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언데드웨폰
에디를 포함한 칼슨 용병단 소속 용병들은 에어로트럭 좌우에 매달렸다.
내가 사다리를 타고 에어로트럭 위로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천장이 열리더니 의자가 올라왔다.
의자에 앉자 헤비머신건 거치대가 올라오고 투명한 막이 나를 감싸버렸다.
오직 헤비머신건의 총구만 투명한 막 밖으로 돌출된 모습이었다.
'포탑역할을 하라는 거군.'
- 5등 시민 아서님, 이지스 시스템을 사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레이더영상 수신을 위해 통신망을 개방해주시겠습니까?
투명한 막 위로 글자와 함께 안내음성이 흘러나왔다.
< 에어로트럭이 제공하는 엄호보조시스템입니다. >
< 통신망을 개방하시겠습니까? >
'개방한다.'
그와 동시에 투명한 막 위로 주변지형지물에 대한 홀로그램이 띄워졌다.
나와 용병들은 초록색 점으로, 팔미라 시에서 나온 다른 트럭과 사람들은 회색점으로 표시되어있었다.
그때 내 왼손 팔걸이 앞으로 컨트롤러가 올라왔다.
- 이지스 시스템의 원활한 이용을 위해 사용경험을 다운받으시겠습니까?
- 아서 님의 전뇌와 호환성을 검사해주시기 바랍니다.
< 호환가능한 교육정보입니다. >
< 이지스 시스템이 제공하는 사용경험을 다운받으시겠습니까? >
'다운받는다.'
그 순간, 이지스 시스템을 이용했던 경험이 내 머릿속으로 쏟아져들어왔다.
- 투명 스크린이 감당할 수 있는 압력은 250킬로그램까지 입니다.
- 컨트롤러를 이용하시면 360도 회전이 가능합니다.
- 컨트롤러를 이용하시면 위로 90도까지 회전하여 공중의 목표물을 요격하실 수 있습니다.
.
.
.
'이런 방식이군.'
내가 이지스 시스템의 사용방법을 숙지한 순간이었다.
- 팔미라 시의 방어구역을 벗어났습니다.
- 헌터님들께서는 좀비의 습격에 대비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지스 시스템의 경고방송이 울렸을 땐, 이미 인적이 드문 길로 들어온 이후였다.
- 에디 겔로 님이 내부통신망 접속을 요청하셨습니다.
- 요청에 응하시겠습니까?
"응한다."
- 아서 씨, 우리는 잃어버린 유틀란트 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 이게 작전지도에요.
- 1차 교전예상지역에 도달하기 전에 좀비를 발견하면 공격하기 전에 먼저 알려주세요.
에디 겔로가 보내준 작전지도는 상세했다.
차량운행 속도부터 예상도착시간 그리고 교전예상지역과 복귀시간까지 이번 사냥과 관련된 모든 예상시나리오가 기록되어있을 정도였다.
"확인했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시스템이 이지스 시스템에게 넘겨받은 유틀란트 시에 관한 정보를 띄워올렸다.
< 유틀란트 시에 관련된 정보를 수신했습니다. >
< 50년 전 좀비에게 함락된 유틀란트 시는 인구 5천만의 대도시였습니다. >
< 유틀란트 시는 인근 4곳의 도시에 매년 30만 대 이상의 자동차를 수출할만큼 공업도시로 유명했습니다. >
< 15년 전 유틀란트 시를 차지했던 좀비군락이 동쪽으로 이동한 후 황폐한 도시로 남아있습니다. >
< 이로인해 팔미라 시는 북쪽의 최대 교역도시를 잃었습니다. >
< 시정부가 제공한 지도정보에 따르면 현재 유틀란트 시에 잔존하는 좀비의 수 추정치는 약 295만 마리입니다. >
< 이는 잃어버린 도시 중 가장 낮은 좀비 밀집 수준입니다. >
'인구 5천만 명이 살 정도면 대도시 중의 대도시였을텐데, 그런 공업도시가 좀비에게 함락되다니...'
팔미라 시가 4백 미터가 넘는 높이의 장벽을 구축한 이유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우린 깨지고 무너진 도로 위를 시속 6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렸다.
허공을 부유하는 에어로트럭이 아니었다면 이동이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1시간 반 가량 달렸을 때쯤이었다.
이지스시스템이 띄워 준 홀로그램 지도에 붉은 점이 표시됐다.
"에디 씨. 좌측 7킬로미터 부근에 좀비 무리가 관측됐습니다."
- 확인했어요.
- 지금부터 시속 30킬로미터로 저속운행합니다.
- 아서 씨는 스프린터가 300미터 안으로 들어오면 가슴을 목표로 사격해주세요.
- 머리는 우리가 챙겨가야합니다.
"확인."
에어로트럭이 속도를 늦추자, 붉은점에서 작은 점 몇 개가 줄을 지어 튀어나와 우리를 빠르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 1천 마리 이상의 좀비집단에서 6 마리의 스프린터가 이탈했습니다.
- 좀비집단이 추격해오고 있으므로 스프린터를 처리하더라도 이 길은 복귀로로 사용하기 적합하지 않습니다.
- 장벽방어군에 좀비집단의 이동경로를 보고합니다.
내가 작은 점들을 유심히 바라보자, 이지스시스템이 안내해왔다.
5분 정도 기다리자, 내 눈에도 스프린터라는 좀비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꾸어억!"
"꾸억, 꾸억!"
괴상한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스프린터들은 하나같이 광대뼈가 밖으로 드러난 괴상한 모습이었다.
- 좀비가 속도를 높입니다.
- 시속 61 킬로미터!
- 스프린터가 반경 500미터 안으로 돌입했습니다.
홀로그램의 안내를 보고 컨트롤러를 조작하자, 제일 앞에서 달려오는 좀비놈이 내 조준선에 걸렸다.
좀비놈들은 우리에게 가까워질수록 괴성을 내질러댔다.
< 인간의 체취에 반응하는 모습입니다. >
< 2레벨 좀비 '스프린터'의 행동양식을 저장합니다. >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온 직후였다.
홀로그램에 파란색 십자가 모양으로 그려졌던 조준점이 붉게 변하면서 반짝이기 시작했다.
- 300미터 안으로 돌입했습니다.
"사격합니다."
쾅! 하고 격발음이 울렸다.
하지만 거치대와 의자가 충격을 상당부분 흡수해줘서 내가 느끼는 충격은 크지 않았다.
그때, 홀로그램이 가슴에 20mm 탄환이 적중당해 몸이 터져나가는 스프린터의 모습이 보여줬다.
'콘크리트 기둥도 한방에 무너트리는 위력이라더니...'
2레벨 좀비 따위는 탄환이 몸에 닿는 순간 몸을 찢어발겨버리는 헤비머신건 RT9의 위력은 마음에 들었다.
< 언커먼 등급 스킬 [헤비머신건 마스터리]를 습득하셨습니다. >
그때 시스템 메세지가 눈앞으로 올라왔다.
신기하게도 그 순간 헤비머신건의 손잡이와 방아쇠가 손에 착 감기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이면 백발백중도 어렵지 않겠는데?'
하지만 에디 겔로의 의견은 달랐다.
- 아서 씨!
- 헤드샷은 피해야합니다.
- 명치나 윗배를 목표로 사격해주세요.
- 스프린터의 머리는 우리가 수확해 가야하니까요.
내 헤비머신건 RT9의 탄환에 좀비의 머리까지 박살나는 건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난 에디의 요청을 듣는 순간, 신들린 것처럼 남은 다섯 좀비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콰과광! 하는 격발음과 함께 미친듯이 달려오던 좀비들의 몸이 해체돼버렸다.
- 스프린터 6 마리가 전투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 1레벨 좀비집단이 도착하기 전에 해체를 시작해주십시오.
이지스 시스템의 지시가 끝나기도 전에 용병들이 에어로트럭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거 너무 쉬운데?"
"저지력 정도를 기대했는데, 이 정도 정확도면 우린 목만 베면 되겠어."
용병 프랭크와 빅터는 초진동나이프로 명치 아래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스프린터의 목을 베며 혀를 내둘렀다.
"팀장, 우리도 저런 RT9 하나쯤 장만하는 게 어떨까?"
"맞아. 단장한테 건의해보는 게 어때? 단장도 싫어하진 않을 것 같은데?"
"격발음을 감출 수 있는 헤비머신건을 어디서 구해! 잡담할 시간 있으면 진공포장부터 하지?"
에디 겔로에게 쿠사리를 먹은 용병들은 목이 잘리고도 괴성을 내지르는 스프린터의 목을 진공포장한 후 에어로트럭 뒤의 냉동고에 입고해버렸다.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용병들이 날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는 듯 했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이런 데 낭비하는 시간과 정력이 너무 아깝군.'
난 당장 새로 얻은 스켈레톤 소환 주문과 본 아머 주문을 개량하고 싶었다.
'누가 나 대신 헤비머신건을 조준해줬으면 좋겠는데?'
< 사격전담 AI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
< 자동사격에 특화된 AI 프로그램을 개발하시겠습니까? >
< 개발 예상시간은 591일 16시간입니다. >
'젠장, 1년도 더 걸린다는 얘기잖아?'
< 리소스가 부족합니다. >
< 개발시간을 줄이시려면 시스템의 연산능력을 업그레이드해주십시오. >
< AI와 사격전담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시면 개발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
당장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같았다.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시스템 자체의 연산능력을 업그레이드하고 자동사격과 관련된 데이터까지 제공해줘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테리가 준 앞으로 매는 가방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 주인님! 드디어 절 찾아주셨군요!
가방을 열어보니, 전뇌에 봉인된 아치스의 망령이 나를 보고 부복하는 모습이 보였다.
'AI도 없고 사격전담 프로그램도 없지만... 비슷한 게 있군.'
뉴로모픽칩으로 업그레이드한 아치스의 전뇌.
그리고 그 안에 갇힌 망령.
'너 AI 대신 총 좀 쏴라.'
- 목숨바쳐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망령 아치스의 대답은 충성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생전에 전기톱과 레이저커터를 다루던 사이보그였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총을 제 몸처럼 다룰 줄 알아야 내가 믿고 맡길 수 있어.'
어설픈 사격 솜씨는 탄약을 낭비하거나 심하면 아군에게 오발사고를 낼 위험이 있었다.
그 순간 몇 가지 단어가 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연산능력이 뛰어난 아치스의 전뇌.
헤비머신건 RT9.
사격보조 시스템.
'아치스의 전뇌에 사격보조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망령 아치스가 나 대신 사격하도록 한다면 어떨까?'
시스템이 날 보조할 때, 탄환궤도예측과 풍속 그리고 자전속도 등을 계산했었다.
그 사격보조 프로그램이 아치스를 돕는다면?
'헤비머신건을 제 몸처럼 다루는 자동사격망령이 될 수 있겠어!'
내가 진화한 아치스의 모습을 상상한 순간이었다.
< 레전드 등급 스킬 [마장기 개조]를 사용해 아치스의 전뇌로 헤비머신건 RT9을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
'업그레이드한다!'
그 순간, 아치스의 전뇌와 그 안에 갇힌 망령이 통째로 헤비머신건 RT9의 약실로 빨려들어가버렸다.
< 특이점 발생! >
< 아치스의 망령이 헤비머신건과 융합합니다. >
< 언데드웨폰 [레이쓰 헤비머신건] 제작에 성공하셨습니다. >
< 네크로맨시와 메카닉의 콜라보에 성공하셨습니다. >
< 경이로운 업적! >
< 레어 등급 스킬 [언데드웨폰 제작]을 창안하셨습니다. >
< 언커먼 등급 스킬 [언데드 개조]를 습득하시겠습니까? >
< 언커먼 등급 스킬 [무기 개조]를 습득하시겠습니까? >
'습득한다.'
난 대답하자마자, 새로 만든 레이쓰 헤비머신건부터 살펴봤다.
< 적의 생명과 죽음의 기운을 빼앗아 성장하는 무기입니다. >
< 융합에 사용된 망령의 질이 매우 낮습니다. >
< [연속사격]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 [궤적보정]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 [악령추적]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 [냉기탄환]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 [악령비행]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레이쓰 헤비머신건은 꽤 쓸만해보이는 무기였다.
문제는 언데드웨폰 제작에 사용한 망령 아치스의 수준이 너무 낮아 제 기능을 모두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 언데드웨폰이 에너지원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
< 사용자님의 마력을 동력원으로 삼습니다. >
< 마력를 차단하실 경우, 언데드웨폰 [레이쓰 헤비머신건]이 붕괴될 수 있습니다. >
'팔미라 시로 돌아가서 베터리를 구하기 전까지는 마력공급에 신경을 써줘야겠군.'
- 주인님께 걱정을 끼치다니... 부끄럽습니다.
언데드웨폰이 된 아치스는 헤비머신건 안에서 나를 향해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