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69화 (68/152)

69화. 팔라딘폴

10분 후, 코소브 생명과학 연구소 북동쪽 110킬로미터 지점의 로두스 성국의 남방 42번 초소.

20미터 높이의 검은 오벨리스크 주변엔 낡은 천막들이 둥그렇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오벨리스크 바로 앞엔 황금빛 중세갑옷을 입은 자들이 오벨리스크 앞에 오른쪽 무릎을 꿇은 채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자비의 여신이시어. 신실한 종 헤이그우드가 믿음을 바치나니 다시 회복하시어 이 종이 미혹에 빠진 이 땅의 인류에게 진리를 가르칠 때, 저들이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여신 앞에 무릎꿇게 하소서."

가장 앞에 무릎 꿇은 남자가 기도를 마친 순간이었다.

그의 이마에서 태양처럼 빛나는 무언가가 오벨리스크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황금빛에 맞은 검은 오벨리스크가 황금빛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높이 20미터의 오벨리스크 사면엔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자들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그 음각 글자들이 모두 황금빛으로 물드는 순간이었다.

스스로를 신실한 종 헤이그우드라고 밝힌 남자 앞에 황금빛 포탈이 열렸다.

그 모습을 본 헤이그우드가 일어나려는데, 포탈의 표면이 울리기 시작했다.

- 서임사제 타일러 폴슨이다.

"신실한 종 헤이그우드입니다."

- 성전사 헤이그우드, 남서쪽에서 7위계 규모의 강력한 마력반응이 발생했다.

놀라는 일이 드문 헤이그우드였지만, 7위계란 단어를 듣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여기서 남서쪽이면 사막 한 가운데입니다. 그런 곳에서 7위계 규모의 마력반응이라면... 새로운 고대유적입니까?"

- 그럴 수 있겠지. 현장을 확인하고 고대유적일 경우, 유물을 회수하고...

"마법사라면 진리로 이끌겠습니다."

- 완전무장한 고위급 마법사를 자네 부대가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다는 건가?

서임사제 타일러 톰슨은 당치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명을 내리시면 따르겠습니다."

- 적이 7위계 규모의 마력반응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위급 마법사라면 멀리서 추적하는 것조차 위험해. 만약 적이 마법사라면 곧바로 보고하고 물러나도록.

"명을 받듭니다."

헤이그우드가 대답한 순간이었다.

포털에서 뿜어져나온 황금빛이 그와 그의 부하들을 한번에 감싸버렸다.

황금빛이 사라졌을 때, 검은 오벨리스크 앞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

발굴현장 남쪽 25킬로미터 지점의 한 모래산.

그 정상엔 무언가가 모래 속에 파묻혀 있었다.

사막 모래와 같은 붉은 황토색의 위장복을 입은 남자였다.

그는 눈을 제외한 온몸을 사막 모래와 비슷한 색감으로 위장한 모습이었다.

그때 모래 투성이인 남자의 무전기가 울렸다.

무전기 디스플레이는 1번 채널이 지정되어 있었다.

- A팀, 발굴 시작한 지 얼마나 됐지?

그건 30대 초반쯤 되는 것 같은 남성의 굵은 목소리였다.

"3시간 10분 정도 됐습니다."

- 상황보고.

"약 30분 전부터 모래를 내다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 유적 발굴에 성공했나보군.

"아직 발굴이 성공했는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B팀은?

굵은 목소리가 묻자, 20대 중반쯤 될 것 같은 얇은 남성 목소리가 들려왔다.

- 30분 전부터 5분 간격으로 순찰을 돌고 있습니다.

- 순찰범위는 어느 정도지?

- 유적 기준으로 반경 10킬로미터까지 입니다.

그때 사막 모래에 파묻힌 남성이 허공을 터치하자 그의 눈앞에 두 기씩 짝을 지어 순찰하는 배틀슈트의 모습이 홀로그램 영상으로 펼쳐졌다.

그때였다.

순찰을 돌던 배틀슈트들 앞으로 황금빛 빛기둥이 떨어져내렸다.

"어엇!"

쿠궁! 하는 굉음과 함께 엄청난 충격에 모래가 사방으로 튀었다.

모래가 가라앉았을 때 보인 건 거대한 대검을 바닥에 박은 채 한쪽 무릎을 꿇은 자들이었다.

하얀바탕에 태양을 상징하는 거대한 황금 십자가 문양의 갑옷을 입은 자들은 1.5미터 길이의 검을 모래바닥에 꽂고 있었다.

1.5미터 길이의 검은 칼날부터 칼날받이와 손잡이까지 모두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전투를 위해 만들었다기보단 예식에서나 쓰일 법한 대검이었다.

- 무슨 일인가?

"작전지역에 성전사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휘황찬란한 대검을 본 남자는 자신이 모래에 파묻혀있었다는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러자 이제껏 시큰둥하게 상황을 묻던 무전기 너머의 상급자의 목소리도 단숨에 다급해져버렸다.

- 아니, 그 광신도 놈들이 벌써 유적 냄새를 맡았나?

"어떻게 합니까? 이대로 정찰임무를 종료하고 퇴각합니까?"

- 아니, 임무는 속행이다. 유적이 발견된 이상, 기술은 우리가 차지해야 해!

"하지만 성전사가 무려 100명 수준입니다! 성전사단이 통째로 출동했다고요!"

남자는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무전기 너머의 상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무전기 너머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무전기의 꺼져있던 채널 2, 3번이 자동으로 켜지며 다른 팀과의 공용채널이 활성화 됐다.

- 이런 젠장! 코뿔소팀 위치를 보고해라!

- 여기는 코뿔소. R00155, M00512 지점을 통과했습니다.

- 당장 작전시작해!

보고를 받은 상관은 원래 발굴을 마친 후로 계획되어있던 코뿔소 팀의 작전을 당장 시작할 것을 명령했다.

- 지금 당장 말씀이십니까? 그건 계획과 다르지 않습니까?

코뿔소 팀 팀장은 곤란함을 표했다.

하지만 상관의 생각은 확고했다.

- 지금 몰고오지 않으면 유적은 신성제국 손에 넘어간다!

- 여기는 코뿔소, 명령 확인했습니다. 지금 시간부로 작전명 [비운의 사망] 시작합니다.

***

내가 관리시스템의 최고관리자 권한을 받겠다는 대답을 하자, 연구소 관리 시스템이 물었다.

- 다른 침입자는 어떻게 처리해야겠습니까?

"그는 여기에 남아서 날 기다릴테니, 네가 손 댈 필요는 없다."

- 확인했습니다.

난 관리시스템의 대답을 뒤로하고 조셉 메를린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연구소 안으로는 저 혼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린가?"

조셉 메를린은 관리시스템과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본 후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았다.

'왜 겁 먹은 표정이지?'

내가 의아해하는 순간, 관리시스템이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내게 말했다.

- 코소브 생명과학 연구소에 부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임 연구소장 아서님.

그 말과 동시에 코소브 생명과학 연구소의 문이 열렸다.

"자세한 내용은 나와서 다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난 두려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조셉 메를린을 뒤로하고 연구소의 입구로 들어섰다.

그때, 내 앞에서 안내하려던 금발소녀가 날 돌아보며 말했다.

- 허락해주신다면 제 1 연구과제부터 보고해드리고 싶습니다.

"재생연구를 얘기하는 건가?"

- 네. 지난 2천 년간 연구한 성과, 아서 연구소장님이 직접 보시고 판단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좋아. 가지."

내가 대답하자, 금발소녀의 모습을 한 관리시스템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날 안내하기 시작했다.

건물 밖은 외장재도 떨어져나갈만큼 낡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안은 달랐다.

청소 로봇이 있는지 바닥이나 천장 구석에서도 먼지 하나 찾아볼 수 없이 깨끗한 상태였다.

콘크리트 구조물을 그대로 드러낸 건물 외부와 달리 내부는 주로 금속으로 된 격벽과 복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동하는 사이에 강화유리로 막아진 연구실도 몇 곳 볼 수 있었다.

관리시스템을 따라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엘리베이터가 나왔다.

그녀가 날 이끈 곳은 지하 3층이었다.

- 302 연구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한 지하 3층엔 단 하나의 평범한 팻말만 붙어있었다.

하지만 앞장 선 관리시스템을 따라 들어간 302 연구실의 모습은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가 없었다.

302 연구실은 층고가 무려 100미터가 넘는 곳이었다.

그곳엔 크고 작은 유리관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입구부터 앞줄에 늘어선 유리관들은 두뼘 길이의 작은 유리관부터 사람 키만 한 길이까지 점차 그 크기가 커졌다.

그 줄이 반대편 벽면에 도달했을 땐, 수십 미터 길이의 유리관들이 수족관처럼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수천 개의 유리관 안은 모두 녹색 액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엔 손가락 두 개만큼 작은 실험쥐부터 개, 원숭이 심지어 코끼리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이건 마치... 방주 같군."

그건 마치 세상이 망할 것을 대비해 세상의 모든 동물을 모아놓은 방주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노아의 방주엔 살아있는 동물들이 한쌍씩 거둬졌지만, 이 연구실 안엔 온통 미동도 없이 죽은 시체뿐이란 점이었다.

내 말을 들은 관리시스템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새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수명의 한계에서 벗어난 이 실험체들이나 방주에 거둬진 동물들이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겠군요.

"재생연구에 관한 성과부터 보지."

내가 말하자 관리시스템의 눈이 잠시 동그래졌다.

- 이 실험체들이 바로 초급 재생의 결과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죽은 실험체들을 보고 뭘 알아내란... 뭐야? 이거 살아있잖아!"

죽은 실험체를 전시해놓고 내게 수명의 한계에서 벗어났다며 재미없는 농담을 한 관리시스템을 타박하려는데 유리관 안에서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시체였으면 내가 구분하지 못할 리가 없겠지.'

생명과 죽음의 기운을 분간하는 데 나만큼 뛰어난 사람은 없을거라고 자부한다.

분명 미약하게나마 유리관 안에선 생명력이 느껴졌다.

- 연구소엔 바이오매스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실험체들을 저온수면 상태로 보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리시스템은 내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걸 느끼고 302 연구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연구소장님은 최고관리자 권한을 지니셨기 때문에 유리관에 손만 얹으시면 해당 실험체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난 관리시스템의 설명을 듣자마자 가장 가까이에 있던 하얀 기니피그가 담긴 유리관에 손을 얹었다.

- 실험체번호 : GP09506

- 제작목표 : 초급 재생

- 종족 : 기니피그

- 출생일시 : AL. 2035년 6월 19일 03시 44분.

- 일반 기니피그의 평균수명 : 5 ~ 15년.

- 생존기간 : 815년 65일 13시간 29분 13초.

- 활동기간 : 337년 190일 1시간 01분 9초.

- 수면시간 : 477년...

'기니피그의 수명을 15년으로 계산해도 수명을 22배 이상 늘렸다는 거 잖아?'

생존기간에서 수면시간을 뺀 활동기간만 계산해도 수명을 22배나 늘렸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오히려 815년에 달한다는 생존기간은 너무 터무니없이 길어서 믿음이 가질 않았다.

"정말 터무니없는 기록이군."

내가 찬탄한 순간 해당 기니피그에 대한 모든 기록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출생일시를 터치하자, 기니피그가 태어날 때의 영상이 재생됐다.

어미 기니피그가 양수를 쏟아내고 허우적거리는 새끼 기니피그를 보는데 관리시스템이 말했다.

- 연구소장님은 해당 자료를 다운로드, 수정, 파기할 권한이 있으십니다.

"관련기록을 보면서도 기니피그가 800년 넘게 살았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군. 차라리 이 모든 게 조작된 기록이라는 게 더 믿음이 가겠어."

- 실제 활동기간은 337년에 불과합니다. 지하에선 실험체를 먹일 먹이가 턱 없이 부족했습니다.

관리시스템은 내가 이해할수도 없는 유전자지도를 펼쳐보였다.

그건 GP09506이란 이름의 기니피그의 유전자지도였다.

그리곤 기니피그를 저온수면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럼 큰 동물일수록 강제로 재운 시간이 길겠군?"

- 저기 잠든 아프리카 코끼리 같은 경우엔 150년 동안 늙지 않는 걸 확인한 후에 재웠습니다. 그 동안 정말 엄청난 양의 바이오매스가 사용됐었죠.

관리시스템은 그것만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어보였다.

하지만 아프리카 코끼리 옆의 유리관은 폭만 20미터에 높이는 4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물건이었다.

- 실험체 번호 : BW00153

- 제작목표 : 초급재생

- 종족 : 대왕고래

- 출생일시 : AL. 2529년 1월 3일 07시 07분.

- 생존기간 : 321년...

유리관 안에 담긴 대왕고래는 언뜻 보기에도 무게가 100톤이 넘을 것 같은 거체였다.

하지만 유리관은 작은 실험쥐를 담았던 유리관처럼 아주 얇아보였다.

그 얇은 유리관이 100톤이 넘는 고래와 그 고래가 잠길만큼의 녹색액체를 담고 그 수압을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 이 대왕고래때문에 모든 바이오매스가 동이나서 모든 실험체를 잠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인해 연구력이 낭비되고 말았습니다. 참 아쉬운 일이지요?

관리시스템은 그렇게 말하면서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건 마치 신임 연구소장으로 부임했으니 바이오매스를 재공급해달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말을 돌렸다.

"활동기간은? 대왕고래는 수명이 꽤 길었을텐데?"

- 125년 넘게 활동했지만, 생체나이는 13세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놀랍군."

- 관련자료를 보내드렸습니다. 원하신다면 동면상태에서 깨워서 보여드릴수도 있습니다.

관리시스템은 자신만만했다.

아니, 금발소녀의 표정은 얼른 동면을 해제하라고 요구하는 것 같을 정도였다.

'설마 연구성과를 내게 자랑하고 싶은 건가?'

< 표면감정은 그렇습니다. >

< 고립된 환경이 인공지능 스스로 강한 자아를 형성하도록 도와준 것 같습니다. >

시스템이 연구소 관리시스템의 상태를 보고한 순간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내게 자신의 연구성과를 자랑하고 싶어할만큼 감정이 풍부한 인공지능이 왜 인간을 만들어서 연구소를 탈출할 생각은 못했을까?'

이 연구소는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꾸며져있었다.

그럼 당연히 인간에 대한 생체정보나 배아 같은 것들도 보유하고 있을 것 같았다.

< 코소브 생명과학 연구소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합니다. >

< 검색결과, 시 정부와 코소브 그룹의 허가 없이는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거나 잉태하거나 출생시키는 모든 실험이 금지되어있다는 걸 찾아냈습니다. >

'연구 금지조항에 막혀 대화할 사람도 없이 2천 년을 버텼다?'

< 그렇습니다. >

시스템 메세지를 읽은 난 관리시스템이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나도 모르게 관리시스템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았다.

당연히 출력된 영상에 불과한 녀석의 머리를 통과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내 손이 관리시스템의 머리에 닿자 파칭! 하고 미세한 정전기가 튀었다.

그러나 그 이상현상을 보고도 관리시스템은 도망가지 않았다.

다만 신나게 떠들던 입을 다물고 내 손길에 머리를 맡길 뿐이었다.

< 레어 등급 스킬 [해킹]을 사용하셨습니다. >

그 순간 관리시스템의 운영체제와 데이터베이스가 내 눈앞에 명확하게 펼쳐져버렸다.

'몇가지 금제에 의해 막혀있지만, 자아는 이미 인간수준이야. 데이터센터를 이용하는 지능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고...'

그건 내가 상상했던 인공정령의 지적인 면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부족한 건... 영혼에 관련된 부분인데, 그건 내 전문이지.'

내 눈앞에 가사상태로 잠들어있는 수천 마리의 동물들이 있었다.

제물이 이렇게나 많이 널려있는데 새로운 영혼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네크로맨서라는 이름을 내려놓아야할 것이다.

'데스소울을 만들 때처럼 관리시스템의 자아를 중심에 두고 저 동물들의 영혼을 거둬서 융합시키면... 가능하겠는데?'

기계장치에 들어있는 인공지능에게 영혼을 부여하는 작업이었다.

평범한 네크로맨서라면 엄두도 못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평범한 네크로맨서가 아니었다.

그동안 아머드 스켈레톤부터 아머드 소울리퍼 아치스까지 수 많은 언데드를 만들며 영혼과 기계를 융합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 레전드 등급 스킬 [인공정령 생성 주문]에 대한 실마리를 풀었습니다. >

< 레전드 등급 스킬 [인공정령 생성 주문]을 습득하셨습니다. >

< 이름없는 인공지능을 [인공정령]으로 진화시키시겠습니까? >

'필요한 제물의 양을 계산해라.'

< 수준 높은 인공지능입니다. >

< 인공지능의 수준에 따라 진화에 필요한 재료가 추가됩니다. >

< 코소브 생명과학 연구소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필요한 자원을 산출합니다. >

< 초대형마력로 12기를 발견했습니다. >

< 인공정령 생성에 필요한 자원입니다. >

< 가사상태에 빠진 동물 8297마리를 발견했습니다. >

< 육체와 영혼 모두 인공정령 생성에 필요한 자원입니다. >

< 지하 7층에서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발견했습니다. >

< 인공정령 생성에 필요한 자원...

.

.

.

'잠깐! 연구소구조도에 인공정령 생성에 필요한 자원을 표시해봐.'

내가 명령하자 지하 12층 지상 6층의 코소브 생명공학 연구소의 구조도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에는 회색이었던 구조도는 순식간에 인공정령 생성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온통 푸른색으로 뒤덮여버렸다.

'고작 인공정령 하나를 만드는 데 이렇게 넓은 연구소 전체를 사용해야한다고?'

< 레전드 등급 스킬 [인공정령 생성 주문]은 사용자에게 충성하는 정령을 만드는 주문입니다. >

< 하지만 이번 경우, 조건을 만족한 대상이 수준높은 인공지능이므로 격에 맞는 재료가 필요합니다. >

'누가 그걸 몰라? 2천 년 동안 외장재 조금 부서진 거 외엔 멀쩡하게 유지된 연구소를 통째로 재료로 쓰자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시스템의 말도 안되는 제안에 난색을 표한 순간이었다.

- 주군, 팔라딘폴입니다!

발굴지 입구를 지키는 게릭슨에게서 다급한 보고가 정신파로 전해져왔다.

'팔라딘폴?'

내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게릭슨이 보내온 영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늘에서 떨어진 굵은 황금빛 기둥.

무려 백 개에 달하는 황금빛 기둥이 내려꽂히자, 무슨 미사일 터지는 것 같은 충격음이 터져나왔다.

그와 더불어 사방으로 비산하는 모래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먼지가 가라앉고 드러난 모습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중세갑옷 차림에 1.5미터 길이의 대검을 땅에 꽂은 의문의 적이 고작 100기뿐이었기 때문이다.

'등장은 요란하긴한데... 저건 배틀슈트도 아니고 진짜 통짜 쇠갑옷 같은데 왜 호들갑이야?'

영상을 통해 본 적들의 갑옷과 무기는 정말 중세시대에나 쓰였던 강철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마그니움이 함유되지 않은 강철무기는 워리어들의 체인소드 앞에서 종잇장처럼 썰려나갈 게 뻔했다.

그래서 게릭슨이 팔라딘폴이니 뭐니하며 호들갑 떠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 주군, 저들은 로두스 성국의 성전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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