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35화 (35/152)

35화. 쇼핑

연구보조시스템은 작업대에 세 종류의 배터리 홀로그램을 띄웠다.

- 베스터 에너지 사의 VA-035E 배터리

- 비카리 파워 사의 VIC-027E 배터리

- 클라크 케미컬 사의 CC-071M 배터리

베스터 그룹은 하이엔드급 체인소드를 만들어서 유명했고 비카리 그룹은 값싸고 품질 좋은 레이저커터로 유명했다.

내가 테리의 체인소드에 장착된 베스터 에너지 사의 배터리와 아머드 스켈레톤에 장착한 레이저커터에 장착한 비카리 파워 사의 배터리에 익숙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땐 배터리 모델명 끝에 'E'자만 붙어있었다.

"클라크 케미컬의 배터리엔 왜 M자가 붙어있지?"

- 마력호환이 가능한 제품이란 의미입니다.

- 클라크 그룹은 본래 대기업 집단으로 메모리 사업에 주력했었습니다.

- 하지만 메모리 사업분야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배터리 사업에 총력을 기울여 성공했습니다.

- 주인님, 혹시 각각의 배터리 모델의 숫자의 의미를 아십니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숫자였나? 그냥 단순한 이름 아니었어?"

- 팔미라 시에서 출시되는 모든 배터리는 빌헬름 모터스의 5톤 화물차량을 얼마나 운행할 수 있는지에 따라 명명됩니다.

- 베스터 에너지 사의 VA-035E 배터리는 추가 충전 없이, 빌헬름 모터스의 5톤 화물차량을 35시간 운행할 수 있는 용량이란 의미입니다.

"그럼 클라크 케미컬 사의 CC-071M은 71시간 주행이 가능한 모델이란 뜻인가?"

- 그렇습니다.

- CC-071M 모델은 전기와 마력 모두 호환가능한 제품으로 세 배터리 중 에너지 저장용량이 가장 큽니다.

"하지만 크기도 크고 값도 비싸더군."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체인소드와 레이저커터의 배터리용으로 만든 두 회사의 배터리들은 크기가 작아서 손잡이 안에도 들어갈만 했다.

하지만 클라크 케미컬 사의 마력호환 배터리는 어른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로 무기에 삽입할 수 없었고 가격 또한 다른 배터리들보다 비쌌다.

"모든 아머드 스켈레톤들에게 초소형마력로를 달아줬다간 다른 부분은 손도 못 댈 테니까 어쩔 수 없지."

내가 손짓하자, 아머드 스켈레톤 라이더 버전의 거치대가 가로로 눕쳐졌다.

그러자 라이더 버전의 복부가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복부를 열고 마력이 호환되는 배터리부터 장착한다. 인공근육이 쓰는 에너지를 마력호환 배터리가 감당하면 데스엔진의 에너지 소모가 좀 줄어들겠지."

연구보조시스템에 명령한 순간, 천장의 레일을 타고 기계팔이 하나의 박스를 가져왔다.

- 클라크 케미컬

- CC-071M 배터리

다른 기계팔이 마력호환 배터리를 받아들자, 또 다른 기계팔 두 기가 박스를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마력호환 배터리 안에서 상당한 마력이 느껴졌다.

그 마력에 홀려 나도 모르게 배터리를 건드린 순간이었다.

내 눈앞에 청금색 금속과 그 금속을 뒤덮은 마법식이 펼쳐져버렸다.

< 사용자님의 명령에 따라 CC-071M 배터리의 설계도를 저장합니다. >

< 새로운 [마력원]을 발견하셨습니다. >

< 새로운 마법식들을 발견하셨습니다. >

< 새로운 보안마법 체계입니다! >

< 경고! 보안마법 체계가 사용자님의 마력패턴을 감지했습니다! >

< 경고! 마력촉수에 접촉할 경우 사용자님의 마력패턴이 저장될 위험이 있습니다! >

독특한 구성으로 조합된 원형의 보안마법체계가 사방팔방으로 실처럼 가는 마력촉수를 뿜어내서 내 마력을 잡아내려고 했다.

'마법식을 보지못하는 마력사용자라면 저항할 생각을 하기도 전에 발각됐을 거야.'

난 생각과 동시에 마력차폐 마법식과 반마력 방어막을 펼쳐 내 집에서 어떤 마력신호도 밖으로 내보낼 수 없게 가둬버렸다.

그리고 허공에서 날 찾아헤매는 마력촉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 레어 등급 스킬 [기초마법연구]를 사용하셨습니다. >

< 마법진의 마력패턴을 분석합니다. >

< 마법에 관한 초월적인 재능으로 보안마법 체계를 강제로 해체합니다. >

< [마력패턴 추적마법식]을 발견하셨습니다. >

< [보안경고송신 마법술식]을 발견하셨습니다. >

< [자폭마법술식]을 발견하셨습니다. >

< 경이로운 업적입니다! >

< 새로운 보안체계를 저장하시겠습니까? >

자신의 기업비밀을 탐구하려는 자의 마력패턴을 특정하고, 본사로 그 마력패턴을 전달한 후 기업비밀을 지키기 위해 제품을 자폭시킨다?

'흥미롭군.'

하지만 그 보안체계보다 더 흥미로운 건 보안체계 안에 숨어있었다.

바로 배터리의 마력호환 기능을 담당하는 마법식이었다.

< [마력전기 치환술식]을 발견하셨습니다. >

< 이름을 알 수 없는 금속이 마력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

< 금속을 뒤덮고 있는 마법식이 저장된 마력을 전기로 바꾸거나 전기로 마력을 충전하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

< 치환율은 95% 수준입니다. >

'시스템이 모르는 금속이군.'

난 로이즈 시스템 사의 연구보조시스템에게 물었다.

"연구보조 시스템, 이 배터리 안에 들어있는 금속은 뭐지?"

- 마력금속 오리하르콘에 관한 정보는 오귀스트 에너지 사의 지적재산입니다.

- 관련정보에 접근하시려면 오귀스트 에너지 사에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로이즈 시스템 사의 연구보조시스템은 칼 같이 선을 그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었던 건 오리하르콘의 이름이었다.

'마력을 전기로 바꾸고 다시 전기로 마력을 충전할 수 있으면 죽음의 기운으로 충전하지 못할 게 뭐야?'

그 순간, 시스템이 눈앞에 [마력전기 치환술식]을 띄워줬다.

난 그 자리에서 마법술식을 고쳐가며 어떻게하면 마력을 죽음의 기운으로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봤다.

이미 깔끔하게 정리된 답안지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순간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 경이로운 업적! >

< [다원에너지 치환술식]을 개발하셨습니다. >

< 현재 [다원에너지 치환술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는 전기, 마력, 죽음의 기운 등입니다. >

< 치환 효율이 100%에 도달했습니다. >

< [다원에너지 치환술식]의 등급을 판정합니다. >

< 축하합니다! [다원에너지 치환술식]이 유니크 등급으로 판정되었습니다. >

시스템은 이번에도 별 거 아닌 일로 호들갑을 떨어댔다.

'이거면 굳이 동력원을 데스엔진과 각기 다른 배터리 세 개로 분리할 필요가 없겠어.'

클라크 케미컬 사의 마력호환 배터리는 특정 에너지를 마법진을 사용해서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게 던져준 셈이었다.

그건 나에겐 상당히 충격적인 아이디어였다.

'이런 방식이면 좀비장갑의 근육이 마르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겠군.'

단지 라이더 버전의 데스엔진과 다른 배터리들을 연결시키는 것을 넘어서 또 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릴만큼.

***

4일 후.

D-13구역 중심상업단지.

콜드 앤 블러드 백화점 앞.

"여기에요."

트럭에서 내린 테리는 수 많은 용병들이 드나드는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는 단꿈에 부푼 소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한 에어로차량이 우리 트럭 위에 멈춰섰다.

- 4등 시민 아서님.

- 이곳은 주차가 금지된 도로입니다.

- 정해진 주차장에 주차해주십시오.

에어로차량은 나와 내 트럭을 스캔하더니 홀로그램 메세지를 내 눈앞에 띄우며 안내했다.

"게릭슨, 주차하고 매장으로 들어와."

- 예! 곧바로 뒤따르겠습니다.

난 귀찮은 주차를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 게릭슨에게 떠넘겨버렸다.

"어서 들어가요."

테리는 어느새 내 손을 붙잡고 콜드 앤 블러드 백화점 건물 입구로 끌고가고 있었다.

자신이 입을 배틀슈트를 사러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테리의 얼굴에선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우리가 입구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백화점이라더니 무슨 도매시장 같군'

한 매장 앞에서 얇은 가방을 맨 남자가 높은 단 위에서 지나가는 용병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장벽 밖으로 의뢰를 나가실 때, 정찰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신 적 없으십니까? 이 가방 하나면 수십 명이 넓게 펼쳐져서 사방을 둘러보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휴대용 레이더요?"

"이 사람이, 장벽 밖에서 정찰하는 건 좀비집단의 접근을 감지하려는 건데 정찰을 안해도 된다고?"

"이지스 디팬스면 중견기업이잖아?"

"여기 입점한 업체 중에 중견기업 아닌 곳도 있나?"

용병들은 남자의 말에 의심과 의혹을 제기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샤라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남자가 매고 있던 가방이 새끼손톱만 한 드론으로 변해 천장을 가득 매워버렸다.

"이 드론은 각각 반경 30킬로미터까지 정찰할 수 있습니다. 30킬로미터를 정찰할 수 있는 드론이 있는데, 용병님들께서 직접 정찰임무를 수행할 필요는 없겠죠?"

"오오!"

"진짜 30킬로미터를 정찰할 수 있어?"

"이건 좀 입맛이 당기는데?"

1층 천장을 가득 매운 드론들과 반경 30킬로미터라는 믿기 힘든 정찰범위.

그 두 가지는 다른 매장을 방문하려던 용병들을 멈춰세우기 충분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저희 이지스 디펜스는 각각의 드론에 스프린터 한 마리를 날려버릴 수 있을만큼 출중한 자폭능력까지 탑재했습니다."

"아니, 드론이 수백 기가 넘는 것 같은데 한 기에 스프린터 한 마리를 처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그래서 그 가방이 얼마라는 거요?"

"한번 충전하면 몇 시간 정도 운용할 수 있소?"

사방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이 유용한 가방이 단돈 3천만 크레딧! 3천만 크레딧이면 정찰임무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예이! 3천만 크레딧이 누구 애 이름이야?"

"눈으로 그냥 정찰 하면 되는 걸 쉽게 하자고 3천만 크레딧을 태우라고?"

가격을 듣자마자 모여들었던 용병들 중 반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나머지 반은 아직도 흥미를 잃지 않은 표정이었다.

"운용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완전 충전한 드론은 30분까지 운용이 가능합니다. 이 시간이 짧다고 느끼실 수 있지만, 에어로트럭에서 충전하면 1시간이면 완전 충전이 가능한 모델로..."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1시간마다 30분밖에 운용하지 못하는 정찰드론을 어디에 쓰라고 만든 거야?"

"의뢰나가면 하루가 넘어가는 게 보통인데, 상시정찰도 아니고 간헐적으로만 쓸 수 있는 드론이 무슨 의미야?"

"제품 수준도 안되는 걸 가지고 나왔군..."

판매원의 설명을 들은 용병들은 모두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하지만 내 눈엔 여전히 아름다운 드론이었다.

"가방 하나에 달려있는 드론이 3천 기쯤되는 것 같은데 1기 당 가격은 얼마나됩니까? 100기를 자폭시키면 100기만 300만 크레딧으로 교체가 가능합니까?"

"죄송합니다. 고객님. 3천 기의 드론이 하나로 연결된 모델이라 드론을 보충하려면 본사로 보내야합니다. 3구역에 위치한 본사까지 가서 시스템을 조정하고 시험운행까지 해야해서 100기를 보충해도 5백만 크레딧을 지불하셔야합니다."

"그럼 천 기를 교체해도 5백만 크레딧만 내도 되는 겁니까? 그럼 오히려 이득인데?"

"아닙니다. 500기부터 500만 크레딧을 추가로 부담하셔야합니다."

"아서 씨, 딱 봐도 시제품 수준인데... 괜히 바가지 쓰지말고 가요. 배틀슈트를 보러온 거 잖아요."

난 테리의 손을 잡고 2층에 위치한 배틀슈트 전용관으로 올라갔다.

***

우리가 2층에 도착하자 홀로그램 안내원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 배틀슈트 전용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원하시는 모델이 있으십니까?

시장통처럼 각각의 매장 앞에서 물건을 홍보하던 1층과는 품격부터 다른 느낌이었다.

"5억 크레딧으로 살 수 있는 배틀슈트로 안내해줘."

테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다른 배틀슈트를 보고 충동구매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 보급형 배틀슈트를 찾으시는군요?

-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홀로그램 안내원이 처음 안내한 매장에는 내겐 반가운 이름이 붙어있었다.

- 에이드릭 테크놀로지

테리가 내게 준 배틀슈트를 만든 바로 그 회사였다.

- 에이드릭 테크놀로지 사의 역작 MK-15는 마그니움 함량이 무려 15%에 달하는 배틀슈트입니다.

- 장벽 밖을 돌아다녀야하는 용병분들이 즐겨 찾으시는 모델이기도 합니다.

검은 바탕에 금색 선으로 장식된 배틀슈트.

우측 가슴부분에 '에이드릭 테크놀로지'라는 로고까지!

내가 흡수한 바로 그 모델이었다.

"멀쩡한 모습은 처음 보는군."

"저도 처음이에요."

테리가 대답하는데 MK-15 배틀슈트 옆에 기록된 팻말에 눈에 들어왔다.

- 마그니움함유량 15%

- 초소형마력로 탑재

- 권장출력 12 SP

- 최대출력 80 SP

"SP가 뭐지?"

- 스프린터 파워의 줄임말입니다.

- 스프린터 파워는 2레벨 좀비 스프린터의 힘을 측정하는 단위입니다.

- 이는 500킬로그램의 무게를 1초에 10미터 이동시킬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그렇군. 어때 마음에 들어?"

"MK-15면 감지덕지죠."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 더 둘러볼까?"

"좋아요."

난 테리와 함께 몇 곳의 매장을 둘러봤다.

보급형 배틀슈트를 만든 건 대부분 중소기업들이었다.

문제는 각각 장단점이 너무 뚜렷하다는 점이었다.

"그레이스톤 사의 배틀슈트는 출력이 90 SP가 넘는데 마그니움 함유량은 10%를 겨우 넘기고 갠더 디펜스의 제품은 마그니움 함유량도 높고 출력도 좋은데 안정성이 떨어지는군."

우리가 갠더 디펜스 사의 매장을 나오는 순간이었다.

아직 한번도 들리지 않은 매장 앞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 미쳤다!"

"볼드윈에서 새로운 솔져급 배틀슈트를?"

"지난 10년 동안 출시된 솔져급 배틀슈트들 중엔 비빌 물건이 없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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