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12화 (12/152)

12화. 기갑토벌군

테리는 순간적으로 무릎을 가슴에 모았다.

엄마 뱃속의 태아처럼 잔뜩 웅크린 모양이었다.

그녀는 아치스의 정수리를 겨눴던 칼을 천장을 향해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칼이 차라라랑! 하는 소리와 함께 체인소드로 변신해버렸다.

길게 늘어난 체인소드의 칼끝이 천장에 박힌 건, 그녀가 허공에서 막 두바퀴를 회전한 직후였다.

< 고가치 전투기술을 발견했습니다! >

< 배틀슈트에서 흡수한 전투보조시스템을 가동합니다. >

< 전투보조시스템의 매뉴얼에 따라 테리 양의 고기능 전술기동법을 분석합니다. >

< 주어진 자료가 부족합니다. >

< 호흡, 근육의 긴장과 이완 등을 다각도에서 촬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

< 더 많은 카메라를 확보해주십시오. >

테리는 초인적인 힘으로 아치스의 전기톱 범위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체인소드를 빠르게 회수하는데도 아치스의 전기톱날이 도착하기 전에 시스템이 표시한 아치스의 공격예상범위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 같았다.

'자세만 흐트러트리면 살릴 수 있어.'

난 테리가 전기톱날을 피할 수 있게 아치스를 살짝 밀치기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발걸음을 내디딘 순간, 쿵! 하는 굉음과 함께 바닥이 크게 울렸다.

그와 동시에 발을 통해 전해진 반동이 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 레어 등급 스킬 [의체기동전술]을 사용합니다. >

< [의체기동전술] 스킬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입니다. >

< 경고! 의체가 시속 60킬로미터를 돌파했습니다. >

< 의체의 한계를 넘어선 속도입니다! >

< 내부충격에 대비해주십시오! >

난 시스템의 경고메세지를 무시하고 몸을 낮추며 한걸음 더 내디뎠다.

첫걸음과 달리 충돌음 따위는 나지 않았다.

의체기동전술이 외부로 발산되는 에너지 소모를 줄인 효과였다.

문제는 굉음과 외부로 발산되어야할 에너지가 모두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는 점이었다.

< [의체기동전술] 스킬이 내부충격을 추진력으로 전환합니다. >

그때, 다시 한번 의체기동전술 스킬이 내 장기가 받아야할 충격을 추진력으로 전환해버렸다.

'어떤 방식인지 이해했어.'

내가 의체기동전술 스킬을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체득한 순간이었다.

시스템이 다급한 듯 경고메세지를 연이어 띄웠다.

< 경고! 의체가 시속 120킬로미터를 돌파했습니다. >

< 의체의 한계를 넘어선 속도입니다. >

< 속도를 줄여주십시오! >

하지만 난 시스템의 경고를 무시했다.

내가 얼마나 빨라졌는지, 공기를 가르는 얼굴에 거센 저항이 느껴질 정도였다.

세 걸음째 내디뎠을 때, 난 이미 아치스의 오른쪽 다리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 급격한 가속으로 의체의 발목, 무릎, 고관절의 부하가 폭증합니다. >

< 경고! 과도한 출력사용으로 정강이 골격이 뒤틀립니다! >

< 의체의 무리한 운용을 멈춰주십시오! >

< 레어 등급 스킬 [의체기동전술]이 의체 골격에 부하된 하중을 점프력으로 전환합니다. >

< 경고! 이대로 충돌할 시 의수가 파괴될 수 있습니다. >

< 즉시 타격 시도를 멈춰주십시오! >

시스템 메세지를 봤을 때, 난 이미 아치스의 턱을 손바닥으로 올려치고 있었다.

아치스는 시야가 닿지 않는 사각에서 튀어오른 내 공격에 반응하지도 못했다.

꽝! 하는 굉음과 함께 턱이 찌그러진 아치스가 허공에 떠올랐다.

반면 내 손바닥은 흠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손바닥에 닿는 타격감이 제법이야.'

2미터가 넘는 거구의 사이보그를 한방에 넘어트리는 쾌감은 기대 이상이었다.

< [의체기동전술] 스킬이 내부충격을 효율적으로 발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 사이보그 아치스를 완전히 무력화시켜 위험을 제거하시겠습니까? >

< 전투보조시스템이 취약점을 표시합니다. >

< 목표물의 표시된 부분을 타격하십시오. >

< 외부충격으로 인해 아치스의 전뇌에 기록된 데이터가 소실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 데이터 소실 확률 39%! >

시스템은 아치스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귀와 눈썹 사이의 한 점을 붉고 흰색으로 반짝여 목표지점을 표시해줬다.

< 에이드릭 테크놀로지의 배틀슈트에서 효과적인 전투프로토콜을 발견했습니다. >

< 마크 비로드의 전투경험을 설치하시겠습니까? >

'설치해!'

< 커먼 등급의 스킬 [하급용병격투술]을 습득하셨습니다. >

난 눈 깜짝할 사이에 마크 비로드가 배틀슈트를 입고 15년 동안 싸웠던 전투경험을 체득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난 몸이 이끄는대로 떨어지는 아치스의 얼굴에 사커킥을 꽂아넣었다.

발등에서 깡! 하는 쇳소리가 터져나옴과 동시에 불꽃이 튀었다.

내 발길질에 날아간 거구의 사이보그는 침대를 부수고서야 멈춰섰다.

침대 잔해에 파묻힌 아치스를 내려다보았다.

놈의 머리는 이미 처참하게 구겨져있었다.

찌그러진 놈의 기계안구 부분에서 치지직! 하고 스파크가 연이어 튀어올랐다.

< 기록된 전투기술과 일치율 97%를 달성하셨습니다! >

시스템은 마크 비로드의 기술을 성공적으로 재현한 걸 칭찬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파워가 너무 약해. 하급용병격투술이 왜 의체기동전술보다 두 단계나 낮은 평가를 받았는 지 알겠군.'

< [하급용병격투술]은 장기전에 특화된 전투기술입니다. >

< 의체 또는 배틀슈트의 부하와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해야 대좀비전투에서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

< 순간적인 파괴력에 집중한 사이보그 아치스의 최후를 고려해주십시오. >

시스템은 전투불능 상태가 된 아치스의 몸에 반짝이는 테두리를 둘렀다.

'하급용병격투술이 안정적이긴 했지.'

내가 일부분 인정하자 시스템은 연이어 시스템 메세지를 띄웠다.

< 손상된 구식 폭발엔진을 발견했습니다. >

< 밸런스가 맞지 않는 기계의체를 발견했습니다. >

< 좌우 의수의 부품규격이 다릅니다. >

< 핸드메이드 제품입니다. >

< [전기톱으로 변신가능한 우측의수의 설계도]를 저장하시겠습니까? >

< [레이저 커터를 숨겨둔 좌측의수의 설계도]를 저장하시겠습니까? >

< [구식 폭발엔진의 설계도]를 저장하시겠습니까? >

< 사이보그 아치스의 의체제어시스템에 접속하기 위해선 손상된 전뇌 복원과정이 필요합니다. >

< 복원 예상시간은 6시간 41분입니다. >

< 사이보그 아치스의 전뇌를 복원하시겠습니까? >

새로운 전리품을 얻은 시스템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설계도는 저장하고, 복원은 보류한다.'

그때, 반투명한 시스템 메세지 너머로 넋이 나간 얼굴의 스킨헤드들이 보였다.

안타깝게도 아치스와 달리 놈의 부하들은 몸을 개조하지 않은 평범한 인간들이었다.

흥미를 잃은 난 놈들에게 기회를 줬다.

"프레드릭과 아치스 형제의 복수를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나서라."

대구경 기관포를 들고 복도를 가득 메웠던 아치스의 부하들 중 앞으로 나서는 놈은 한놈도 없었다.

"씨발! 저건 기갑전술기동이잖아!"

"기갑토벌군 출신이었어?"

"저리 비켜!"

"아치스 저 머저리 새끼! 도대체 누굴 죽이려고한 거야?"

내가 맨손으로 아치스를 때려죽이자, 그 모습을 보고 놀란 놈들이 옆방 베란다로 서로 먼저 도망가겠다고 부산을 떨다 한 놈이 추락하기까지 했다.

"기갑전술기동?"

< 해당 정보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

'배틀슈트에서 흡수한 데이터에서도?'

< 배틀슈트의 원 주인이었던 마크 비로드는 테리 양과 같은 기동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

그건 의외의 사실이었다.

'마크 비로드도 3단계 이상의 강화시술자였을텐데, 강화시술자를 위해 개발된 전술기동법을 익히지 못했었다고?'

< 그렇습니다. >

내 경고를 듣고 십여 걸음 너머에 착지한 테리는 놀라서 달아나는 스킨헤드놈들에겐 관심이 없었다.

"방금 그 움직임... 혹시 골렘전술기동인가요?"

***

천장에 박힌 체인소드에 매달린 테리는 손가락 한마디 앞에서 전기톱날이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했다.

문제는 까딱하면 얼굴이 피투성이가 될 상황인데, 그녀의 시선은 온전히 아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아서의 질주는 고작 세 걸음에 불과했다.

하지만 폭발적이었다.

'첫걸음 이후엔 발을 내딛는 소음 자체가 사라져버렸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빨라지는 움직임.

발걸음의 진동과 소리를 최소화하고 모든 힘을 온전히 적을 공격하는 데 쓰는 효율성.

그건 그녀가 배운 기갑전술기동의 묘체였다.

'말도 안돼. 그가 저 의체를 만든 건 고작 한 시간 전이야!'

한 시간 전에 입은 의체를 발소리까지 없앨만큼 능숙하게 사용한다?

테리의 상식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서가 귀족이 아니었다면 보고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수준 높은 마법사이며 매우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귀족이란 점이었다.

귀족.

기갑전술기동의 묘체를 떠올리게 하는 움직임.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의체 적응력.

그녀는 방금 뭘 본 건지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리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금 그 움직임... 혹시 골렘전술기동인가요?"

그건 배틀슈트를 사용하는 모든 용병들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

'골렘전술기동?'

그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도망친 놈들은 기갑전술기동과 기갑토벌군을 언급했어.'

기갑토벌군이 어디에 소속된 군대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스킨헤드들의 요란스러운 반응을 봐선 기갑토벌군이란 군대가 기갑전술기동이란 전투기술을 자랑했었다는 것까지는 예측할 수 있었다.

내가 흉내낸 게 테리의 기갑전술기동이란 전투기술이었으니, 테리는 기갑전술기동을 어떻게 아냐고 물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다른 단어를 꺼내들어 날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때, 새로운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 [골렘전술기동]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

< 부분검색 결과, [골렘]에 대한 기록을 한 건 찾아냈습니다. >

< 골렘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시겠습니까? >

'그래.'

< [빌헬름 그룹]은 [팔미라 시]에서 [타이탄급 골렘]을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산기업입니다. >

< 데이터베이스 검색 결과, 골렘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기록은 이 문장뿐이었습니다. >

< 검색과정에서 특이점을 발견했습니다. >

< 사용자님을 공격한 부랑자들도 아는 [기갑토벌군]과 [기갑전술기동]이란 단어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

< 누군가 의도적으로 말소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

'그보다 빌헬름 그룹이란 곳이 궁금하군.'

< 빌헬름 그룹은 팔미라 시 최대의 방위산업체입니다. >

< 팔미라 시에서 가장 수준 높은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

< 빌헬름 그룹은 시의회 산하 모든 방어군에 보급되는 군수물자 중 무기와 장비 일체를 독점 납품하고 있습니다. >

'에이드릭 테크놀로지와 비교하면?'

< 에이드릭 사는 [장벽 방어군]에서 발생하는 고철을 수거하는 업체입니다. >

수억 크레딧에 달하는 배틀슈트를 생산하는 에이드릭 테크놀로지가 고작 고철이나 수거하는 업체란 시스템의 설명에 상황이 명확하게 정리됐다.

'에이드릭 사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 대기업이 자랑하는 타이탄급 골렘이란 무기는 에이드릭 사의 배틀슈트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값비싸겠군?'

< 에이드릭 사의 배틀슈트와 타이탄급 골렘을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합니다. >

< 해당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온라인에 접속을 허가하시겠습니까? >

'허가한다.'

< 검색불가! >

< 5등 시민은 해당 단어를 검색할 권한이 없습니다. >

< 더 높은 수준의 정보에 접근하려면 4등 시민증이 필요합니다. >

시스템 메세지는 내 가슴을 더 답답하게할 뿐이었다.

그때, 테리가 내 팔을 더듬으며 걱정스럽다는듯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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