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25화 (25/152)

25화. 안드로이드 제작자

"확실해?"

로이는 다리를 역관절로 개조한 가메인을 올려다보며 고글을 반짝였다.

"확실하다니까!"

"그때 크릭이 보스 앞에서 5등 시민 아서 어쩌구 하는 말 못 들었어? 바로 그 놈이었다고!"

"로이, 이번엔 나도 똑똑히봤어."

얼굴부터 뒤통수까지 전자광학센서만 100개가 넘게 단 블랙까지 말을 보태자, 로이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너희를 못 믿는 게 아니야. 보스가 워낙 신중하신 성격이니까 확실히 하자는 거지."

로이는 보스인 릴의 얼굴이 페인팅된 대형트럭을 보고 한숨을 내쉬곤 빌딩 계단으로 향했다.

그가 35층에 가까워질수록 가메인과 블랙의 잡담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보스, 로이입니다."

마침내 그가 35층의 벨을 눌렀을 땐, 일행은 숨소리마저 죽인 상태였다.

- 들어와.

기계음과 함께 50센치 두께의 강화문이 열렸다.

릴은 펜트하우스의 야외정원에서 사이보그 여성들의 시중을 받으며 베놈 펜스가 장악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르르 몰려왔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릴은 값비싼 자연산 시가를 물고 있었다.

'맛도 못 느끼는 사이보그가 자연산 시가라니... 돈지랄이 따로 없군.'

로이는 터져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참으며 대답했다.

"아서 놈이 암셀연구소 소속 네크로맨서 스톨즈님과 상당한 친분을 쌓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아서? 아서라..."

"아! 기억 안나십니까? 크릭의 머신컴퍼니에서 도망쳤던 바로 그 놈입니다."

가메인이 대답한 순간 쾅! 하는 굉음이 울렸다.

로이가 돌아봤을 땐, 릴이 차올린 다리를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이 메뚜기 같은 새끼가 누구 앞에서 아는 척을 해? 내 머리에 박은 칩이 몇백만 크레딧어치인 줄 알아? 네가 컴퓨터보다 똑똑하다는 거야 뭐야!"

화단에 파묻힌 가메인은 허리가 앞으로 접혀 부르르 떨고 있었다.

로이는 그를 살릴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섰다.

"로이, 넌 내가 신뢰하는 부하지. 그 정도로 중요한 정보를 가져왔을 땐, 뒷받침할만한 증거도 가져왔겠지?"

"여, 영상자료는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목격자는 많았지만, 이상하게 녹화가 안됐다더군요."

대답 대신 퍽! 소리와 함께 날아온 건 손찌검이었다.

"이런 비과학적인 새끼!"

로이는 어긋난 것 같은 왼쪽 턱관절보다 59만 크레딧짜리 고글이 반토막이 난 모습이 더 가슴아팠다.

"생각을 좀 과학적으로 하자. 너희들 미개인이야? 내가 말로만 돌아다니는 소문은 뭐라고 했어?"

"마, 말로만 돌아다니는 소문은 허상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포에 질린 블랙이 오들오들 떨며 대답했다.

"그걸 아는 놈들이 이런 비과학적인 주장을 해?"

"하, 하지만..."

"증거는 없는데 소문으로 밀어붙이겠다? 믿어달라?"

릴의 시각센서가 자신을 내려다본 순간, 로이는 죽음을 예감했다.

"아닙니다. 제가 허튼 소문을 옮겨서 보스의 심기를 거슬렀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로이, 잘 좀하자!"

그때 릴 앞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 글리크먼 본부장님.

통신요청이었다.

그 순간 릴이 부하들과 시중드는 사이보그 여성들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입을 다물라는 의사를 표현했다.

"연결해."

릴이 명령하자, 홀로그램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대머리 중년남성의 얼굴로 변했다.

"예, 본부장님 릴입니다!"

릴은 그를 보자마자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말했다.

- 너, 암셀연구소 네크로맨서랑 트러블이 있다며?

홀로그램 스피커에선 야외정원의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만큼 큰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크로맨서면 제가 만날 수도 없는 신분인데..."

- 지금 수뇌부 회의에서 난리가 났어! 너 이 자식, F-22 화물엘리베이터 소식 못 들었어?

"혹시 제가 노리는 아서라는 놈이 암셀연구소 소속 네크로맨서랑 친분이 있다는 그 헛소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장벽방어군 입에서 나온 소리도 헛소리다?

글리크먼 본부장의 말을 들은 릴은 두걸음이나 뒷걸음질쳤다.

똑같은 얘기를 부하들에게 들었을 때와는 180도 다른 반응이었다.

'스캐빈저들 삥이나 뜯고 다니는 내가 말하면 비과학적인 소리고 글리크먼 본부장이 말하면 증거가 없어도 과학적인 거야?'

돌아보니 쓰러진 가메인을 부축하려던 블랙도 전자광학센서에 어린 배신감을 숨기지 못할 정도였다.

- 너, 이 일 때문에 암셀연구소 산하 강화시술소에 우리 조직원들이 출입금지 당하면 어떻게 할꺼야? 네가 책임질 수 있어?

"제, 제 선에서 정리하겠습니다."

- 일 똑바로 처리하고 바로 보고올려!

통신을 마친 릴은 석상이 돼버렸다.

잠시 버퍼링을 이겨낸 그가 돌아서서 로이와 조무래기들에게 물었다.

"우리 당장 끌어모을 수 있는 크레딧이 얼마쯤이지?"

***

"결합이 성공했군. 이제 합체가능하겠어."

수백 번의 실험 끝에 찾아낸 해답이었다.

내가 습관적으로 기지개를 펴려고 두 팔을 번쩍 든 순간, 뒤에서 퍼벅! 하는 타격음이 들려왔다.

"자, 잠깐!"

- 테리. 패배를 인정하시는 겁니까?

거실 벽에 등을 기댄 테리와 그녀를 내려다보며 스피커를 울리는 검은 무광택의 아머드 스켈레톤의 모습이 보였다.

< 좀비근육을 아머드 스켈레톤의 갑옷 안으로 삽입하셨습니다. >

< 외부충격으로부터 좀비근육을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

< 아머드 스켈레톤의 장갑을 TTNA-207 합금강으로 교체하셨습니다. >

< 방어력이 획기적으로 증가했습니다. >

< 아머드 스켈레톤의 중량이 500킬로그램을 돌파했습니다. >

< 중량 증가로 가동가능 시간이 줄어듭니다. >

< 배터리를 추가하셨습니다. >

< 레이저커터를 추가하셨습니다. >

< 초진동대검을 추가하셨습니다. >

< 레어 등급 [좀비장갑] 스킬로 같은 등급의 스킬 [아머드 스켈레톤]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

< 축하합니다! 유니크 등급 스킬 [아머드 스켈레톤 Z버전]을 창안하셨습니다. >

< [아머드 스켈레톤 Z버전] 소환 시, 인간 또는 좀비의 사체와 기계장치 그리고 좀비근육이 필요합니다. >

< 좀비의 근육을 이용해 출력을 강화했지만, 불완전합니다. >

< 추가적인 생명력 공급이 없는 한 좀비의 근육은 말라갈 겁니다. >

< 사용자님의 마력 또는 죽음의 기운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회복시켜줘야하는 모델입니다. >

.

.

.

셀 수 없이 많은 시스템 메세지가 시야를 방해해서 치워버린 순간이었다.

"항복! 그리고 아서 씨!"

테리가 일어나 내게 소리치려는데 방금 전까지 싸우던 두 사람을 둘러싼 18기의 아머드 스켈레톤 Z 버전 모델들이 일제히 말했다.

- 317전 132승 185패!

- 맨손격투 시 기갑전술기동의 교전교범 562가지를 확보했습니다.

- 더 다양한 무기를 이용한 전투사례를 확인할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 다양한 적에 따른 기갑전술기동의 회피 및 반격기술을 확보할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 맨손격투 시 테리를 이길 확률 79.51%!

"날 이길 확률이 79%라고? 내가 잠만 제대로 잤으면!"

아머드 스켈레톤들을 보고 성질내려던 테리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이젠 팔 것도 없어요. 쥬드를 팔 순 없잖아요?"

"내가 언제 쥬드를 팔자고 했나?"

"아서 씨가 뭘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할 때마다 배터리를 사오라느니, 티타늄 주괴가 더 필요하다. 무슨 도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다 팔았잖아요!"

테리는 중기관총 여덟 정이 설되돼 있었던 천장과 소파 앞에 숨겨뒀던 비밀금고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사실 지난 일주일 간 팔아치운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소파 아래의 금고, 욕실에 배틀슈트를 숨겨놨던 금고까지 떼어다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초진동소드를 업그레이드해주지 않았나? 이제 그 칼로 못 자를 합금이 없을텐데?"

난 그녀의 허리에 찬 숏소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칼날과 손잡이까지 TTNA-207 합금강으로 교체하고 칼날엔 스톨즈의 명함을 사용해 순수한 마그니움으로 벼린 보물이었다.

"다 팔고 이제 이 칼이랑 쥬드뿐이잖아요. 더는 안돼요! 이젠 정말 빈털털이라고요!"

테리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주머니까지 까뒤짚어보였다.

"괜찮아. 이 정도면 릴 따위는 수백 명이 몰려와도 겁 낼 필요 없겠어. 당장 크릭한테 가지."

"일주일 동안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않았잖아요. 오늘은 쉬고 내일 가요. 릴이 어디 도망갈 놈도 아니니까..."

테리의 말을 듣고 거울을 보니, 오른쪽 눈밑이 좀 퀭한 모습이었다.

"그 놈 목숨을 하루 연장해주지."

난 테리에게 묻지도 않고 테리의 침실로 향했다.

***

나는 모든 전투준비를 마치고, 테리를 지키기 위해 두 기의 아머드 스켈레톤 Z 버전을 은신처에 남겨놓고 하수구를 벗어났다.

내가 크릭의 머신컴퍼니로 향하려 할 때였다.

갑자기 출장사무소 로봇이 내 앞을 가로막더니, 대뜸 레이저스캔을 하는 게 아닌가?

- 정지!

- 동물의 뼈, 재질을 파악할 수 없는 합금강, 생체근육.

- 배터리와 시각센서, 통신모듈을 확인했습니다.

- 조잡한 구성의 안드로이드입니다.

- 5등 시민 아서님.

- 등록하지 않은 안드로이드를 데리고 이동하는 건 불법입니다.

- 17기의 안드로이드를 등록하시겠습니까?

출장사무소 로봇이 날 제지한 순간, 아머드 스켈레톤 Z버전 17기가 놈을 포위했다.

하지만 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가 않았다.

"등록해."

- 안드로이드 한 기 당 1년에 1천 크레딧의 세금이 부과됩니다.

- 최초 등록 시에는 선납하셔야합니다.

- 납부하실 금액은 17,000 크레딧입니다.

"하..."

난 테리의 은신처를 다 털어먹도록 꺼내지 않았던 10만 크레딧짜리 코인을 낼 수밖에 없었다.

진한 마그니움 향기를 풍기는 10만 크레딧짜리 코인을 내고 거슬러받은 건 1천 크레딧짜리 코인 83개였다.

하지만 그 안에 함유된 마그니움 함량으로만 따지면?

10만 크레딧짜리 코인 안에 함유된 마그니움의 반에도 못미치는 함량이었다.

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출장사무소 로봇을 지나치려는데 놈이 다시 내 앞을 가로막았다.

- 검색 결과, 이 안드로이드는 제작자가 등록되지 않은 제품임이 확인됐습니다.

"뭐? 그럼 안드로이드 제작자로도 등록하고 또 돈을 내야한다고?"

난 잠시 출장사무소 로봇을 해킹하고 방금 납부했던 10만 크레딧짜리 코인을 돌려받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우리를 지켜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출장사무소 로봇을 해킹하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저 많은 눈을 막을 방법이 없어.'

골목길, 낡은 빌딩 깨진 창문 사이로 수 많은 사이보그와 불법체류자들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5등 시민 아서님. 직접 제작하신 안드로이드입니까?

"그럼 얼마를 더 내야하지?"

- 안드로이드 제작자 등록에 납부하셔야할 금액은 없습니다.

"아... 무료인가?"

- 그렇습니다.

"그럼 난 이만 가보지."

- 5등 시민 아서님.

출장사무소 로봇이 재차 내 앞을 가로막으려들자, 아머드 스켈레톤들이 대검을 꺼내들었다.

내가 명령하기만하면 출장사무소 로봇을 반토막낼 기세였다.

하지만 난 손을 내저어 녀석들이 대검을 회수하게 한 뒤, 출장사무소 로봇에게 따졌다.

"또 무슨 용건이냐?"

- 장벽방어군은 유능한 안드로이드 제작자를 필요로 합니다.

장벽방어군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스톨즈 앞에서 굽실거리던 두 병사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관심없다."

네크로맨서인 내가 그런 대접을 받을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 안드로이드 제작자로서, 1년만 장벽방어군에 복무하시면 4등 시민증을 발급해드리겠습니다.

'안드로이드 제작자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하지만 그리 흥미가 가진 않았다.

10만 크레딧이면 딸 수 있는 4등 시민증 따위는 이제 언제든 손에 넣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출장사무소는 다시 한번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 5등 시민 아서님. 혹시 3등 시민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자격조건을 아십니까?

"3등 시민증?"

- 3등 시민이되시려면 팔미라 시를 위해 공헌하셔야 합니다.

그건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다.

- 우리 인류는 많은 도시를 잃어버렸습니다. 인류를 위해 잃어버린 도시를 되찾는 데 헌신하십시오!

"그건 강요같은데?"

내가 따져도 출장사무소 로봇은 굴하지 않고 제 할말만 쏟아내기 시작했다.

- 도시탈환사령부에서 10년만 복무하시면 3등 시민증을 발급해드리겠습니다. 아서님께서는 안드로이드 제작자이시니 직접 전투에 참여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군대에 다시 들어갈 생각은 없다."

- 인류를 위해 헌신하십시오!

난 내 뒤를 쫄래 쫄래 따라오는 출장사무소 로봇을 뒤로하고 크릭의 정비소로 향했다.

***

"아서, 전에 봤을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군?"

머신컴퍼니 문을 열고 들어서자, 크릭이 얼굴에 화색을 띠며 날 반겨왔다.

"그런가?"

"아니, 저 안드로이드들은 다 뭔가?"

크릭은 날 따라 들어오는 17기의 아머드 스켈레톤 Z버전 모델들을 보며 놀란 모습이었다.

'발렌틴 학파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기 전에 네크로맨서 행세를 하긴 어려워.'

난 네크로맨서만큼 존중받지는 못하지만, 남들 앞에 당당히 내세울만 한 직업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번에 제작한 안드로이드들이오."

"아니, 안드로이드를 직접 제작했다고?"

크릭의 반응을 보니, 제대로 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나저나 내게 줄 게 있을텐데?"

"당신은 여러모로 날 놀라게하는군. 스톨즈님이 일을 잘 처리해줘서 고맙다며 성과급을 꽤 많이 챙겨주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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