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협상
내가 명령하자, 폭주족들의 피와 살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의 형태로 변화한 죽음의 기운이 방금 전까지 폭주족이었던 해골의 미간으로 모여들었다.
해골의 미간에 모인 죽음의 기운이 데스소울을 이룬 순간이었다.
난 응집된 데스소울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전에 일으켰던 아머드 스켈레톤들에 비해 너무 약한 데스소울이군.'
몸 대부분을 기계화해서 망령조차 약했던 아치스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2레벨 좀비 스프린터의 시체로 빚어낸 데스소울에 비하면 너무 약했다.
'재료가 되는 시체의 육체능력이 데스소울을 빚는 데 영향을 끼치는 모양이군.'
< 사령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
'데스소울로 빚어낼 때도 소모되는 죽음의 기운이 너무 커.'
원래부터 언데드였던 좀비를 그보다 높은 수준의 아머드 스켈레톤으로 빚어낼 때는 발생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언데드에 대한 친화도 같은 게 존재하는 건가?'
< 형성된 데스소울의 등급은 언커먼 등급입니다. >
< 레어 등급 언데드 [아머드 스켈레톤]을 구성하기엔 부족한 수준입니다. >
< 연산장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
아머드 스켈레톤을 처음 만들 때 사용한 재료는 폐차였다.
폐차에도 연산장치와 엔진이 남아있었다.
문제는 폭주족들의 하체를 이룬 오토바이엔 엔진만 있지 연산장치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장 필요한 부품을 마련할 방법은 없으니, 죽음의 기운으로 부족한 질을 대체한다.'
< 연산장치가 없는 불완전한 상태로 [데스엔진]만 연성하여 [아머드 스켈레톤]을 창조하시겠습니까? >
'허가한다.'
그러자 데스소울과 폭주족 시체의 하반신 바이크 엔진이 합쳐져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데스엔진으로 변화했다.
아머드 스켈레톤조차 3레벨 좀비를 상대하긴 역부족이라 나중에 좀비장갑을 더해줬었다.
'이건 새로운 모델의 시작에 불과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다보면 머지않아 아머드 스켈레톤 Z버전에 못지 않은 기종을 생산해낼 자신이 있었다.
< 부족한 역량을 죽음의 기운으로 보충합니다. >
폭주족의 시체는 150구가 넘었었다.
처음엔 그 모든 시체를 아머드 스켈레톤으로 일으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재료의 성능이 부족하다보니 수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 데스소울을 붕괴시켜 죽음의 기운을 흡수합니다. >
< 데스소울을 붕괴시켜 죽음의 기운을...
일으켰던 시체를 붕괴시켜 죽음의 기운을 뽑아내는데, 시스템이 색다른 메세지를 띄웠다.
< 언데드 친화도가 높은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
< 전투에 특화된 영혼입니다. >
< 강력한 데스소울이 탄생했습니다! >
< 시체가 입은 배틀슈트로부터 수준 높은 전산장치 일체를 확보했습니다. >
< 새로운 형태의 초소형 마력로를 확보했습니다. >
< 아머드 스켈레톤을 만들기엔 수준 높은 재료입니다. >
< 이대로 데스엔진으로 융합하시겠습니까? >
시스템은 게릭슨의 시체에 붉은 테두리선을 두르고 고급 시체에 대한 판단을 요청해왔다.
'폐차나 오토바이 엔진도 아니고 초소형 마력로를 데스엔진으로 만들긴 아깝지.'
그 순간, 매립지에서 반물질 코어를 형성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초소형 마력로.
흉갑만 찌그러진 배틀슈트.
재료만 놓고보면 매립지에서 반물질 코어를 형성하던 내 상황보다 나았다.
'반물질 코어를 형성한다.'
내가 명령한 순간, 내 뒤에 넘어져있던 화물열차의 기관실이 분자단위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 [라이프 포스 베슬] 형성을 위해 필요한 재료를 확보합니다. >
시스템 메세지와 함께 폭주족들을 아머드 스켈레톤으로 만드는 데 사용되던 죽음의 기운까지 게릭슨의 시체로 빨려들어오기 시작했다.
< 삶과 죽음, 마력과 생명력, 기계와 생물을 융합하는 [반물질 코어]를 구축해냈습니다. >
< [반물질 코어]와 데스소울, 기억, 연산, 감각과 관련된 기계장치를 융합합니다. >
< [반물질 코어]와 반응한 해당 개체의 영혼이 한 단계 성숙합니다. >
< 해당 개체의 전투력은 레어 등급을 넘어섰습니다. >
< 언데드 등급을 판정합니다. >
< 유니크 등급 언데드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를 만들어내셨습니다. >
< 언데드의 강력한 영혼이 종속에 저항합니다. >
- 아서?
그때 눈을 녹광으로 번뜩이는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가 내게 정신파를 보내왔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줬더니 주인을 몰라보는 놈이 나왔네?"
- 아서 님, 전 이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댔다.
"넌 이미 드라고니안에게 죽었다. 내가 되살려주지 않았다면 네 시체만 가족들에게 돌아갔겠지."
내 말을 들은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는 그제야 주변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반쯤 사라진 기관실.
무너진 지하터널.
백여 구의 폭주족들의 시체가 검은 연기로 변해 사라지는 모습들.
그 곳에 그의 동료나 브라우스 건설이 보낸 전투용 안드로이드는 존재하지 않았다.
- 볼카... 아인즈... 톨맨...
그건 신기한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일으켜세운 아머드 스켈레톤 중 생전의 기억을 유지한 모델은 단 한 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 모두 도망친 겁니까?
"그들이 남아있었어도 너와 같은 꼴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난 신기한 마음에 대강의 상황을 알려줬다.
- 제가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 용병답게, 명예롭게 죽었다고 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려운 부탁은 아니군."
내가 대답한 순간,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 명예를 아는 전사의 영혼입니다. >
< 이름을 하사하시겠습니까? >
"네게 게릭슨의 이름을 내리겠다. 살아서 모두 펼치지 못한 용맹, 나를 위해 바쳐라."
난 분위기에 취해 허리춤에 꽂아두기만 했던 초진동소드를 꺼내 내밀었다.
테리의 초진동소드를 복사한 버전이었다.
-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두 손으로 초진동소드를 받아든 게릭슨이 대답했다.
< 20기의 아머드 스켈레톤이 데스엔진 융합에 성공했습니다. >
< 새로운 형태의 기종입니다. >
< 모델명을 남기시겠습니까? >
그때 시스템이 폭주족들의 시신이 아머드 스켈레톤으로 재탄생했다는 보고를 올렸다.
"바이크를 탄 형태니까 아머드 스켈레톤 라이더라고 하지."
< 사용자님의 명령에 따라, 앞으로 하체를 바이크와 연결한 사이보그의 아머드 스켈레톤은 라이더라고 통칭하겠습니다. >
내가 폭주족 아머드 스켈레톤들의 모델명을 정한 순간이었다.
- 주인님, 뭔가 이상한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지하터널을 탐색하던 아치스가 천장에서 뭔가를 자세히 살피더니 내게 보고해왔다.
"이상한 물건?"
그때 투쾅! 하는 굉음이 들렸다.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 게릭슨이 점프하면서 발생한 충격음이었다.
그 직후 티디디딩! 하는 타격음을 들렸다.
게릭슨이 뛰어오르자, 그 충격에 사방으로 튀는 자갈이 내게 닿지 못하게 아머드 스켈레톤들이 막는 모습이 보였다.
'헌터로 활동할 때보다 운동능력이 오히려 더 좋아졌어. 반물질 코어와 배틀슈트 기반 신체 덕분인가보군.'
곧 아머드 스켈레톤들 앞에 쿵! 하는 충격음과 함께 게릭슨이 떨어져내렸다.
- 주군, 아무래도 적이 설치한 전파교란 장치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게릭슨이 바친 기계장치는 주먹만 한 머리에 송곳 같은 발이 여섯 개나 달린 물건이었다.
송곳 같은 발에 콘크리트 가루가 남아있는 걸 보니, 천장에 꽂아둔 걸 뽑아온 것 같았다.
난 전파교란 장치를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오른쪽 눈을 감았다.
그러자 전파교란 장치 외부의 검은 균열이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시스템 메세지가 촤르륵 올라오기 시작했다.
< 유니크 등급 스킬 [비파괴안]을 사용하셨습니다. >
< 전파교란기 T-52 버전 >
< 제작자 : 톰 헤밀턴 >
< 잔여 내구연한 : 29년 315일 11시간 27분 >
< 자동폭발 예정시간 : 51분 12초 후 >
< 판매가격 : 3천만 크레딧 >
< 현재가치 : 2,953만 크레딧 >
< 노후도 : 0.01% >
< 에너지효율 : 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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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가 아니라 제작자?'
< 특정 기업이 생산한 물건이 아닙니다. >
< 톰 헤밀턴이 주문을 받아 제작한 물품으로 추측됩니다. >
< 자폭시스템이 가동 중입니다. >
< 레어 등급 스킬 [해킹]을 사용해 자동폭발 기능을 취소하시겠습니까? >
'허가한다.'
2900만 크레딧이 넘는 물건이 자폭하게 둘 순 없단 생각에 해킹 스킬 사용을 허가한 순간이었다.
- 주군, 전파교란 장치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 100미터 간격마다 설치된 전파교란 장치를 발견했습니다.
어느 새 우리가 달려온 지하터널을 거슬러 올라가며 천장을 살피던 게릭슨과 다른 아머드 스켈레톤들의 보고가 이어졌다.
< 사용자님의 명령에 따라 [전파교란기 T-52 버전 설계도]를 저장했습니다. >
< 설계도를 확인하시겠습니까? >
'이렇게 작은 물건을 3천만 크레딧에 팔다니, 내부가 궁금하긴 하군.'
그 순간 내 앞에 전파교란기 T-52의 설계도가 펼쳐졌다.
신기하게도 반도체 기업인 노이만 반도체에서 만든 뉴로모픽칩보다 전파교란기 T-52가 더 섬세하고 복잡한 구조였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
3시간 후.
D-93 구역 사벨 빌딩, 251층 브라우스 건설 사무실.
"정말 드레이크가 나타났다고요?"
틸 홀든은 내가 보내준 영상을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검지손가락을 들자, 뒤에 서 있던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 게릭슨이 전파교란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게릭슨과 그 뒤에 선 아머드 스켈레톤들 모두 외형만 보면 전신장갑을 입은 모습이라 언데드란 걸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었다.
"이건 누가 봐도 주문제작한 전파교란기인데, 오토바이에 가죽잠바나 입고다니는 놈들이 이런 물건을 어떻게 구했을까?"
틸 홀든은 이해가 안 가는 지 머리를 까딱 거리곤 대답했다.
"음... 드라고니안이 나타났다고해서 용병들이 짜고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틸 홀든은 그제야 나보다 먼저 도망친 용병들의 증언에 대해 언급했다.
볼카와 톨맨, 아인즈는 분명 브라우스 건설의 의뢰에 대해 항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틸 홀든의 태도를 보니, 회사차원에서 그들의 항의를 깔아뭉개려고 했던 게 분명했다.
"애초에 이 의뢰는 폭주족 소탕을 목표로 내세웠어. 그런데 드라고니안도 모자라 드레이크까지 등장했지. 용맹한 용병 게릭슨은 그 전투과정에서 전사하기까지 했다고. 이 일을 어떻게 보상할 계획인가?"
"자, 잠시만 제게 생각할 시간을 주시죠."
틸 홀든은 땀을 뻘뻘 흘리며 내가 보내준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그건 체인소드 감옥에 갇힌 드라고니안이 드레이크로 변신하는 모습까지 담은 영상이었다.
"영상을 다시 확인한다는 건,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테이블을 향해 턱짓하자, 아머드 스켈레톤 1호기가 테이블 위에 드레이크의 비늘을 올려뒀다.
"놈이 지하터널을 붕괴시키고 도망가는 바람에 내가 이번 전투에서 얻은 거라곤 이 비늘 한 조각뿐이다. 하지만 예상 수준을 넘어선 전투였던 만큼 셈을 다시해야겠다."
"일단 진정해주세요. 이 일은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없는 사안 같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틸 홀든은 드레이크 비늘을 들고 어디론가 가려고 했다.
하지만 게릭슨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게 얼마짜린 줄 알고, 들고 가려고 들어?"
"아... 보고할 때 보여드리려고 한 겁니다. 불편하셨다면 내려놓고 가보겠습니다."
틸 홀든은 내 눈치를 보며 붉은 비늘을 내려놓았다.
'눈앞에서 보고도 게릭슨을 몰라보는군.'
<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로 재탄생한 언데드입니다. >
< 영혼을 깊게 연구한 고위급 네크로맨서가 아니라면 그의 영혼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
잠시 후, 틸 홀든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중년남자와 함께 돌아왔다.
"홀든 씨, 당신 경력이 몇년인데 용병 나부랭이 하나 단도리 못 쳐서 나까지 나서게 만들어?"
"부장님. 심려끼쳐드린 건 죄송하지만..."
"아니, 사무실에 무슨 전투용 안드로이드를 이렇게 많이 끌고 들어왔어?"
중년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을 부라리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부장님. 영상 재생하겠습니다."
틸 홀든은 자신의 의자를 부장에게 양보한 채, 서서 영상을 재생시켰다.
그리고.
영상이 재생될수록 붉게 달아올랐던 부장의 혈색이 가시기 시작했다.
마침내 드레이크가 등장하는 장면까지 본 부장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카락과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선생님, 제가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살짝 허리까지 숙인 그의 시선이 아머드 스켈레톤들과 나를 바쁘게 오갔다.
"그럼 오해는 풀린 겁니까?"
"오해라뇨? 저희 부하직원이 일처리가 미숙해서 정보전달에 착오가 있었습니다. 론 페이지라고 합니다."
그는 오히려 틸 홀든에게 잘못을 전가하며 내게 명함을 건네왔다.
"홀든 씨! 드레이크를 상대하신 분인데, 이런 누추한 곳에 모시면 어떻게하나!"
마치 내게 보라는듯 틸 홀든에게 호통을 친, 론 페이지는 테이블 위에 놓인 드레이크 비늘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직 경질화되지 않은 드레이크 비늘을 제 눈으로 보는 날이 오다니... 혹시 이 비늘을 어디에 파실지 이미 정해버리신 건 아니겠죠?"
"전리품에 대한 가격협상을 하기 전에, 이번 사태에 대한 충분한 보상에 대해 얘기하는 게 옳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