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아머드 소울리퍼
소멸보다 두려운 건 내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건 내 예상을 뛰어넘은 대답이었다.
그때 아치스를 레어 등급이라고 판정한 시스템 메세지와 거치대에 걸려 대기 중인 워리어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너 빼곤 다 유니크 등급이라 소외감이라도 느꼈었나보군.'
난 가여운 마음에 아치스를 두드려주려 했다.
내 손이 아치스의 총신에 닿는 순간이었다.
내 뇌리로 흐릿한 영상들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건 아치스의 기억들이었다.
플라즈마윙이 엄청난 죽음의 기운을 흡수해 데스윙으로 진화하는 장면.
제니퍼 마틴이 죽음의 기운도 모자라 뱀파이어의 거대한 팔까지 흡수해 뱀파이어릭 위치라는 새로운 종의 언데드로 진화하는 장면.
그리고 워리어로 진화한 맥길 용병단 출신 워리어들과 라이더들 그리고 고치화 된 워리어들까지.
그건 아치스의 영혼에 화인처럼 남은 기억들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모두 아치스 이후에 받아들인 부하들이란 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네가 내 첫 번째 언데드였었군.'
아치스는 한 번도 내게 내색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녀석의 기억을 살펴보니 자신 이후에 받아들인 언데드들이 업그레이드되는 모습을 지켜만 보느라 마음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았다.
< 레어 등급 스킬 [영혼 감응]을 습득하셨습니다. >
"내 능력이 너무 빠르게 성장했다는 핑계로 널 소홀히 했군."
- 모두 제가 모자란 탓입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주인님께 도움이 되는 강력한 언데드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아치스의 충직한 모습을 보니, 유틀란트 시에서 날 구했던 녀석의 모습이 생각났다.
고작 한 달도 안 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몇 년은 지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기회를 주지. 네겐 그럴 자격이 있다.'
난 아치스의 총열을 두드리며 외쳤다.
"사신소환!"
내가 마법식을 떠올리며 주문을 외운 순간이었다.
헤비머신건에 갇혀있던 아치스의 영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폭발엔진을 등에 멘 거구의 모습은 살아있을 때와 똑같았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오른손의 마그니움 합금의 전기톱과 왼손의 레이저커터가 숨겨진 모습이란 점뿐이었다.
그 순간 반투명한 원통형 마법진이 아치스를 가둬버렸다.
그와 동시에 마법진이 내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 사신소환 마법진이 [레이쓰 헤비머신건 아치스]와 동기화합니다. >
< [레이쓰 헤비머신건 아치스]의 영혼을 찢어발깁니다. >
내 마력을 흡수한 원통형 마법진이 갑자기 바닥에 닿더니 높이가 3미터까지 커져 버렸다.
- 그극!
마법진은 아치스의 사지에 줄을 매달아 놓은 것처럼 사방으로 당겨대기 시작했다.
그 안에 갇힌 아치스의 영혼이 부르르 떨며 신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 끄아아악!
내 눈치를 보며 신음을 참던 아치스는 오른팔이 찢겨나가자, 결국 비명을 토하고 말았다.
< [드레이크 헤츨링 하트]의 잔여마력이 97%로 줄어들었습니다. >
그 순간 찢어지지 않은 아치스의 다른 신체들이 불안하게 떨렸다.
마법진이 엄청난 흡입력으로 사방팔방에서 아치스의 영혼을 끌어당겨 언제 찢겨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파아아~! 하고 거센 바람이 대나무숲을 스치는 것 같은 소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아치스의 몸이 사방팔방으로 찢어져 나가버렸다.
한순간에 아치스는 사라졌다.
오직 그가 남긴 영혼의 조각들만 원통형 마법진 안을 유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 영혼 복구를 시작합니다. >
< 죽음의 기운이 필요합니다. >
시스템 메세지에 따라 마력을 죽음의 기운으로 바꿔서 사신소환 마법진에 공급했을 때였다.
원통형 마법진이 부우웅! 하는 진동음을 내며 떨렸다.
그러자 집 안의 모든 창문이 마치 원통형 마법진에 공명하듯 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따라 진동하는 게 아닌가?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 날 깨운 게 누, 누구냐!
- 여긴 어디지?
- 디온, 이 더러운 배신자 놈!
천장과 바닥, 유리창과 벽을 뚫고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부분 사이보그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과 발이 흐릿한 모습을 보니, 죽은지 오래된 영혼들 같았다.
망령이 되지 못해 물리적인 힘도 발휘할 수 없는 잡귀들인 것이다.
그 순간 사신소환 마법진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원통형 마법진이 회전함에 따라 영혼을 빨아들이는 힘도 점차 강력해졌다.
- 놔, 놔줘!
- 안돼! 저기 빨려 들어가면 돌이킬 수 없어!
- 이건 함정이다!
힘 없는 영혼들은 마법진에 빨려 들어가면서도 정신 사나운 비명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건 무의미한 발버둥에 불과했다.
원통형 마법진이 내가 마력을 소모해서 만들어낸 죽음의 기운과 영혼을 500구 이상 흡수한 순간이었다.
사신소환 마법진의 회전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갈가리 찢어졌던 아치스의 영혼이 본래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 주인님, 이 정도 고통이라면 6번이 아니라 666번도 견딜 수 있습니다!
더욱 선명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아치스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몸엔 숭숭 뚫린 구멍들이 즐비했다.
'아치스는 단순한 망령이 아니야.'
난 그 모습을 보고 이번 분해복구 과정에서 잘못된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언데드웨폰인 아치스는 이미 기계와 한 몸이었는데 영혼만 분리해서 분해복구를 했던 게 문제였어.'
< [드레이크 헤츨링 하트]의 잔여마력이 92%로 줄어들었습니다. >
< 아치스의 영혼 분해복구 과정을 분석합니다. >
< 2회차 복구에 성공할 확률은 82%입니다. >
< 3회차 복구에 성공할 확률은 36%입니다. >
< 사신소환을 멈추지 않을 경우, 95%의 확률로 아치스가 소멸할 예정입니다. >
시스템의 평가 또한 박했다.
'조금만 수정하면 되겠는데?'
난 즉석에서 사신소환 마법진에 언데드웨폰 마법진을 가미해서 변경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사신소환 마법진이 원통형에서 완전한 구체로 바뀌었다.
< 새로운 마법식을 창안하셨습니다. >
< 마법식의 이름을 정해주시겠습니까? >
'아머드 소울리퍼가 좋겠군.'
< [아머드 소울리퍼 소환] 스킬의 등급은 유니크 등급입니다. >
'영혼으로 부족한 부분을 매울 수 없다면 기계를 더해주면 그만이다.'
내가 손을 올리자, 붉은 마력입자가 순식간에 염력 마법진을 완성해버렸다.
그 순간 아치스와 분리된 헤비머신건과 테리가 벗어놓고 간 솔져급 배틀슈트가 아머드 소울리퍼 마법진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 분해복구 과정에 기계를 넣는 건 시도된 적 없는 변수입니다. >
< 실패확률을 계산할 수 없습니다. >
< 이대로 분해복구를 진행하시겠습니까? >
시스템이 묻는 순간 아치스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여전히 굳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진행한다.'
내가 대답한 순간, 아머드 소울리퍼 마법진이 다시 회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속도는 1회차 때보다 다섯 배 이상 빨랐다.
그때 건물 안의 모든 불빛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 직후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테리가 요리를 담아왔던 접시들이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한계에 도달한 영력이 물질계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 [드레이크 헤츨링 하트]의 마력이 빠르게 줄어듭니다. >
< 잔여 마력은 81%입니다. >
< 잔여 마력은 77%입니다. >
빠르게 회전하는 완전한 구형 마력진은 내 죽음의 기운도 빠르게 흡수했다.
그 속도에 맞추지 마력이 빠르게 소모되기 시작했다.
'기간트워리어급 마력로가 있으니 충분해'
그 순간 내 배틀슈트의 척추 부분에 삽입된 일곱 개의 마력로가 밝게 빛을 발했다.
***
C-6 구역 핵심산업 연구단지.
무어연구소 141층 연구소장실.
전조도 없이 연구소장실 창문이 우웅! 하고 진동했다.
그 순간 무어학파의 학파장 레이첼 무어는 세상이 뒤흔들리는 듯한 느낌에 휘청일 수밖에 없었다.
"연구소장님, 괜찮으십니까?"
검은색 배틀슈트를 입은 미카엘은 걱정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세상이 뒤흔들리는데, 주변은 살피지 않고 자신만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레이첼은 깨달았다.
"영파다!"
"영파라면...?"
영능력을 깨우치지 못한 호위는 처음 듣는 단어에 의아한 표정이었다.
"이런 규모의 영력의 파도는 처음이야."
"영력의 파도면, 새로운 5급 네크로맨서라도 탄생한 겁니까?"
레이첼은 영력이 밀려온 방향을 바라보며 넋이 나간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르겠어."
"하긴 학파장님 이후에 5급 네크로맨서로 승급한 사례가 없긴 했죠. 어떻게···. 다른 학파에 심어둔 안테나와 접촉해볼까요?"
미카엘은 곧바로 다른 5급 네크로맨서들의 동향부터 살피려 들었다.
하지만 레이첼 무어는 고개를 내저어 보였다.
"그 겁쟁이 영감들이 이 영파를 느꼈다면 꼭꼭 숨어들기 바쁠 거야."
그때였다.
레이첼이 목에 건 목걸이가 영력이 밀려온 방향을 향해 떠올랐다.
- 레, 레이첼! 당장 영력을 차단해!
목걸이를 장식한 호두알만 한 블랙 다이아몬드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건 자신의 영혼을 목걸이 안에 가둬 영생을 도모한 무어 학파의 개창자.
자코모 무어의 영혼이었다.
"에고 섬 후이우스 스파티 도미누스!"
레이첼 무어는 곧바로 여섯 가지 수인을 맺으며 주문을 외웠다.
수인이 완성된 순간 그녀의 등 뒤에서 뻗어 나온 검은 망토가 연구소장실을 순차적으로 여섯 겹으로 감싸버렸다.
검은 망토가 다섯 겹째 감쌌을 때였다.
그녀의 목걸이는 다시 제 자리로 내려앉았다.
"미카엘."
"네."
검은 배틀슈트의 호위, 미카엘은 망토로 사무실 전체를 감싼 레이첼을 보고 답했다.
"장벽방어군 사령부에 연락해. 저기 북서쪽에서 최소 4레벨 이상의 변이종이 발생했을 수 있어."
"변이종이라고요?"
미카엘이 배틀슈트의 안면부를 투명화시키자 짧은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30대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무척 놀란 표정이었다.
"이 정도 영파는 인간이 발생시킬 수 없어."
레이첼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하지만 미카엘은 납득 못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하지만 5급 네크로맨서가 승급하면 엄청난 영력을 뿜어낸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내가 죽을 힘을 다 해도 이런 규모의 지진을 일으키지는 못해."
그녀의 목소리는 왠지 평소답지 않게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그때 검은 장막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자코모 무어를 빨아들였던 그 엄청난 흡입력이 재차 그녀의 장막을 뒤흔든 결과였다.
"당장 장벽 방어군 사령부에!"
그녀가 급하게 외친 순간, 레이첼의 충직한 호위는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
10분 후.
D-135 구역 공장지대, 아파트형 공장 35층 3507호.
< [드레이크 헤츨링 하트]의 잔여마력이 4%까지 떨어졌습니다. >
< 기간트워리어급 배틀슈트 A-100W의 잔여마력이 13%까지 떨어졌습니다. >
< 워리어 62기와 라이더 20기의 마력로가 과열됐습니다. >
시스템 메세지를 보고 돌아보니 내 등에 손바닥을 댄 워리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 뒤엔 다른 워리어가 등에 손을 대고 있었고 그 모습은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삼중수소 카트리지만 구해놨으면 몇 번 더 시도해봤을 텐데 아깝군.'
< 지난 9차례의 분해복구 과정을 토대로 필요 마력량을 계산합니다. >
< 죽음의 기운을 생산할 마력이 부족합니다. >
< 이대로 분해복구를 강행할 경우 97% 확률로 아치스의 영혼이 소멸할 예정입니다. >
< 분해복구를 강행하시겠습니까? >
'아쉽지만 여기서 멈춰야겠군.'
< 아머드 소울리퍼 소환을 완료합니다. >
< 아치스의 영혼이 헤비머신건과 배틀슈트 등의 기계장치와 융합에 성공했습니다. >
< 18,991구의 영혼을 흡수했습니다. >
< 해당 언데드가 수준 높은 영능력을 구축했습니다. >
< 사령술에 관한 재능이 빛을 발합니다. >
< 해당 언데드가 사령술의 기초를 터득했습니다. >
< 해당 언데드가 유니크 등급 스킬 [영혼수확]을 습득했습니다. >
< 해당 언데드가 유니크 등급 스킬 [망령군 사역]을 습득했습니다. >
< 해당 언데드가 유니크 등급 스킬 [망령융합]을 습득했습니다. >
< 해당 언데드가 유니크 등급 스킬 [영계이동]을 습득했습니다. >
< 해당 언데드가 레어 등급 스킬 [사신소환 주문]을 습득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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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언데드가 언커먼 등급의 스킬 [영혼초혼 주문]을 습득했습니다. >
< [레이쓰 헤비머신건 아치스]가 [아머드 소울리퍼]로 진화하였습니다. >
< 네크로맨시 역사상 존재한 적 없는 언데드를 창조하셨습니다. >
< 경이로운 성과! >
< [아머드 소울리퍼]의 전투력을 측정합니다. >
시스템 메세지가 빠르게 올라오는데, 마법진까지 흡수한 아치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2미터가 넘는 키에 폭발엔진을 등에 멘 사이보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몸집이 작아진 아치스는 언뜻 보기에 평범한 3단계 용병과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어깨에 묶인 칠흑망토는 바람도 안 부는데 흩날리고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순간에도 아치스의 양손엔 헤비머신건과 거대한 서양 낫이 생겨났다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 커먼, 언커먼, 레어, 유니크...>
< 사용자님께서 창조하신 [아머드 소울리퍼]가 엘리트 유니크 등급으로 측정되었습니다. >
그건 처음 들어보는 등급이었다.
'엘리트 유니크?'
< [아머드 소울리퍼]는 레전드 등급을 목전에 둔 언데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