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85화 (119/152)

85화. 스노우볼

내가 플라즈마 파워드 건의 최대 탄속에 놀라자 시스템이 메세지를 쏟아냈다.

< 기록된 전투데이터를 토대로 [동부방어군 소속 기간트가 발사한 레일건]의 탄속을 측정합니다. >

< 탄속은 마하 6입니다. >

< 기간트가 발사한 레일건의 탄두는 H빔 형태로 높이 50센치미터, 너비 30센치미터, 길이 40센치미터입니다. >

< 플라즈마 파워드 건은 50mm 구경을 사용합니다. >

< 기간트의 레일건보다 작은 구경입니다. >

< 하지만 마하 6 수준의 탄속으로 쏘아보낸다면 3레벨 엘리트 좀비 [크랩]을 파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

"이런 무기가 왜 버려진 거지?"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루이 바딤에게 물었다.

그러자 루이 바딤이 플라즈마 파워드 건을 내게 건네며 답했다.

"이건 워머신도 감당하기 힘들만큼 에너지 소모가 크고 20발만 연사하면 총열이 달아올라서 식혀줘야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메뉴얼에 따르면 위력은 상당한 것 같던데, 그냥 폐기처분했다니 믿기지 않는군."

난 루이 바딤으로부터 플라즈마 파워드 건을 받아들며 물었다.

"위력이야 상당하죠. 시연에서 위력조차 만족시키지 못했으면, 군에 납품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반동이 너무 강해서 병사가 감당할 수 없었고 워머신용 배터리 또한 병사들이 들고 다닐 수 없는 크기라 폐기됐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그럴 수 있겠군."

"소문으로는 오드와이어 그룹이 군납비리로 워머신급 스펙의 장비를 병사용 무기로 납품한 거라고 들었습니다. 나중에 들켜서 과징금을 엄청나게 먹고, 군납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바람에 오드와이어 그룹이 재계 3위에서 5위로 떨어졌다더군요."

병사들이 쓸 수 없는 오버스펙 무기를 병사용으로 팔았으면 과징금을 먹을 만 했다.

난 루이 바딤의 설명을 듣곤 곧바로 플라즈마 파워드 건의 총열 근처에 코를 가까이 대 냄새를 맡았다.

< 레전드 등급 스킬 [분자구조연구]를 사용하셨습니다. >

< 냄새로 금속의 구조와 특성을 파악합니다. >

< 오드와이어 웨폰 사의 마그니움 기반 합금강 M-250강의 배합비율을 발견하셨습니다. >

< M-250강은 마그니움과 코발트, 몰리브덴을 배합하여 단단하면서도 깨지지 않는 높은 강도와 파괴인성을 갖는 특수합금입니다. >

< 해당 합금강은 마그니움 13% 합금과 비견되는 강도입니다. >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을 때, 내 눈앞엔 이미 M-250강의 분자구조가 펼쳐져있었다.

'원료비를 아끼려고 M-250강을 약실과 총열 일부에만 사용했군.'

마그니움과 코발트, 몰리브덴의 공통점은 가격이 비싼 금속이란 점이었다.

오드와이어 웨폰 사는 제작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스 폭발과정에서 가장 압력을 많이 받는 약실과 약실과 연결된 총열 일부에만 M-250강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값싼 텅스텐을 사용한 후 열처리만 해놓았다.

'전체를 M-250강으로 만들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 제작에 필요한 마그니움과 코발트, 몰리브덴 가격은 30억 크레딧입니다. >

'그 돈이면 아이언스톰 3기를 살 수 있겠군.'

난 그제야 오드와이어 웨폰 사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그니움은 넘치니까 코발트와 몰리브덴만 사오면 내구성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겠어.'

기간트워리어급 배틀슈트를 입히면 워리어들도 에너지 소모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바딤의 개조팔을 더해주면... 반동도 감당할 수 있겠지.'

난 단 몇 초만에 플라즈마 파워드 건의 단점을 모두 없애버렸다.

흡족한 마음을 감추고 담담한 목소리로 루이 바딤에게 말했다.

"이건 사은품으로 가져가지."

"뭐, 그 정도는 서비스로 드릴 수 있습니다."

루이 바딤은 영업용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문을 열었다.

문앞엔 8기의 워리어들이 짐을 옮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차에 모두 실으실 수 있겠습니까?"

루이 바딤은 산처럼 쌓인 플라스틱 상자와 내 에어로트럭을 보고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짐칸엔 이미 샤를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걱정할 것 없네. 아키텐의 무기를 구하면 연락하게."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루이 바딤은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나를 배웅했다.

난 에어로트럭에 올랐다.

그때였다.

정비소 거리의 공터마다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떠올랐다.

내 에어로트럭이 주차된 곳 앞 공터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손짓하자, 운전석에 앉아있던 게릭슨이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이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 나타났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검은 머리 남자는 조지 스톤이 데려왔던 참모장이었다.

- 4군단 참모부에서 D 구역 시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 이틀 전 팔미라 동쪽 1300킬로미터 부근에서 핵폭발이 발생했습니다.

- 4군단 참모부가 조사한 결과, 이는 5레벨 좀비 마운틴 퀸과 팔미라 시를 이간질시키려는 테러조직 칠마회의 테러공작으로 밝혀졌습니다.

'뭐라고? 그건 내가 터트린 건데?'

핵폭발을 내가 일으켰다는 건, 나와 내 언데드들밖에 몰랐다.

조지 스톤 과장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니, 그가 내 잘못을 덮어주기 위해서 참모장을 움직였을 리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참모장이 핵폭발을 테러로 규정하고 그 원흉을 칠마회라는 테러조직이라고 지목해버린 것이다.

- 동부방어군은 약 20여분 전, 마운틴 퀸의 권속들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움직임을 감지했습니다.

- 동부방어군이 파악한 적의 규모는 4레벨 엘리트 좀비 7마리, 3레벨 엘리트 좀비 240마리, 2레벨 엘리트 좀비 300만 마리 이상입니다.

- 적의 군세에 5레벨 좀비 마운틴 퀸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 적들의 이동을 방치할 경우, 장벽방어전이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 장벽방어군 사령부는 이를 막고자, 선제타격 작전을 시행하려 합니다.

- 본 작전에 참여한 골렘나이트는 카를 오귀스트 대령, 레이놀드 볼드윈 대령, 오토 빌헬름 대령, 한스 빌헬름 중령, 위르겐 오귀스트 중령입니다.

- 본 작전에 투입되는 기갑전력은 골렘 5기, 기간트 150기...

참모장은 골렘나이트들의 정복 입은 사진을 나열하며 마치 그들을 홍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곤 막강한 기갑전력을 나열했다.

- 동부방어군은 이번 국지전에 참여할 자원입대자와 용병단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 이번 국지전에 참여한 병사와 용병에게는 공헌도를 30% 가산해드릴 예정입니다.

그때 홀로그램 영상을 본, 정비소 거리에 모여있던 용병들이 환호하며 외쳤다.

"이야! 됐다! 됐어!"

"드디어 장벽방어군 금고에 빨대 좀 꽂아보나?"

"마운틴 퀸은 왜 참전하지 않은거지? 이미 죽어버린 거 아니야?"

"지금 그게 중요해? 군단이 돈을 풀기 시작했으니 이번 기회에 한 몫 단단히 잡아야지. 드디어 솔져급 배틀슈트 한번 입어보려나?"

"공헌도를 30%나 가산해준다? 잘하면 4단계 강화시술 요건을 갖출지도 모르겠는데?"

길가에 늘어선 용병과 사이보그들은 참모부의 홀로그램 영상을 보고 환호하고 있었다.

대규모 전쟁이 이 팔미라 시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듯했다.

하지만 난 그들과 같이 환호할 수가 없었다.

"게릭슨, 이 재료들 구할 수 있겠나?"

- 주군, 참전하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이건 엄청난 기회입니다.

'저 엘리트 좀비들이 정말 핵폭발이나... 내가 생포한 크랩 때문에 몰려나온 거라면 누굴 먼저 찾을 것 같나?'

- 주군이겠군요.

'우린 업그레이드에 전념한다. 재료는 구할 수 있겠나?'

내가 묻자, 게릭슨이 내가 보내준 재료 목록을 펼쳐보곤 정신파로 대답했다.

- D-3 구역에 선이 있습니다. 그쪽에 얘기하면 문제없이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리로 가지."

우린 환호하는 용병들을 뒤로하고 D-3 구역을 향해 이동했다.

***

조셉 메를린이 정신을 되찾았다.

그가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은 온통 녹색으로 가득했다.

'여긴 어디지? 왜 이런 녹색 액체에 잠겨있는 거야?'

조셉 메를린은 상황파악을 위해 급히 자신의 몸부터 살폈다.

그는 마스크 형태의 산소호흡기를 차고 있어서 말을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팔과 가슴 다리 등 온몸에 수십 개의 튜브가 연결된 모습이 보였다.

그것들은 조셉 메를린의 기억엔 없는 모습이었다.

'그, 그러니까...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머리가 멍했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자 정말 가물가물했던 기억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난 분명... 폭발에 휘발렸었어. 쉴드 마법에 균열이 가던 것까지는 분명히 기억이나!'

아이언스톰과 닮은 아서의 전투병기들도 힘 없이 날아갈만큼 강력한 폭발이었다.

마지막 비장의 무기였던 쉴드 마법이 깨졌다면 배틀슈트도 입지 않은 자신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가 혼란스러워하는데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첫번째 표본이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 마취액 정상 주입 중.

- 인간이 깨어날 수 없는 수준입니다.

- 원인을 분석합니다.

- 유전자지도 분석 결과, 유전자 변이 11건을 발견했습니다.

- 연구소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인간 유전형질과 비교합니다.

-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유전자 변이입니다.

- 해당 변이를 메를린-1 ~ 메를린-11 변이로 명명합니다.

그건 팔미라 시에서 쓰이는 언어가 아니었다.

조셉 메를린이 공부한 어순과는 달랐지만, 분명 고대어와 유사한 부분이 있는 언어였다.

"우웁!"

그가 알 수 없는 소녀의 목소리를 향해 소리치려했다.

조셉 메를린은 그제야 마스크 안에 길다란 관이 있으며 그 관이 자신의 입을 통해 목까지 연결되어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 마취 주사액을 늘립니다.

- 코끼리도 잠재울 수 있는 수준의 마취액을 주사했습니다.

- 첫번째 표본이 저항합니다.

조셉 메를린은 소녀의 목소리를 들을수록 참기 어려운 졸음이 엄습하는 걸 느꼈다.

'이게... 세이렌의 노랫소리인가?'

그는 전설 속에 나오는 몬스터를 떠올리며 급히 손목을 더듬었다.

하지만 팔찌가 있어야 할 손목은 매끄러운 살결만 만져졌다.

'내 아티팩트를...'

- 바이탈 사인을 확인합니다.

- 맥박, 혈압, 호흡, 체온, 뇌파 모두 수면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 실험을 재개합니다.

조셉 메를린이 잠들자, 그의 몸에 연결된 튜브를 통해 투명한 주사액이 밀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건 마취액과는 다른 성분이었다.

***

그 시각, D-32 구역 복합주거단지.

포가티 가 4번 출구.

기계화한 흔적이 없는 검은 머리의 백인 남자가 지하철 출구 계단을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그가 지하출입구를 나선 순간, 눈앞에 홀로그램 긴급방송이 펼쳐졌다.

- 4군단 참모부에서 D 구역 시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 이틀 전 팔미라 동쪽 1300킬로미터 부근에서 핵폭발이 발생했습니다.

- 4군단 참모부가 조사한 결과, 이는 5레벨 좀비 마운틴 퀸과 팔미라 시를 이간질시키려는 테러조직 칠마회의 테러공작으로 밝혀졌습니다.

뉴스를 본 남자의 얼굴이 한순간에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이봐, 길 막지말고 비켜!"

그때, 계단을 올라온 거구의 사이보그가 남자의 어깨를 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순간이었다.

벼락처럼 휘두른 남자의 오른손이 사이보그의 볼을 때렸다.

짜악! 하는 타격음이 들렸다.

하지만 얼굴을 맞은 사이보그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검은 머리 남자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사이보그의 기계안에서 붉은 레이저센서가 반짝였다.

그때였다.

검은머리 남자의 눈이 검게 물들더니, 그의 몸이 하얀 갑각으로 뒤덮여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끝에서 피싯! 창! 하는 소음이 발생했다.

그 순간 괴인의 손끝에서 뻗어나온 하얀 송곳이 사이보그의 금속질 머리를 가볍게 관통해버렸다.

머리를 뚫고나온 20센치미터 길이의 하얀 뼈송곳들.

"꺄악!"

얼굴에 황금피부를 이식한 여성이 그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마, 마인이다!"

고글을 쓴 남자가 소리치자, 사이보그의 머리를 꿰뚫었던 뼈송곳들이 눈깜짝할 사이에 모습을 감춰버렸다.

"젠장!"

"누, 누가 자경단 좀 불러봐요!"

"이미 불렀어!"

어느새 멀쩡한 검은머리 남성으로 모습을 바꾼 마인은 사람들의 소란을 듣고 곧바로 빌딩 사이 골목길을 향해 달렸다.

그는 쓰레기통을 지나자마자, 하수구 마개를 열고 뛰어들었다.

마인은 착지하기도 전에 좌측 관자놀이를 눌러 통신단말부터 연결했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반투명한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거대한 체구의 남자는 입을 제외한 얼굴 대부분이 하얀갑각으로 뒤덮여있었다.

그는 칠마회에서 침투요원을 관리하는 육마, 밀베르크였다.

- 빌슨, 갑자기 무슨 일이지?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아무런 언질도 없이 핵폭발을 일으켜요? 그레이 요원들은 다 죽으라는 겁니까?"

- 핵폭발이라니?

"지금 4군단 참모부에서 동쪽 사막에 핵폭발을 일으킨 게 칠마회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다 탄로났는데도 저한테까지 발뺌하시는 겁니까?"

- 난 그런 지시를 한 적 없다. 칠마회에서도 그런 공격은 논의된 바 없어.

마인이 팔미라 시에 잠입하는 건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이었다.

마인이라는 게 밝혀지는 날엔 자경단들에게 사냥당해 목이 잘려나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미라 시에 잠입한 모든 그레이 요원들이 청소당할 위기인데, 그레이 요원들을 관리하는 육마 밀베르크는 담담하기만 했다.

'우리가 죽어나가든 말든 상관없다는 뜻인가?'

빌슨은 속에서 천불이 끌어오르는 걸 느꼈다.

"그럼 장벽방어군이 없는 테러사실을 만들어서 칠마회에 뒤집어 씌우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 대장벽전투를 준비하는 상황인데, 우리가 핵폭발을 일으켜서 얻을 게 뭐가 있겠나? 경솔하게 움직이지말고...

빌슨의 거친 항의에도 돌아오는 육마 밀베르크의 대답은 여전히 담담하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본, 빌슨은 결정해야할 때임을 깨달았다.

"됐습니다. 이걸로 우리 인연은 끝입니다."

- 빌슨, 그게 무슨 소리냐? 감히 칠마회를 배반하겠다는 건가!

육마 밀베르크는 그제야 빌슨에게 소리쳐 물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빌슨은 평소와는 달리,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이 시간부로 내 모든 기록을 말소하고 잠적하겠소. 장벽 안이든 밖이든 다시 나와 만나는 일 없길 비시오."

빌슨은 습관처럼 웅크려들려는 마음을 다잡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직속상관이었던 원수에게 표출했다.

아서가 굴린 눈뭉치가 군단 참모부를 거치는 과정에서 산더미만큼 커지더니 엉뚱하게도 칠마회를 덮쳐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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