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미상의 비행물체
멜트스케일 펀치와 아이언스톰의 오른 주먹이 맞부딪히는 순간이었다.
꽝! 하는 굉음과 함께 충돌지점에서 붉은 빛이 번쩍였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충격파는 거센 흙먼지를 만들어 시야를 어지럽게 할 정도였다.
난 충돌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8미터나 미끄러져버렸다.
착용하신 배틀슈트를 점검합니다.
배틀슈트에 내장된 [충격완화 마법식]의 충격피해수준이 100%에 도달했습니다.
[충격완화 마법식]이 붕괴되었습니다.
배틀슈트에 내장된 [자세제어 마법식]의 충격한계를 넘어섰습니다.
[자세제어 마법식]이 붕괴되었습니다.
배틀슈트의 우측 팔장갑 손상율이 39%를 넘어섰습니다.
우측 팔에 해당하는 인공근육 손상율이 73%를 넘어섰습니다.
배틀슈트의 [초소형마력로]의 잔여마력이 15%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드레이크 헤츨링 하트]의 잔여마력은 97%수준입니다.
[반물질 코어]의 잔여마력은 79%수준입니다.
'마법식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배틀슈트가 완파됐을지도 모르겠군.'
배틀슈트의 오른팔 장갑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일어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 균열 안으로 보이는 인공근육도 처참할 정도로 찢겨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엉망이 된 배틀슈트와 달리 내가 체감하는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드레이크 헤츨링 하트]와의 융합으로 사용자님의 신체 내구도가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시스템의 평가대로였다.
난 한번쯤 더 부딪혀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드러난 아이언스톰의 상태는 내 배틀슈트보다 더 처참해보였다.
적 아이언스톰의 손목관절이 가동범위를 넘어섰습니다.
[멜트스케일 펀치]에 적중당한 적의 주먹이 75% 이상 녹아내렸습니다.
적 아이언스톰의 팔꿈치와 어깨 관절이 가동 불가상태에 빠졌습니다.
그 순간 아이언스톰의 팔꿈치 관절과 어깨 관절에서 치지직! 하고 스파크가 튀어올랐다.
내가 알기로 아이언스톰은 티타늄 기반의 합금강으로 제작된다.
하지만 지금 내 앞의 아이언스톰은 티타늄 기반 합금 특유의 강인하고 묵직한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팔꿈치 바로 아래까지 붉게 달아오른 채, 피처럼 빨간 쇳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팔에 30mm 기관포를 세 문이나 단 채로 충돌공격을 감행하다니... 멍청한 건가?'
애초에 아이언스톰은 멀리서 괴물같은 화력을 쏟아부어 강대한 좀비집단을 해체하도록 설계된 기체였다.
근접전에서 직접 주먹을 쓰기보단 호위 용병을 운용했어야 했다.
하지만 무식한 조종사는 우리를 우습게 봤는지 호위 용병을 한 명도 운용하지 않았다.
거기다 나와 주먹까지 부딪히는 실책을 범한 것이다.
치직! 하는 소음이 들리더니 시스템이 메세지를 띄워 올렸다.
사용자님, 전투과정에서 배틀슈트에 내장된 통신단말이 파괴되었습니다.
적 용병단과 연결되어있던 통신회선이 끊겼습니다.
배틀슈트는 대좀비집단 병기와 충돌하도록 설계되어있지 않습니다.
3레벨 좀비 등의 공격으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는 정도의 방호력입니다.
전시에 배틀슈트가 고장난 용병의 생환율은 그렇지 않은 용병의 5분의 1 수준입니다.
시스템은 내 전투방식에 우려를 표해왔다.
'확실히 위험한 전투방법이긴 했어.'
하지만 앞으로 오늘처럼 주력 언데드들이 가동불가 상태에 빠지는 일이 없을까?
나와 언데드들은 점차 강해질 것이다.
언데드들이 증식장갑을 성장시키기 위해 포식하는 한 언제든 다시 고치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나 혼자 남겨지는 상황도 반복될 것이다.
'최후의 순간엔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이 필요해.'
싸움 도중에 급조한 배틀슈트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 못한 것 같았다.
만약 30mm 기관포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배틀슈트를 착용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처음부터 기관포의 사선을 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고려해볼만 하겠어.'
내가 새로 개발할 배틀슈트 모델에 대해 아이디어를 정리할 때였다.
나와 부딪힌 충격을 이기지 못한 아이언스톰이 휘청이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언스톰은 끝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어버렸다.
난 쿵! 하는 소음이 들리자마자 땅을 박찼다.
아이언스톰이 주저앉은 상태라 한번의 도약만으로 놈의 조종석 유리창을 걷어찰 수 있었다.
그러자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방탄유리가 금이 가버렸다.
난 방탄유리의 금간 부분을 손으로 찢어냈다.
"네, 네놈! 도대체 정체가 뭐냐? 어떻게 일개 안드로이드 제작자가 주먹으로 아이언스톰을 망가트릴 수 있지?"
배틀슈트 헬맷을 투명하게 변환시킨 적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분명 기관포를 난사하기 전에 봤던 화상자국이 가득한 바로 그 얼굴이었다.
그때, 티리릭! 하는 작은 소음이 들렸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화상자국 가득한 남자가 나 몰래 조종석 계기판을 두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비파괴안을 통해 보니 통신용인것 같았다.
'쥐새끼 같은 놈이군. 라이더들은 전파교란기를 작동시켜라.'
난 놈이 누구와 통신을 시도했는지 확인하기 전에 주먹부터 휘둘렀다.
붉은 비늘로 뒤덮힌 주먹이 놈의 헬맷을 때리자 꽝! 하는 굉음이 터져나왔다.
멜트스케일 펀치 한방에 놈의 목이 기괴하게 꺽여버렸다.
그건 사람이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각도였다.
'누구에게 통신을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배틀슈트부터 흡수해야겠어.'
그라임스 웨폰 사의 솔져급 배틀슈트 GW-27S 모델의 설계도를 저장했습니다.
레어 등급 스킬 [해킹]을 사용하셨습니다.
GW-27S 모델의 제어권을 강탈하셨습니다.
해당 모델의 모든 데이터 베이스를 다운받아도 되겠습니까?
시스템은 내가 새로운 배틀슈트에 손을 대자마자 시스템 메세지를 쏟아냈다.
'다운받아. 데이터 저장장치는 제일 나중에 건드리도록하지.'
난 그라임스 웨폰 사의 솔져급 배틀슈트에서 마그니움을 흡수하며 명령했다.
그때였다.
"당장 단장을 돌려주지 않으면 이놈들을 모두 죽이겠다!"
성난 목소리를 듣고 돌아보았다.
게릭슨과 용병 릭스 등이 40여 명의 용병들에게 제압당한 채로 땅바닥에 처박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 주먹에 맞았던 용병들은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디딘 흙이 붉은 핏물로 적셔진 모습을 보니 아군들의 상태가 어떨지 짐작이 갔다.
전복된 수송차량에 숨어있던 테리도 그 목소리를 듣고 뛰어나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갑전술기동을 익힌 테리라도 혼자 40명이 넘는 용병들과 싸워선 승산이 없었다.
적 용병들은 아군을 붙잡으면 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게릭슨은 이미 언데드고, 릭스를 포함한 용병들이 죽으면 슬프겠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지.'
배틀슈트를 입은 용병이 죽으면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로 일으키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내가 아이언스톰을 제압한 순간, 이 전투는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난 달려나오는 테리 뒤에 몸을 숨긴 부하에게 명령했다.
'아치스, 네 차례다.'
그 순간 테리 뒤에 숨어있던 레이쓰 헤비머신건 아치스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총열이 빠르게 회전하며 푸른 불을 뿜기 시작했다.
피피피핑! 하는 요란한 공기파열음만 남긴 탄환에 맞은 적들은 배틀슈트째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냉기탄환이었다.
"으악!"
"특수액화질소탄이다!"
"내 다, 다리가 얼어붙었어! 이거 어떻게 좀 해보라고!"
라이더 버전들의 전파교란기 운용으로 통신자체가 불가능해진 적들은 배틀슈트의 스피커를 통해 육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냉기탄환을 액화질소로 오해하는군'
냉기탄환과 특수액화질소탄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난 그들을 바라보는 대신 새로운 배틀슈트에서 마그니움 흡수를 가속화하며 라이더들에게 명령했다.
'아치스를 도와 적들을 제압하라.'
- 주군의 명을 받듭니다!
30mm 기관포에 맞고 망가진 라이더 버전들은 내가 시간을 벌어준 동안 반물질 코어의 마력을 사용해 이미 기동력을 회복한 상태였다.
그 덕분에 내 명령을 듣자마자 하나씩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곤 곧바로 아치스의 공격을 받아 혼란에 빠진 용병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데이터베이스 다운로드를 완료했습니다.
마그니움 함유량에 따른 명명법을 참고합니다.
새로운 배틀슈트 A-61 모델의 설계도를 저장했습니다.
A-61 모델은 스프린터파워(SP) 305 수준의 출력과 마그니움 61% 합금으로 제작된 배틀슈트입니다.
지금까지 만드신 배틀슈트 중 가장 수준 높은 모델입니다.
내가 조종사의 시신을 죽음의 기운으로 만들어 흡수를 마친 순간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여러 배틀슈트에서 모은 마그니움이나 진은 같은 귀한 소재를 아낌없이 쏟아붓자 집에서 만든 A-032S 모델보다 성능이 뛰어난 물건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때 뒤에서 쩌저정! 하고 얼음 깨져나가는 파열음이 연이어들려왔다.
아이언스톰의 조종석에 앉으며 보니, 전세는 이미 역전되어 있었다.
아치스는 체인소드가 닿지 않는 높이에서 빠르게 비행하며 적들에게 냉기탄환을 쏟아부었다.
그러자 적들은 변변한 반격도 해보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20기의 라이더들이 적들의 주변을 돌며 얼어붙은 적들에게 체인소드를 휘두르고 있었다.
냉기탄환에 얼어붙은 배틀슈트는 체인소드에 부딪히자 힘 없이 깨져나기 일쑤였다.
저온에 노출되자 내구력이 약해진 결과였다.
'아치스도 쓸만한 구석이 있군.'
그 와중에 적들 사이로 뛰어든 테리가 혼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아이언스톰으로 고개를 돌렸다.
레어 등급 스킬 [해킹]을 사용하셨습니다.
아이언스톰의 제어권을 강탈하셨습니다.
레전드 등급 스킬 [마장기 개조]를 사용하셨습니다.
아이언스톰의 수리를 시작합니다.
아이언스톰의 소형핵융합로가 생산한 전력을 마력으로 바꾸고 그 마력으로 마장기 개조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망가졌던 아이언스톰의 오른팔과 어깨 그리고 균열이 갔던 척추와 다리관절 등이 복구되기 시작했다.
사망한 맥길 용병단의 단장이 마지막으로 통신을 보낸 곳이 맥길 용병단 전용 통신회선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시스템은 다운받은 데이터베이스에서 적 용병단에 대한 정보를 찾은 모양이었다.
'죽을 위기에서 아군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통신을 시도했다고? 의뢰주인가?'
내가 의문을 갖는 순간, 게릭슨의 보고가 들려왔다.
- 주군, 적들을 전멸시켰습니다.
적들의 시체는 한 구도 남김없이 어딘가 한 군데는 얼어붙은 모습이었다.
어떤 적 용병의 시체는 팔다리가 통째로 깨져있었다.
그리고 다른 적 용병들의 시체는 깨진 배틀슈트 사이로 칼을 맞은 듯 죽은 후임에도 상당한 양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문제는 살아남은 아군 용병들이었다.
"아서 씨, 용병들의 부상이 심각해요. 일단 따뜻한 곳으로 옮겨서 안정을 취해야할 것 같아요."
테리는 복부를 관통당한 용병 릭스를 부축하며 말했다.
용병 앤드류와 노만은 팔이 잘려있었고 레니와 존 그리고 제프리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릭스처럼 가슴과 배에서 피를 흘리는 용병 모건과 마이클을 보니 부상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느낄 수 있었다.
"라이더들은 전복된 수송차량을 일으키고 그 위에 용병들을 실어라. 테리, 운전할 수 있지?"
"네. 문제 없어요."
"그럼 부탁할게."
난 일단 용병들을 숲에서 내보내고 남은 적 용병들의 시체와 배틀슈트 잔해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전파교란기 해제하고 수송작전에 전념해라.'
내가 정신파를 이용해 라이더들에게 명령한 순간이었다.
경고! 팔미라 시 방향에서 시속 600킬로미터 속도로 미상의 비행물체가 접근 중입니다!
미상의 비행물체는 현 위치에서 54 킬로미터 떨어져있습니다.
현 위치 도착까지 남은 시간은 5분 24초입니다.
아이언스톰을 장악한 시스템이 아이언스톰의 레이더를 이용해 확보한 정보를 내 시야에 띄워줬다.
'시속 600킬로미터? 맥길 용병단의 지원군인가?'
배제할 수 없는 옵션입니다.
난 그제야 일으켜세운 수송차량 짐칸 위에 올라타 전투현장에서 멀어지는 부상자들을 봤다.
테리는 수송차량에 실어놓은 응급키트를 이용해 진통제를 놔주고 출혈을 멎게하고 있었다.
용병들은 부상의 고통 때문에 다른 곳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하군.'
용병들이 현장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주문을 외울 수밖에 없었다.
난 보급형 배틀슈트를 입은 채, 죽은 적들의 시체를 향해 주문을 외웠다.
"레이즈 아머드 스켈레톤!"
내가 주문을 외우자 내 심장에서 상당한 마력이 빨려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