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80화 (79/152)

80화. 합리적인 제안

"3레벨 엘리트 좀비 크랩을 양산할 준비가 됐습니다."

그건 너무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쉿!"

난 샤를의 입을 막고 주변부터 살폈다.

하지만 장벽 엘리베이터 안엔 우리뿐이었다.

< 사용자님의 기존설정에 따라 엘리베이터 내의 CCTV의 작동을 사전에 차단했습니다. >

난 시스템 메세지까지 읽고나서야 안심이 됐다.

"복제배아를 성체 크랩으로 배양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할까?"

"제 계산에 따르면 40일이면 성체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0일?"

샤를의 설명을 듣자, 참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요동쳤다.

'크랩 한 마리가 얼마라고 했었지?'

< 통합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크랩은 위험등급 4의 몬스터입니다. >

< 종합정부청사에서 공시한 현상금은 800억 크레딧, 공헌도는 25만 점입니다. >

< 하지만 이번처럼 머리가 아닌 산 채로 잡아올 경우에 대한 현상금 자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

시스템메세지를 읽자, 머리 속에서 행복회로가 풀로 가동됐다.

그때 제니퍼가 내 머리에 기름을 붓는 정신파를 보내왔다.

- 주인님, 절대 종합정부청사의 좀비인자 매입계에 넘기시면 안됩니다! 거긴 좀비 사체를 헐값에 사들이고 있어요.

'조지 스톤 과장이 직접 찾아왔으니, 종합정부청사가 아니라 밀러쉴더스에서 소개해준 연구소에 넘겨야할 거야.'

- 그럼 생포하신 크랩을 넘기고 얼마를 받으실지 생각해두신 가격이 있습니까?

'어차피 공헌도를 포기하는 계약을 맺었고, 생포한 크랩이니 1,200억 크레딧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 1,200억 크레딧에 넘기시면 손해를 보시는 거예요.

제니퍼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보내왔다.

'네 생각엔 얼마 정도 받아야 적당할 것 같은데?'

- 살아있는 크랩이면 삼대가문도 눈독을 들일만 한 실험체입니다. 경매를 열자고 먼저 제안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경매에서 책정된 가격에 밀러 그룹에 넘기시면 훨씬 좋은 가격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경매? 난 이미 내가 사냥한 부산물을 밀러 그룹 산하 연구소에 판매한다고 계약했는데, 경매를 열자고하면 계약위반이잖아?'

- 제가 계약서를 검토해봤습니다. 하지만 계약서엔 '좀비의 머리'를 밀러 그룹 산하 연구소에 판매한다고 나와있습니다. 살아있는 좀비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조항은 없었습니다.

그 순간, 시스템이 내 시야에 제니퍼가 말한 계약서를 보여줬다.

- 3조 1항. 용병계약을 맺은 아서 또는 그가 이끄는 용병단은 좀비 사냥과정에서 좀비의 머리를 얻을 경우, 밀러 그룹 산하의 연구소에 제공하고 그 비용을 받는다.

- 3조 2항. 이때 밀러 그룹 산하 연구소는 시정부보다 높은 가격으로 좀비의 머리를 매입해야한다.

계약서엔 제니퍼의 말대로 좀비의 다른 신체나 생포했을 때에 대한 언급이 없이 좀비의 머리만 밀러 그룹 산하 연구소에 넘기기로 되어있었다.

"하, 하! 정말로 죽인 경우에만 머리를 제공하도록 되어있군!"

난 너무 기쁜 나머지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그 거만하던 조지 스톤 과장이 생포한 크랩에 대한 얘기만 듣고 달려온 것을 생각하면, 죽여서 목만 떼어서 달라고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경매를 제안해도 되겠군.'

- 마운틴 퀸은 휘하의 엘리트 좀비들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엘리트 좀비가 인간에게 포획되는 걸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3레벨 엘리트 좀비가 생포됐다는 얘기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제니퍼의 말을 들어보니, 내가 크랩의 목을 베려던 순간 갑자기 등장한 모래거인의 모습이 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 경매에 올린다면... 그 희소성때문이라도 3천억 크레딧 정도는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제니퍼의 말을 듣고나니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한 마리에 3천억 크레딧이면 24개의 복제배아까지 성장시켜서 팔면... 7조 5천억 크레딧?'

- 25마리나 풀어버리면 희소성이 떨어지겠지만, 그렇더라도 1500억 크레딧 이상은 받을 것 같습니다. 4단계 강화시술자를 배출하지 못한 네크로맨서 학파들이라면 마운틴 퀸이 출산한 3레벨 엘리트 좀비라는 실험체를 포기할 순 없을테니까요.

샤를과 제니퍼의 말을 듣고보니 팔미라 시에 내던져진 후 지난 2달 동안 고생했던 시간을 모두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샤를, 당장 복제배아를 배양해. 팔미라 시의 돈을 쓸어담아야겠다."

"24개의 복제배아를 성체까지 배양하려면 총 3,600만 명의 인간이 필요합니다."

샤를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수천만 명을 희생시켜야한다고 말했다.

"뭐?"

"크랩이라는 생체병기는 인간을 포식하는 방법을 통해 성장합니다. 제 계산에 따르면 복제배아 1개를 성체까지 키우는 데 필요한 인간은 150만 명입니다."

샤를은 인간을 생체병기 육성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재료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나서야 샤를이 본래는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에 불과했었다는 게 실감이 됐다.

"인간을 그런 곳에 희생시키는 건 무리야. 좀비들은 지들끼리 잡아먹기도하는데 1레벨 스토커나 2레벨 스프린터를 먹이면 안될까?"

"해당 좀비에 대한 자료가 부족합니다."

뜨거웠던 머리에 얼음물을 뒤짚어 쓴 기분이었다.

"일단 복제배아 배양건은 다시 장벽 밖으로 나가서 좀비 사체를 확보한 후로 미룬다."

일단은 크랩 배아에 좀비를 먹여봐야 배양이 가능할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1시간 후, D-2 구역 말라 연구소.

내가 끌고온 수송차량 7대가 멈춘 곳엔 조지 스톤 과장과 흑발의 미녀 두 사람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안을 유지하기위해 핵심인물만 참관한 것 같았다.

"아서 님, 이제 생포한 크랩을 보여주셔야겠습니다."

조지 스톤 과장은 초조한지 입술을 핥으며 내가 몰고온 수송차량을 살폈다.

"보여드리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놈을 꺼내면 구속할 방법은 있습니까?"

"설마... 검문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신 건 아니겠죠?"

그는 이제와서야 자신이 한번도 크랩의 실물을 본 적 없이 내 말만 믿고 일을 벌렸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가 눈쌀을 찌푸리자, 조지 스톤 과장 뒤에 서 있던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흑발미녀가 오른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파이퍼, 경계등급을 3단계로 상향한다."

***

크리스티 말라가 말한 순간 30미터 높이의 연구실이 합금벽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 크리스티 말라 최고관리자님의 명령에 따라 연구소를 폐쇄합니다.

- 방화벽을 강제로 개방할 경우 폭발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 방문자분들께서는 최고관리자님의 지시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연구소의 관리시스템인 파이퍼가 설명했다.

'그럼 그렇지. 3레벨 엘리트 좀비를 무슨 수로 생포해 와? 설사 재주가 좋아서 크랩을 사로잡았더라도 사막을 빠져나올 때까지 마운틴 퀸이 내버려뒀을 리가 없지.'

그녀가 속으로 고개를 내젓는데, 아서라는 남자가 수송차량을 보며 명령했다.

"짐칸 개방해."

그 순간 제일 마지막에 들어온 수송차량의 짐칸 우측 벽면이 철컥! 하는 소리를 내며 아래로 접혀들어갔다.

그러자 금속재질의 거대한 침대 위에 누운 6미터 짜리 엘리트 좀비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입과 코엔 호흡기를 꽂은 모습이었다.

좌측 벽면은 크랩의 맥박, 혈압, 호흡, 체온, 마취도 등과 관련된 수치를 나타내는 홀로그램창이 펼쳐져있었다.

"어, 어머! 정말 살아있잖아?"

말라 연구소의 연구소장 크리스티 말라는 갈색눈을 동그랗게 뜨며 크랩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2미터 크기의 거대한 전투용 안드로이드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제지했다.

"보시다시피 강력한 마취제로 재워둔 상태입니다. 약간의 자극만으로 깨어날 수도 있으니, 주의해주십시오."

아서란 남자는 크랩의 이마와 목의 대동맥에 직접 꽂은 주사바늘과 강력한 마취제가 담긴 링겔을 가리키며 말했다.

"약간의 자극이라고요?"

"크랩의 민감한 감각기관엔 말라 씨의 향수냄새도 자극적일 수 있습니다."

크리스티 말라는 아서의 말을 듣곤 자기도 모르게 서너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저 상태에서 정말 3레벨 엘리트 좀비가 깨어나면...'

그녀는 상상만해도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때 조지 스톤 과장이 아서라는 남자를 보며 찬탄을 금치 못했다.

"아서님, 3레벨 엘리트 좀비를 생포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유능하신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이실 줄이야!"

호흡기도 모자라 주사액까지 사용해서 마취해놓은 크랩을 보는 그의 눈엔 황홀함마저 감돌 정도였다.

사실 크리스티 마라는 그보다 더 흥분한 상태였다.

'이건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물이야! 마운틴 퀸이 낳은 엘리트 좀비를 산 채로 입수하다니... 어쩌면 모래유영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몰라!'

엘리트 좀비들은 일반 좀비와 달리 하얀갑각을 자랑했다.

하지만 모래 속을 마치 땅처럼 이동할 수 있는 건 마운틴 퀸이 낳은 엘리트 좀비들뿐이었다.

지난 150여 년 동안 수 많은 연구자들이 마운틴 퀸이 낳은 엘리트 좀비의 사체를 연구했다.

그러나 모래유영의 비밀을 풀어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만약 산 채로 잡아온 크랩의 몸 속에 모래유영의 비밀이 숨어있다면?

'내 이름을 팔미라 시 전체에 알릴 기회야!'

크리스티 말라가 속으로 환호할 때였다.

"당장 천억 크레딧 지급해드리겠습니다."

조지 스톤 과장이 황당한 소리를 했다.

'크랩의 머리만 주워서 좀비인자 매입계에 가져가도 800억 크레딧을 받을텐데, 생포한 크랩을 고작 1천억 크레딧에 사겠다고?'

그녀는 순간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서라는 남자와 눈이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크리스티 말라는 급히 표정을 관리했다.

하지만 그땐 이미 아서라는 남자가 상황을 파악했는지 고개를 젓고 있었다.

***

"원하신다면 3등 시민증 발급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성과라면... 3개월 안에 3등시민이 되실 수 있을 겁니다."

조지 스톤 과장은 대단한 혜택이라도 주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말라 연구소장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준 후였다.

'크랩의 공헌도는 오너일가가 가져갈테니, 밀러 그룹엔 공헌도를 쌓지 않고도 3등 시민으로 꽂아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모양이군.'

이제 내게 3등 시민증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거슬리는 건 고작 1천억 크레딧에 크랩을 삼키려는 조지 스톤 과장의 흑심이었다.

"계산을 그렇게 해서야되겠습니까? 계약서에는 좀비 머리를 넘긴다고 명시했지, 생포한 좀비까지 넘기겠다고 한 적은 없잖습니까?"

조지 스톤 과장은 자다가 뺨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아서님! 그건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우리와 계약해놓고 크랩을 다른 곳에 넘기겠다? 그건 밀러 그룹과 척을 지겠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까지는 채 3초도 걸리지 않았다.

"흥분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보세요. 나도 크랩을 고작 1천억 크레딧에 넘기라는 말에 화를 내진 않았잖습니까?"

조지 스톤 과장은 내 말을 듣고나서야 거친 숨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원하는 게 뭡니까?"

"경매로 갑시다."

"경매라고요?"

"과장님이 내게 얼토당토 않은 제안을 했으니, 과장님이 제시하는 금액은 못 믿겠습니다. 경매에 내놓고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 대신 과장님께 똑같은 가격에 넘기죠."

"그, 그건...!"

조지 스톤 과장은 한방 맞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서 님, 잠시 얘기 좀..."

그는 내 배틀슈트의 팔목부분을 잡더니, 연구실 구석으로 이끌었다.

그곳은 크리스티 마라 연구소장과 멀리 떨어진 자리였다.

"아서 님, 제 잘못으로 그룹 내부에서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을 외부인까지 끌어들여서 경매를 연다면 회사 내에서 제 입지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과장님은 실적챙기기 바빠서 크랩 가격을 후려치셨죠? 저도 제 이득을 챙겨야겠습니다."

"그, 그러지 마시고... 그냥 속 편하게 원하시는 가격을 말씀해주시면 어떨까요? 합리적인 가격이면 제가 상부에 허락을 받아오도록하겠습니다."

조지 스톤 과장은 내 팔을 붙들고 죽는 시늉을 해댔다.

'정말 자기 입지 때문인가? 아니면 경매를 열어서 외부인들에게 크랩을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 둘 다 일겁니다.

그때 데스윙이 정신파를 보내왔다.

- 팔미라 시 전체에서 보자면 밀러 그룹과 상대할만한 기업집단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상대가 다른 10대 기업이거나... 3대 가문이라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경매에 밀러 그룹보다 더 강한 기업집단이 참여할까봐 두렵다?'

- 그렇습니다. 만약 경매에 10대 그룹 중 9위인 루비치 그룹만 참여해도 밀러 그룹의 경영자들은 골치가 아플 겁니다.

'루비치? 거기가 9위라고 했었지?'

- 네. 루비치 그룹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불렀는데, 밀러 그룹과 계약하신 주군께서 경매를 엎어버리고 밀러 그룹에 크랩을 넘긴다면...

- 기업 간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습니다.

데스윙이 말끝을 흐리자, 제니퍼가 말을 이었다.

- 생포한 크랩 정도면 루비치뿐만 아니라 카윈 그룹이나 캘러핸 그룹의 흥미를 끌 수도 있습니다.

'카윈? 캘러핸? 거기도 10대 기업인가?'

- 네. 10대 기업 중에서 바이오 분야에 관심이 많은 기업들입니다. 물론 강화시술 연구에도 혈안이 되어있고요.

<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한 결과, 3대 가문 바로 아래에 이름을 올린 10대 그룹의 랭킹을 찾았습니다. >

- 1위 마리우스 그룹

- 2위 베넷 그룹

- 3위 오드와이어 그룹

- 4위 워렌 그룹

- 5위 캘러핸 그룹

- 6위 레이튼 그룹

- 7위 램버트 그룹

- 8위 카윈 그룹

- 9위 루비치 그룹

- 10위 밀러 그룹

시스템이 시야에 띄워준 순위를 보니, 밀러 그룹이 한 없이 작아보였다.

"아서님. 한번만 도와주시면 그 은혜는 안 잊겠습니다."

그때 조지 스톤 과장이 애걸하듯 말했다.

그건 날 처음 영입하려 찾아왔을 때나, 암셀학파와의 관계에 대해 따지던 고압적인 자세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합리적인 가격이라... 5천억 크레딧이면 경매 없이 넘기겠습니다."

"오, 오천억 크레딧이라고요?"

"물론 공헌도도 밀러 그룹에 넘기는 조건입니다."

난 입이 떡벌어진 조지 스톤 과장의 팔뚝을 두드리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경매에 올려서 루비치 그룹이나 카윈 그룹의 입맛을 돋구는 것보다는 5천억 크레딧에 사가라는 게 합리적인 제안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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