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승급의뢰
2시간 후.
D-2 구역의 한 초고층빌딩 앞.
빌딩 옥상엔 '용병협회'라는 커다란 간판이 서 있었다.
내가 차량을 정차하자, 아이언스톰 한 기가 운전석 창문을 향해 다가왔다.
- 창문을 개방해주십시오.
'용병협회라도 그렇지 도시 안에서 저렇게 많은 아이언스톰을 운용한다고?'
난 요구에 따라 창문을 내리면서도 의아했다.
용병협회 건물 주변에 늘어선 아이언스톰만 20여 기에 달했기 때문이다.
- 시민증과 용병협회 방문 목적을 말씀해주십시오.
"4등 시민 아서. 용병단을 설립하려고 왔다."
난 시민증을 들어올리며 대답했다.
- 4등 시민?
내 시민증과 얼굴을 확인한 아이언스톰의 스피커를 통해 운전자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이었다.
- 정지, 정지!
- 30mm 기관포 다수 발견!
- 전투용 안드로이드 다수 발견!
- 적습에 대비하라!
- 다량의 폭발물 발견!
갑자기 아이언스톰들이 산개하더니 30mm 기관포를 나와 내 차량들을 향해 겨누기 시작했다.
"소음기능을 탑재한 30mm 기관포 84문, 전투용 안드로이드 85기, 사이보그 한 기, 3단계 강화시술자 한 명."
시끄럽던 아이언스톰들의 소란은 내 말이 이어질수록 잦아들기 시작했다.
"여긴 원래 이렇게 경계가 삼엄한가?"
- 음...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말과 함께 처음 내게 방문목적을 물었던 아이언스톰의 조종석 유리창이 열렸다.
"귀족들이 보낸 테러리스트인 줄 알았습니다."
짧은 갈색 머리의 용병이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용병단도 오고갈텐데 이 정도 병력에 긴장하다니 좀 이해가 안되는군."
"얼마 전에 협회장님이 또 귀족들의 영입제안을 거절하셔서 경계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그때 데스윙의 정신파가 전해졌다.
- 용병협회장과 귀족가문의 영입전은 유명합니다.
'영입전?'
- 귀족들은 모든 5단계 강화시술자를 자기들 발 아래 두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용병협회장은 항상 거절해왔습니다.
그때 시스템이 메세지를 띄웠다.
< 제니퍼의 자료에 따르면 용병협회장 라이언 빈슨은 5단계 강화시술자 입니다 >
< 그는 엄청난 폭발능력을 지녀 초토기사라는 이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
< 라이언 빈슨은 용병이 귀족들의 사병화되는 걸 반대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귀족들의 영입제안을 거절해왔습니다. >
'그때마다 귀족들이 테러를 자행한 건가?'
시스템 메세지를 읽은 내가 묻자, 데스윙이 대답했다.
- 용병협회에 대한 테러와 용병협회장 개인에 대한 암살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난 데스윙의 설명을 듣고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아이언스톰의 운전자는 내 행동을 수긍하는 걸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아서님은 입장하시고 나머지 차량은 저희가 안내하는 공용주차장으로 이동해주셔야겠습니다."
짧은 갈색머리 용병이 조종석에 서서 말했다.
"그렇게하지."
내가 대답하자, 내 앞의 도로가 비스듬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홀로그램 안내에 따라 이동해주십시오."
갈색머리 용병은 거기까지 말하더니 다시 조종석 창문을 내렸다.
난 홀로그램의 화살표 안내에 따라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지하 3층에 차를 세우고 홀로그램의 안내에 따라 35층에 도착했다.
주차장엔 빈곳이 드물고 엘리베이터도 만원에 가까웠다.
하지만 35층을 찾은 손님은 나뿐인 것 같았다.
- 정규 용병단 설립인가
난 홀로그램 안내에 따라 한 접수처 앞에 섰다.
"어떻게 찾아오셨죠?"
그러자 검은 고글을 쓴 곱슬머리의 20대 중반 남성이 내 배틀슈트와 얼굴을 확인하더니 친절하게 물었다.
"용병단을 설립하려고 합니다."
"성함이?"
"아서."
"성은요?"
"그냥 아서입니다."
그때 곱슬머리가 쓴 고글 안쪽에 초록 불빛이 번쩍였다.
나에 대한 정보가 고글에 출력되는 모양이었다.
"음... 4등 시민 아서님?"
난 가만히 고개만 끄덕여보였다.
"확인해보니 아직 용병등록도 안 하셨네요. 전적이 없으면 용병단 설립이 어렵습니다."
난 지금까지 크릭에게 의뢰를 받아서 처리해왔다.
하지만 곱슬머리 남자의 말을 들어보니 용병등록이 자동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용병등록이 안되어있다고?'
< 용병등록 관련 데이터베이스 검색 결과입니다. >
< 용병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용병들은 '미등록 용병'으로 구분되며 의뢰주와 분쟁 시 협회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
< 협회등록 시 등급에 따른 연회비 지출이 발생합니다. >
'그 동안은 비정규직 용병이었다는 뜻이군.'
하지만 나는 할말이 있었다.
"좀비인자 매입계와 직접 거래해서 공헌도는 갖췄습니다."
"잠시만요. 어?"
곱슬머리 남자는 허공을 몇번 터치하고는 조금 놀란 듯 했다.
아무래도 고글에 출력되는 화면을 조작해 내 정보를 확인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
용병단 설립인가 담당자인 파커 스펠만은 고글에 출력된 내용을 보고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 4등 시민 아서.
- 누적 보상 : 15억 크레딧
- 공헌도 : 5,000 점
- 특이사항 : 비공개.
'비공개?'
그는 곧바로 특이사항을 터치했다.
그러나 고글엔 경고문구만 뜰 뿐이었다.
- 파커 스펠만 과장 님은 해당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습니다.
파커 스펠만은 곧바로 출장나간 상급자가 맡겨놓고 간 카드키를 꺼내들었다.
- 마일즈 워싱턴 본부장님의 권한으로 비공개 사항을 공개합니다.
- 4등 시민 아서.
- 누적 보상 : 15억 크레딧
- 공헌도 : 5,000 점
- 특이사항 : 청소의뢰 2건.(의뢰 취소)
'의뢰 취소?'
청소의뢰란 해당 목표를 죽여달라는 의뢰를 뜻했다.
거래 당사자 외엔 열람이 불가능한 이유였다.
문제는 이런 청소의뢰는 의뢰가 취소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었다.
파커 스펠만이 의뢰 취소 부분을 터치하자, 관련자료가 출력되기 시작했다.
- 의뢰번호 : 04-2547
- 의뢰자 : 브라우스 건설 사, 로버트 골드 상무
- 의뢰대금 : 10억 크레딧
- 담당 용병 : 3단계 용병 조안 하트 외 30인(위약금 3억 크레딧 지불 후 의뢰 포기)
- 의뢰번호 : 04-2548
- 의뢰자 : 노이만 반도체 사, 루이 노이만 회장
- 의뢰대금 : 50억 크레딧
- 담당 용병 : 할리 칼렌 용병단(위약금 15억 크레딧 지불 후 의뢰 포기)
'조안은 조무래기지만... 할리 칼렌 용병단은 청소만 전문으로 맡는 용병단이야.'
다른 곳도 아니고 청소전문 용병단이 청소의뢰를 15억 크레딧에 달하는 막대한 위약금까지 지불하면서 포기했다?
명성이 날아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만큼 상대가 강하거나 뒷배가 든든하다는 의미였다.
'도대체 무슨 의뢰였던거지?'
파커 스펠만은 허공을 터치해 의뢰번호 04-2548를 눌러 상세보기를 선택했다.
- 의뢰번호 : 04-2548
....
- 세부사항
-- 노이만 반도체에서 개발한 최신 칩셋인 '뉴로모픽칩 NS-059'의 설계가 유출됨.
--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멀레이니 반도체에서 '뉴로모픽칩 NS-059'와 유사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함.
-- 이로인해 노이만 반도체의 피해는 9천억 크레딧을 넘는 것으로 추산됨.
-- 의뢰주는 타겟에 대한 정보출처를 밝히지 않음.
-- 의뢰주는 4등 시민 아서를 타겟으로 명시함.
-- 목표는 타겟의 머리를 잘라오는 것.
-- 의뢰대금은 50억 크레딧.
-- 타겟이 하루만에 3레벨 좀비 머슬의 머리 5개를 좀비인자 매입계에 팔았다는 소문이 풀림.
-- 담당 용병들이 위약금을 물고 의뢰를 포기함.
하지만 세부사항을 읽고도 파커 스펠만의 눈엔 50억 크레딧이라는 어마어마한 의뢰대금만 보였다.
그건 그의 월급을 200년 넘게 모아야할만큼 큰 돈이었다.
그는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4등 시민 아서에게 말했다.
"공헌도는 갖추셨네요. 하지만 미등록 용병인 상태로 용병단 설립요건을 갖추시는 경우는 드물어서 상부에 문의해야할 것 같은데, 잠시 앉아서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가 디바이스를 조작하자, 아서가 디딘 바닥이 올라오며 의자 형태를 갖췄다.
아서는 그 모습을 보곤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본 파커 스펠만은 곧바로 계단을 향해 움직였다.
위 아래 계단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파커는 곧바로 대포폰을 이용해 루이 노이만 회장에게 통신을 요청했다.
하지만 상대는 곧바로 거절해버렸다.
어쩔 수 없이 파커 스펠만은 문자를 남겼다.
- 4등 시민 아서. 앓던 이를 뽑고 싶지 않으십니까?
***
상부에 문의할 것이 있다고 사무실을 나섰던 설립인가 담당자는 10분이 지난 후에야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보통은 저희 협회에 용병등록을 하신 후에 공헌도를 쌓으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상부의 상부까지 문의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담담하게 물었지만 속 마음은 달랐다.
'밀러 쉴더스에서 1천억 크레딧이나 받아먹었는데, 설립인가부터 반려되면 곤란하겠군.'
크릭이 급히 요청한 카니에스 마을 건처럼 많은 좀비 떼와 싸울 수 있는 의뢰는 흔치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의뢰대금이 형편없고 정보가 부족해서 위험한 의뢰들뿐이겠지.'
용병단을 설립하고 정규편제 용병단의 규모에 맞는 의뢰대금을 받으려면 용병협회와 줄을 댈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정규편제 용병단이나 맡아야할 의뢰를 크릭에게 맡기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허가가 나왔습니다."
"잘됐군요."
"아서 님은 용병단 설립요건 세 가지 중 공헌도와... 84기의 전투용 안드로이드면 최소 구성인원도 갖추셨다고 봐야겠군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승급의뢰는 해결하셔야합니다."
"승급의뢰요?"
나는 처음 들어보는 승급의뢰라는 절차를 듣고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데스윙이 말했다.
- 아! 제가 주군께 미리 말씀드렸어야했는데. 랭커로 승급한 지 너무 오래돼서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데스윙의 반응을 보니, 담당자가 지어낸 헛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승급 의뢰가 정확히 뭐지?'
- 용병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의뢰입니다. 정식용병으로 등록할 때, 랭커로 인정받을 때 그리고 정규편제 용병단을 설립할 때 거쳐야할 통과의례입니다.
모든 단계에서 자신의 실력을 의뢰를 통해 증명해야한다.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체계였다.
그때 담당자가 내게 말했다.
"정규편제 용병단에 준하는 실력을 갖췄는가? 그건 실전이 아니면 평가할 수 없는 부분이죠."
담당자가 설명하는데 그의 명패가 눈에 들어왔다.
- 파커 스펠만
"아서님께서는 최소 구성인원만 갖추신 상태라서 위험부담이 있으실 수 있는데, 어떻게... 승급의뢰를 받으시겠습니까?"
"어떤 의뢰입니까?"
내가 묻자, 파커 스펠만이 허공을 터치했다. 그러자 내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띄워졌다.
- 승급의뢰
- 성격 : 유적발굴
- 위험등급 : 4 급
- 의뢰대금 : 100억 크레딧
- 의뢰일정 : 10일
- 의뢰목표 : 의뢰자 조셉 메를린을 도와 해당 유적에서 잃어버린 기술 발굴
- 특이사항 : 해당 지역은 로두스 성국과 팔미라 시 그리고 5레벨 좀비 '마운틴 퀸'의 권역 중간지점이므로 유사시 로두스 성국이나 엘리트좀비의 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음.
"아서님께서 한번의 전투에서 3레벨 좀비의 머리를 다섯 개나 베어오셨다는 점은 감안해서 승급의뢰를 정했습니다. 뭐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얼마든지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파커 스펠만은 처음과 달리 아주 친절한 태도였다.
상부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내 전공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들은 모양이었다.
"의뢰 일정이 10일인데, 그 안에 잃어버린 기술이란 걸 발견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대로 돌아와도 됩니까?"
"그건 의뢰자이신 조셉 메를린 님이 결정하실 겁니다."
"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고 계속 발굴하길 바란다면 그 사람 말에 따라야하는 겁니까?"
"그럼 하루마다 10억 크레딧을 추가로 부담해야합니다. 의뢰금을 추가로 받고 의뢰를 수행하실지는 그때 의뢰자와 아서님이 합의하시면 됩니다."
"흠..."
하루에 10억 크레딧이란 돈은 거절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기간트워리어급 배틀슈트로 모두를 무장시키려면 한참 부족하지.'
내가 고민하는데 파커 스펠만이 설명을 덧붙였다.
"일단 의뢰기간이 10일이니까 추가 일정은 아서님이 거절하셔도 무방합니다."
"전리품은 어떻게 분배합니까?"
"전리품이요?"
파커 스펠만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전리품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듯한 태도라 의아했다.
'왜 저렇게 놀라지? 유적발굴 의뢰가 전리품 회수를 못할정도로 어렵나?'
- 위험등급 4등급이면 그 정도 까지는 아닙니다. 처음보는 비정규 용병인데 의뢰금을 넘어서 전리품 회수까지 생각해서 그런것 같습니다.
데스윙의 의견을 들은 난 파커 스켈만에게 다시 질문했다.
"잃어버린 기술은 의뢰자 몫이라고 쳐도, 그 과정에서 좀비나 로두스 성국의 병력과 마주친다면 좀비의 목이나 적 포로를 사로잡을 수 있는 문제 아닙니까?"
"의뢰자가 싸움에 참여한다면 기여도에 따라 분배하는 게 원칙입니다."
"합리적이군요."
의뢰주가 엄청난 병력을 데려오지 않는 한, 대부분의 전리품은 내가 몫이 될거란 뜻이라 마음에 들었다.
파커 스펠만은 책상 위로 양손을 마주잡더니 말했다.
"그럼 승급의뢰를 받으시겠습니까?"
"받죠."
"통신망을 열어주시면 해당 의뢰에 관한 정보를 전송하겠습니다."
파커 스펠만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
4시간 후 장벽 엘리베이터.
미리 약속한대로 22번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아서님!"
내가 내리자마자 바딤 하사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해왔다.
"그래. 내가 부탁한 건?"
"갑작스럽게 말씀하셔서 삼중수소 카트리지는 30개 밖에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나도 의뢰일정이 열흘이나되는 의뢰를 승급의뢰로 받을 줄은 몰랐어."
"이렇게 빨리 용병단까지 설립하시다니, 제가 줄을 잡아도 제대로 잡은 것 같습니다. 헤헤!"
바딤 하사는 마치 파리처럼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이상할 정도로 친절하게 구는 군... 아니, 이건 비굴한 수준이야.'
그때 제니퍼가 정신파를 보내왔다.
- 밀러 쉴더스와 계약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게 아닐까요?
'밀러 쉴더스의 내부정보를 바딤 하사 따위가 접할 수 있다고?'
난 의아한 마음에 미끼를 던져보기로 했다.
"대금은 돌아와서 지급하지."
"아유~ 제가 아서님께 대금 걱정을 하겠습니까?"
그는 내게 점수를 따고 싶은 모양이었다.
'뭔가 냄새를 맡긴 했나보군.'
난 아무렇지 않은 척 바딤 하사에게 물었다.
"의뢰자님은?"
"일단 위병소에 모셔뒀습니다."
내가 묻자, 바딤 하사가 위병소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