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14화 (14/152)

14화. 망령귀속

'영안?'

< 유니크 등급 스킬 [영안]은 영적인 존재를 볼 수 있게 돕습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영안]은 영적인 존재를 보는 것만으로 압도합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영안]은 제압한 영혼의 기억을 볼 수 있습니다. >

- 큭! 그, 그만해!

벌떡 일어났던 반투명한 아치스는 거인의 손에 짓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 망령을 발견했습니다. >

< 원혼이 되기엔 원한과 영력이 모두 부족한 망령입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영안]의 영향으로 망령이 압도됐습니다. >

난 단지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땅을 짚은 두 팔을 쉴 새 없이 부들부들대는 아치스의 망령을 보니 영안 스킬의 효과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영안 스킬이 사용하는 마력은 내 코어가 생산한 마력 중 눈으로 향한 아주 적은 양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아치스의 망령을 볼 수 있는 건 이해했어. 근데 저 균열은 뭐지?'

카트를 밟고 선 아치스의 망령과 카트에 누운 아치스의 시체를 번갈아보는데 사이보그의 머리쪽에 수 없이 많은 검은 균열이 보였다.

'뭐야? 왼쪽 눈으로만 보이잖아?'

내가 기계가 아닌 오른쪽 눈을 감자, 아치스의 사이보그 시체에 난 검은 균열이 더욱 명확하게 보였다.

문제는 그 상태에선 아치스의 망령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 특이점 발생! >

< 알 수 없는 이유로 유니크 등급 스킬 [비파괴안]을 얻으셨습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비파괴안]은 기계의 상태와 결함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

기계의 결함을 볼 수 있다는 말에 난 나도 모르게 출장사무소 로봇을 바라봤다.

< 잔여 내구연한 : 7년 3개월 21일 11시간 59분 >

< 출고가격 : 8,500만 크레딧(현재가치 : 1,394만 크레딧) >

< 노후도 :44% >

< 에너지효율 : 87% >

.

.

.

< 왼쪽 다리 상태이상 : 침수 >

출장사무소의 상태정보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와 함께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출장사무소 로봇의 몸체에 중구난방으로 그어진 균열들이었다.

어깨.

고관절.

왼쪽 무릎.

좌측 가슴.

다른 곳에 비해 그 네 곳의 균열은 뚜렷하고 굵은 회색 실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오른쪽 눈으로 본 겉모습은 신제품처럼 멀쩡한 출장사무소 로봇이었다.

'주기적으로 정비와 도색을 해주는 모양이군.'

겉모습은 그럴듯해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7년 뒤면 폐기처분해야할 고물이란 뜻이었다.

잠시 새로 얻은 비파괴안 스킬의 효과에 넋을 놓고 있을 때였다.

- 크, 크윽...! 제발 살려주시오...

아치스의 망령은 결국 내 영안 스킬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얼굴을 쳐박은 채, 애처롭게 애원해왔다.

망령은 내가 오른쪽 눈을 뜨고 있는 것만으로도 영안 스킬의 영향을 받는 모양이었다.

'이미 죽은 놈이 살려달라니, 내가 성자로 보이는 모양이지?'

< 망령이 감당하기엔 [영안] 스킬의 효과가 너무 강력합니다. >

< 망령 소멸까지 남은 시간 81초. >

난 시스템 메세지를 보자마자, 오른쪽 눈으로 향하는 마력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허, 헉! 하마터면 진짜 죽을 뻔 했네!

내가 마력을 끊자마자 불안하게 흔들리던 아치스의 망령의 영체가 제 모습을 되찾았다.

< 매우 미약한 망령입니다. >

< 망령을 흡수하여 코어를 강화하시겠습니까? >

< 망령을 도구에 봉인하시겠습니까? >

반물질 코어를 형성해봐서 아치스의 미약한 망령을 흡수하는 것만으로는 눈에 띄게 성장할 수 없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봉인은 아직 접해본 적 없는 개념이라 호기심이 일었다.

'봉인?'

< 유니크 등급 스킬 [영안]에 압도된 망령은 아공간이나 물건에 봉인할 수 있습니다. >

< 적합한 봉인구를 탐색합니다. >

< 사이보그 아치스의 망가진 전뇌 (적합률 63%) >

< 망령의 생전 신체일부입니다. >

< 적합률이 상승합니다. (적합률 67%) >

< 봉인구의 낮은 기능으로 인해 봉인 후 망령의 의식이 잠들 수 있습니다. >

'봉인한다.'

그 순간 제 몸을 쓰다듬으며 살아났음에 기뻐하던 아치스의 망령이 사이보그의 망가진 전뇌로 빨려들어가버렸다.

< 성공적으로 망령을 봉인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

< 언커먼 등급 스킬 [망령귀속]을 습득하시겠습니까? >

'습득한다.'

얼떨결에 망령귀속 스킬까지 습득해버렸다.

하지만 망령을 봉인하는 게 내게 어떤 이득이 있을지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이게 끝이야?'

< 망령의 의식을 깨우시려면 봉인구의 성능을 향상시켜주셔야 합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영안]을 사용해 봉인한 영혼의 기억을 엿보시겠습니까? >

< 봉인을 풀고 망령을 꺼내서 흡수하시겠습니까? >

흡수해도 간에 기별도 안 갈 미약한 망령이었다.

그렇다고 아치스 같은 놈의 기억을 엿보고 싶지도 않았다.

'영안과 비파괴안에 비하면 별볼일 없군.'

내가 고개를 젓자, 테리가 내 손목을 잡았다.

"팔미라 시에 사는 한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어요."

"이 녀석을 팔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

테리는 날 장벽에서 먼 곳으로 데리고 가기 시작했다.

푸티나 호텔 주변은 건물외벽이 낡아서 콘크리트와 골조가 그대로 드러난 건물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도시 중심을 향해 걷다보니, 외장재가 벗겨진 건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빌딩은 점점 높아졌다.

재미있는 건, 푸티나 호텔에서부터 우리를 따라오는 스킨헤드놈들이었다.

"아직까지 따라오다니, 아치스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걸까요?"

"마력로에 대한 욕심이겠지."

나와 테리는 큰길을 따라 걸었다.

하지만 스킨헤드놈들은 큰길로 나오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는지 골목길만을 이용해 우리 뒤를 밟았다.

문제는 우리가 여섯번째 출장사무소 로봇을 지나치는 순간이었다.

< 추적자들이 동요합니다. >

< 적들의 목소리를 확인하시겠습니까? >

'확인해보지.'

< 추적자들의 목소리를 증폭합니다. >

< 잡음제거를 완료했습니다. >

시스템 메세지와 함께 스킨헤드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이대로 아치스의 몸을 내줘야한다고?"

"그럼 베놈 펜스까지 쫓아갈래?"

"초소형마력로를..."

"병신아! 그렇게 아쉬우면 혼자 쫓아가보라고!"

우리가 지나온 좌우 골목길에서 온갖 욕설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 전후방렌즈를 사용해 추적자들의 시선을 연장합니다. >

< 추적자들이 두려워하는 베놈 펜스에 해당하는 그래피티를 찾았습니다. >

시스템은 내 목 뒤에 설치한 후방렌즈와 내 시야에 들어온 시각정보를 추합하더니 그래피티 사진을 눈앞에 띄우며 보고했다.

- VF

보라색과 검은색 그라데이션으로 그린 그래피티였다.

내가 보기엔 지금까지 지나친 골목을 뒤덮었던 그래피티들과 별다를 게 없어보였다.

하지만 내가 출장사무소 로봇을 완전히 지나친 순간 예상치 못했던 차이점이 드러났다.

< 16개 기업에서 광고영상을 송출하고 있습니다. >

< 강제전파송출을 방어합니다. >

< 강압적인 전파송출에 대응하시겠습니까? >

"강압적인 전파송출?"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한 순간이었다.

"아, 참! 아서 씨가 전뇌 사용자란 걸 깜빡했네요. 시민증 등록번호를 수신장치 이름으로 표시하세요. 그럼 한결 나아진다고 들었어요."

난 테리의 조언에 따라 시스템에 명령했다.

'그렇게 해.'

< 사용자님의 명령에 따라 네트워크 수신장치명을 변경합니다. >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 5개 기업이 시민증 등록번호를 무시하고 광고영상을 강제로 송출하고 있습니다. >

< 광고를 송출하는 IP를 차단해 디도스 공격을 방어했습니다. >

테리의 설명대로 공격적인 시도가 대폭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끈질긴 광고회사의 송출은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여긴 다른 의미로 무법지대로군."

스킨헤드보다 더 귀찮은 놈들이었다.

내가 광고송출을 차단하며 걷자, 갑자기 우리 앞에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갑자기 튀어나온 홀로그램은 키가 3미터는 훌쩍 넘는 남성의 모습이었다.

- 생각은 시속 400킬로미터로 달립니다.

- 하지만 인간의 육체는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죠.

홀로그램은 날 내려다보며 개조한 자신의 다관절 의족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 5등 시민 아서님, 불편함을 해소해드리기 위해 저희 베른 바디컴퍼니가 개발했습니다!

- 거미처럼 빠르고 강력한 다관절 의체로 개조해보시는건 어떨까요?

- 인간보다 5배 빠른 다리!

- 가파른 절벽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홀로그램을 무시하며 걷자, 나체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이보그 여성의 홀로그램이 다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아서님께선 탈인간형 기계식 개조에 거부감을 느끼시는군요?

- 그럼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전뇌 임플란트는 어떨까요?

- 저희 뉴먼 사이버네틱 사의 LC-800과 함께 생각의 속도를 빛의 속도로 가속하세요!

- 업무와 전투 모든 분야에서 독보적인 효율을 즐겨보세요!

"안 사요. 안사!"

테리가 나서서 손사래를 쳐도 홀로그램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희안하게도 테리에게 기계식 개조를 권하지는 않았다.

"왜 나한테만 제품을 권유하는거지?"

"이 거리에서 제가 강화시술자란 사실을 모르는 광고단말은 없으니까요."

난 그 모습을 보고나서야 마법사들뿐만 아니라 강화시술자들 역시 기계식 개조에 부정적이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강화시술자들도 마력을 운용하나? 왜 기계부품을 피하는 거지?'

의아했다.

난 지금까지 테리가 마력을 운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갑전술기동을 펼칠 때조차도 그녀에게서 마력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였다.

< 배틀슈트의 데이터베이스 검색 결과, 관련자료를 찾아냈습니다. >

< 3단계 강화시술자들은 아주 드문 확률로 [특이능력]을 발현시키기도 합니다. >

< 특이능력을 발현시키는 데 성공한 강화시술자에겐 코드네임을 붙이고 그들을 랭커라고 부르며 우대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

< 강화시술자들은 의체나 전뇌 같은 기계식 개조가 특이능력 발현을 저해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

'특이능력이라... 어떤 종류지?'

<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습니다. >

< 온라인에 접속해 3단계 강화시술자의 특이능력에 대해 정보를 수집해도 되겠습니까? >

내가 허락하려는데, 테리가 날 한 빌딩의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이끌었다.

"아서 씨, 이쪽이에요."

"저렇게 번듯한 가게를 놔두고 굳이 지하로 내려가자고?"

난 큰 길가에 늘어선 정비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모르는 가게에 갔다가 강매라도 당하면 어떻게하려고요?"

"내가 저런 정비소에서 강매나 당할만큼 모자라보였나?"

"아서 씨. 여긴 베놈 펜스 패밀리의 구역이에요."

"그런데?"

"저런 번듯한 가게 뒤엔 베놈 펜스가 버티고 있다고요."

난 테리의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베놈 펜스.

스킨헤드 놈들이 VF 란 그레피티를 보고 베놈 펜스를 언급하긴 했었다.

"그 베놈인지 뭔지 하는 패밀리놈들이 뒤를 봐주고 있는다는 걸 내가 걱정까지 해야하나?"

***

아서는 패밀리 따위를 신경써야한다는 내 말이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그 오만한 표정과 대로에서 당당하게 베놈 펜스를 패밀리놈들이라고 얕잡아부르는 배짱은 귀족답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초소형마력로를 손에 넣었다는 소문과 베놈 펜스와의 시비가 합쳐진다면?

"아서 씨의 목표는 돈을 벌어서 빚을 갚고 F 구역을 벗어나는 거 아니었나요?"

"그런데?"

"베놈 펜스 패밀리는 알마티 패밀리보다 규모가 커요. 그들의 구역에서 한번 불꽃이 튀기라도 한다면 몇분 안에 수천 명이 몰려들거에요."

아서는 수천 명의 조직원들이 몰려들거란 말을 듣고도 고개만 갸우뚱했다.

"그 정도 항쟁이면 출장사무소 몇 기가 순찰을 나오지 않을까요? 그럼 4등 시민증을 발급받으실 때, 불이익을 받으실 수도 있어요. 아예 발급이 반려될지도 모르고요."

"이 동네는 테리가 더 잘 아니까 이번엔 네 의견을 따르지."

아서는 결국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계단을 내려갔다.

그가 한번씩 상식을 벗어나는 말을 할 때마다 폭탄을 머리에 이고다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만 내 말을 따라준다면 아주 곤란한 상황은 피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서를 앞질러 정비소의 문을 열었다.

- 크릭의 머신컴퍼니

***

"릴, 1만 크레딧을 주시면 1억 크레딧짜리 정보를 드릴게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더블베럴 샷건이 불을 뿜었다.

"끄아악!"

"베놈 펜스 구역에 들어와서 나한테 정보 장사를 하겠다고?"

고민하지도 않고 스미스의 무릎을 날려버린 릴은 기계식으로 개조한 여덟 개의 붉은 눈을 번뜩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사, 살려주세요."

"1억 크레딧짜리 정보 먼저 들어보지. 만약 시궁창 시절의 옛정을 믿고 개수작을 부린거면 머리를 날려주지."

릴은 뜨겁게 달아오른 더블베럴의 총구를 스미스의 얼굴에 갖다대며 말했다.

"으읔! 초, 초소형마력로!"

스미스는 얼굴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못 이기고 정보부터 말하고 말았다.

"크릭의 가게로 초소형마력로를 든 년이 들어가는 걸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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