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78화 (77/152)

78화. 자폭

'팔미라 시 부근으로 텔레포트 포탈 열테니까, 좌표 계산해줘.'

난 텔레포트 포탈 마법식을 완성 직전에 멈춰놓고 시스템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대답은 다른 부하에게서 나왔다.

- 주인님, 팔미라 시 근처로 공간이동하는 건 금지되어있습니다.

그건 제니퍼였다.

'그게 무슨 소리지?'

- 제가 알기론 방어군 소속이 아니면 일정 거리이내로 공간이동할 경우, 사살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내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골렘과 기간트가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하니, 나도 사용해도 되겠거니하고 마음 편하게 생각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제니퍼의 조언을 듣고보니, 보안 상의 문제로라도 허가받지 않은 인원의 공간이동을 제재하는 게 옳을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해야하지? 카니에스 마을이나... 아예 폐허도시 유틀란트 쪽으로 이동한 후에 팔미라로 이동해야할까?'

- 구체적인 거리는 모르지만, 공간이동이 가능한 거리가 정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몇 킬로미터지? 시스템, 검색해봐.'

< 제니퍼와 데스윙은 사망신고가 접수됐습니다. >

< 둘의 명의를 이용해서 온라인에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

난 자동으로 우리 중 3등 시민증을 가진 테리를 바라봤다.

"네 신분증으로 정보를 검색하는 게 귀족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까?"

테리는 살짝 당황한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식으로 제 존재를 노출한다면... 그들이 아직도 기갑토벌군의 유족에게 관심이 있는지 반응을 확인할 수는 있을 것 같군요."

"그럼 곤란하겠군."

기간트가 불쑥 등장하지 않았다면 난 마운틴 퀸의 분신에 불과한 모래거인에게 짓밟혀 죽었을 것이다.

그런 괴물을 상대한 게 기간트였다.

제니퍼의 자료에 따르면 기간트를 운용하는 기간트워리어는 귀족 축에도 끼지 못한다.

나와 3대 가문의 귀족들 사이엔 그만한 격차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섣부르게 굴다가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 지금은 웅크리고 힘을 키울 때다.'

내가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데, 시스템이 메세지와 함께 한 사람에 관한 정보를 내 시야에 띄웠다.

< 조셉 메를린은 메를린 그룹의 여섯째 아들입니다. >

< 최소 3등시민, 어쩌면 2등 시민일지도 모릅니다. >

< 그의 신분증을 빌릴 수 있다면 관련정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

"우리 의뢰주는 어디 계시지?"

내가 묻자, 워리어 두 기가 조셉 메를린이 실린 들것을 가져왔다.

팔과 다리에 붕대를 칭칭 휘감은 모습이었다.

"샤를, 의식이 없는 건 맞겠지?"

"네. 현재는 의식이 없는 상태입니다. 의식을 회복시키려면 연구소의 회복시설로 옮겨야합니다."

난 샤를에게 확인한 후 왼쪽 눈을 감았다.

< 유니크 등급 스킬 [비파괴안]을 사용하셨습니다. >

내 비파괴안은 곧바로 들것에 실린 조셉 메를린의 통신단말을 찾아냈다.

폭발의 여파로 통신단말까지 박살난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 제품명 : 양자암호통신단말 WTT-050 >

< 제작사 : 빌헬름 텔레커뮤니케이션 >

< 출시가격 : 8천만 크레딧(현재가치 : 7,893만 크레딧 >

< 노후도 : 1.4%...

그건 겉으로 보기엔 심플한 모양의 메탈 목걸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안엔 8천만 크레딧짜리 기술이 숨겨져있었다.

'통신단말 하나에 8천만 크레딧? 역시 재벌집 아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군.'

내가 양자암호통신단말 WTT-050 모델에 손을 대자 츠팟! 하고 작은 정전기가 튀었다.

< 레어 등급 스킬 [해킹]을 사용하셨습니다. >

< 사용자 설정에 따라 양자암호통신단말 WTT-050 모델의 설계도를 저장했습니다. >

< 2등 시민 조셉 메를린의 명의로 양자암호통신망에 접속했습니다. >

< 검색결과, 공간이동 금지범위는 팔미라 시 반경 800킬로미터입니다. >

< 공간이동 가능한 안전좌표를 다운받았습니다. >

< 해당 좌표는 현 위치에서 서쪽으로 400킬로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

< 팔미라 시의 공간이동 금지범위에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포인트입니다. >

그 순간 내 앞에 반경 3미터 크기의 포탈이 열렸다.

***

잠시 후, 400킬로미터 서쪽.

- 사일런스스톰 4기, 수송차량 3대, 아머드 스켈레톤 35기 이상 없이 통과했습니다.

조셉 메를린까지 들것에 실려서 텔레포트 포탈을 넘자, 데스윙이 인원을 보고했다.

아머드 소울리퍼 아치스가 연구소로 호송한 병력은 모두 넘어왔다.

하지만 크랩의 쇼크웨이브에 한번 박살났던 맥길용병단 출신 워리어 50기는 복귀하지 못했다.

난 그들을 버려두고 갈 생각이 없었다.

"서몬 언데드."

내가 주문을 외우자, 눈 깜짝할 사이에 50쌍의 마법진이 생겼다.

위아래 한 쌍의 마법진 사이로 검은 구름이 가득 차더니 번쩍! 하고 전광이 터졌다.

마법진이 사라진 자리엔 하얀 갑옷차림의 워리어 50기가 서 있었다.

크랩의 쇼크웨이브에 박살났다가 카라페이스의 갑각을 이용해 뼈를 보강한 아머드 스켈레톤들이었다.

비록 반물질 코어를 유지한 기체가 7기뿐이지만, 마그니움 함유량 37% 수준의 방어력을 지닌 강골들이었다.

'마그니움 가격이 부담스러웠는데, 어느 정도라도 대체할 방법을 찾아서 다행이군.'

내가 텔레포트 포탈을 해제하려는데, 시스템이 물었다.

< 회수하지 못한 사일런스스톰 3기는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

사일런스스톰은 아이언스톰을 토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개조과정에서 다원에너지 치환술식에 열에너지를 죽음의 기운으로 바꾸는 술식을 추가해넣었다.

그건 적어도 이 세상에서 나 외엔 사용하는 걸 본 적 없는 나만의 마법식이었다.

거기에 더해 사일런스스톰의 뼈대와 장갑은 내가 개발한 TTNA-207 합금강으로 개조했다.

'이걸 유출시킬 순 없지. 자폭시스템 가동해.'

< 예약된 절차에 따라 자폭시스템 가동합니다. >

***

약 30분 뒤, 유리호수.

크랩의 쇼크웨이브에 녹았던 사막모래가 굳자, 영롱한 빛을 뿌려대는 유리호수가 만들어졌다.

충분히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모여든 관광객들은 유리호수에 관심이 없었다.

20만 마리가 넘는 카라페이스들이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키가 30미터에 달하는 수정거인이 멀뚱히 서 있는 엘리트 좀비들을 향해 소리쳤다.

- 뭘 멍청히 서 있는 거냐? 당장 핵을 찾아라!

수정거인의 호통에 가장 먼저 움직인 건 6마리의 크랩들이었다.

놈들은 수정거인의 명령을 듣자마자 붉은 모래를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수정거인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수정거인 마음에는 안 드는 지능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모든 카라페이스들의 귀감이 되기엔 충분했다.

카라페이스들도 붉은 사막모래를 파기 시작한 것이다.

- 부서진 핵 조각을 되찾아야 분신체를 빨리 복구할 수 있다. 어서 찾아!

20만 마리가 넘는 카라페이스들이 사막모래를 파기 시작하자 사방이 모래먼지로 자욱해졌다.

모래거인이 일으켰던 모래폭풍에 비견될만 한 모습이었다.

그때 카라페이스 한 마리가 카악! 하고 소리쳤다.

놈이 제 자리에서 뛰며 괴성을 질러대자 모든 카라페이스들이 땅 파는 걸 멈추고 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쿵쿵쿵! 하는 묵직한 발소리를 낸 끝에 수정거인이 난리치는 카라페이스에게 다가섰다.

- 핵을 벌써 찾았다고?

- 크라락!

수정거인이 묻자, 카라페이스가 자신이 판 구덩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수정거인은 놈이 가리키는대로 구덩이 속에 손을 넣었다.

정말 모래와 다른 뭔가가 손에 걸렸다.

수정거인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손끝에 걸린 무언가를 모래 위에 건져냈다.

모래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은회색 로봇이었다.

- 기간트보다는 작은데? 아!

유리창도 없이 조종석을 드러낸 사일런스스톰의 모습을 본 수정거인이 크랩과 싸우던 로봇의 모습을 기억해낸 순간이었다.

그때 조종석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방송되었다.

- 적대적 생명체의 접근을 포착했습니다.

- 반경 1킬로미터 내에서 허가된 파일럿을 찾을 수 없습니다.

- 반경 1킬로미터 인근에 낙오된 사일런스스톰 2기 발견.

- 매뉴얼에 따라 낙오된 사일런스스톰 3기의 자폭시스템을 가동합니다.

- 5, 4, 3, 2, 1!

그 순간 사일런스스톰에 장착된 일곱 개의 소형핵융합로에서 이이이이잉! 하는 소음이 터져나왔다.

사일런스스톰은 여전히 하늘을 보고 누운 채였다.

하지만 소형핵융합로는 마치 급가속하는 기체에 에너지를 공급하려는 것처럼 거친 가동음을 토해냈다.

거친 가동음 끝에 밝은 빛이 번쩍였다.

***

그 시각, 장벽방어군 관제센터.

"팀장님, T-83 구역에서 방사선 반응이 감지됐습니다!"

짧은 머리에 회색눈을 지닌 폴 파인 병장이 오른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방사선? 갑자기 그게 무슨 일이야?"

40대 후반의 존 골드스미스 중령은 자다가 뺨 맞은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T-83구역, 지진파 감지했습니다. 전술핵 규모입니다."

"아니, 어떤 미친 놈이 우리 영역에서 전술핵을 터트려?"

핵무기는 도시 범위를 벗어난 중간지역 또는 좀비집단이 점령한 적색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중간지역도 아니고 아군 영역에서 핵폭발이 감지됐다?

그건 도시전쟁을 촉발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존 골드스미스 중령이 전쟁을 떠올린 순간 폴 파인 병장이 다시 보고했다.

"T-83 구역 전투보고! 약 42분 전, 해당지역에서 마운틴 퀸의 분신 모래거인을 아군 기간트가 토벌한 기록이 있습니다."

"뭐? 설마 기간트가 당한 건 아니겠지?"

"네. 해당 기간트는 이미 복귀했답니다."

"그럼 어떤 새끼가 전술핵을 터트린 거야?"

"팀장님, 오큘러스 시스템 관측정보입니다."

그때, 오큘러스 시스템 관측관인 마틴 오프월 하사가 홀로그램 전광판을 가리키며 보고했다.

- 110킬로톤, 98킬로톤, 83킬로톤 규모의 핵폭발 감지.

- 핵폭발로 약 12만 마리의 카라페이스 폭사.

- 크랩 6마리 중 4마리 폭사.

- 반파된 수정거인 발견.

- 방사능 낙진 없음.

- 수소폭탄으로 결론.

- 방사선 피폭으로 남은 좀비집단 무력화된 것으로 파악.

그 관측정보만 보자면, 미상의 인물은 인간 또는 팔미라 시를 공격하려던 게 아니라 좀비집단을 공격했다고 봐야했다.

"도대체 어떤 무식한 놈이 좀비집단 잡겠다고 핵무기까지 사용한 거야?"

"아,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거 파악하기 전엔 퇴근은 무기한 연기다. 다들 이 새끼부터 색출해!"

장벽방어군 관제센터는 누군지 모를 핵무기 사용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

하루 뒤, 장벽 앞 큰 길.

미리 약속된 대로, 길게 늘어선 줄을 무시하고 장벽 엘리베이터 앞 위병소로 향하려고 했다.

그런데 쿵, 쿵! 소리를 내며 다가온 워머신이 내가 탄 1호차 앞을 가로막았다.

"이봐, 넌 뭔데 줄을 무시하는 거야?"

조수석 창문을 향해 으르렁대는 병사는 분명 바딤 하사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들 중 한 명이었다.

"마크, 처음 보는 사이도 아닌데..."

내가 마크 트레비스 병장의 이름을 떠올리고 항의하려할 때였다.

워머신에 탄 마크 트레비스가 미친듯이 눈을 깜빡여댔다.

난 그 모습을 보고나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눈은 깜빡이되 고개를 젓지 못한다?'

그때, 누군가가 여유로운 걸음으로 마크 트레비스 병장 뒤로 걸어왔다.

짙은 갈색 머리에 푸른 눈을 지닌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난 그를 보자마자 한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조셉 메를린?'

그는 조셉 메를린에 비해 선이 날카로워서 조금 사나워보이는 인상이었다.

난 그가 조셉 메를린이 얘기했던 다섯째 형, 쥬세페 메를린이란 걸 직감했다.

"그쪽이 아서용병단의 단장인가?"

"뭐... 아직 정식으로 승급한 건 아닙니다만, 그 이름으로 승급을 요청하긴 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상대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러자 그의 뒤에 시립해있던 군인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불법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회색눈에 유난히 오똑한 콧날을 가진 남자는 어깨에 소위 견장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엔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바딤 하사가 서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딤 하사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좌우로 저어댔다.

"불법무기라... 장벽 밖에서 활동하는 용병들은 다들 비장의 수 하나씩은 숨기고 다니지 않습니까?"

"그게 반출이 금지된 아이언스톰이라면 그냥 관례로 치고 넘길 순 없겠지. 수색해라!"

소위 견장을 단 남자가 외치자, 장벽방어군 병사들이 달려들어 내 차량의 짐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30mm 기관포 48문 확인했습니다!"

"30mm 탄약 3만 발 확인했습니다."

"전투용 안드로이드 13기 확인했습니다."

쥬세페 메를린은 무기와 안드로이드에 대해 보고받을 땐 가만히 있었다.

그가 노리는 게 불법무기를 휴대한 내가 아니라 조셉 메를린이란 뜻이었다.

"사람은 이자뿐인 것 같습니다."

"뭐라고? 그럴 리가 없다. 20대 후반의 남자를 찾아!"

차량에 탄 인간은 나뿐이란 말을 들은 쥬세페 메를린은 직접 일곱 대의 차량 짐칸을 뒤져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찾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당장 저 놈을 끌어내려 내 앞에 무릎 꿇려라! 조셉을 어디로 빼돌렸는지 직접 심문하겠다!"

쥬세페 메를린이 외치자, 소위 견장을 단 인물이 직접 조수석 문을 열고 날 끌어내리려 했다.

"난 밀러쉴더스와 계약한 용병이오. 메를린 그룹의 위세가 대단하다는 얘긴 들었지만... 10대 그룹인 밀러 그룹을 안중에 두지 않고 이런 일을 벌이다니, 대단하군!"

난 그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 밀러 쉴더스

- 인사팀 과장 조지 스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