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87화 (85/152)

87화. 신체복원기술

연구정령 샤를은 조셉 메를린을 바로 깨울 수 있느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내게 뭔가를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난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워슈트에서 내려 고개를 끄덕이자, 샤를이 왼손을 허공에 펼쳐보였다.

그 순간 텔레포트 포탈이 열렸다.

둥근 텔레포트 포탈 너머로 저온수면캡슐이 보였다.

샤를은 직접 텔레포트 포탈 안으로 들어가 저온수면캡슐을 들고 오려했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워리어 두 기가 텔레포트 포탈을 넘어가 저온수면캡슐을 들고 나왔다.

그들이 저온수면캡슐을 내려놓자, 샤를이 다가갔다.

그러자 저온수면캡슐에서 매끄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샤를 공주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아앗! MRL-952, 허튼소리하지 말고 조셉 메를린부터 깨워!"

샤를은 저온수면캡슐과 나를 번갈아보며 얼굴을 붉혔다.

사용자 지정기능으로 자신의 이름을 샤를 공주로 입력했다는 사실을 들키자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 환자명, 조셉 메를린

- 환자의 신체를 스캔합니다.

- 매우 건강합니다.

- 깨어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1분 45초 남았습니다.

잠시 후, 저온수면캡슐 전면부를 가리고 있던 투명한 유리가 개방됐다.

그리고 그 안에서 조셉 메를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벌떡 일어나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그는 벌거숭이였다.

그때 워리어 한 기가 조셉 메를린에게 샤워가운을 던져줬다.

조셉 메를린은 황급히 샤워가운을 입었다.

그는 중요부위를 가리자마자 내게 물었다.

"아서님? 제가 어떻게 살아있는 겁니까? 아니... 어떻게 제 몸이 이렇게 멀쩡할 수 있는 거죠?"

난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의뢰내용을 속였고, 그것때문에 우린 3레벨 엘리트 좀비 크랩에게 습격당했지. 그리고 당신은 크랩의 쇼크웨이브에 휘말려 내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죽었을거야. 인정하나?"

"음... 인정합니다."

"그럼 용병협회에 이번 의뢰가 성공했다고 보고해."

난 승급의뢰부터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셉 메를린은 자신이 빠져나온 저온수면캡슐 MRL-952 모델과 나를 번갈아보더니 다시 내게 물었다.

"이건 메를린 바이오 사에서 판매하는 제품입니다. 이 제품엔 신체를 복원하는 기능 따위는 없습니다. 그건 메를린 바이오 본사에서도 아직 상품화하지 못한 서비스입니다. 도대체 절 어떻게 살려내신 겁니까?"

"의뢰 보고가 먼저다."

내가 딱 끊어서 대답하자, 조셉 메를린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심호흡을 하더니 테리가 건넨 통신단말을 받아들었다.

그가 외눈 안경 형태의 통신단말을 착용하고 허공을 몇번 터치하자, 통신단말에서 홀로그램 영상을 출력했다.

- 용병협회 의뢰관리부 레슬리 아켄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짙은 갈색머리 여직원이 환한 미소로 물었다.

"2등 시민 조셉 메를린입니다. 아서용병단은 날 무사히 팔미라 시까지 호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2등 시민, 조셉 메를린 님.

- 성문분석으로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 아서용병단이 맡은 유적발굴 의뢰를 성공했다고 보고하시는 겁니까?

- 이를 인정하실 경우, 용병협회 계좌에 이체하신 100억 크레딧은 아서용병단에 지불됩니다. 의뢰기간이 약정하신 10일을 넘기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요금을 발생하지 않습니다.

"인정합니다."

- 용병협회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셉 메를린이 대답하자, 홀로그램 영상이 인사하고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내 시야로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왔다.

< 용병협회에서 메세지를 보내왔습니다. 바로 확인하시겠습니까? >

'확인하지.'

- 4등 시민 아서님, 승급의뢰를 성공적으로 완료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 가칭 '아서용병단'을 정식으로 설립하시려면 보증금 10억 크레딧과 연회비 1억 크레딧을 가지고 용병협회에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 현재 가칭 '아서용병단'이 수락할 수 있는 정규편제 용병단급 의뢰는 51,957개 입니다.

- 비밀 또는 지명, 4등급 이상의 의뢰는 온라인으로 확인하실 수 없습니다.

- 51,957개의 정규편제 용병단급 의뢰 중 온라인으로 확인하실 수 있는 3등급 이하의 용병단급 의뢰는 31,035개 입니다.

난 시스템이 띄워준 용병형회의 메세지를 읽자마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우린 이제 막 승급의뢰를 완료한 신생 용병단인데, 5만 개가 넘는 의뢰를 골라서 선택할 수 있다고?'

< 온라인 검색 결과, 평시의 의뢰는 5천 건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기록을 발견했습니다. >

'그럼 평소보다 10배 이상 많은 의뢰가 용병협회에 쌓여있다는 말이군?'

상식적으로 정규편제 용병단을 꾸린 용병보다 용병단을 꾸리지 못하고 홀로 활동하는 용병들이 많을테니, 일반 의뢰는 이보다 더 많을 것 같았다.

< 온라인 검색 결과, 이번에 발생한 동부사막 국지전으로 장벽방어군뿐만 아니라 참전한 용병들 또한 상당한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 사용자님께서 워슈트와 배틀슈트를 만드시는 동안 크릭의 연락이 있었습니다. >

'크릭이? 무슨 일이지?'

< 사용자님을 지명한 의뢰가 3천 건이 넘게 쌓여있다고 합니다. >

용병협회를 통해서도 특정 용병을 지명해서 의뢰를 맡길 수 있다.

그런데 공신력 있는 용병협회 대신 고작 F 구역에서 정비소나 운영하는 크릭에게 부탁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날 찾았다?

그 순간, 장벽 엘리베이터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크랩을 생포했다고 말했던 게 기억났다.

'꽤 주목을 끌긴 했었지.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3천 건은 좀 많군.'

< 능력있는 용병을 원하는 곳은 많은데, 이번 국지전으로 사상자가 너무 많아서 일을 맡을 용병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

'당장은 의뢰보다 이쪽을 먼저 해결해야겠다.'

내가 조셉 메를린을 바라보자, 시스템이 의뢰와 관련된 메세지들을 모두 내 시야에서 지워버렸다.

"용병협회에서 처음 받은 임무가 널 도와 유적을 발굴하는 임무였어. 그런데 네 형인 쥬세페가 덫을 쳐놓고 널 죽이려 들었지. 이게 우연일까?"

"배다른 형들과 제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건, 팔미라 시에서 아는 사람은 아는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의뢰를 맡길 때, 용병협회에서 제 형제들에게 습격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고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부분은 언급이 없었다."

조셉 메를린은 언급이 없었다는 말에 놀란 표정이었다.

"그럼 누군가 중간에서 별 볼일 없는 용병단을 보내서 제가 죽기 쉽도록 판을 짠 것 같군요. 아니면... 처음부터 아서님도 죽일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고요."

"그건 조사해봐야겠군."

내가 속으로 용병협회를 어떻게 조사할지 고민하는데, 조셉 메를린이 내게 물었다.

"아서님,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보다... 이대로 돌아가면 3천억 크레딧을 갚을 수 있겠나?"

"인공자궁기술을 얻으면 3천억 크레딧을 드리겠다고 했던 거 잖습니까? 결국... 인공자궁기술을 얻으신 겁니까?"

조셉 메를린은 내가 탄 워슈트를 붙잡으며 물었다.

그는 마치 꿈이라도 이룬 듯한 표정이었다.

"네가 의식을 잃은 동안 국지전이 발발했다."

"국지전이라고요?"

"크랩이 쇼크웨이브를 일으킨 여파 때문에 연구소 입구가 무너졌다. 그 이후에 칠마회란 놈들이..."

난 4군단 참모부가 D 구역 시민들에게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전해줬다.

"어헉! 거긴 유적 근처였잖습니까? 칠마회 그 미친 놈들이 연구소 위에서 핵폭발을 일으켰다고요?"

"정확한 건 다시 찾아가서 발굴해봐야 알겠지만... 핵폭발이 있었으니, 수천 년 전 지어진 연구소가 온전히 남아있겠나?"

"아, 안돼! 아서님, 당장 유적으로 가야합니다. 아직 고대유적이 남아있는지 제 눈으로 확인해야겠습니다!"

"카라페이스만 300만 마리가 넘게 몰려왔어. 국지전 과정에서 골렘만 3기가 박살났다고, 지금 사막은 사방에서 몰려든 좀비 떼로 가득할텐데 그 아수라장으로 가겠다고?"

내가 손짓하자, 옆에서 대기 중이던 제니퍼가 홀로그램 창을 띄웠다.

- 카라페이스의 사체를 먹기 위해 몰려든 좀비집단.

- 동부 사막에 몰려든 700만 마리의 좀비, 이대로 괜찮은가?

- 대규모 좀비집단 밀집에도 방관하는 장벽방어군

- 사막전쟁이 남긴 상흔.

- 전사자 골렘나이트 레이놀드 볼드윈 대령의 생애...

이번 국지전과 관련된 기사들이었다.

기사들 옆으로 이번 국지전 현장의 사진이 촤르륵 펼쳐졌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산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진에 나타난 건 카라페이스의 사체가 산처럼 쌓여있는 모습이었다.

또 다른 사진엔 그 산을 뒤덮은 1레벨 좀비 스토커와 2레벨 좀비 스프린터들이 보였다.

카라페이스의 딱딱한 갑각은 부수지 못하고 국지전 과정에서 부서진 갑각 사이로 머리를 처박은 일반 좀비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혀있었다.

내가 기사와 함께 올라온 사진들을 훑어내리는데, 레이놀드 볼드윈 대령에 관한 기사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 전사한 골렘나이트와 관련된 기사들은 실시간으로 삭제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제니퍼가 정신파를 보내왔다.

하지만 조셉 메를린은 골렘나이트 사망소식엔 관심도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국지전이 남긴 참상과 셀 수 없이 많은 좀비들이 몰려든 사진을 보며 머리를 쥐어뜯어댔다.

"아, 안돼...! 이럴 순 없어!"

난 괴로워하는 조셉 메를린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듯 말했다.

"어차피 그 기술은 네가 감당할 수 없는 보물이었어."

"으... 으어어!"

내 말을 들은 조셉 메를린은 눈물까지 흘리며 절규했다.

그에게 남은 단 하나의 희망이 인공자궁기술이었던 것 같았다.

'불쌍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인공자궁기술을 넘겨줄 순 없지.'

인공자궁기술은 3대 가문을 발전시킨 힘이었다.

만약 조셉 메를린이 그 기술을 가지고 나타난다면 쥬세페 메를린 같은 잔챙이가 아니라 3대 가문으로부터 공격받을 수밖에 없었다.

"인공자궁기술은 구하지 못했지만... 자네가 흥미를 가질만 한 바이오기술을 나도 하나 가지고 있네."

"바...이오 기술을 가지고 계신다고요?"

조셉 메를린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만약 내가 인공자궁기술 대신 자네 팔다리를 복원시킨 신체복원기술을 준다면, 소화할 수 있겠나?"

"역시... 이 캡슐이 아니라 아서님이 제 몸을 복원시켜주신 거였군요?"

난 가만히 고개만 끄덕여보였다.

"일단 살려주시고 제 몸도 이렇게... 건강하게 되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뭘 말인가?"

"제가 형님들을 넘어서려한다면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제 목을 벨 거란 사실을요."

조셉 메를린은 안전이 확보된 후에야 배다른 형인 쥬세페 메를린의 악독함을 실감하는 듯 했다.

그는 힘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곤 세상을 다 잃은 사람처럼 한탄하기 시작했다.

"이미 형님이 칼을 빼들었으니, 이 도시를 빠져나가기도 어려울 겁니다. 아마... 회장님도 절 지켜주시지 않을 겁니다. 고대기술을 가져오지도 못했으니, 그분 눈 안에 들 가능성도 사라졌습니다."

"내가 도와준다면?"

"아서... 님이... 왜 절 도와주신다는 말씀입니까?"

"돈 때문이지. 뭐 때문이겠나?"

내가 말한 순간, 혼이 나간 것 같던 조셉 메를린의 눈동자가 다시 총기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신체복원기술을 제공해줄테니, 자네는 회사를 설립하게. 메를린 그룹도 상용화하지 못한 기술로 사업을 시작하면 자네 아버지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거야."

내 말을 들은 조셉 메를린은 비척이며 일어났다.

"자네 안전도 내가 책임지지. 어떤가 내 제안이?"

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

그건 악마의 유혹 같았다.

너무 달콤해서 현실감을 느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팔미라 시에서 팔다리를 잃은 사람은 기계의체를 달고 사이보그가 된다.

대부분의 하층민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기계화에 비해 신체복원은 터무니없이 비쌌으니까!

하지만 당장 돈이 부족해서 팔다리를 의체화한 용병들도 돈을 모아서 신체를 복원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사이보그인 채로 강화시술을 받는다면, 생존확률이 0%에 한 없이 가깝기 때문이다.

하층민들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용병이 되는 길 밖에 없는 팔미라 시에서 신체복원기술이 각광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래, 신체복원기술이면...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어! 메를린 그룹을 넘어서는 바이오 그룹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조셉 메를린은 자신의 팔다리가 복원된 걸 보고 생각이 달리하게 됐다.

인공자궁기술로 3대 가문과 나란히 서겠다던 어린 시절의 다짐이 철부지의 꿈 같이 느껴진 것이다.

'신체복원기술을 상용화한 건... 볼드윈 메딕스를 포함해도 채 다섯 곳이 넘지 않아. 아서님은 어떻게 그런 수준 높은 기술을 손에 넣으신거지?'

당장 생각나는 건 오귀스트 가문의 독문마법인 염력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던 아서의 모습이었다.

'아니. 오귀스트 그룹은 바이오 사업에 손을 댄 적도 없어.'

오귀스트 그룹은 에너지 인프라와 발전소 분야에 전념하는 걸로 유명했다.

팔미라 시에서 생산되는 수준 높은 마력로는 모두 오귀스트 에너지 사의 제품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설사 조셉 메를린의 예상대로 아서가 3대 가문 중 하나인 오귀스트 가문의 사생아라도 신체복원기술을 손에 넣을 수 없는 이유였다.

'어느 골목에서 살해당할지 모르는 주제에 기술출처 따위를 따질 필요는 없겠지.'

조셉 메를린은 발가벗은 몸으로 샤워가운 하나 입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후에야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달콤한 제안이라 덥썩 물고 싶습니다. 하지만..."

조셉 메를린은 아서와 그의 안드로이드들을 돌아봤다.

그가 선 물류창고 안엔 처음 보는 3미터 크기의 은청색 로봇들이 거치되어 있었다.

'아이언스톰보다 작고... 화력도 약해보이는군.'

은청색 로봇의 왼팔엔 처음 보는 형태의 기관포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등엔 거대한 검을 매고 있는 모습이었다.

"제가 바이오 기업을 설립한다면 쥬세페뿐만 아니라 다른 형님들도 저를 죽이려고 들 겁니다. 아서님께서 대단한 분이란 건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쥬세페와 달리 블라디미르, 베르너, 알프레드, 테오도어는 각자 메를린 그룹의 계열사를 맡고 있습니다."

***

"쥬세페와는 운용할 수 있는 돈의 규모가 다른 형님들이 움직이면 저뿐만 아니라 아서님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조셉 메를린은 배다른 형들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어려워보였다.

"흠...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낫겠군."

그래서 제니퍼에게 말했다.

"엘리엇 암셀에게 연락해. 강화시술에 참관인 한 명 데려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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