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29화 (29/152)

29화. 위험등급 4.5

"게릭슨! 안돼!"

이미 죽어버린 게릭슨을 보고 볼카가 울부짖자, 레이저커터를 거둔 톨맨이 그를 뒤로 잡아끌며 말했다.

"게릭슨은 이미 죽었어. 지금은 물러나야 해!"

그때, 내 옆에서 쾅! 하는 총성이 울렸다.

아인즈의 대물저격총이었다.

문제는 대물저격총에 가슴을 맞은 드라고니안이 땅! 하는 타격음과 함께 고작 한 걸음 밖에 물러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와 동시에 시스템이 빠르게 메세지를 띄워올렸다.

< 대물저격총에 의한 충격량을 기반으로 드라고니안의 방어력을 측정합니다. >

< 드라고니안의 비늘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

< 겹쳐진 비늘이 완충작용을 하여 대구경 총탄에 맞았을 때의 피해를 저하시킵니다 >

< 수인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

< 초진동대검의 절삭력이 드라고니안의 비늘을 손상시킬 수 있을 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

< 수인에 대한 연구소 수준의 실험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

< 드라고니안의 위험수준을 상향조정합니다. >

< 드라고니안의 전투력은 3레벨 좀비 이상입니다. >

대물저격총의 대구경탄환을 가슴에 정통으로 맞고도 멀쩡한 모습을 보니, 나조차도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 대구경 총탄에 맞은 후 밀려난 거리를 기반으로 체질량을 계산 합니다. >

< 변신 후 체중이 20배 이상 증가되었습니다. >

< 해당 개체의 체중은 최소 4톤 이상입니다. >

드라고니안으로 변신하기 전에 똑같은 총에 맞았을 때, 터널벽까지 날아갔다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던 모습과는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변화였다.

그때, 놈이 제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르르르.... 시몬, 형제들과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그르르... 가라!"

"대장, 우리가 함께 도우면!"

하지만 붉은 머리카락을 모히칸 스타일로 세운 폭주족놈은 도망치길 거부했다.

두목이 괴물로 변신한 모습을 보고도 도망가거나 욕하긴 커녕 옆에서 함께 싸우길 바라는 폭주족은 붉은 머리뿐만이 아니었다.

'폭주족들은 이미 두목이 드라고니안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군.'

하지만 그 모습을 본 드라고니안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어서 가지못해!"

드라고니안이 외치자, 그의 입 앞에서 공기가 터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30미터 떨어진 내게까지 강한 바람이 전해질 정도의 고성이었다.

터널을 따라 메아리치는 놈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고 물러나는 폭주족 놈들.

그때, 아인즈가 내게 말했다.

"아서 님, 지금이 기회입니다. 어서 후퇴해야 합니다!"

드라고니안이 3레벨 좀비와 같은 위험수준이라면 3단계 강화시술자에 불과한 용병들이 퇴각을 주장할만 했다.

실제로 게릭슨이 몸소 그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난 이미 3레벨 좀비를 사냥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것도 TTNA-207 합금강과 여러 무기들로 업그레이드하지 않은 초기버전의 좀비장갑 스켈레톤들로!

"아서 님. 망설이실 때가 아닙니다. 드라고니안이 있다는 설명을 하지 않은 브라우스 건설이 오히려 우리에게 손해를 배상해야할 상황입니다."

아인즈의 말은 이치에 맞았다.

그리고 난 그들에게 아머드 스켈레톤들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전투 중에 외부 장갑이 파괴돼서 좀비근육이 드러나면 이들에게 설명하기 곤란하겠지.'

아니, 정확히는 드라고니안이란 귀한 전리품을 그들과 나누고 싶지가 않았다.

"화물은 지켰고 적들도 90% 이상 물리쳤으니, 의뢰는 성공한 셈이다. 내 안드로이드들을 이용해 퇴각시간을 벌 테니, 먼저 후퇴해라."

"아무리 아서님의 안드로이드라도 저런 괴물을 막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같이 가시죠!"

"게릭슨을 죽일 때, 보인 놈의 속도는 배틀슈트 이상입니다! 도망쳐야 합니다!"

아인즈가 후퇴를 종용하자 톨맨이 말을 보탰다.

표정을 보니 배틀슈트를 압도하는 드라고니안의 능력에 공포감을 느낀 것 같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의리있는 놈들이야. 기회가 되면 다시 손을 잡아도 되겠군.'

혼자 죽기 싫다며 자폭해버렸던 지미 때문에 난 용병들을 그리 곱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위기에서도 날 제물로 두고 먼저 도망쳐서 자신이 살 확률을 높이지 않는 걸 보니, 용병에 대한 평가를 달리해야할 것 같았다.

'그래도 이걸 나눠먹을 수야 없지.'

나는 일부러 인상을 찌푸리며 강하게 말했다.

"같이 도망치면 꼬리를 잡혀 한 명 씩 죽을 뿐이야. 내가 시간을 벌어도 운이 좋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버려서 다같이 죽을 셈이냐?"

세 용병은 그제야 납득했는지 고개를 숙이더니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어느새 마음을 진정시킨 볼카가 고개를 숙인 후, 배틀슈트의 출력을 올려 빠르게 후퇴하자 톨맨과 아인즈도 그 뒤를 따라 멀어졌다.

"내 형제들을 이렇게 죽여놓고 무사히 지상을 볼 수 있을 성 싶으냐!"

그 모습을 본 드라고니안이 용병들의 뒤를 향해 달려들었다.

퍼벅! 하고 놈이 발을 디딜 때마다 바닥이 터져나갔다.

아머드 스켈레톤들의 순간가속에 맞먹는 속도로 달리는 드라고니안 앞을 십여 자루의 초진동대검이 가로막았다.

배를 가르려는 칼날을 피하면 기다리고 있던 초진동대검이 등을 때렸다.

등을 때리는 초진동대검을 피해 옆으로 물러나면 목을 내리치는 초진동대검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태엽처럼 맞물리는 합공에 드라고니안의 몸에선 챙! 채쟁! 하는 칼 부딪히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문제는 초진동대검이 정확히 놈을 베고도 비늘을 가르지 못하고 불꽃만 튀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드라고니안... 정말 훌륭한 소재로군."

그때 꽝! 하는 굉음과 함께 한 기의 아머드 스켈레톤이 날아가버렸다.

붉게 달아오른 가슴을 방어하는 흉갑 부분엔 네 줄기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 2호기의 좀비근육 11퍼센트가 소각됐습니다. >

< 기동은 가능하나, 원활한 전투수행이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

< 2호기로부터 받은 상태정보를 시각화합니다. >

시스템은 그와 동시에 2호기의 해부도를 내 눈앞에 펼쳐보였다.

왼쪽 가슴 전부와 오른쪽 가슴 80%에 달하는 좀비근육이 검게 타들어간 모습이 보였다.

그때 13호기의 정신파가 전해졌다.

- 적의 손톱공격이 급가속 하여 휘둘러지기 전의 준비동작을 파악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드라고니안의 붉게 달아오른 손이 허공을 가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건 마치 대기권을 가르는 유성처럼 붉게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 공격패턴을 파악했습니다.

- 급가속 공격시도를 0.05초 먼저 예측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전면을 방어하고 있던 5호기가 2호기의 자리로 출격을 요청해왔다.

- 2호기의 자리를 대신하겠습니다.

'출격해!'

난 2호기가 빠진 자리를 채우는 5호기를 보고 다시 명령했다.

'군체정신 스킬로 지금까지 파악한 드라고니안의 공격패턴을 공유해라.'

< 전체 유닛이 드라고니안과의 교전경험을 공유합니다. >

< 모든 유닛이 드라고니안의 공격 시도를 0.05초 먼저 먼저 예측할 수 있습니다. >

5호기가 2호기의 자리를 대신하자, 드라고니안의 손은 허공만 가르기 시작했다.

16쌍의 눈이 그를 사방팔방에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드라고니안은 아머드 스켈레톤을 다시는 건드리지 못했다.

나는 한손은 폭주족들의 시체 방향으로, 다른 한손은 흉갑이 부서진 아머드 스켈레톤 2호기 방향으로 향한 채 명령했다.

"수복되어라!"

그러자, 폭주족들의 시체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쓰러졌던 2호기의 좀비근육이 회복되었다.

"에너지 드레인!"

난 남은 죽음의 기운을 에너지 드레인으로 흡수해 마력을 보충한 후 곧바로 내 호위들의 에너지를 충전해주며 명령했다.

'체인소드 사용을 허가한다.'

그때, 드라고니안이 새로 합류한 5호기를 노리고 주먹을 휘둘렀다.

꽝! 하는 굉음과 그보다 한발 앞서 두 걸음 물러나 놈의 주먹을 피하는 5호기.

5호기가 대검을 곧추세우자, 드라고니안의 뒤에 있던 9호기의 초진동대검이 체인소드로 번해 뱀처럼 날아들었다.

"흥! 이까짓 잔재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9호기의 체인소드를 고개만 젖혀 피한 드라고니안이 가소롭다는 듯이 외쳤을 때였다.

여섯 개의 체인소드가 동시다발적으로 그에게 날아들었다.

드라고니안은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체인소드를 피해냈다.

하지만 하나, 둘 칼날을 피해낼수록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들었다.

체인소드가 회수되지 않고 그를 향해 칼날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

놈이 놀랐을 땐, 이미 놈은 여덟 개의 칼날이 연결된 칼날감옥에 갇힌 후였다.

그 때, 지이잉! 하는 진동음이 뚜렷하게 들려왔다.

체인소드와 체인소드가 이어지고 각각의 체인소드가 내뿜는 초진동이 모여 진동이 점차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위로 세 개의 체인소드가 더해졌다.

그러자 드라고니안의 팔다리와 옆구리, 목, 머리가 완전히 칼날감옥에 갇혀 꼼짝달싹도 못하는 몸이 돼버렸다.

칼날감옥은 아머드 스켈레톤의 힘으로 들어올려져 드라고니안을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옭아매었다.

거미줄과 다른점 이라면 드라고니안의 무거운 체중이 드라고니안을 베어내는 힘으로 쓰인다는 점 뿐이었다.

"초진동소드의 합체버전이다."

"으그그극!"

드라고니안이 괴로워하는 순간에도 칼날에 닿은 놈의 비늘이 째재재쟁! 하는 굉음을 연이어 토해내며 불꽃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팡! 파삭! 하는 소음과 함께 드라고니안의 옆구리에 닿은 체인소드가 마침내 놈의 비늘을 깨고 피맛을 봐버렸기 때문이었다.

변신과정에서 대부분 찢겨나간 놈의 옷은 이젠 넝마조차 남지 않은 모습이었다.

놈에게 남은 거라곤 금속재질의 목걸이줄과 그 끝에 매달린 노란 보석뿐이었다.

"귀족들에게 붙어 콩고물이나 받아먹는 더러운 네크로맨서 놈이 이 지하까지 넘보다니... 귀족의 개로 사는 자신의 삶이 부끄럽지 않은가?"

놈은 내가 죽음의 기운을 이용해 아머드 스켈레톤을 일으켜세우는 모습을 보고 내 정체를 짐작한 것 같았다.

"마력감응 능력도 탁월하군."

"크아아악! 네 이름이 뭐냐! 죽어서 원혼이 돼서라도 이 원한은 잊지 않겠다!"

"네 주군이 될 분이시다."

옆구리와 왼쪽 목, 이마와 허벅지에 칼날이 파고들어도 흉성을 떨치던 놈이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놈의 눈이 불안하게 떨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 나를 하찮은 스켈레톤 따위로 삼겠다는 말이냐!"

놈은 거세게 저항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놈의 귀한 핏물만 바닥에 쏟아질 뿐이었다.

"스켈레톤들에게 죽을 놈이 누구에게 하찮다는 거냐?"

"이놈들이 모두 스켈레톤이라고?"

"나의 첫번째 아머드 드라고니안 스켈레톤이 되는 영광을 내려주마!"

"으아아아! 죽어서도 네 종으로 사느니 차라리...!"

놈은 제 손목이 3분의 1가량 잘려나가는 걸 보고도 억지로 손을 들어올려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나는 폭주족들이 외쳤던 '순간이동'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목걸이에 순간이동 기능이라도 있나? 도망치게 둬서는 안돼!'

< 마력반응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

< 마법진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

< 배틀슈트 데이터베이스 검색 결과, 자폭유도체일 가능성 13%! >

시스템은 놈이 필사적으로 움켜쥔 목걸이의 위험수준을 판단하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땐 이미 놈이 목걸이를 물어뜯은 후였다.

차라락! 하고 금속재질의 목걸이 줄이 바닥에 떨어져내려버렸다.

그 끝에 매달려있던 노란 보석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꿀꺽하는 소리와 함께, 보통은 입으로 삼킬 수 없는 큼지막한 보석이 드라고니안의 목구멍을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당장 그놈을 죽...'

불길한 느낌에 내가 명령하려는 순간, 드라고니안이 천장을 향해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의 입에선 아무런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초음파인가? 하지만 순간이동이 아니라면 이미 끝났어.'

놈은 체인소드 감옥에 갇힌 상황인데도 죽을 힘을 다해 발버둥을 쳐댔다.

그 결과 복부를 가로막았던 체인소드는 이미 놈의 복부를 절반이나 갈라버린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 직후에 발생했다.

- 주군, 놈의 무게가 증가합니다!

- 체인소드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 아머드 스켈레톤들로부터 대적 중인 드라고니안의 중량정보를 합산합니다. >

< 드라고니안의 무게가 급증합니다. >

< 적의 중량이 4톤을 돌파했습니다. >

< 적의 중량이 11톤을 돌파했습니다. >

체인소드의 결합이 강제로 분리되는 순간, 쿵! 하는 소음과 함께 드라고니안이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 위험! 드라고니안의 자폭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

"다들 이리 모여!"

내가 명령하기 무섭게 아머드 스켈레톤들은 급가속까지 사용하며 달려왔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적들은 안중에도 없다는듯 바닥을 내리치며 괴로워하는 드라고니안의 모습은 내 눈에 거슬렸다.

열한 기의 아머드 스켈레톤들이 나를 둘러싸기 직전이었다.

드라고니안의 비늘에 덮혀있는 몸에 거미줄 같은 붉은 선이 번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머드 스켈레톤들이 내 시야를 가린 순간, 꽈광! 하는 폭발음과 함께 지하터널 전체가 뒤흔들렸다.

< 모든 유닛의 피해규모를 산정합니다. >

< 피해를 입은 유닛이 없습니다. >

< 폭발반경을 벗어난 것으로 파악됩니다. >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올 땐, 사방이 하얀 연기로 자욱해서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 후욱! 후욱!

그때 지하터널을 통째로 울리는 거대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의문을 느낀 순간, 거센 바람이 일며 자욱했던 연기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연기가 사라진 곳에 모습을 드러낸 건 거대한 드래곤이었다.

얼마나 거대한 놈인지 40미터 높이의 지하터널이 낮아 고개를 숙이고 있을 정도였다.

< 배틀슈트의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대상을 분석합니다. >

< 종족 : 드레이크 >

< 특징 : 점멸하는 하얀심장. >

< 분석 결과 적의 위험등급은 4.5급으로 추산되었습니다. >

< 위험! 정규편제된 1개 용병단도 상대할 수 없는 괴물입니다. >

< 위험! 신속히 자리를 이탈해 시정부에 보고해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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