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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닉 x 네크로맨서-11화 (11/152)

11화. 의체기동전술

내가 그녀의 수상한 행적에 대해 의문을 품은 순간이었다.

"시민등록증을 받으셨으니까 이제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겠어요. 대신 세금을 뜯기겠지만요."

테리가 내 의문을 끊은 순간 옆에 있던 출장사무소가 딱딱한 메세지를 읊어댔다.

- 납세의 의무는 신성한 것입니다.

- 시정부와 장벽 방어군은 시민 여러분을 위해 지금 이 순간도 대 좀비 전투를 수행 중입니다.

- 더 많은 세금을 내십시오.

- 그것만이 시민 여러분의 안전을 확보하는 길입니다.

테리는 출장사무소를 보며 어깨만 으쓱여보였다.

"일단 숙소부터 정하시죠."

테리는 출장사무소가 설치된 건물로 날 이끌었다.

- 푸티나 호텔

붉고 푸른 빛으로 반짝이는 간판은 21세기 출신인 내가 봐도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문제는 촌스러운 간판과 낡은 외벽뿐만이 아니었다.

"설마 여기에 방을 잡자는 말은 아니겠지?"

난 입구계단에 앉아있는 부랑자 같은 놈들을 보며 물었다.

그곳엔 온갖 문신으로 얼굴을 뒤덮은 스킨헤드들이 불만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F 구역에서 아서 씨의 눈에 찰만한 수준의 호텔을 요구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테리는 날 귀족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귀족의 눈에 찰만 한 호텔이 F 구역에 있을 수는 없다는 소리였기 때문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불만을 토해냈다간 도대체 어떤 방을 내놓으라는 거냐며 면박을 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4등 시민이 되면 좀 나은 호텔에서 쉴 수 있겠지?"

"4등 시민이 되려면 10만 크레딧이나 필요하다는 얘기, 벌써 잊어버린 건 아니죠?"

테리는 그런 일에 10만 크레딧을 사용할 수는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어올 뿐이었다.

그녀는 금고에 40만 크레딧을 숨겨놓고도 하수구에 숨어사는 수전노였다.

'10만 크레딧을 더 뜯어내긴 어렵겠군.'

결국 문제는 돈이었다.

주머니에 한푼도 없는 난 테리가 이끄는대로 계단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얼굴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문신을 뒤덮은 스킨헤드놈들은 우리가 지나가고 나서도 우리를 노려보는 지 뒤통수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푸티나 호텔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을 밀고 들어간 테리를 반긴 건 번듯한 턱시도를 차려입은 안드로이드였다.

"제일 싸고... 깨끗한 방 하나 줘."

제일 싼 방을 달라고 하려던 테리는 내 눈치를 보더니 깨끗한이란 단서를 붙였다.

"우리 푸티나 호텔은 로열스위트룸부터 디럭스룸까지 룸 컨디션만큼은 F 구역 최고임을 자부하고 있습니다."

로비 바닥에 깔린 낡은 카펫과 왁스칠이 벗겨진 카운터만 봐도 이 안드로이드 호텔리어가 얼마나 거짓말을 잘 하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럼 디럭스로 하나."

"디럭스룸은 1박에 3크레딧입니다."

"한달 치를 한번에 계산하면 할인해주겠지?"

"5크레딧 할인해드리겠습니다. 계산하시겠습니까?"

안드로이드는 왼손에 찬 시계를 내밀었다.

- 30일 숙박료로 85 크레딧을 결제하시겠습니까?

테리가 시계를 갖다대자, 결제됐다는 알림음이 들렸다.

그녀는 결국 가장 싼 방을 결제하고 만 것이다.

호텔 방이 어떤 꼴일지 상상하니 저절로 한숨부터 나왔다.

"푸티나 호텔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내시는 동안 행복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상냥한 안드로이드의 인사를 듣고 계단을 올랐다.

"무슨 호텔에 엘리베이터도 없어?"

"F 구역이잖아요. 실내등을 켜둔 것만해도 충분한 사치에요."

사치라는 개념이 이렇게까지 개인 간의 편차가 클 수 있는 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계단 여기 저기에 누워있는 놈들과 눈이 마주쳤다.

썩은 동태눈.

힘 없이 계단에 눕다시피한 몸뚱이.

놈들은 하나 같이 비슷한 행색이었다.

그들은 입구계단에 앉아있던 스킨헤드들처럼 층계참과 각 층의 계단마다 서너놈씩 포진해 있었다.

"호텔이 아니라 무슨 마약상이 장악한 아파트 같잖아?"

"괜한 시비걸지말자고요. 마약상이 숨어서 마약을 만들건 불법무기를 유통하건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요?"

테리를 따라 11층까지 올라오긴 했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슬쩍슬쩍 문을 열고 나와 테리를 염탐하는 시선들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 1105호

테리는 태연히 문을 열고 들어가 방을 대충 살피고는 툭 던지듯 말했다.

"뭐, 누가 숨어있진 않네요. 이 정도면 한달 정도 묵으시는 데는 크게 불편하진 않으실 거에요."

그건 반론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싸구려 여관같고 좋군."

난 그녀의 말에 맞장구쳐줬다.

테리는 내게 키를 건네더니 곧바로 방을 나서려다 물었다.

"아참! 아까 출장사무소 AI한테 4등 시민증 발급에 관해 물어봤었죠?"

"하..."

난 테리의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노랗게 변한 베개 커버와 코에 대고 킁킁대지 않아도 땀 쩔은 쉰내가 나는 이불을 보니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졌기 때문이다.

"일하는 데는 5등 시민증만 있어도 되는데 4등 시민증에 관심 갖는 이유가 뭐에요?"

내가 대답하지 않자, 테리는 조금 더 직설적으로 물어왔다.

"여기가 F 구역에서 가장 깨끗한 호텔이라고 했지?"

"흠, 흠! 그럼요."

"그럼 4등 시민증을 받아야 출입할 수 있다는 D 구역 호텔은 이보다 낫다는 뜻이지?"

"제가 D 구역 호텔엔 가본 적이 없어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여기보다 비쌀테니까... 아마 그렇겠죠?"

"그게 내 대답이야."

한국이었으면 구청 위생과에 신고했을 룸 컨디션을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10만 크레딧은 벌고 만다!'

테리는 내 대답을 못들은 척, 문을 나서려 했다.

괜히 나와 말을 섞었다가 더 큰 돈을 내고 싶지 않다는 태도였다.

그때였다.

< 경고! 의체의 위험감지레이더가 감춰진 전자장비를 발견했습니다! >

'전자장비?'

< 경고! 도감청 장치를 발견했습니다. >

< 경고! 감춰진 카메라 렌즈를 발견했습니다. >

시스템은 침대 머리맡의 조명기구와 베란다 유리창을 붉게 점멸시켰다.

< 전파추적 결과, 사용자님의 호실 좌우측 방에서 도감청 장비의 자료를 수신하고 있음이 파악됐습니다. >

< 경고! 적외선레이더가 대구경 기관포로 무장한 병력을 발견했습니다. >

< 습격에 대비하십시오. >

< 무장한 병력이 사용자님의 호실로 접근 중입니다! >

난 이 호텔을 몇번이나 거부했었다.

하지만 테리는 날 굳이 이 방으로 안내했다.

도감청 장비가 설치된 조명기구.

특수제작된 렌즈가 삽입된 유리창.

날 데려올 걸 예상하고 미리 설치한 게 아니라면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날 팔아넘길 생각이었나?"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난 대답 대신 유리창을 때렸다.

콰창! 하는 파열음과 함께 터져나간 유리창.

그 가운데엔 네 조각 난 렌즈가 거미줄처럼 연결된 유리섬유에 매달려있었다.

그와 동시에 깨진 창문 너머에서 소란이 일었다.

"눈치깠다!"

"조져!"

"이게 얼마짜리 렌즈인 줄 알고 다짜고짜 깨트려?"

옆방 베란다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 순간 옆방 베란다에서 점프한 놈들이 둔중한 소리와 함께 내 방 베란다에 내려섰다.

"이, 이건 오해에요!"

그들을 보고 당황한 테리는 손사래를 쳐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해명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객실의 문이 구겨져버렸기 때문이다.

"네 년이 테리인가?"

거구의 사이보그는 구겨진 호텔문을 양손으로 잡아 찢으며 들어왔다.

그 뒤로 대구경 기관포로 무장한 스킨헤드들이 줄을 이었다.

계단마다 앉아있던 눈에 맛탱이가 간 놈들.

입구계단에 앉아 불만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던 놈들.

삶에 의욕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놈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광기에 젖은 얼굴로 우리를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아는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내게 등을 기댄 테리는 칼을 뽑아들며 말했다.

그러자 사이보그의 오른 손이 처저적 하고 접히더니 기다란 전기톱으로 변해버렸다.

< 경고! 마그니움나이트를 함유한 톱날입니다. >

그때 시스템이 놈의 톱날 끝을 붉게 표시하며 경고해왔다.

"프레드릭을 죽여놓고 제발로 내 아지트로 기어들어오다니... 간이 큰 년이로군."

"설마 네가 아치스?"

그렇게 묻는 테리에게서 진한 좀비향기가 뿜어져나왔다.

식은땀을 흘리는 걸 보니, 그녀가 당황한 건 연기가 아닌 것 같았다.

"아는 사이인가?"

"프레드릭의 형이에요."

그때 시스템이 매립지에서 테리의 초진동소드에 머리부터 가랑이까지 반으로 잘려죽은 거구의 사이보그의 영상을 띄워줬다.

"날 아는 모양이니, 얘기가 편하겠군."

"이렇게 난장판을 만들어놓고 대화로 해결하자고?"

"프레드릭이 병신같은 놈이긴 했지만, 엄연히 내 동생이다. 녀석의 전뇌와 네가 훔쳐간 마력로를 돌려주면 정상을 참작해주마."

하지만 아치스는 입으로 뱉는 말과 달리 전기톱을 거칠게 휘둘러왔다.

전기톱이 허리를 가르려들자, 테리는 곧바로 좌측 벽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 테리 양의 체중이동은 매우 효율적입니다. >

시스템은 중력을 무시하는듯한 테리의 움직임이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그녀는 마치 시스템의 흥미에 부응하기라도 하려는듯 천장에 거꾸로 착지하더니 천장을 박차고 아치스의 머리 위로 떨어져내렸다.

< 강화시술자를 위해 개발된 전술기동법을 발견했습니다. >

<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힘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입니다. >

< 의체의 출력을 효율적으로 다루기위해 참고할만 한 방법입니다. >

< 레전드 등급 스킬 [마장기 조종]의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

< 깨달음을 수습한 결과 새로운 스킬을 창안했습니다. >

< 레어 등급 스킬 [의체기동전술]을 습득하시겠습니까? >

내가 허락한 순간이었다.

기계의체로 이루어진 내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을 지 깨달았다.

'이건 힘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이군.'

마치 기계의체로 수십 년 동안 전쟁터를 헤치며 살아남은 백전노장의 전투경험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 순간, 아치스의 등에서 꽈광! 하고 폭발하는 듯한 엔진음이 터져나왔다.

아치스는 어깨 뒤로 엄청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 아치스의 엔진이 과열됐습니다. >

< 냉각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

< 즉시 가동을 멈추지 않으면 엔진의 핵심부품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

아치스는 오일 타는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하지만 엔진이 과열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무시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는 인간은 휘두를 수 없는 방향으로 전기톱을 올려쳤다.

자신의 정수리로 내리꽂히는 테리의 초진동소드를 막기 위함이었다.

< 아치스는 엔진과열로 연속기동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

< 무리한 방향전환으로 기계팔과 엔진에 부하가 가중됩니다. >

< 마모율 70배 급증! >

< 지금 엔진 또는 전뇌를 직접 노릴 경우 반격당할 가능성이 현격히 줄어듭니다. >

시스템은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아치스의 약점을 간파해냈다.

< 아치스의 동선을 예측합니다. >

< 아치스의 시야와 공격범위를 벗어난 사각으로 파고 드시길 권유합니다. >

시스템은 아치스의 시야가 미치는 범위와 그가 공격할 수 있는 범위를 내 시야에 표시했다.

내가 만약 테리에게 경고하지 않는다면?

아치스의 마그니움 톱날이 초진동소드와 함께 그녀의 몸을 반토막내고 말 것이다.

"마그니움 톱날이야!"

아치스의 정수리를 꿰뚫으려던 테리는 내 경고를 듣고 허공에서 몸을 기이하게 뒤틀었다.

< 독특한 기동방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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