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15화 (15/152)

15화. 헤비머신건

문을 통과하자, 테리는 날 앞질러 매대로 향했다.

철창으로 가려진 매대.

그 뒤엔 붉은 머리의 흑인남자가 서있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 너머로 화려한 무기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 로메이 사에서 제작한 [22연발 샷건 RM-22]를 발견했습니다. >

< 제른필드 사에서 제작한 [스나이퍼 라이플 JF-4500]을 발견했습니다. >

< 에른스트 사에서 제작한 [펄스건 ER-9]을 발견했습니다. >

< 레트만 사에서 제작한 [헤비머신건 - RT9]을 발견했습니다. >

< 게라트 사에서 제작한 [소형다연장로켓 - T57]을 발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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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견한 9가지 무기의 설계도를 저장하시겠습니까? >

'저장한다.'

시스템 메세지가 빠르게 올라오는 걸 보니, 시스템도 나 못지 않게 흥분한 모양이었다.

그중 특히 내 눈을 끈 건 소형다연장로켓과 헤비머신건이었다.

양쪽 어깨에 장치할 수 있게 제작한, 총 60발을 장전할 수 있는 다연장로켓.

무게가 족히 500킬로그램은 나갈 것 같아보이는 헤비머신건.

'이건 일반인이 들고 다니라고 만든 무기가 아닌 것 같은데?'

그 두 가지는 현대였다면 공격용 헬기에나 장착할만한 스펙의 무기들이었다.

하지만 설계도로 보니, 기계화된 사이보그가 장착할 수 있게 설계된 무기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흑인 남자가 테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테리? 이번에 우리 단골손님들을 빨아먹었다는 얘긴 들었어. 근데 소문이랑 다르게 멀쩡해보이네?"

"왜요? 내가 만신창이가 됐다는 소문이라도 돌았어요?"

"뭐, 비슷해."

단골손님들이라는 걸 보니, 스캐빈저들의 단골집인 것 같았다.

"그보다, 어쩐 일이야?"

"크릭. 사이보그 의체도 매입하죠?"

테리는 내가 끌고 온 호텔카트 위에 실린 아치스의 사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치가 끌고 온 물건... 왠지 눈에 익은데?"

"예상하신대로 아치스에요."

"결국 형제를 같은 날에 보내버리고 말았군?"

테리의 대답을 들은 크릭은 웃음기를 보이며 말했다.

"그래서 얼마까지 쳐줄 수 있어요?"

"일단 매대 위에 올려놓지? 그래야 물건을 살펴볼 거 아니야?"

테리는 그 말을 듣고나서야 매대로 향했다.

"레이저커터 1만 크레딧. 마그니움 합금 톱날을 단 전기톱 4만 크레딧. 고물엔진은 1,500 크레딧 쳐주지."

크릭은 아치스의 의체를 대충 살펴보더니, 말했다.

***

테리는 혼란스러웠다.

'레이저커터만 떼어다 팔아도 3만 크레딧은 받을텐데 1만?'

크릭의 계산이 언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마그니움 합금 톱날만 분리해도 최소 5만 크레딧에 엔진과 부서진 전뇌를 분해해서 부품을 따로 팔면 적어도 3만 크레딧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는 11만 크레딧 정도로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크릭이 제시한 가격은 그 반에도 못미친다는 게 납득이 가질 않았다.

'빤한 가격인데 이렇게까지 후려친다고?'

그녀는 뭔가 있음을 간파했다.

***

"아치스를 개조해준 게 크릭이었어요?"

테리가 확신하는듯한 어조로 웃으며 묻자, 크릭은 당연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가 아니면 F 구역에서 이 정도 밸런스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또 있겠어?"

하지만 눈동자가 떨리는 걸 보니, 자못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때 테리가 아치스가 등에 맨 폭발엔진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런 종류의 엔진은 처음보는데, 어느 회사 제품이죠?"

"W&H에서 나온 제품인데, 출력이 상당해서 인기였지. 근데 아치스가 너무 험하게 썼어. 다른 데 가져가도 제 값 받기는 어려울거야."

"아~ 그래요?"

테리는 뭔가 알겠다는 듯 말끝을 늘리며 되물었다.

그리곤 나를 보더니 고개를 살짝 저었다.

테리는 크릭을 떠보고나서야 그가 장난질을 친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난 달랐다.

< 유니크 등급 스킬 [비파괴안]을 사용하셨습니다. >

< 구식 폭발엔진 WH-101 >

< 제작사 : 발츠 & 힐커 >

< 잔여 내구연한 : 12년 9일 23시간 42분 >

< 출고가격 : 5만 크레딧(현재가치 : 2만 3,200 크레딧) >

< 노후도 : 36% >

< 에너지효율 : 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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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이사항 : 폭발 제어프로그램이 필요한 제품입니다. >

비파괴안 스킬은 해당 엔진이 12년 이상 더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란 걸 알려주고 있었다.

문제는 흥정하는 동안 크릭이 의식적으로 눈길조차 주지않으려고 애쓰는 전뇌에 있었다.

< 전뇌 임플란트 LC-300 (파괴) >

< 제작사 : 뉴먼 사이버네틱 >

< 출고가격 : 8만 크레딧(현재가치 : 300 크레딧 >

< 위 모델은 거리에서 홀로그램이 사용자님께 홍보한 LC-800의 구형 모델입니다. >

< 아래칩은 전뇌 임플란트 LC-300의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추가로 삽입된 칩입니다. >

< 뉴로모픽칩 NS-059 (파괴) >

< 제작사 : 노이만 반도체 >

< 출고가격 : 100만 크레딧 (현재가치 : 4만 크레딧) >

'전뇌가 복원 가능하다고 했었지?'

< 사이보그 아치스의 전뇌 복원에는 6시간 41분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

< 복원하시겠습니까? >

'뉴로모픽칩도 복원할 수 있나?'

< 가능합니다. >

< 복원예상시간 중 6시간 17분이 뉴로모픽칩 복원에 소요될 예정입니다. >

"그럼 전뇌랑 마그니움 합금 톱날은 제외하고 나머지만 팔지."

"전뇌랑 마그니움 톱날을 제외하고 나머지 의체만 팔겠다고?"

크릭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래."

"그럼 1만 크레딧밖에 못 받을텐데?"

"내구연한이 12년이나 남은 폭발엔진을 1만 크레딧밖에 못 쳐주겠다고?"

"포, 폭발엔진을 알아?"

"고물상에 팔아도 4만 크레딧은 받을 수 있는 뉴로모픽칩을 날로먹겠다니? 테리, 네가 믿을만 한 가게라고 해서 왔는데 조금 실망인걸?"

난 아치스의 전뇌와 전뇌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삽입된 뉴로모픽칩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은 크릭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테리도 같이 크릭을 째려보며 쏘아붙였다.

"크릭, 조금 실망인데요? 그래도 이 거리에서 믿을만 한 상인은 크릭뿐이라고 생각했는데..."

"하하하하! 이거 내가 피곤해서 계산에 착오가 있었군."

"전뇌와 마그니움 합급 톱날을 제외하고 10만 크레딧."

난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려는 크릭에게 말했다.

"아니, 그런 계산이 어디있나? 마그니움 톱날은 제외하더라도 전뇌는 안되지!"

"뉴로모픽칩은 내가 수리해서 써볼 생각이야. 나머지만 계산해주던가 아니면 다른 가게로 가지."

"당신이 뉴로모픽칩을 직접 수리하겠다고?"

크릭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지말고 15만 크레딧 쳐줄테니 통째로 넘기는 게 어떤가?"

"직접 수리해보고 실패하면 여기에서 팔겠다고 약속하지."

"괜히 손댔다가 완전히 망가져버리면 4만 크레딧도 못 받아!"

뉴로모픽칩에 집착하는 걸 보니, 짐작가는 부분이 있었다.

'어딘가 팔 곳이 있는 모양이군.'

하지만 이미 비파괴안 스킬로 뉴로모픽칩의 가치를 안 이상 4만 크레딧에 팔아넘길 순 없었다.

"나머지 의체를 10만 크레딧에 사주면 무기를 여기서 사기로 하지."

"흠..."

크릭은 잠시 고민하는 척 했다.

하지만 이내 단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

그는 매대 위에 진한 마그니움 향기가 나는 코인 하나를 올려뒀다.

"10만 크레딧. 맞아요."

테리는 직접 코인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내게 건네며 말했다.

'100 크레딧 짜리 코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진한 마그니움 향기로군.'

< 해당 코인을 기준으로 필요한 마그니움 양을 계산합니다. >

< 사용자님의 신체를 순수 마그니움으로 교체하려면 30억 크레딧이 필요합니다. >

상상만해도 어지러운 숫자였다.

'10만 크레딧이 없어서 F 구역을 못 벗어나고 있는데 30억 크레딧?'

내가 고개를 내젓는데, 크릭이 아치스의 전뇌와 마그니움 합금 톱날을 분리했다.

"원하는 무기를 골라봐."

아치스의 의체를 매대 안으로 가져간 크릭이 벽에 전시한 무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망설이지 않고 헤비머신건을 가리켰다.

"RT9 헤비머신건? 화끈한 걸 좋아하는 친구였군?"

크릭은 내가 헤비머신건을 고르자마자, 얼굴이 활짝펴졌다.

"아서 씨, 그건 너무 무겁고 시끄러워서 장벽 밖에선 사용할 수 없는 무기에요."

하지만 테리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 RT9이 좀 시끄럽긴 하지만, 화력만 따진다면 T57 다연장로켓보다 낫지. 장탄수도 6천 발이나 된다고!"

크릭은 소형다연장로켓을 가리키며 헤비머신건의 훌륭함을 홍보했다.

"우리가 패밀리 간에 항쟁하려는 게 아니잖아요? 화력이 세면 뭐해요? 발사속도가 너무 빠르고 반동도 심해서 표적을 맞추지도 못하고 탄약만 소비하겠죠!"

"배틀슈트만 있으면 전투보조시스템을 이용해서 사격제어도 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그렇게 훌륭한 제품을 왜 1년 넘게 전시만 해두고 계시죠?"

테리가 쏴붙이자, 크릭은 꿀먹은 벙어리가 돼버렸다.

"제작사에서조차 단종시킨 제품이에요. 장벽 밖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들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죠."

테리의 말에 내가 의문을 느낀 순간이었다.

'장벽 밖에서 쓸 수 없다고?'

< 데이터베이스 검색 결과, 좀비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

< 총성은 많은 좀비를 불러모을 수 있기 때문에 장벽 밖에서 사냥하는 헌터들은 소음기를 애용합니다. >

"그, 그럼 이 다연장로켓은 어떤가? 자네가 화력파라면 이런 무기를 들어야 해!"

"크릭! 자꾸 재고처리하려고...!"

"아니. 난 저 헤비머신건으로 하지. 얼만가?"

난 테리의 말을 끊고 말했다.

"10만 크레딧이네!"

"탄약까지 줘."

크릭을 내가 말을 바꿀까 두려운 모양이었다.

그는 부산을 떤 끝에 매대 위에 헤비머신건과 6천 발의 탄약박스까지 올라놓았다.

"이렇게 연결하면 조수의 도움 없이 혼자 6천 발을 쏠 수 있어. 어때 죽이지?"

크릭은 가방처럼 맬 수 있는 탄약박스와 탄약벨트를 연결하는 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줬다.

< 착용하신 [헤비머신건 - RT9]과 탄약 6천발의 무게는 812킬로그램입니다. >

내가 탄약박스까지 둘러매자 시스템이 무게를 알려왔다.

"탄약까지 합쳐서 10만 6천 크레딧만 받지."

"뉴로모픽칩을 원하는 건 설계도를 얻기 위함이겠지?"

내가 대금 대신 질문을 하자, 크릭의 얼굴이 석상처럼 굳더니 좌우를 둘러 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그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문제지."

난 당황한 크릭에게 물었다.

"뉴로모픽칩의 설계도를 가져오면 얼마를 줄텐가?"

"당신이 노이만 반도체를 털겠다고?"

"어떤 방법을 쓰건 설계도만 가져오면 그만 아닌가?"

내가 되묻자, 크릭이 매대를 손톱으로 툭툭 두들겼다.

"진짜 뉴로모픽칩의 설계도라면 5천만 크레딧은 줄 수 있지. 노이만 반도체의 경쟁사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는 누가 엿듣기라도 하면 곤란하다는듯 출입문쪽을 흘깃거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럼 이건 그 계약금으로 치지."

난 헤비머신건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테리, 이 사람 뭐하던 사람이야?"

"10만 크레딧때문에 사기칠 사람은 아니에요."

"네가 보증하는 건가?"

보증이란 말을 들은 테리는 날 바라봤다.

내가 눈을 마주친 채, 고개를 끄덕이자 순간적으로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요. 제가 보증... 할게요."

"그래? 그럼 그 총을 계약금으로 준 셈치지."

크릭은 그렇게 말한 후 테리를 바라봤다.

내가 총을 가지고 도망치면 책임은 네가 져야한다는 의미 같았다.

하지만 난 총만 사고 갈 생각이 없었다.

"그쪽이 돈 될만한 일을 소개해준다고 들었어."

"방금 5천만 크레딧짜리 계약을 했잖아? 그걸로는 양에 안 차나?"

"돈은 많을수록 좋지."

"테리한테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무에게나 일을 맡기지는 않아."

크릭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저어댔다.

"어디가서 '아무나'란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데?"

"일단 아서의 신원은 제가 보증할게요. 아서는 시민증도 발급받은 사람이에요."

테리의 말을 듣고도 크릭은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시민증을 보여주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5등 시민증만으로는 기업과 관련된 일을 맡기긴 어려워."

"내가 맡을 수 있는 일은?"

"지금 너한테 맡길 수 있는 일은 이 정도야."

크릭은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매대 안의 디바이스를 조작했다.

그러자 시스템이 메세지를 띄웠다.

< 임무관련 정보를 수신하시겠습니까? >

'수신한다.'

그 순간 내 시야에 세 가지 목록이 띄워졌다.

- 스프린터 레벨 이상의 좀비인자 수집 - 발주처 : 암셀 연구소

- 크리스 베놈의 목 - 발주처 : 무기명

- 카심 알마티의 목 - 발주처 : 무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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