력을 장시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을 습득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

유니크 등급 스킬을 얻었다는 사실은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보다 더 큰 건 놀라움이었다.

'도대체 언데드 탐구라는 스킬은 언제 익힌 거야?'

< 해당 정보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

내가 무능한 시스템을 탓하려는데 테리가 물었다.

"어디 편찮으신 곳이라도 있으세요?"

"뭐?"

순간 그녀의 땀을 핥을 뻔했다는 걸 그녀가 알아차린 게 아닌 지 걱정됐다.

"숨이 거칠어지신 것 같아서요."

하지만 그런 걱정은 갑자기 나에게 극존대하기 시작한 테리의 태도변화 때문에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난 그녀가 뭐 때문에 태도를 급선회했는 지 내 기억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코어를 형성하는 과정을 본 후에 존대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공손하지는 않았어.'

지금 그녀의 태도는 마치 손짓 한번으로 자신을 자를 수 있는 회장님을 대하는 신입사원 같은 모습이었다.

방금 전에 한 대화를 되짚어본 결과, 짚이는 게 있긴 했다.

'쓰레기 매립장? 패밀리를 비웃었던 게 날 존대하게 만들었다?'

걸리는 건 그것뿐이었다.

'쓰레기장을 뒤지는 일을 하는 테리에겐 그들을 우습게 보는 내가 뭔가 대단한 존재로 비쳤나보군.'

나쁠 거 없는 변화였다.

적어도 무시당할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때, 부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오토바이 세 대가 거리를 벌린 채,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 사이보그 세 기가 미행하고 있습니다. >

시스템은 이번에도 한발 늦게 시스템 메세지를 띄웠다.

테리도 오토바이 배기음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반쯤 거리를 좁힌 남자들이 테리를 보며 물었다.

"스캐빈저 아가씨 아니야? 이제 막 도심에서 나온 쓰레기차가 매립지에 도착했을텐데, 왜 벌써 퇴근하셨어?"

모히칸 머리를 한 갈색머리가 묻는데, 다른 두 대의 오토바이가 우리 좌우로 포위하듯 감싸왔다.

"언제 퇴근할 지는 내가 정할 문제지. 폭주족 따위한테 퇴근도 허락받아야하나?"

난 그제야 세 남자들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상체는 거의 개조하지 않은 육체였다.

하지만 하체 대신 허리부분에서 오토바이와 결합한 사이보그였던 것이다.

"다리가 없네?"

난 무심코 허리와 오토바이와 연결된 남자들을 보고 생각나는대로 뱉어버렸다.

너무 신기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남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저 개자식이!"

"제이콥, 일단 치자!"

부하들이 야단을 떠는 데도 제이콥이란 놈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부상당한 게 확실하겠지?"

"그게 아니라면 그 비싼 입장료를 내고,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매립지를 나올 리가 없잖아!"

"그래. 쓰레기 파먹는 놈들이 없는 지금이 기회야!"

그때 테리가 숏소드를 뽑아들었다.

그 칼날에서 이이잉! 하는 작지만 묘하게 신경을 거스르는 진동음이 들리자, 처음 말을 걸었던 폭주족이 손을 들며 소리쳤다.

"다들 닥쳐!"

당황하는 폭주족 두목과는 달리, 테리는 오히려 당당하게 제이콥이란 놈의 눈을 칼끝으로 겨누며 한걸음 다가갔다.

"이 켄타로우스 자식들, 덤벼봐! 내가 허리를 갈라서 순수한 인간으로 되돌려주마!"

테리의 도발에 좌우의 폭주족들은 급발진하며 달려들었다.

"병신들아, 저거 초진동이다! 당장 물러나!"

하지만 제이콥이란 놈이 고함치자, 순식간에 방향을 전환해 우리와 거리를 벌려버렸다.

급발진 직후 갑자기 방향을 트는 순간, 놈들은 이미 내 반경 1미터 안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그 순간, 내 눈앞에 놈들의 내부가 적나라하게 비춰졌다.

그 덕분에 오토바이와 놈들의 척추 그리고 복부 및 허벅지 근육이 어떤 방식으로 결합됐는지 엿볼 기회가 생겼다.

'이게 인공근육인가? 육체와 절묘한 조합을 이루고 있군.'

급발진했다가 코앞에서 방향전환할 수 있었던 비밀은 상체와 오토바이를 연결하는 인공근육에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상체는 온전한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부의 근육은 반 이상이 피 대신 오일로 마찰을 줄인 인공근육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뼈 자체는 개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 [폭주족 사이보그의 설계도]를 얻었습니다. >

< 이대로 저장하시겠습니까? >

'저장한다.'

이 정도 인공근육이라면 순간적으로 벽을 타고 달리는 것 같은 묘기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시스템 메세지가 내 상상을 방해해버렸다.

난 나도 모르게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놈들의 설계도를 띄워놓고 어떻게 개조해야 더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이게 만들 수 있을지 상상해봤다.

내가 놈들의 양손에 테리의 체인소드를 연결해준 순간, 모히칸 머리의 우두머리가 내 작업을 방해했다.

"빨강머리. 강화시술에 비싼 검까지 쥐고 있으니, 겁나는 게 없는 모양인데 언제 한 번 본 때를 보여주지."

"다음을 기약할 필요있어?"

"흥! 그 짐덩이를 업고 언제까지 기세등등할 수 있을 지 두고 보지!"

제이콥이란 놈은 테리의 도발에도 응하지않고 꽁무니를 빼버렸다.

놈들을 사로잡아 몸과 오토바이를 연결한 인공근육의 소재를 분석해보고 싶었던 나는 아쉬운 마음을 삭혀야했다.

"굳이 놈들을 도발할 필요가 있었어요?"

테리는 내가 일부러 놈들을 부추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리가 없는 게 신기해서 무심코 말해버린거지, 도발할 생각은 없었어."

"당신도 다리가 없잖아요?"

"내 아픈 곳을 찌를만큼 위험한 놈들이었나?"

"세 놈이면 모르겠지만, 떼로 몰려오면 곤란해요."

난 그제야 그녀가 놈들을 폭주족이라고 말했던 걸 기억해냈다.

고작 그 무리가 셋에 불과하다면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실험체가 그렇게 많다면 언제든 확보할 기회가 오겠어.'

그 순간, 수십 명의 폭주족들이 급발진과 급방향전환을 자유자재로 하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당신에겐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우리 전력을 고려해야해요."

내가 속으로 환호하는 줄도 모르고 테리는 그 말을 끝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로 대신 좁고 복잡한 골목길로만 이동한 끝에 그녀가 날 데려간 곳은 거대한 장벽 근처의 어두운 골목이었다.

"저 벽은..."

"쉿!"

무려 30층 아파트보다 높아보이는 거대한 벽에 대해 물어보려는데, 테리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내 말문을 막아버렸다.

지금까지 극존대하던 태도와는 다른 모습이라 그녀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골목길에서 한참 기다리던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나서야 하수구 뚜껑을 열고 들어갔다.

지독한 시궁창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설마, 날 하수구에 버리려는 건 아니겠지?"

하수구로 내려온 테리가 같은 길을 반복해서 맴돌자, 그녀의 의중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내놓은 대답은 기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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