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55화 (55/152)

55화. 강화시술

난 그 순간 시술자에게 다가가 그의 척추부근의 피부를 만졌다.

외부로 드러난 신체가 그곳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서 옅은 좀비의 향기를 느낀 순간이었다.

< 좀비의 악취와 유사도 3% >

예전에 쓰레기 매립지 입구를 지키던 스킨헤드는 좀비의 악취와 유사도가 6%였었다.

'1단계 강화시술은 좀비와의 유사도를 3퍼센트 수준으로 만들어주고 2단계는 6퍼센트 그리고 3단계는 13~14퍼센트 정도인건가?'

테리는 좀비와의 유사도가 14%였었다.

그에 반해 브라우스 건설의 론 페이지 전무는 13.7%에 불과했다.

3단계 강화시술자들이 13~14퍼센트 수준의 유사도를 나타낸다고 판단한 근거였다.

- 아서 님.

그때 스톨즈가 시술자의 눈치를 보며 내 이름을 불렀다.

"이대로 진행하지."

난 시술자의 몸에 손을 댄 채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신체를 접촉한 상태여야 그의 몸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스톨즈가 잠시 눈쌀을 찌푸렸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그때 시술 대상자가 물었다.

- 아닙니다. 시술자님, 1단계 강화시술을 받아보셔서 아시겠지만 본 시술은 마취없이 진행됩니다. 좀비인자 체화에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스톨즈가 수술대 옆의 패드를 조작하자, 천장에서 내려온 기계가 시술자의 척추를 따라 수십 개의 바늘을 겨누었다.

척추마다 하나씩 바늘이 꼽히자, 링겔의 투명한 액체가 시술자의 척추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시술자의 몸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속구가 시술자의 몸을 꽉 잡아주고 있어서 바늘이 더 깊숙히 찔리거나 빠지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 정상적인 적응과정입니다.

그건 시술자를 향한 안내였다.

하지만 스톨즈의 눈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스톨즈의 걱정과 달리 시술자의 경련 때문에 놀란 게 아니었다.

'이건... 좀비인자라더니, 뭔가 다르군.'

좀비인자를 자기 것으로 만든 인간에게선 좀비 향기가 어렴풋하게 날 뿐이었다.

하지만 좀비인자를 주사한지 얼마 안 된 인간과 접촉한 상태로 관찰해보니 스톨즈가 주사한 좀비인자라는 게 좀비의 피와 살들과 어떻게 다른지 분명하게 느껴졌다.

'생기가 느껴지는군. 이건 좀비와 비슷하지만 뭔가 달라... 그보다 한단계 더 수준 높은 무언가가 섞여있어.'

그때 시스템이 내 눈앞에 처음보는 문서를 띄워줬다.

< 관련 문서를 시각정보로 출력합니다. >

- 좀비인자의 추출

- 좀비의 시상하부

- 전염과 변이의 원인

- 고대 좀비의 구울화 과정과 현대 좀비 진화의 유사성

- 백신으로서의 좀비인자

- 좀비인자와 구울인자의 균형

그건 네크로맨서들이 연구한 좀비와 좀비인자에 대한 개요였다.

< 지난 이틀 동안 제니퍼가 작성한 문서입니다. >

시스템 메세지 너머로 수십 장의 논문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생각해보지도 못한 방식의 접근이었다.

'백신처럼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약화시킨 좀비인자?'

독감백신을 맞으면 인간은 약한 수준의 독감에 걸린다.

하지만 그 독감을 이겨내면 해당 독감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된다.

이 세계의 네크로맨서들은 백신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와 인간을 강화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내가 놀랐을 땐 이미 내 눈앞에 백 장 넘는 논문이 펼쳐진 이후였다.

그리고 그중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는 문서들이 있었다.

그건 마법식들이었다.

'이건 시체를 좀비로 일으킬 때 쓰는 마법식이고 이건 좀비를 구울로 진화시킬 때 쓰는 마법식이군. 그리고 이건...!'

< 커먼 등급 스킬 [좀비 마스터리]를 습득하셨습니다. >

< 커먼 등급 스킬 [좀비 소환]를 습득하셨습니다. >

< 레어 등급 스킬 [구울화]을 습득하셨습니다. >

등급으로 비교하자면 구울화 마법식이 좀비 마스터리보다 두 단계나 윗줄이었다.

하지만 구울화 마법식보다 날 놀라게 한 건 좀비 마스터리 마법식이었다.

좀비 마스터리 마법식은 좀비뿐만 아니라 좀비계통의 모든 언데드를 더 효율적이고 강하게 지배할 수 있는 비법이었기 때문이다.

"좀비 마스터리."

내가 주문을 외운 순간, 내 머리 위에 검은 마법식이 펼쳐졌다.

그와 동시에 내 양손에서 뿜어져나온 죽음의 기운이 좀비 마스터리 마법식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죽음의 기운을 느낀 스톨즈가 놀라서 내 팔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 아서 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마이크를 착용한 스톨즈의 목소리가 수술실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하지만 그땐 이미 좀비 마스터리 마법식이 완성된 후였다.

"방해하지말고 강행해!"

내가 소리쳤을 땐, 시술자는 나나 스톨즈에게 뭔가를 물어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그극!"

좀비인자 적응과정이 고통스러운지 거품을 뿜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 호흡기 삽관합니다!

시술자가 질식사할 게 두려웠는지 스톨즈는 급히 수술대 옆의 패드를 조작하며 소리쳤다.

그 순간, 척추 안에서 좀비인자와 격렬하게 충돌하는 시술자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명확하게 보이는군.'

< 좀비의 시상하부에서 체취한 좀비인자를 구울화한 물질입니다. >

'아니, 완전히 구울화하진 않았어. 인간이 언데드의 형질을 이겨낼 수 있도록 중간단계에서 멈춰놨어...'

내가 플레이했던 게임, 던전 오브 어비스에선 좀비는 살아있는 사람과 시체를 먹는 과정에서 구울로 진화했다.

제니퍼의 문서에 따르면 그 과정을 현대 네크로맨서들은 '구울화'라고 부르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암셀학파에서 가공한 좀비인자는 구울도 좀비도 아닌 무언가였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좀비로드의 고유권능 폭식진화에 따라 단계를 밟아가며 진화하는 이 시대의 좀비와도 달랐다.

그 순간 시술자의 피와 좀비인자 주사액이 뒤섞이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시술자의 정신과 육체가 언데드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데드화되는 힘이 너무 미약했다.

'전염성은 극도로 낮추고 신체변이는 극대화했어. 정말 아름답군.'

내가 아는 세상에 좀비와 구울은 있어도 그 두 존재의 중간점은 없었다.

하지만 이 세계의 네크로맨서는 좀비와 구울 그리고 인간의 중간점을 이룩해낸 것이다.

좀비는 살아있는 생명을 포식하는 과정을 통해 구울로 진화한다.

겉모습만 비교해도 몸이 온전치 않은 좀비는 구울화를 거치면서 멀쩡한 인간에 가까워지고 괴력까지 얻게 된다.

하지만 이 세계의 네크로맨서들은 좀비인자가 완전히 구울화하지 않는 선에서 멈추게 만들었다.

인간의 의지를 가지고 구울과 같은 신체적 능력을 가질 수 있게 균형을 잡아놓은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그 과정에서 사용한 좀비가 던전 오브 어비스에 등장했던 평범한 좀비가 아니란 점이었다.

'완전하진 않지만... 그 토대를 좀비로드의 좀비에게서 훔쳐왔기 때문에 내가 알던 구울보다 강력해.'

게임 던전 오브 어비스 속 구울은 기껏해야 이 세상의 2레벨 좀비 스프린터와 비슷한 수준의 언데드였다.

하지만 평범한 3단계 강화시술자도 스프린터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었다.

만약 강화시술자가 3단계 랭커라면?

플라즈마윙의 경우엔 스프린터 수십 마리쯤은 케익 썰듯 손쉽게 사냥할 능력이 있었다.

그건 구울화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의 전투력이었다.

'좀비로드에게 들키지 않기위해 그의 권능인 폭식진화를 훔쳐보는 대신 이미 진화된 개체에서 좀비인자를 추출했어... 정말 대단하군.'

난 좀비로드의 폭식진화를 훔쳐배우다 시체폭발에 당해 죽을 뻔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좀비로드란 놈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분노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크...크극!"

그때, 시술자가 호흡기 너머로 신음과 함께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내 눈엔 시술자의 몸 속에서 서로 다른 형질의 죽음의 기운이 충돌하는 모습이 보였다.

"1단계 강화시술은 어떤 좀비의 좀비인자로 받았는지 알 수 있나?"

- 2레벨 좀비 스프린터의 좀비인자를 이용해 시술한 것으로 나옵니다.

시술자의 생명력과 융합한 2레벨 좀비의 죽음의 기운이 3레벨 좀비의 좀비인자를 구울화한 죽음의 기운과 충돌했다는 뜻이었다.

"사망률이 7%나 되는 이유를 알겠군."

- 그게 무슨 뜻입니까?

스톨즈가 물었다.

하지만 난 그에게 대답하는 대신 죽음의 기운을 이끌어 시술자를 도왔다.

내 죽음의 기운과 맞닿는 순간 시술자의 죽음의 기운이 반발하려고 했다.

< 독특한 죽음의 기운을 발견했습니다. >

< 커먼 등급 스킬 [좀비 마스터리]를 사용하셨습니다. >

< 시술자의 죽음의 기운과 융합에 성공했습니다. >

시술자의 죽음의 기운과 내 죽음의 기운이 합쳐지자, 스톨즈가 주사한 좀비인자의 죽음의 기운보다 더 강력한 기운이 돼버렸다.

< 커먼 등급 스킬 [좀비 마스터리]에 대한 이해도가 한층 깊어지셨습니다. >

시술자와 연합한 내 죽음의 기운이 스톨즈가 주사한 좀비인자와 만나는 순간이었다.

좀비인자는 마치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시술자의 죽음의 기운과 융합됐다.

< 사령술에 관한 불가사의한 재능으로 [좀비 마스터리] 스킬의 한계를 넘어선 결과를 만들어내셨습니다. >

< 시술자의 육체가 좀비와 유사한 방향으로 진화합니다. >

< 근질 변화로 근력이 성장했습니다. >

< 골밀도 변화로 내구도가 높아졌습니다. >

< 시술자의 좀비인자 체화수준이 10%를 돌파했습니다! >

< 2단계 강화시술자 수준을 벗어난 수준입니다! >

본래 시술과정대로라면 시술자와 좀비인자가 싸우는 과정에서 상당량의 죽음의 기운이 소모됐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개입하면서 중간과정이 생략됐다.

그 덕분에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획기적으로 감소해버렸다.

그 결과...

'좀비 마스터리 마법식을 이렇게 운용하면 앞으로도 낭비되는 죽음의 기운을 줄일 수 있겠어.'

< [좀비 마스터리] 스킬로 좀비인자를 강제로 융합시키셨습니다. >

< 이는 커먼 등급을 넘어선 성능입니다. >

< 사령술에 관한 천부적인 재능이 커먼 등급 스킬 [좀비 마스터리]를 강제 진화시킵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좀비 지배]를 창안하셨습니다. >

< [좀비 지배] 스킬은 좀비계열 언데드의 지배와 성장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난 시술자의 체화수준이 높아진 것보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이한 느낌에 놀랐다.

< 시술자에게서 발현가능한 재능을 발견하셨습니다. >

빠르게 올라오는 시스템 메세지 너머로 시술자의 몸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몸에선 세 가지 다른 빛무리가 빛나고 있었다.

< 즉시 발현 가능한 특이능력을 발견하셨습니다. >

< 철골, 괴력, 재생 >

< 죽음의 기운을 소모하셔서 특이능력을 강제발현시키시겠습니까? >

난 시스템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스톨즈에게 물었다.

"2단계 강화시술자가 특이능력을 발현하는 경우도 있나?"

- 그런 사례는 보고된 바 없습니다.

"그럼 발현시키면 안되겠군."

시술자가 내 부하도 아닌데 전례가 없는 결과를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스톨즈 아니, 암셀학파에게 던지는 미끼로는 이 정도가 적당하겠지.'

내가 손짓하자, 시술자의 몸에서 빛나던 세 가지 빛무리가 죽음의 기운으로 변해 내 손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시술 잘 봤네."

- 네? 아직 시술을 완료하려면 30분 이상 남았습니다.

난 당황한 스톨즈를 보며 시술자를 가리켰다.

시술자는 이미 평온한 상태로 호흡하는 중이었다.

- 바이탈도 정상이고 호흡도 고릅니다. 이럴수가...! 좀비인자를 주사한지 3분밖에 안됐는데 어떻게 벌써 체화를 끝낼 수 있지?

스톨즈는 내가 앞에 있다는 것도 잊었는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시험해보면 알겠지만, 다른 2단계 강화시술자보다는 훨씬 강한 신체능력을 보일 거야."

- 설마 시술과정에서 바... 발렌틴 학파의 비전을 사용해 도움을 주신 겁니까?

"비슷하다고 해두지."

난 곧바로 수술실을 나와 수술복을 벗어버렸다.

***

수술실 앞에서 대기 중이던 경비원의 안내에 따라 직원휴게실로 이동했다.

테리와 함께 앉아있던 제니퍼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두번 깜빡였다.

외삼촌인 부소장의 아이디로 중요자료를 다운받았다는 뜻이었다.

"수술이 끝나는대로 스톨즈 선임연구원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경비원이 직원휴게실에서 나가자 데스윙이 말했다.

- 깨끗한 방입니다.

도감청 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방이니 마음 놓고 대화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제니퍼, 지금까지 만난 네크로맨서는 너와 스톨즈뿐인데 둘 다 강화시술을 받지 않은 것 같더군. 이유가 있나?"

"그런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네크로맨서가 자기 자신에게 강화시술을 해서 무력을 갖추게되면 귀족들에게 얽매일 필요가 없어질테니까요."

"내가 궁금한 부분도 바로 그 부분이야. 충분히 네크로맨서들도 시도해봤을 법한 방법인데, 왜 가까이서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놔두고 다른 사람을 강화해서 자기 편으로 만들려는거지?"

"그런 시도를 했던 네크로맨서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입니다."

"귀족들이 죽인 거군!"

난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네크로맨서들이 자체 무력을 갖는 걸 가장 싫어할 세력은 귀족들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제니퍼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귀족들이 손을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어떤 네크로맨서도 사령마력과 좀비인자의 충돌과정을 이겨낼 수 없었으니 말입니다."

"좀비 마스터리 마법식을 알면서 사령마력과 좀비인자가 충돌하게 내버려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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