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합성마법진 >
'평화적으로 해결할 순 없겠지?'
내가 묻자, 제니퍼가 대답했다.
- 성전사들은 인간은 납치해서 광신도로 만들고 강화시술자는 언데드나 다름없다며 학살하는 놈들입니다. 고대기술과 마법을 약탈하는 데 미친놈들에게 대화는 통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미친놈들을 위에 방치해둔 채, 속 편하게 지하에서 마법을 연구할 수는 없겠군.'
난 인공정령 생성은 뒤로 미루고 성전사들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내가 연구소를 나서자 입구에서 기다리던 조셉 메를린이 내게 물었다.
"인공자궁기술은 확보했나?"
"그보다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 일단 나왔습니다."
"심각한 문제?"
조셉 메를린의 표정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로두스 성국의 성전사단이 찾아왔다더군요. 우리가 연구소의 기술을 확보하려면 그 놈들 먼저 처리해야할 것 같습니다."
"아, 아니... 형님들이 바보도 아닌데, 로두스의 성전사단을 끌어들였을리는 없어!"
그건 마치 유적발굴이 방해받을 것을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한 어조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길 바랬지만, 내 형님들이 이번 기회에 날 죽이려는 것 같네."
난 그제야 조셉 메를린이 알렉스 메를린 회장의 여섯 번째 아들이란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남몰래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날 처음부터 감시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쫓아올 수 없었을 거야."
"아직 메를린 씨의 형님들이 성전사단을 이쪽으로 이끌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형님들께서도 고대유적이 탐나시지 않겠습니까?"
"그게 이상하긴 해. 난 공격이 들어온다면 좀비 떼를 유인해오는 정도를 예상했었는데, 성전사단이라니..."
유틀란트 시에서 처럼 좀비떼를 몰고와서 우릴 몰살시킨다면?
적들은 좀비가 지나가고 난 유적에서 온갖 보물을 얻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제니퍼가 설명한대로 로두스 성국의 성전사들이 고대기술과 마법을 약탈하는 데 미쳐있는 놈들이라면?
그들의 주의를 끄는 것만으로도 유적의 보물까지 빼앗길 게 뻔했다.
조셉과 난 그 부분이 이해가 가질 않았기 때문에 성전사들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그의 형들의 소행이라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일단 올라가봐야겠습니다."
내가 통로로 올라서려는데, 조셉 메를린이 내 팔을 붙잡았다.
내가 돌아보자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한 조셉 메를린이 날 올려다보며 물었다.
"성전사단과 맞서는 건 무모한 짓이야. 차라리 인공자궁기술만 확보하고 유적은 저들에게 넘겨주는 건 어떤가?"
그는 성전사단이 두려운 모양이었다.
'아니. 인공자궁기술은 몰라도, 유적을 넘겨줄 수는 없어.'
하지만 내 속내를 조셉 메를린에게 내보일 수는 없었다.
"이미 발굴지 앞까지 왔는데, 우리가 기술을 가지고 가는 걸 놔두겠습니까?"
"자네 안드로이드들이 막아준다면... 우리가 몸을 피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을 거야. 나랑 로렌으로 도망치세."
그때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 제니퍼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로렌 시에 대한 정보를 찾았습니다. >
< 팔미라 시 동쪽에 위치한 로렌은 바다와 인접한 항구도시입니다. >
< 팔미라 시의 기업들이 수중도시와 무역할 때 거쳐가는 무역항으로 기술수준은 팔미라 시에 비하면 낙후된 수준입니다. >
< 모든 면에서 낙후된 로렌은 팔미라 시의 도망자들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
"팔미라 시가 아니라 로렌으로 도망치자는 말씀입니까?"
"내가 유적을 찾았다는 걸 알았으니, 팔미라 시로 돌아가면 그들이 날 살려둘리가 없어."
그 말에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어떤 의심이 있었다.
"처음부터 다른 도시로 망명할 계획이었던 겁니까?"
"내가 인공자궁기술을 가져가면 후계구도가 뒤흔들릴텐데 잘나신 형님들께서 내가 자신들 위에 올라서는 모습을 두고 보겠나? 내가 살 방법은 망명뿐이야. 로렌에서 힘을 기르고 돌아오면 그땐 형님들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날 무시하지 못하실거야."
조셉 메를린의 얘기를 들어보니 애초부터 팔미라 시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인공자궁기술만 있으면 어디서든 대기업을 일으켜세울 수 있어. 자네가 날 도와준다면 부회장 자리를 넘기지. 어떤가?"
내가 말 없이 노려보자, 그는 아직 세우지도 않은 그룹의 부회장직으로 날 매수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난 의뢰내용을 속인 그의 장단에 어울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 전에 제게 진 3천억 크레딧부터 갚으십시오."
난 벙찐 얼굴을 한 조셉 메를린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준 후 계단을 올랐다.
***
내가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였다.
위장천막 밖에서 굵은 장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발굴 책임자는 누구인가?"
그건 분명 스피커를 이용해 확성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형스피커를 이용한 것만큼 크고 웅장했다.
'이상하게 거슬리는 목소리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난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기분이 나빠져버렸다.
"위장막을 거둬라."
내가 명령하자,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들이 위장막을 거둬버렸다.
99인의 중장갑보병들과 그들 앞에 나선 대표자는 그제야 내 옆과 뒤에 늘어선 사일런스스톰 7기와 80기가 넘는 배틀슈트를 본 모양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바쁘게 움직일 때, 황금투구를 벗어든 50대 남자가 말했다.
"난 자비로운 여신의 종이자, 로두스 남방군 소속 309 성전사단의 단장 척 헤이그우드다."
그는 갈색 곱슬머리에 얼굴 반을 뒤덮은 수염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팔미라 시의 용병 아서요. 여긴 우리가 먼저 발굴을 시작한 유적인데, 성전사단이 여기까지 무슨 일입니까?"
"이 땅은 여신의 것이니 딛지 못할 땅은 없다."
그가 말하기 무섭게 내 뒤에서 뛰쳐나온 조셉 메를린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건 헛소리다. 로두스 성국은 영토를 표시할 때 오벨리스크를 세운다. 하지만 이 유적 반경 100킬로미터 이내엔 오벨리스크나 신전이 없으니 영토라고 주장할 순 없지."
돌아보니 조셉 메를린은 목까지 붉게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화가 난 듯 했다.
하지만 성전사들이 두려운지 내 뒤에 숨을 뿐,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넌 누구냐?"
"아, 알 것 없다. 이 유적은 오래도록 우리가 연구한 끝에 발굴해냈으니 소유권은 우리에게 있다!"
조셉 메를린은 고서적 한 권을 내 손에 쥐여주며 헤이그우드에게 소리쳤다.
이 유적에 대해 오래 조사한 건 그의 외가인 벨루치 가문이었다.
하지만 강대한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조셉 메를린은 내게 고서적을 넘김으로서 나와 소유권을 나누겠다고 선언한 셈이었다.
나는 그에게 받은 고서적을 제니퍼에게 건네며 생각했다.
'이 놈은 의뢰내용에 유적발굴만 적어놨지. 하지만 형들이 자신을 공격할 걸 예상하고 있었어.'
그건 명백히 나와 용병협회를 속인 행동이었다.
'의뢰금 100억 크레딧은 너무 적고 3천억 크레딧도 이 놈 말만 믿고 기다리면 안되겠군.'
난 조셉 메를린을 어떻게 처리할지 대충 생각을 정리했다.
성전사단장 헤이그우드를 보니 그도 조셉 메를린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쥐새끼처럼 내 뒤에 숨어서 대답하는 꼴을 보였으니 무시당할 법했다.
"미망에 빠진 자들아! 여신의 자비를 받들라. 너희가 목 매는 그 악마의 술수와 과학기술이 너희를 구원으로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성전사단장 척 헤이그우드는 자신의 대검으로 내 사일런스스톰과 배틀슈트를 입은 워리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가 아직까지 이 땅에 발 붙이고 살아있는 건 모두 이스릴 여신께서 희생하신 덕분이다. 이스릴께서 좀비로드를 죽이지 않았다면 이 땅의 인간들은 한줌도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른 주장에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여신이 좀비로드를 죽였으면 그때 날 시체폭발로 죽이려고 했던 좀비로드는 뭐였지?'
그건 분명 좀비로드의 힘이 적어도 3레벨 좀비 머슬에게까지 이어져있다는 증거였기때문이다.
"저건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다. 고대유적이 탐나서 하는 개소리라고."
조셉 메를린은 자기 목소리가 헤이그우드에게 들킬까 두려운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속삭였다.
하지만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니, 이대로 성전사단에 유적을 빼앗기는 게 아닌지 걱정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전능하신 여신을 모시는 성전사들이 왜 고대유적을 탐내나?"
"옛 유적에 남은 사술을 찾아 없애기 위함이다. 이 유적에 좀비로드의 부활과 관련된 기술이 없다면 아서, 네게 돌려주도록 하지."
내가 묻자, 헤이그우드가 어린아이도 믿지 않을 헛소리를 해댔다.
"거, 거짓말이다! 이 세상에 너희 광신도들 손에 들어간 고대기술과 마법들이 다시 밖으로 나온 일이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조셉 메를린도 그 헛소리는 못 참겠는지 헤이그우드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한 손은 내 등을 붙잡고 몸을 반이나 숨긴 상태였다.
그는 분명 지하에서부터 성전사단과 맞서는 건 무모하다며 도망치자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막상 지상에 올라와 성전사단장과 대면하자, 누구보다 핏대를 세우며 이를 갈아대고 있었다.
'조셉 메를린이 발작하는 걸 보니, 성전사란 놈들이 약탈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것 같군.'
- 로두스 성국의 국교인 이스릴교는 마법과 고대기술에 대해 무차별적인 약탈을 자행해왔습니다. 그런 이유로 마법과 고대기술에 관심이 많은 귀족들과 성국의 사이는 좋지 않습니다.
내가 성전사단장의 행패에 고개를 내젓는데, 제니퍼가 설명을 보탰다.
'망명귀족의 피를 이은 반쪽짜리지만, 자기도 귀족이다 그건가?'
- 팔미라 시에선 골렘을 소유해야 귀족으로 인정받지만, 다른 도시에선 초상능력만 각성해도 귀족으로 대접받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제니퍼가 정신파를 보내온 순간이었다.
성전사단장 척 헤이그우드가 손잡이를 고쳐잡자, 그의 대검이 하늘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채재재쟁! 하는 칼울림이 연이어 이어졌다.
성전사단장이 대검은 치켜드는 모습을 본 성전사들이 하나된 동작으로 대검을 치켜든 결과였다.
"어리석은 자여. 성전사를 모독하는 건, 성국을 모욕하는 것과 같다. 당장 무릎꿇고 속죄해라! 그렇게 한다면 자비로운 이스릴의 가르침을 받들어 널 구원으로 이끌겠다."
헤이그우드가 조셉 메를린을 향해 명령조로 말했다.
조셉 메를린의 표정을 보니 대검을 쥔 광신도가 말하는 구원이 어떤 것인지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위로 치켜세운 대검 양쪽으로 보이는 그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어있다는 점이었다.
태양을 닮은 그 빛은 이상하게 신경에 거슬렸다.
- 주군, 홀리오러입니다.
'홀리오러?'
- 성전사들이 연마하는 신성력입니다. 홀리오러는 언데드를 불태우는 힘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래서 좀비 사냥에 있어선 배틀슈트를 입은 용병들보다 성전사를 더 높게 평가합니다.
난 데스윙의 설명을 듣고나서야 헤이그우드의 목소리와 눈빛마저 거슬렸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와는 상극인 힘이라... 아머드 스켈레톤들에게도 특화된 힘일지 궁금하군.'
내 언데드들은 모두 기계로 된 강화복을 뒤덮고 있었다.
과연 성전사들이 다루는 신성력이 아머드 스켈레톤에게도 통할지 궁금해진 이유였다.
"개소리를 다 지껄였으면 그만 꺼져라."
내가 도발하자, 헤이그우드의 얼굴이 악신처럼 일그러졌다.
그는 날 죽일 듯이 노려보며 외쳤다.
"신성을 모독한 자에겐!"
헤이그우드의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려퍼졌다.
"죽음뿐이다!"
그러자 그의 뒤에 도열한 성전사들에게서 그 못지 않은 고성이 터져나왔다.
성전사단은 정말 대검 한 자루만 들고 우릴 향해 달려들었다.
뜨거운 사막모래를 박차고 달려오는 성전사들.
그리고 그들 뒤로 튀어오르는 모래 기둥.
그들은 무거운 갑옷을 입고 뛴다고 상상하기 어려울만큼 민첩한 모습을 선보였다.
"아, 아서!"
그 모습을 본 조셉 메를린은 내 이름을 부르짖으며 내 뒤로 숨어들었다.
"톰 스티븐스, 1팀만으로 해결할 수 있겠나?"
내가 묻자 맥길용병단 출신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 톰 스티븐스가 대답했다.
"문제없습니다!"
난 그 대답을 듣고 성전사들을 향해 턱짓했다.
그 순간 내 좌측 사일런스스톰 옆에 도열해있던 31기의 배틀슈트가 출격했다.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순간가속해 20미터를 주파해버렸다.
같은 모래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도는 천양지차였다.
성전사들이 단거리 육상선수 수준이라면 워리어들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이었다.
워리어들에게 필요한 건 고작 2초였다.
2초만에 60미터를 주파한 31기의 워리어들.
성전사들이 그들을 발견했을 땐 이미 체인소드가 그들의 갑옷을 휩쓸고 있었다.
차자자자장! 하는 소름끼치는 쇳소리가 사막에 울려퍼졌다.
곧이어 허리가 반으로 잘린 성전사들이 뜨거운 사막모래 위로 널부러졌다.
"커걱!"
"진리를 설파하라..."
"구, 구원!"
갑옷째로 반토막 난 성전사들이 하나 둘 유언을 남길 때였다.
그들의 갑옷이 하얗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1.5미터 길이의 대검과 주인을 잃고 모래 위를 뒹굴러다니던 투구도 하얀 빛을 내며 불타올랐다.
문제는 그 하얀빛이 사방으로 퍼지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성전사들에게만 비춰졌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내 눈은 그들의 갑옷과 투구, 대검에서 밝게 광열하는 글자에 머물러 있었다.
- 하나는 모두를 위해
'저 문장이 왜 저기에 써 있는 거지?'
영문으로 써진 문장과 그 문장에서 번져나오는 태양처럼 밝은 힘은 살아있는 성전사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 모두는 하나를 위해
그리고 그 힘을 받은 성전사들의 갑옷에도 하나의 문장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
그건 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너무 유명한 문구였다.
놀랍게도 그 문장은 마법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 새로운 마법진의 형식을 발견셨습니다. >
< 사용자 설정에 따라 [성국풍 문자형 마법진]을 자동저장합니다. >
< [양방향 합성마법진]을 습득하셨습니다. >
< [양방향 합성마법진]은 [홀리오러]를 익힌 성전사들의 힘을 더하는 방법입니다. >
< [홀리오러]를 익히지 않은 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하지만 내 눈은 여전히 밝게 빛나는 문장에 꽂혀있었다.
그 순간 마법진을 이루고 있는 문자의 획과 구도에 숨겨진 비의가 내 눈앞에서 낱낱히 분해되고 말았다.
< [양방향 합성마법진]을 분해하셨습니다. >
< [양방향 합성마법진]은 [자기희생주문]과 [합성주문]을 토대로 만들어진 마법진입니다. >
'자기희생주문은 주술적인 면이 강해서 마법진과 반응할 작은 염원만 있으면 작동시킬 수 있어. 하지만 합성주문은 육체와 영혼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이는 사용하기 어려운 고급주문이로군.'
처음엔 몰랐지만 이렇게 낱낱이 쪼개놓고보니, 어떤 원리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홀리오러를 조금만 더 관찰할 수 있으면... 데스소울을 이룬 언데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고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새로운 마법형식에 설레던 그때였다.
까가강! 하는 쇳소리가 내 상념을 일깨웠다.
돌아보니 톰 스티븐스가 이끄는 30기의 워리어들과 이제 50명밖에 남지 않은 성전사들이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체인소드가 성전사의 갑옷을 때릴 때마다 요란한 쇳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처음처럼 단번에 허리가 두동강 나는 일은 없었다.
제대로 맞으면 손가락 한두마디 깊이로 파일 뿐이었다.
< 적 성전사의 갑옷 강도가 획기적으로 증가한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
< 확보한 32건의 교전영상을 토대로 적 성전사의 갑옷 강도를 추산합니다. >
< 첫 접전 당시의 강도보다 152배 이상 증가한 강도입니다. >
문제는 평범한 강철갑옷이 체인소드의 초진동기능을 어느 정도 버티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때 꽝! 하는 굉음과 함께 한 기의 워리어가 모래바닥 위를 10미터나 나뒹굴었다.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 맥길 1-23호였다.
넘어진 워리어를 향해 달려드는 성전사의 칼날엔 황금빛 아우라가 맺혀있었다.
그건 내가 관찰하고 싶던 바로 그 홀리오러였다.
'처음엔 칼날에만 맺혀있더니 이젠 칼날 전체를 뒤덮고 있군.'
내가 보기에 홀리오러는 갑옷보다 칼날에 맺혔을 때,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그때, 성전사의 옆구리로 다른 워리어의 체인소드가 날아들었다.
맥길 1-05호였다.
성전사는 허공에서 예상치 못한 칼날에 맞자, 깡! 하는 쇳소리와 함께 모래에 처박혀버렸다.
체인소드에 실린 힘을 버티지 못한 결과였다.
그가 정신차리고 일어난 순간이었다.
그의 목 양쪽에서 날아든 워리어의 체인소드 두 개가 동시에 목을 때렸다.
성전사가 피할 틈도 없이 그의 목에서 쩡! 하는 쇳소리가 터져나왔다.
강도가 획기적으로 올라간 갑옷도 합동공격을 못이기고 찢겨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의 목 양쪽에서 핏줄기가 거세게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워리어 맥길 1-05호기는 곧바로 성전사들과 어우러져 난전 중인 1팀에 합류했다.
하지만 성전사에게 당해 모래 위를 10미터나 나뒹굴었던 워리어 맥길 1-23호는 연신 체인소드를 내리쳐 성전사의 목을 잘라버렸다.
내가 1팀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살아남은 성전사는 고작 다섯 명뿐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든 대검과 갑옷에 맺힌 홀리오러였다.
- 주군, 저것들은 워리어들이 상대할 수 없는 상대입니다.
그 모습을 본 데스윙이 정신파를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