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데스오라
그 시각, 고대유적 서쪽 30킬로미터 부근.
사막모래와 같은 황갈색 위장막으로 가린 작전통제센터.
임시로 조성한 작전통제센터 중앙엔 선명한 홀로그램 영상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건 성기사와 맞서는 게릭슨과 워리어 2기의 전투장면이었다.
"1개 성전사단을 5분만에 전멸시키다니..."
메를린 그룹의 다섯째, 쥬세페 메를린은 홀로그램 영상을 볼수록 처참하게 얼굴이 구겨졌다.
"도련님, 아직 성기사가 남아있습니다."
그때 사막모래와 비슷한 위장복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전신 위장복을 입은 그의 몸에서 드러난 곳이라곤 회색눈과 오똑한 코 뿐이었다.
쥬세페 메를린은 홀로그램 영상을 보고도 담담한 부하직원을 보고 속 터진다는 투로 따져물었다.
"저거 안보여? 도대체 조셉 그 모자란 놈이 어떻게 저런 용병단을 고용할 수 있었던 거지? 아버지께서 몰래 도와주신 거 아니야?"
"프리게리 집사님이 회장님의 개입은 없으셨다고 확인해주셨잖습니까?"
"그럼 조셉이 무슨 돈이 있어서 저런 병력을 고용했냐는 말이야! 네 눈엔 저게 팔미라에 발 들인지 두 달도 안된 안드로이드 제작자가 만들 수 있는 로봇으로 보이나?"
그는 작전통제센터 한 가운데에 비춰지는 홀로그램 영상을 가리키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곳엔 세 기의 안드로이드들이 머리 뒤에 후광이 비치는 성기사를 여유롭게 상대하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성전사단을 상대하려면 정규편제 용병단이 필요하다고 알려져있었다.
하지만 성전사단이 대부분 전멸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팔미라 시는 로두스 성국과 전면전이 벌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99인의 성전사가 죽고 남은 한 성전사가 성기사로 진화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저도 성전사단이 팔라딘화할 수 있다는 얘기만 들어봤지, 실제로 팔라딘화하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눈과 코만 내놓은 부하직원은 살짝 고개를 내저으며 쥬세페 메를린의 의견에 동조했다.
"랭커가 이끄는 용병단이 죽을 각오로 싸워야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인데, 안드로이드 세 기로 제압해버리다니..."
홀로그램 영상을 보고 쥬세페 메를린이 고개를 내저을 때였다.
홀로그램 영상 속에선 대검까지 빼앗긴 성기사가 안드로이들에게 팔다리가 구속된 채 끌려가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조셉이 고대유적을 차지하게 된다. 플랜 B를 실행해야겠어."
쥬세페 메를린은 그 모습을 보고 결단을 내렸다.
"도련님, 플랜 B는 저희가 포위당할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준 작전입니다. 현 상황이 전멸을 각오해야할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부하직원은 곧바로 우려를 표했다.
"당장은 아니겠지. 하지만 조셉이 고대유적을 차지하고 팔미라로 돌아오면? 넌 누구에게든 월급만 받아먹으면 끝난다는 거야? 그룹이 조셉에게 넘어가도 상관없으시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플랜 B를 실행했다간 유적도 망가질 가능성이 높아서 걱정한 것 뿐입니다."
"조셉이 차지하는 꼴을 보느니 무너진 유적을 파헤치는 게 낫다. 당장 시행해!"
쥬세페의 호통을 들은 부하직원은 허공에 뜬 홀로그램을 터치했다.
그러자 마이크 모양의 홀로그램과 그 옆으로 작전병력 배치도가 펼쳐졌다.
"통제센터에서 전한다. 모든 작전인원은 현 시간부로 작전지역에서 100킬로미터 이상 후퇴하라. 후퇴방향은 팔미라 시다."
그는 다시 한번 쥬세페 메를린와 눈을 마주쳤다.
쥬세페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정확히 60초 후 몰살 작전을 실시한다. 빠르게 현장을 이탈하도록."
부하직원은 통신을 보낸 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부디 여기서 일으킨 소란이 팔미라에까지 영향을 끼치지 않기를 바라는 표정이었다.
***
- 주군, 성기사를 잡아왔습니다.
게릭슨과 두 기의 워리어들이 헤이그우드의 사지를 제압한 채, 내 앞에 들고 왔다.
'보급형 배틀슈트로 만든 워리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는데, 비슷한 성능의 워리어들에게 기간트워리어급 배틀슈트를 입혀주니 3대 1로도 제압이 가능하군.'
게릭슨의 무릎에 짓눌려 모래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헤이그우드를 보니, 장비빨이 얼마나 중요한 지 실감이 갔다.
"으아아! 감히 네 놈이 성국의 성기사를 짓밟고도 무사할 성 싶으냐?"
헤이그우드가 소리치자, 작은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모래가 터져나갔다.
고함소리만으로 충격파를 발생시킨 것이다.
"아직 위세가 대단하군. 오른팔을 잘라라."
난 제니퍼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제니퍼가 왼손만으로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아무런 소음도 없이, 그녀의 머리 위에 길이가 3미터에 달하는 유리질의 칼날이 생성됐다.
< [흑마법]의 기초를 터득하셨습니다. >
< [흑마법]은 주문 대신 수인을 맺어 마법을 시전합니다. >
< 레어 등급 스킬 [윈드커터]를 습득하셨습니다. >
내가 의도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두 번이나 같은 마법을 시전하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수인의 변화와 의미를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주문 자체를 외울 필요가 없다는 건 상당한 장점이겠군.'
내가 흑마법 체계에 감탄한 순간 제니퍼가 수인을 맺은 왼손목을 까딱이는 게 보였다.
그녀의 왼손은 정확히 모래바닥에 처박힌 채, 사지를 제압당한 헤이그우드를 향해있었다.
그 순간, 쐐액! 하고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3미터에 달하는 유리질 칼날이 헤이그우드의 오른팔을 내리쳤다.
그 순간이었다.
헤이그우드의 뒤통수에서 빛나던 후광이 빛을 잃어버렸다.
그 대신 눈이 부실만큼 밝은 황금빛이 헤이그우드의 오른팔 전체를 물들였다.
그때, 칼에 맞은 헤이그우드의 어깨에서 캉! 하는 충격음과 노란 불꽃이 터져나왔다.
윈드커터에 직격당한 헤이그우드의 오른팔 갑옷은 작은 칼자국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헤이그우드가 아니라 제니퍼가 생성한 윈드커터에서 발생했다.
< [홀리오러]와 충돌한 [윈드커터]에 균열이 갔습니다. >
< 윈드커터를 복구하는 것보다 마법을 취소하고 새로 생성하는 게 더 적은 마력을 소모하는 길입니다. >
시스템은 유리질 칼날에 황금빛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간 윈드커터를 보고 사망선고를 내려버렸다.
'단지 방어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적대적인 대상에 균열까지 일으킨다...'
난 홀리오러의 수준 높은 운용방식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자, 제니퍼가 다시 양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길이 2미터 칼날 두께 1미터에 달하는 괴상망측한 윈드커터가 생성됐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난 그 윈드커터에 담긴 상당한 양의 마력을 느끼곤 제니퍼에게 물었다.
하지만 제니퍼는 수인을 맺은 양손을 거칠게 내리치며 정신파로 대답했다.
- 이 정도는... 문제없어요!
그 순간 헤이그우드의 오른팔 어깨에서 꽝! 하는 굉음과 함께 모래먼지가 터져나왔다.
"끄, 끄으으윽!"
모래먼지 사이로 헤이그우드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래가 가라앉았을 땐, 헤이그우드의 팔이 어깨부분에서 잘려나간 상황이었다.
하지만 두번 정도 호흡할 시간만에 어깨와 잘려나간 팔의 단면이 회복되어버렸다.
그의 어깨와 팔의 단면에서 빛나는 황금빛은 처음처럼 눈부시지 않았다.
헤이그우드의 미간에서 새로운 신성력을 생성해내는지 관찰해봤다.
하지만 소모한 홀리오러는 회복되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강해진 건 사실이지만, 일시적인 버프효과에 불과하다면 내 워리어들에게 사용하긴 어렵겠어."
- 로두스 성국이 성전사단을 희생해서 일시적으로 팔라딘화하는 건 유명합니다. 하지만 성전사단을 상대하는 자들은 그게 일시적인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기사의 위용을 막을 방법이 없어서 곤란을 겪는다고 들었습니다.
제니퍼의 설명까지 들으니 상황이 더 명확해졌다.
"우리 로두스는 백만이 넘는 성전사를 거느리고 있다. 곧 남방군 소속 성전사들이 달려올테니, 그때까지 목을 씻고 기다리거라!"
그때 헤이그우드가 나에게 이를 드러내며 소리쳐댔다.
하지만 이미 홀리오러 대부분을 잃어버려서 성기사의 위세를 떨칠 수 없는 그는 고함소리만으로 충격파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성전사가 백만이라니 농담이 과하군.'
성전사가 백만 명이면 잠시나마 성기사를 만 명이나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건 상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해지는 숫자였다.
- 로두스 성국에선 실제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성전사를 육성하고 있습니다.
'정말 100만 명의 성전사를 거느리고 있다고?'
난 제니퍼의 설명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 팔미라 시민들에게 알려진 바로는 10만 명은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헤이그우드가 10배나 부풀렸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엔 10만 명도 많았다.
'워리어를 십만 명씩 찍어낼 순 없지. 자기희생을 통한 병사 강화는 아머드 스켈레톤에 적용시키긴 부적절하겠군.'
로두스 성국이 성전사 한 명을 키우는 데 얼마를 쓰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난 워리어 한 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이 부담스러웠다.
그런 상황에서 어렵게 일으킨 워리어들을 소모품처럼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당분간은 로두스 근처엔 가지 말아야겠어.'
벌집을 건드렸는데, 상대할 방법이 없으니 내가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 주군, 몰이꾼이 5킬로미터 전방까지 접근했습니다.
그때 데스윙이 심각한 표정으로 남동쪽을 바라보며 보고해왔다.
나는 몰이꾼에 이끌려 좀비집단이 접근한다는 보고를 듣고 게릭슨에게 명령했다.
'이젠 쓸모없는 놈이니 목을 베어라.'
내가 명령하기 무섭게 게릭슨의 대검이 헤이그우드의 목을 갈라버렸다.
홀리오러를 대부분 잃은 헤이그우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 순간 헤이그우드의 갑옷에 황금빛 글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삶도 죽음도 이스릴께 바치라.
황금빛이 번뜩인 순간, 갑옷과 죽은 헤이그우드의 시체가 빛으로 변해 하늘로 치솟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마력차폐결계를 박살낸 황금빛은 붉은 배리어와 만나 튕겨나왔다.
그 순간 쿠궁! 하는 굉음과 함께 헤이그우드의 시체가 추락하고 말았다.
워리어들이 헤이그우드의 시체를 가져왔다.
사일런스스톰 조종석에서 내려다보니 헤이그우드의 갑옷이 타들어가 있었다.
정확히 '삶도 죽음도 이스릴께 바치라.'라는 글자가 적혀있던 부분만 불타 없어져버린 것이다.
'흠... 이 놈을 어떻게 한다?'
던전 오브 어비스를 플레이할 때, 성기사의 시체를 지키는 퀘스트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
'데스나이트를 만들려는 네크로맨서들한테는 성기사의 시체만 한 재료가 없다고 했었지.'
- 현대의 네크로맨서들은 데스나이트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때 제니퍼가 게임과 현실이 어떻게 다른지 일깨워줬다.
- 하지만 성기사의 시체라면 귀족들과 바이오기업들이 눈에 불을 켜고 원할 겁니다.
'대충 가격 대가 어느 정도일까?'
- 제가 참여해본 적은 없지만, 그런 귀한 재료는 B 구역의 경매장에서나 거래된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가격대는 100억 크레딧 단위는 아닐 겁니다.
최소한 천억 크레딧이란 뜻이었다.
천억 크레딧.
큰 돈이었다.
'그 돈이면 기간트워리어급 배틀슈트 33벌을 만들고도 남겠군.'
하지만 난 이미 왼손으로 죽음의 기운을 생성하고 있었다.
'이건 방금 전까지 강대한 홀리오러가 지나갔던 길이 그대로 남아있는 시체야. 데스나이트가 아니라 그보다 못한 급의 언데드를 일으켜도 내게 이득이다.'
난 천억 크레딧보다 새로운 언데드 소환주문을 원했다.
"레이즈 스켈레톤."
내가 주문을 외우자, 헤이그우드의 살과 피가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성기사까지 도달했던 시체라서 그런지 좀비들과는 달리 살이 타들어가는 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거기서 뿜어져나오는 연기도 적었다.
나는 성기사의 시체를 가지고 단순히 스켈레톤만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아머드 스켈레톤을 일으켜냈던 그때처럼, 새로운 언데드 주문이 탄생하길 바랐다.
그땐 이미 엄청난 양의 죽음의 기운을 생성시켜놓은 후였다.
내가 마법식을 살짝 조작하자, 일곱 기의 사일런스스톰을 모두 뒤덮을만큼 많은 죽음의 기운이 헤이그우드의 미간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죽음의 기운은 정확히 헤이그우드가 아바타를 이루었던 곳으로 소용돌이치듯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생성한 죽음의 기운은 너무 많은 양이었다.
데스소울을 형성하기도 전에 헤이그우드의 몸을 모두 채우고도 남을만큼 많았다.
내가 생성한 죽음의 기운은 마치 내 손발과 같이 선명한 감각을 전해줬다.
신성력이 모여 홀리오러를 이루고 끝내 아바타까지 형성한 미간.
그리고 그 미간으로부터 전신으로 뻗어나가는 홀리오러의 길까지!
그 성스러운 길을 죽음의 기운이 가득 채우자, 난 어떻게하면 신성력 대신 죽음의 기운으로 오러를 만들 수 있을지 깨닫고 말았다.
하지만 반물질 코어를 이룬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들이 사용하려면 여러 마력원과 충돌하지 않는 호환성도 지녀야했다.
내가 모든 변수를 검산한 순간,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 유니크 등급 스킬 [데스오러 생성]을 창안하셨습니다. >
< [데스오러 생성]은 죽음의 기운을 가공해 파괴적이지만 안정적인 힘인 데스오러를 만드는 스킬입니다. >
< 이는 호환성이 아주 높은 힘이므로 신성력을 제외한 다양한 에너지와 충돌하지 않습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데스오러 운용법]을 창안하셨습니다. >
< [데스오러 운용법]은 데스오러를 이용해 육체, 정신, 배틀슈트, 무기 따위를 강화하는 방법입니다. >
그건 홀리오러보다 한등급 높은 수준의 스킬이었다.
하지만 직접 익혀보지 않은 난 데스오러로 아바타를 형성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목이 잘려나간 헤이그우드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곤 눈에서 황금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몸 안을 가득 채웠던 죽음의 기운과 황금빛 신성력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황금빛 신성력은 한줌에 불과했다.
하지만 가공되지 않은 죽음의 기운과 충돌하자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뼈와 살점 파편이 튀었다.
배틀슈트를 입지 않은 일반인이 맞았다면 생명이 위험하고도 남았을 위력이었다.
'데스나이트에 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군.'
성기사의 시체라면 어디에 신성력이 남아있을지 모른다.
네크로맨서들이 그걸 모르진 않았을텐데, 굳이 성기사를 데스나이트의 재료로 삼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팔미라 시로 돌아가면 엘리엇 암셀에게 데스나이트에 대해 조사를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데스오러를 창안했다. 정신파로 전달할테니, 틈틈이 익혀 전력을 보강하도록.'
난 귀한 재료를 날려먹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부하들에게 정신파를 보냈다.
나와 연결된 모든 언데드들에게 데스오러와 데스오러 운용법을 정신파로 전달한 것이다.
- 주군, 죽음의 기운을 변형해 데스오러라는 힘을 만드시다니...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입니다.
- 암셀학파의 사령마력운용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보물입니다.
데스윙과 제니퍼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암셀학파의 사령마력운용법은 커먼 등급이고 데스오러는 그보다 3단계나 높은 유니크 등급으로 평가받았으니까.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후 부하들에게 전장을 정리하도록 했다.
"전투과정에서 망가진 워리어들을 진형 안으로 모아라."
- 주군, 제게 출격을 허가해주신다면 저 놈들이 다가오기도 전에 몰살시켜버리겠습니다.
데스윙의 등 뒤로 초록빛 화염날개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날아가 엘리트 좀비집단을 도륙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마운틴 퀸의 자식들이 어느 정도 수준이길래 엘리트라고 불리는지 한번 경험해보고 싶군."
내 말을 들은 데스윙이 다시 하늘에서 내려와 내가 탑승한 사일런스스톰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땐 이미 성기사의 칼질에 쓸려나갔던 워리어들이 내 발앞에 차곡차곡 쌓인 후였다.
허리나 가슴이 거의 두동강 날 뻔 한 워리어들부터 사지가 잘려나간 워리어들까지 아주 엉망진창이었다.
"죽음의 기운은 내가 보충해줄테니, 신체부터 복구해라."
내가 조종석의 유리창을 올리고 왼손을 뻗자, 검은 연기 같은 죽음의 기운이 망가진 워리어들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탄 사일런스스톰의 척추를 따라 연결된 소형핵융합로가 이이잉! 하고 에너지를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 사일런스스톰 1호기의 삼중수소 잔량은 98%입니다. >
핵융합과정에서 소모되는 삼중수소와 죽음의 기운을 흡수하며 빠르게 신체를 복구하는 워리어들을 보니, 90%까지 떨어지기 전에 모두를 복구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게릭슨이 이끄는 33기의 워리어들이 수송차량에서 헤비머신건을 꺼냈다.
기간트워리어급 배틀슈트를 입은 워리어들은 이미 헤비머신건을 들고 등엔 6천 발이 든 탄약통까지 맨 상태였다.
- 수송차량 탑차 위에 6기씩 자리를 잡는다! 나머지는 수송차량 사이에 자리 잡아라!
게릭슨은 죽음의 기운을 흡수하며 신체를 복구를 끝낸 워리어들에게 명령했다.
엘리트 좀비에 맞서기 위해 진형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때, 내 사일런스스톰 왼쪽 어깨에 서 있던 테리가 뛰어내리더니 헤비머신건 한 정을 받아서 다시 올라왔다.
"너도 쏘게?"
"저도 엘리트 좀비는 처음이라 조금 긴장되네요. 방해되는 일 없을 거에요."
테리는 엘리트 좀비와의 전투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새로 맞춰준 기간트워리어급 배틀슈트를 직접 테스트해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보다 더 도움될 방법이 있어."
난 테리와 다른 부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데스윙, 제니퍼, 게릭슨, 테리, 톰 스티븐스, 헨리 노턴은 사일런스스톰 2호에서 7호까지 탑승해서 제압사격을 도와라."
30미리 기관포를 12문씩 84문이나 장착시켜놓고 헤비머신건만 사용할 순 없었다.
내 명령을 들은 테리는 5호기로 향했다.
< 대량의 좀비집단이 1킬로미터 전방까지 접근했습니다. >
< 원활한 전장관리를 위해 사일런스스톰과 수송차량 그리고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들의 전투보조시스템을 통합관리합니다. >
시스템은 사일런스스톰과 아머드 스켈레톤들 그리고 수송차량의 시각센서까지 취합해서 전장의 정보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 모든 아군의 데이터 베이스를 통합해 원활한 정보제공을 돕겠습니다. >
< 확인된 좀비의 수효는 2레벨 엘리트 좀비 카라페이스 27,558마리, 3레벨 엘리트 좀비 크랩 1 마리 이상입니다. >
< 통합 데이터 베이스에 따르면, 각각의 엘리트 좀비들은 스프린터 및 머슬과 비슷한 외형이지만 하얀갑각을 두른 모습입니다. >
시스템은 두 종류의 엘리트 좀비의 사진과 영상을 좌측 시야에 띄워줬다.
< 통합 데이터 베이스에 따르면, 마운틴 퀸의 엘리트 좀비들은 땅 속을 자유자재로 이동한다는 정보를 획득했습니다. >
< 지상에 27,558마리의 2레벨 엘리트 좀비 카라페이스가 이동 중이므로 지하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어렵습니다. >
< 파악되지 않은 좀비가 지하에 있을 수 있습니다. >
< 지하에서 치솟는 좀비의 공격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온 순간이었다.
300미터 앞까지 다가온 몰이꾼의 드론이 갑자기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드론을 탄 놈이 도망치려는 것 같았다.
난 곧바로 놈을 조준했다.
'이 난리를 치고 도망치게 둘 줄 알고?'
내가 놈을 조준한 순간 내가 탄 사일런스스톰 1호기의 양쪽 어깨에 장착된 30mm 기관포가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과라라락! 하는 굉음이 터지자 하늘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내가 자신을 조준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드론을 탄 몰이꾼이 허공에서 급회전을 해댔다.
그건 마치 대공포화를 피하는 전투기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난 이미 헤비머신건과 기관포를 사용해본 경험이 풍부했다.
그 말은, 내 시스템이 다루는 사격보조 프로그램 또한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말과 같았다.
몰이꾼은 어느새 100미터 상공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그때 웬만한 성인남성의 중지보다 긴 30mm 탄의 탄두가 드론의 날개를 꿰뚫었다.
드론이 벌집이 된 건 정말 눈깜짝할 새였다.
하늘 높은 곳에서 펑! 하는 폭발음을 터트린 드론은 검은 연기를 흩뿌리며 추락해버렸다.
< 좀비집단이 250미터 전방까지 접근했습니다! >
"상대는 갑각을 뒤짚어 쓴 엘리트 좀비다. 50미터 안까지 다가온 후에 발포한다."
난 내부통신망을 통해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