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13화 (13/152)

13화. 영안

"그 몸으로 골렘전술기동은..."

그때, 유리섬유에 걸려 덜렁거리는 렌즈조각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 얘기를 하기에 적절한 장소는 아닌 것 같군."

내가 깨진 렌즈와 조명기구등 도감청장치를 가리키며 말하자, 테리도 더는 골렘전술기동에 대해 묻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여전히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일단 시간은 벌었군.'

그녀는 내가 의체기동전술 스킬과 하급용병격투술 스킬을 연이어 펼치는 모습을 보고 내가 골렘전술기동이란 전투기술을 익혔다고 오해한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의체기동전술 자체가 그녀의 기갑전술기동을 보고 따라한 것에 불과하다는 게 문제였다.

다행히 싸구려 도감청장치 덕분에 골렘전술기동과 테리가 익힌 기갑전술기동 그리고 스킨헤드들이 언급한 기갑토벌군에 대해 조사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난 침대에 파묻힌 아치스의 사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녀석부터 처리하지."

"아뇨. 일단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하지만 테리의 생각은 달랐다.

"아치스까지 알 정도면 F구역에서 내가 초소형마력로를 손에 넣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에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이대로 그녀의 은신처로 끌려간다면?

'아무런 정보도 없이 골렘전술기동에 대해 대답해야겠지.'

차라리 아치스의 사체를 판다는 핑계로 이 도시를 돌아다녀야 했다.

그래야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테니까!

"아니, 이 녀석을 처리하는 게 먼저야."

"방금 내 말 못 들었어요? 이대로 돌아다니면 아치스 같은 놈들이 셀 수도 없이 몰려들거라니까요?"

내가 아치스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하자, 테리가 반박해왔다.

"이 정도 수준의 조무래기라면 얼마가 덤벼도 문제는 안될 것 같군."

내가 자신있게 말한 순간 눈앞으로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 전투보조시스템으로 시뮬레이션을 시행합니다. >

< 사용자님에 비해 적 사이보그의 전투 수행능력이 매우 낮습니다. >

< 동시에 상대할 적의 수를 늘립니다. >

< 시뮬레이션 결과, 사이보그 아치스 12기까지는 부상없이 승리하실 수 있습니다. >

< 이는 사용자님께서 전투보조시스템의 안내에 따르실 때를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입니다. >

그와 동시에 아치스 12명과의 모의전투 영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 12기의 아치스를 처리했을 때, 얻으실 수 있는 마그니움나이트는 212그램입니다. >

내가 시뮬레이션 영상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테리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일단 이 놈을 싣고 갈 수 있는 캐리어가 있는지 찾아볼게요."

우리가 찾은 이동수단은 고전적인 형태의 호텔 카트였다.

아치스는 짐가방 대신 호텔카트에 실렸다.

300킬로그램이 넘는 아치스를 실은 호텔카트를 들고 11층을 계단으로 내려왔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호텔이라니 정말 적응이 안되는군.'

하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 3톤 이상의 무게를 드실 경우, 의체가 손상될 위험이 있습니다. >

< 마력의 순환으로 뒤틀린 정강이 골격이 제 형태를 찾아갑니다. >

< 현재 회복속도를 기준으로 연산한 결과, 20분 44초 후 손상된 의체가 완전히 회복될 예정입니다. >

그 순간에도 코어에 생산하는 마력이 내 몸을 순환하며 아치스를 상대하며 손상됐던 의체를 치료하고 있었다.

그때, 카운터에 선 안드로이드가 보였다.

- 1105호 손님?

- 손님께서 끌고 계신 카트는 푸티나 호텔의 자산입니다.

- 메이드 로봇이 1105호의 파손상태를 확인합니다.

- 침구류, 객실문, 유리창 파손이 확인됐습니다.

- 추가요금을 계산합니다.

- 385 크레딧의 추가요금이 부과됩니다.

- 체크아웃하시기 전에 추가요금을 계산해주십시오.

턱시도를 빼입은 놈은 나와 테리를 보자마자 안내메세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놈들이 우리 호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러게요?"

"이봐, 왜 우리에게 몰카를 설치한 방을 준 거지? 너도 이놈이랑 한패인가?"

"이런 범죄자랑 한통속이 된 호텔이라니... 순찰로봇이 알면 좋아하겠어요."

테리가 순찰로봇이란 단어를 언급한 순간이었다.

안드로이드의 안구에서 하얀빛이 빠르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 파손된 비품의 가치를 재측정합니다.

- 파손된 침대는 52년 전에 입고한 물품입니다.

- 감가상각이 완료됐으므로 피해규모는 0 크레딧입니다.

"창문은?"

- 메이드로봇이 1105호실의 창문은 돌풍에 의해 파손된 것임을 보고해왔습니다.

- 계산 착오로 혼란을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안드로이드는 아치스가 찢어버린 객실문이나 우리가 선결제한 30일치 숙박료 85크레딧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테리도 숙박료를 환불해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이 녀석 생체조직이라곤 2킬로그램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기계장치인데, 얼마쯤 받을 수 있겠어?"

"저 톱날이 말씀하신대로 마그니움 합금이라면 10만 크레딧 이하로는 파시면 안돼요."

난 테리의 대답을 듣고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드디어 빈털털이 신세를 벗어나겠군.'

하지만 우리는 푸티나 호텔을 나서자마자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 정지!

- 5등 시민 아서님.

- 귀하께서는 인간의 사체를 운송 중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내게 5등 시민증을 발급해줬던 출장사무소가 제지한 것이다.

"이 놈은 내 객실에 쳐들어온 범죄자야."

내가 대답한 순간이었다.

위잉~ 철컥! 하는 소음이 들리더니 ATM처럼 생긴 출장사무소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왔다.

건물에 박혀있을 땐 누가봐도 현금인출기처럼 생긴 출장사무소였다.

하지만 건물 속에 감춘 머리와 팔다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키가 3미터에 달하는 이족보행 로봇으로 변신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출장사무소 로봇이 어깨에 매고 있던 거대한 구조물이 앞으로 펼쳐졌다.

그건 두 대의 포신이었다.

3미터에 달하는 키에 거대한 두 대의 포신을 맨 로봇은 상대를 압도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 5등 시민 아서님.

- 검문에 불응하시겠습니까?

출장사무소 로봇은 그렇게 물으며 어깨선을 따라 장착된 레이저센서를 번뜩였다.

불응하면 포격하겠다는 뜻 같았다.

< 적대적인 레이저 포격 시스템에 조준되셨습니다. >

< 적이 충전을 완료하기 전에 포신 또는 마력로를 파괴하십시오. >

시스템은 포신 뒤에 매달린 거대한 마력로와 포신에 붉은 선을 둘러 목표물을 표시했다.

출장사무소 로봇의 마력로는 위이잉! 하고 거친 시동음을 내고 있었다.

그 순간 출장사무소 로봇의 레이저센서에서 붉은빛이 날 비췄다.

< 경고! 적대적 로봇의 스캐너에 노출되셨습니다. >

눈이 부신 레이저의 붉은 빛을 가리려고 손을 든 순간이었다.

내 손과 출장사무소 사이에서 파칭! 하고 미세한 정전기가 터졌다.

그와 동시에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 '하급 인공지능'을 발견했습니다. >

< 인공지능을 관찰한 결과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

< 레전드 등급 스킬 [인공정령 생성 주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정신오염 주문]에 관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세뇌 주문]에 관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

< 깨달음을 수습한 결과 새로운 스킬을 창안했습니다. >

< 레어 등급 스킬 [해킹]을 습득하시겠습니까? >

시스템은 단지 출장사무소 AI를 관찰하는 것만으로 제멋대로 깨달음을 얻더니 해킹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레어 등급 스킬을 만들어버렸다.

난 10년 넘게 던전 오브 어비스를 플레이 했다.

하지만 내가 얻은 레어 등급 스킬은 스톰어택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시스템은 단지 출장사무소 AI를 잠시 염탐하는 것만으로도 레어 등급 스킬을 만들어내버린 것이다.

'습득한다.'

< 출장사무소 AI가 스캔한 사용자님의 정보를 삭제하시겠습니까? >

< 출장사무소 AI의 제어권을 강탈하시겠습니까? >

< 출장사무소 AI는 좀비웨이브 발생 시 최전선에서 대좀비 전투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제작된 기종입니다. >

< 최소한의 방어능력 확보를 위해 출장사무소 AI의 제어권을 확보해주십시오. >

하지만 시스템이 적극적으로 메세지를 올리는 걸 보니, 출장사무소 AI를 향한 놈의 탐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갔다.

'출장사무소 AI의 제어권을 강탈하는 게 어려운 일인가?'

< 아닙니다. >

< 레어 등급 스킬 [해킹]을 사용하시면 언제든 출장사무소 AI의 제어권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

'그럼 당장 강탈해서 주변의 눈길을 끌 필요는 없겠군.'

난 어느새 몰려들어 출장사무소 AI와 날 훔쳐보는 스킨헤드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놈들을 다 죽이지 않는 한, 내가 출장사무소 AI를 내 멋대로 다룬다는 소문이 퍼져나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 명령을 확인했습니다. >

난 시스템 메세지를 확인한 순간 대답했다.

"검문에 응하겠다."

-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싣고 계신 사이보그를 스캔해도 되겠습니까?

출장사무소 로봇은 질문과 동시에 레이저포의 포신을 거둬들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경을 거슬리던 마력로의 가동음 또한 멈춰버렸다.

그때 내 뒤에서 철컥 하고 초진동소드를 집어넣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출장사무소의 마력로를 공격하면 나를 따라 포신을 노리려 한 모양이었다.

출장사무소가 날 적대시하는데 도망가지 않고 내 편에서 싸울 생각을 했다는 게 조금은 놀라웠다.

- 해당 사이보그는 팔미라 시정부에 시민으로 등록되지 않았음이 확인됐습니다.

- 이미 사망하였으므로 불법체류에 따른 체포를 무기한 유예합니다.

그때 출장사무소의 안내음이 들렸다.

"시민이 아니면 죽여도 된다는 건가?"

- 시정부는 오직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다 한 시민만을 보호합니다.

그건 섬뜩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지금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이놈은 범죄조직의 수괴였어. 뭐 현상금 같은 게 걸려있을텐데?"

- 범죄자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합니다.

- 해당 사이보그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습니다.

"아치스놈 잡범이었군."

난 아치스 따위에 놀라 은신처로 이동하자고 했던 테리를 보며 말했다.

"자, 잡범이라뇨? 그래도 아치스는 F 구역에선 꽤 유명한 녀석이라고요."

테리는 당황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 해당 사이보그는 시정부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범죄사건에 연루된 바가 없습니다.

그건 출장사무소가 아치스를 잡범이라고 인정한 것과 같았다.

"그럼 이만 가봐도 되겠지?"

- 5등 시민 아서님.

- 사이보그 아치스의 사체가 아서 님의 기계자산으로 등록되었음을 알립니다.

- 해당 기계장치를 처분하신 후 납세의 의무를 다하시기 바랍니다.

출장사무소의 안내메세지를 들은 난 순간 뻥져버렸다.

"세금을 내라고?"

< 제어권을 확보하지 못해 자산등록을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

그때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안전을 생각해서 제어권을 강탈하지 않은 결과가 세금부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

분한 마음에 아치스의 이마를 찰싹 소리가 나게 때린 순간이었다.

- 누구보고 머저리래!

카트에 실려있던 아치스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문제는 놈의 몸은 여전히 카트에 누워있다는 점이었다.

카트에 누워있는 사이보그 아치스.

카트를 딛고 일어선 반투명한 아치스.

'이게 뭐야?'

내가 고개를 갸우뚱한 순간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 데스로드의 고유권능 [종속의 마안]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

< 터무니 없이 높은 수준의 깨달음입니다. >

< 깨달음을 수습한 결과, 유니크 등급 스킬 [영안]을 습득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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