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53화 (53/152)

53화. 뜻밖의 방문

스펜서 계장은 적재된 3레벨 좀비 머슬의 머리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깨진 곳은 없는지 외형을 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곳저곳을 직접 눌러보기도 했다.

"아서님, 확인 끝냈습니다. 정말 깔끔하게 잘라오셨군요?"

스펜서 계장이 다섯 개의 머리를 모두 확인한 후 내게 말했다.

"아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

주변에서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던 용병들은 내 이름을 듣자 놀란듯했다.

"이봐! 아직 용병단에 소속되지 않았다면 우리 린데만 용병단에 들어오는 건 어떤가?"

그때 외눈 보안경을 쓴 대머리 용병이 내게 소리쳐 물었다.

그러자 붉은 배틀슈트를 입은 용병이 대머리 용병을 보며 비아냥댔다.

"린데만? 그런 용병단도 있었나?"

"이 무식한 자식! 우리 린데만 용병단은 100대 용병단에도 이름을 올렸었다고!"

"그게 언제적 얘기야?"

내 이름을 훔쳐 들은 용병들이 소란을 떨 때였다.

"여기 사인하시면 거래가 완료됩니다."

하지만 스펜서 계장은 용병들을 공기 취급하며 내게 홀로그램 태블릿을 건넸다.

- 물 건 : 3레벨 좀비의 머리 5개 (특 A급)

- 현상금 : 15억 크레딧.

- 공헌도 보상 : 5,000 점.

- 제공자 : 4등 시민 아서 ( 인 )

난 내 이름 옆에 사인하기 전에 스펜서 계장에게 확인했다.

"5천 점이면 용병단 설립기준을 충족하는 거 맞습니까?"

"네. 정확히 5천 점부터 용병단 설립이 가능하죠. 저런 스프린터 대가리는 2점밖에 안 됩니다."

스펜서는 용병들이 싣고 온 스프린터 머리를 보며 고개를 내저어 보였다.

"듣고 오긴 했지만, 고작 1레벨 차이인데 보상 차이는 천지 차이군요."

"스프린터 사냥에서 다치는 용병은 은퇴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지만, 3레벨 좀비 머슬 사냥은 정규 용병단도 사활을 걸어야 하는 큰 건이니까요."

스펜서 계장은 대답해주면서도 어서 사인하라는 눈빛을 발사하고 있었다.

"확인했습니다."

내가 사인하자마자, 경비원 차림의 로봇들이 다가와 1억 크레딧 짜리 마그니움 주괴 15개를 건넸다.

냄새로 마그니움 함량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테리와 게릭슨이 15억 크레딧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경비원 차림의 로봇들이 5개의 3레벨 좀비 머슬의 머리를 들고 사라졌다.

"아서 님, 이런 머슬의 머리 95개만 더 가져오시면 3등 시민이 되실 수 있습니다. 일반 기업 연구소에 가져가면 더 비싼 값을 받으실 순 있겠지만, 3등 시민이 될 순 없죠."

난 스펜서 계장의 얘기를 듣고 나서야 3등 시민이 되려면 공헌도 10만 점을 쌓아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안드로이드 제작자로 10년 복무하면 3등 시민증을 주겠다고 했었지.'

내게 입대를 권유하던 출장사무소 로봇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 용병단을 설립하려면 공헌도 5천 점만 쌓으면 되지만, 단장이 3등 시민이 아니라면 정부에서 내리는 의뢰를 받을 자격조건이 안됩니다.

오늘 아침까지도 밀러쉴더스에서 근무했던 데스윙이 정신파를 보내왔다.

'관급사업의 규모가 제일 큰가 보군?'

- 시정부에서 발주한 사업은 3대 초거대기업의 사업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팔미라 시에선 이보다 큰 규모의 사업은 없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내가 데스윙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자, 스펜서 계장이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맞잡았다.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돈 몇억 크레딧 더 받자고 일반 연구소에 이런 소중한 연구자료를 넘기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는 내가 고개를 끄덕인 것을 조금 오해한 것 같았다.

'3등 시민증을 얻기 위해 앞으로도 머슬을 가져오겠다고 이해한 건가?'

하지만 내 고갯짓을 오해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뭐야, 높은 뜻을 가진 친구였군."

"용병단도 설립하기 전에 3등 시민부터 넘본다니···. 좀 주제넘은 것 같은데?"

"어쩌다 운이 좋아 큰 성과를 거둔 모양이지만, 이 바닥에서 한 몇 년 더 구르다 보면 이 세상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걸 저 친구도 깨닫지 않겠어?"

당장이라도 날 영입하겠다고 달려들었던 용병들은 어느새 시기와 질투 어린 비아냥만 내뱉고 있었다.

'용병이 머슬을 사냥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가 보군.'

난 그들을 무시하고 스펜서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다음엔 이리로 연락해주시면 불편한 절차를 생략해드릴 수 있습니다."

스펜서 계장은 종이 명함을 건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난 그의 명함을 받아들고 차에 올랐다.

***

B-9 구역 고급 단독 주택 단지.

바로크 양식의 성과 그 앞으로 축구장 다섯 개를 줄지어 놓은 크기의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6미터 크기의 마그니움 합금 로봇이 허공에서 천천히 착륙하고 있었다.

로봇이 상공 5미터 높이까지 내려오자, 정원 바닥이 열리며 로봇 거치대가 올라왔다.

몇 초 후, 철컹! 하는 소음과 함께 거치대에 로봇이 안착했다.

- 기간트 글로리아가 정상적으로 입고되었습니다.

- 3중 배리어를 재가동합니다.

안내음과 함께 저택 상공이 금빛 배리어로 뒤덮였다.

그 순간 기간트 글로리아의 가슴에 장착된 노란 보석이 빛을 뿜어냈다.

황금빛 빛이 정원 바닥을 때린 순간, 밝은 금발의 미남자가 전이되었다.

"공자님, 약혼자분의 생체정보가 끊겼습니다."

집사 복장을 한 남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배틀슈트 차림의 금발 미남자에게 보고했다.

"내 약혼자?"

미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

"암셀학파의 후계자 후보인 제니퍼 마틴 양과 저번 달에 약혼하셨잖습니까?"

"아···. 외삼촌 생일파티에서 술잔을 나눴던 그 검은 머리 여자?"

미남자는 약혼자의 존재를 겨우 떠올린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그분입니다."

"그 여자가 죽었다고?"

"예, 암셀학파 후계자 다툼 과정에서···."

하지만 집사의 말을 들은 미남자는 미간의 인상을 풀며 무언가 후련해진 듯 말했다.

"됐다. 차라리 잘됐군."

"공자님?"

집사는 자신이 모시는 공자님의 의중이 무엇인지 궁금한지 짧게 되물었다.

금발의 공자는 그에게 대답하는 대신 정원 한가운데를 내려다봤다.

그곳엔 황금빛 책이 펼쳐져 있는 문양이 금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건 이젠 잊혀진 가문의 문장이었다.

"내 비록 쇠퇴한 가문의 피를 이었다고는 하나, 외삼촌께서 기간트워리어인 날! 고작 그런 하급 네크로맨서와 잇는 패로 사용하신 건 치욕이었다."

금발의 공자는 그 문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고, 공자님. 말씀을 삼가주십시오. 가주께서 들으신다면···!"

집사는 누군가 그의 말을 엿들을까 봐 두려운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금발 공자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레이첼 무어 정도면 몰라도 고작 D 구역의 네크로맨서 학파에 날 파시려고 하다니!"

미남자가 분하다는 듯 발을 내딛자,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정원에 파문이 일었다.

집사는 파도처럼 널 뛰는 땅 때문에 중심을 잃고 두 번이나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건 모두 내 공적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지. 그라디우스, 다시 출전하겠다!"

"아우레이 공자님, 방금 복귀하셨는데 다시 출전하시겠다니요? 무리입니다!"

집사가 만류했을 때, 아우레이는 이미 황금빛에 휩싸인 이후였다.

- 배리어를 해제합니다.

- 기간트워리어 아우레이 베리타스님, 배리어가 완전히 해제된 후 출격해주십시오.

아우레이의 몸이 사라지고 기간트 글로리아의 눈이 다시 황금빛으로 물들었을 때였다.

집사는 기간트에 탑승한 자신의 주인에게 들리도록 위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공자님, 그럼 약혼자이신 제니퍼 마틴 양의 복수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 내게 그런 약혼자는 없었다. 내 이름이 쓸데없는 곳을 떠도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집사가 묻자, 철컹! 소리를 내며 거치대에서 풀려나온 기간트가 아우레이의 말을 전했다.

그 순간 쿠왕! 하는 굉음과 기간트 글로리아가 빠른 속도로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기간트 글로리아의 양손과 양발 그리고 등에선 황금빛 불길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정원은 순식간에 흙먼지로 물들어버렸다.

그 순간 3중 배리어 중 마지막 남은 배리어가 기간트 글로리아의 주먹에 맞아 콰창! 하는 파열음과 함께 박살이 나버렸다.

하지만 배리어를 깬 이후엔 기간트 글로리아에서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젠장, 출격할 거면 주변인부터 물러나게 한 후에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갑작스러운 출격의 여파로 정원수까지 굴러간 집사는 나뭇가지에 긁힌 자신의 목을 쓰다듬으며 불평을 해댔다.

그때 그의 가슴 안에서 위잉! 하는 진동음이 들려왔다.

그가 회중시계를 꺼내 펼치자 홀로그램 영상이 올라왔다.

- 부장님, 제니퍼 마틴 건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반 삭발한 회색 눈의 남자가 그에게 물었다.

"공자님은 제니퍼 양의 복수엔 관심도 없으시고 그 일에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기를 바라신다."

- 그럼 플랜 B 실시하겠습니다.

집사는 고개를 끄덕인 후 회중시계를 닫아버렸다.

"암셀학파의 지원이 없다면, 기간트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돈은 급한데 회사 공금에 손댈 수도 없고···. 도련님은 정말 속 편한 소리만 하시는군!"

집사의 깊은 한숨이 흙먼지와 함께 흩날렸다.

***

D-27 고속도로.

15억 크레딧을 싣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 스톨즈 씨에게서 통신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

난 그제야 제니퍼의 죽음을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스톨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연결해."

그 순간, 수송차량 조수석 창문에 스톨즈의 얼굴이 비쳤다.

- 골렘나이트 막스 벡허 님의 재판 결과를 방금 읽었습니다. 아서 님,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스톨즈가 재판 결과에 대해 이렇게 빨리 알아차린 건 의외였다.

'스톨즈가 어떻게 재판 결과를 알고 있는 거지?'

< 팔미라 시의 통상적인 재판 결과는 바로 온라인에 공개됩니다. >

사법처리 결과가 공개되는 것은 현대랑 비슷한 시스템인 것 같았다.

나는 시스템 메세지를 읽고 나서야 이해하고 스톨즈에게 답했다.

"몸은 괜찮네. 하지만 제니퍼의 호위로 플라즈마 윙이라는 랭커를 보낸 건 조금 놀랍더군."

- 설마 그녀가 밀러 그룹과 손을 잡고 먼저 손을 쓸 줄은 정말 예상도 못 했습니다.

스톨즈는 제니퍼의 수완에 놀란 모양이었다.

"어쨌든 자네가 요구했던 일은 처리했어. 증거는 직접 만나서 건네주지. 그럼 우리 거래는 성사된 거겠지?"

- 물론입니다. 현대 사령술 전서와 100억 크레딧은 이미 마련해뒀습니다. 하지만 랭커 플라즈마윙의 등장은 제 계산 밖의 일이었으니···. 원하신다면 강화 시술에 참관할 기회를 드릴 수 있습니다.

스톨즈는 원래의 계약조건도 모자라 성과급까지 제시했다.

암셀학파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는 게 그에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나도 실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때 제니퍼의 정신파가 전해져왔다.

- 현대 사령술과 후계자 후보가 접할 수 있는 수준의 강화시술 정보는 저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암셀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보다 높은 보안등급의 기밀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보다 높은 보안등급의 기밀?'

- 제 외삼촌은 암셀연구소의 부소장입니다. 연구소에만 들어갈 수 있으면 제 외삼촌이 접근 가능한 정보까지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럼 스톨즈가 전해주는 정보보다 수준 높은 시술자료까지 확보할 수 있습니다.

'나쁘지 않군.'

제니퍼를 언데드로 만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셀연구소에 방문할 땐, 제니퍼를 데려가야겠군.'

난 스톨즈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네 덕분에 암셀연구소 구경도 해보겠군."

내 대답을 들은 스톨즈는 이상한 질문을 해왔다.

-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서님 실례가 안 된다면 지금 D 몇 번 대 구역에 거주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게 왜 궁금하지?"

- 제니퍼가 죽은 건, 제가 암셀학파 내에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밀러 그룹 관계자인 플라즈마윙이 죽은 건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스톨즈는 밀러 그룹의 보복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 완벽한 방비는 어렵겠지만, D 구역 앞 번호대로 거주지를 옮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조언 고맙네. 가까운 시일 내로 한번 만나지."

- 그럼 일정 조정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스톨즈와의 통신은 끝났지만, 그가 남긴 여운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밀러 그룹이라···.'

내가 팔걸이를 톡톡 두르라자, 데스윙이 정신파를 보내왔다.

- 제가 밀러 그룹 오너 일가도 아니고, 제게 이번 건의 명령을 내린 것도 힘 있는 라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룹 차원의 보복까진 없을 겁니다.

데스윙은 내 걱정을 종식시키려 했다.

하지만 제니퍼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 전 방계라지만 밀러 그룹의 일원과 약혼까지 했습니다. 밀러 그룹이 이 사건을 불쾌하게 여긴다면 힘없는 라인에서 움직여도 D 구역에선 피바람이 불 수 있습니다. 그들은 10대 대기업이니까요.

- 너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나 같은 말단을 지원해주지는 않았겠지. 현재 상황에서 밀러쉴더스에서 보낼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어. 나랑 비슷한 말단이거나 내 직속 상관급이겠지. 그 정도라면···.

데스윙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말끝을 늘렸다.

- 주군께서 내려주신 이 몸만 있으면, 그 정도는 제 선에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 그렇습니다. 밀러 그룹에서 실질적인 무력을 담당하는 계열사는 밀러 다이나믹스와 밀러 쉴더스 두 곳입니다. 하지만 밀러 다이나믹스는 오너 일가가 꽉 잡고 있어서 이런 잡스러운 일에 동원되진 않을 겁니다.

- 저와 약혼한 남자는 밀러 그룹 데릴사위의 아들이었습니다. 오너 직계후손이 아니라 밀러 쉴더스에서도 큰 힘을 쓰진 못할 겁니다.

데스윙의 말에 제니퍼까지 말을 보태자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3단계 강화시술자 중엔 랭킹 9위였던 너를 말단사원 취급하다니, 밀러 그룹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안 되는군."

난 앞으로는 상대의 뒷배경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1시간 후.

D-135 구역 공장지대, 아파트형 공장 35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내 집인 3507호로 향했다.

하지만 내 집 앞엔 정장 차림의 남자 네 명이 서 있었다.

"여긴 내 집인데, 누굽니까?"

"전 밀러 쉴더스 사의 인사팀에서 나왔습니다."

내가 묻자, 회색 머리의 중년 남자가 정중하게 인사하더니 명함을 내밀었다.

- 밀러 쉴더스

- 인사팀 과장 조지 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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