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44화 (44/152)

44화. 살 길

"이쪽은 준비됐습니다."

맥길은 아이언스톰의 디바이스를 몇번 터치하더니 그렇게 말했다.

- 정보의 신뢰수준은?

조종석 스피커로 낮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병이 자기 고객의 정보를 팔아넘긴다는 건, 인생을 걸었다는 뜻이니까 한번쯤 속아줄만 합니다."

- 그렇군.

"언제쯤 도착하십니까?"

- 예정된 시간 안에는 도착할 거다.

"그럼 저희 맥길 용병단을 밀러 그룹 산하 계열사로 받아주시는 겁니까?"

- 그건 자네가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는지 확인한 후 논의하지. 이의있나?

"아, 아닙니다."

맥길은 낮은 목소리의 남자에게 비굴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대답했다.

아이언스톰의 조종석에 서서 팀 리드를 내려다보던 당당함을 찾을 수 없었다.

- 제대로 매복하고 확실하게 처리해.

"실시간으로 보고드리겠습니다."

틱!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방이 통신을 종료했다는 메세지가 올라왔다.

맥길은 복잡한 표정으로 카니에스 마을로 이어지는 숲길을 노려봤다.

***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라이더 1호기가 던진 수제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후면카메라 화면에선 미친 듯이 몰려오는 좀비떼가 비춰졌다.

화면이 좀비놈들을 향해 헤비머신건을 단발 사격하며 후퇴하는 아머드 스켈레톤 라이더버전 20기의 모습이 비춰졌을 때였다.

- 7호기, 탄약을 모두 소모했습니다.

- 15호기, 탄약을 모두 소모했습니다.

.

.

.

아머드 스켈레톤 라이더 버전들이 보고가 이어졌다.

'5만 마리의 좀비집단을 사냥하느라 너무 많은 탄약을 소모했군.'

이럴 줄 알았으면 탄약보급차량에 사일런스스톰의 기관포용 탄환 대신 아머드 스켈레톤들이 쓸 헤비머신건용 탄약을 가득 채워올 걸 계산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일런스스톰을 드레이크 헤츨링 하트를 만들기 위해 흡수해버리면서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고 만 것이다.

'마을과는 얼마나 떨어졌지?'

카니에스 마을과의 거리는 117킬로미터입니다.

'그 정도면 안전 거리까지 유인한 것 같군.'

117킬로미터나 떨어져있다는 보고를 들으니, 미끼 역할은 충분히 했다는 판단이 섰다.

카니에스 마을의 안전은 어느 정도 확보한 것 같았다.

"모든 차량과 라이더들은 전속력으로 팔미라 시 방향으로 후퇴한다."

***

우리가 팔미라 시까지 3시간 가량 남은 거리에 위치한 이름없는 숲 앞에 도착한 건 전속력으로 후퇴한 지 50분쯤 지난 후였다.

- 척후조, 숲길 진입하겠습니다.

그때 탄약보급차량의 스피커로 라이더 11호와 12호의 통신이 전해졌다.

장벽 밖은 어디에 좀비들이 웅크리고 있을 지 모르기 때문에 본대보다 앞서서 달리는 척후조를 필수적으로 운용해야 했다.

이 숲을 지나온 건 몇시간 지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아무런 이상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어진 통신은 달랐다.

- 산 자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 최소 30명 이상입니다.

- 척후조의 레이더로는 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매복이다! 본대는 후퇴하고 척후조는 숲을 통과해 적의 동향을 파악하라!"

난 척후조의 보고를 들은 즉시, 공용통신회선에 명령했다.

'브라우스 건설의 로버트 골드 상무가 히트맨을 보낸 건가? 아니면 스톨즈를 치기 전에 나부터 정리하려는 제니퍼의 술수일까?'

당장은 어느 쪽에서 공격이 들어온 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내가 명령하자마자 탄약보급차량을 호위하던 라이더 버전들이 숲을 향해 길게 늘어섰다.

탄약이 부족한 헤비머신건은 워리어들을 실은 수송차량에 넣어둔 후라 라이더들이 꺼내들 수 있는 가장 긴 무기는 체인소드뿐이었다.

그때 숲 안에서 과라라락! 하는 30mm 기관포 포성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좌측에 늘어선 라이더의 몸에서 꽝! 하는 굉음과 함께 불꽃이 일었다.

라이더 버전의 중장갑 흉갑을 꿰뚫은 거대한 탄환은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히며 흙먼지를 솟구치게 만들었다.

그 순간 꽈광! 쾅쾅쾅! 하고 연이어 충격음이 터져나왔다.

길게 늘어선 라이더 20기를 향해 일직선으로 그어진 기관포 세례였다.

- 라이더 1호기, 복부를 관통당했습니다.

- 라이더 2호기, 왼팔을 잃었습니다.

- 라이더 3호기, 앞바퀴를 잃었습니다.

.

.

.

30mm 기관포에 피격당한 라이더 버전들의 파손보고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기동 불가능한 라이더는 보고하라!'

- 3호기, 9호기, 20호기는 바퀴를 잃어 기동이 어렵습니다.

'라이더들에게도 배틀슈트를 입혀줬으면 이렇게 힘 없이 당하진 않았을텐데...!'

난 아쉬움을 뒤로하고 명령했다.

'괜히 반물질 코어의 마력을 사용해서 복구할 생각하지말고, 망가진 안드로이드인 척해라. 적이 방심한 순간을 노린다.'

내가 명령한 순간 네 발의 탄환이 내가 탄 탄약수송차량의 운전석 창문을 향해 날아왔다.

난 곧바로 조수석을 박차고 일어나 앞유리창을 깨버렸다.

그땐 이미 탄환이 팔만 뻗으면 닿을 자리까지 다가온 후였다.

난 운전석에 앉은 테리의 앞을 막아서며 탄환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내 손아귀에서 그그극! 하는 마찰음이 나더니 붉은 비늘이 오른팔을 뒤덮는 모습이 보였다.

탄환이 내 주먹에 닿은 순간 쩡! 하는 굉음과 함께 탄환이 세 조각으로 갈라져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유니크 등급 스킬 [멜트스케일 어택]을 사용하셨습니다.

충돌과정에서 강력한 열 에너지가 발생했습니다.

[드레이크 헤츨링 하트]가 열 에너지를 흡수합니다.

[반물질 코어]가 [드레이크 헤츨링 하트]가 스킬 사용 시에 소모한 마력을 보충합니다.

난 멜트스케일 어택을 사용하자마자 소모했던 힘이 순식간에 보충되는 걸 느꼈다.

'외부의 열을 흡수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만, 반물질 코어와 에너지 전달과정이 매끄러워. 기대 이상이군.'

내가 속으로 드레이크 헤츨링 하트와 반물질 마력로의 호환성을 평가하는 순간 탄약보급차량 짐칸에서 꽈과광! 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아이 주먹만 한 탄환이 조수석 옆을 뚫고 들어간 구멍이 보였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거센 불길이 새어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난 곧바로 운전석에서 테리를 들어안으며 차창틀을 박찼다.

그와 동시에 비행마법식을 펼쳤다.

그러자 빠른 속도로 테리를 안은 내 몸이 허공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우린 눈 깜짝할 사이에 상공 30미터까지 치솟아올라버렸다.

하지만 30mm 탄 3만 발을 실은 탄약보급차량의 폭발은 고작 수십 미터 벗어난다고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난 아래를 내려다보며 나와 테리를 덮치려는 폭발화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반경 2미터 크기의 붉은색 원형마법식들이 내 앞에 겹겹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보온마법식을 거꾸로 펼쳐 밖에서 오는 열을 모으고 충격완화마법식으로 보온마법식이 붕괴되는 걸 막은 다음, 다원에너지 치환술식을 펼친다면...'

나와 테리를 동시에 덮치려던 폭발화염은 화염을 향해 오목렌즈처럼 움푹 파인 반경 2미터짜리 보온 마법식에 막혔다.

폭발화염과 함께 올라와 날 박살냈어야할 충격파가 보온마법식을 때린 순간이었다.

보온마법식 뒤에 겹쳐진 충격완화마법식이 충격파를 흡수해버리자 충격파는 제 힘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다원에너지 치환술식이 보온마법식에 갇힌 폭발화염을 마력으로 바꿔버렸다.

내가 마법식에 손을 대자, 풍부한 마력이 드레이크 헤츨링 하트뿐만 아니라 반물질 코어까지도 가득 채워버렸다.

'엄청난 효율이야. 이 정도라면... 마력이 부족할 일은 없겠군.'

그때 나를 피해 흩어진 폭발화염 아래로 사방을 나뒹굴던 아군 용병들이 분분히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 야, 약탈자들이다!

- 아니야. 저것 봐! 아이언스톰이라고!

- 약탈자들은 아이언스톰을 살 자격조건도 갖추지 못해!

이름 모를 숲에서 느긋하게 걸어나오는 4미터 크기의 탑승형 로봇을 본 용병들은 잠시 땅에 발이 붙은 사람처럼 굳어버렸다.

- 아서 님, 저들은 누굽니까? 왜 우릴 공격하는 겁니까?

-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당장 도망쳐야 해!

용병 릭스의 질문에 그의 팔을 잡아 끄는 용병 앤드류의 모습이 보였다.

"나중에 설명하지."

내가 대답한 순간, 아이언스톰의 30mm 기관포가 허공에 뜬 나를 향해 겨눠졌다.

아이언스톰의 기관포 12문의 사선에 노출되셨습니다.

시스템은 곧바로 기관포 12문이 노리는 방향을 붉은색 선으로 내 시야에 그려줬다.

난 그 모습을 확인하고 테리에게 물었다.

"배틀슈트를 입고 펼치는 진짜 기갑전술기동이라면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도 살 수 있겠지?"

- 뭐라고요?

테리의 얼굴을 가린 그녀의 배틀슈트 헬맷 때문에 테리의 표정을 확인할 순 없었지만, 어떤 표정일지 짐작이 갔다.

난 대답도 듣지 않고 안고 있던 테리를 놔버렸다.

아이언스톰에 맞아죽는 것보단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지는 게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를 놓기 무섭게 아이 주먹만 한 탄환들이 줄지어 나를 향해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비행마법식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시험해볼 기회로군.'

난 떨어져내리는 테리와 반대로 솟구쳐올랐다.

시속 400킬로미터를 돌파하셨습니다!

[비행마법술식]의 최대 속도에 도달했습니다.

현재 속도로 운행할 시, [드레이크 헤츨링 하트]의 마력 완전고갈까지 17시간 55분 남았습니다.

기관포 포구가 겨눈 위치를 보다가 잠시 시스템 메세지로 신경이 쏠린 순간이었다.

땅! 하는 쇳소리와 함께 30mm 탄환이 내 발목을 때렸다.

'이런 젠장!'

최대 속도로 비행할 땐, 내 발끝도 못 쫓아오던 아이언스톰의 탄환이 내가 잠시 한눈 판 사이에 내 발목을 때린 것이었다.

엄청난 충격에 중심을 잃으려던 순간이었다.

[자세제어술식]을 발동시켰습니다.

외부 충격에 주의해주십시오.

사용자님은 현재 배틀슈트를 흡수한 상태로 적의 공격에 취약한 상황입니다.

시스템 메세지와 함께 자세제어술식이 내 가슴 앞에 펼쳐지며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왔다.

자세를 고쳐잡고 아이언스톰의 머리 위 방향으로 날아오르는데, 시스템이 화면을 띄워줬다.

화면엔 TTNA-207 합금강으로 이루어진 의체의 발목 복숭아뼈 표면이 찌그러져 있는 모습이 비춰졌다.

'배틀슈트도 없는데, 가슴이나 머리에 맞았다면... 아머드 스켈레톤에만 너무 투자하지말고 의체에도 투자했어야 했나?'

3레벨 좀비 머슬을 사냥하기 위해 고안된 30mm 기관포를 무시했다간, 허공에서 산산히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아이언스톰을 향해 다가갈수록 탄환이 더 빨리 날아온다는 점이었다.

물러나면 표적이 될 뿐이고, 다가가면 30mm 탄에 달려드는 꼴인 것이다.

내가 하늘에서 8자로 급선회를 반복하며 어떻게 공격해야할지 고민할 때였다.

- 이 개자식들, 정규 용병단이 약탈자들이나 하는 짓을 해!

- 이러고도 너희가 무사할 성 싶냐!

저 아래에서 수십 명의 용병들에게 포위된 용병 릭스와 일행들이 악다구니를 써대는 모습이 보였다.

용병 릭스 등과 등을 맞댄 채 싸우는 게릭슨의 모습도 보였다.

라이더 버전들은 여전히 내가 명령한대로 누워서 고장난 안드로이드인 척 연기하고 있었다.

난 통신회선이 감청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용병들 대신 게릭슨에게 정신파를 이용해 물었다.

'적들의 수준은 어떠냐?'

- 정규 용병단 수준입니다.

- 하나 같이 가슴에 페인트로 덧칠을 해서 용병단 마크는 알아볼 수 없습니다.

- 하지만 공격대형이나 아이언스톰을 보유했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오합지졸은 아닙니다.

'무장수준은?'

- 현재 파악한 적 62명은 전원 보급형 배틀슈트와 체인소드 그리고 레이저 커터만 착용한 상태입니다.

'아이언스톰을 가져온 주제에 총성이 두려워 화기를 안 가져왔다?'

그건 기회였다.

소음산탄총이나 대물저격총이 없다면 상대를 얼려버리는 특수액화질소탄 따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한놈만 안으로 끌여들여라. 한놈만 죽이면 끝낼 수 있는 싸움이다!'

- 주군의 명의 받듭니다.

난 게릭슨의 대답을 듣고 그야말로 장대비처럼 체인소드를 내려치는 정체불명의 용병들 뒤로 내려섰다.

적들이 가리고 있어서 아이언스톰이 제 멋대로 사격할 수 없는 각도였다.

'아치스, 살아있나?'

- 테리 양과 고치화 한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때, 길가에 전복된 수송차량 짐칸에서 아치스의 대답이 들려왔다.

'테리는 역시 생존본능이 뛰어나군. 곧바로 네게로 도망치다니.'

- 제가 주인님을 도울 방법은 없겠습니까?

'내가 신호하면 냉기탄환을 쏴서 적 용병들을 얼려버려라!'

- 미천한 망령에게 명을 내려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레이쓰 헤비머신건 아치스는 유틀란트 시 이후 첫 전투에 잔뜩 흥분한 것 같았다.

용병들과 게릭슨이 원형대형을 이룬 채 적들을 막고 있었다.

적들이 내려치는 체인소드와 불쑥불쑥 찔러오는 레이저커터를 막는 건 내가 보기에도 버거워보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 게릭슨이 외쳤다.

- 잡았습니다!

한 용병의 체인소드가 게릭슨의 초진동대검과 엮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체인소드의 합체기능을 이렇게 사용하다니...!'

연계기였던 체인소드 합체기능을 활용해 상대의 무기를 제압하는 변칙공격은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이었다.

- 주군!

내가 놀란 순간 게릭슨이 초진동대검을 뒤로 휘둘렀다.

그러자 체인소드를 든 배틀슈트 차림의 적이 체인소드에 딸려 들어와버렸다.

'비행!'

난 곧바로 게릭슨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비행마법식] 최대출력으로 가동합니다.

경고! 충격에 대비해주십시오.

시스템이 경고했을 때, 이미 난 빠른 속도로 정체불명의 용병들의 머리를 스쳐지나, 용병 릭스의 머리 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그때 게릭슨이 왼손을 하늘로 뻗었다.

난 게릭슨의 손을 붙잡고나서야 앞으로 쏠리는 관성을 이겨내고 게릭슨 옆으로 내려설 수 있었다.

내가 용병 릭스들이 이룬 원형대형 안으로 착지했을 땐, 게릭슨이 손등에서 뽑아낸 레이저커터로 적의 헬맷 접합부를 쉴 새 없이 내려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의 배틀슈트에선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만 튈 뿐 잘 잘리지가 않았다.

난 그저 가만히 다가가 놈의 배틀슈트 가슴에 손을 가져다댔다.

레어 등급 스킬 [해킹]을 사용하셨습니다.

갠더 디펜스 사의 배틀슈트 GM-17 모델의 제어권을 강탈하셨습니다.

"아, 아니! 갑자기 왜 헬맷이 제 멋대로...컥!"

갑작스러운 핼멧 해제에 놀란 적은 목을 내려치는 게릭슨의 레이저커터를 막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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