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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닉 x 네크로맨서-89화 (87/152)

89화. 듀얼 탤런트

난 율리우스의 머리맡에 서서 그의 날개뼈에 손을 댔다.

고작 한걸음 다가섰다고 옅었던 좀비 향기가 한층 진하게 뿜어져나왔다.

하지만 테리의 몸에서 나는 체취에 비하면 한 없이 옅은 향이었다.

난 긴장 때문에 전신 근육이 딱딱하게 굳은 소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율리우스, 지금부터 내 말을 따르면 살고 거역하면 죽는다. 3단계 강화시술자가 돼서 친구들 사이에서 우뚝서고 싶나?"

"네, 넵! 따르겠습니다."

내가 엘리엇 암셀을 바라보자, 그가 허공을 터치했다.

그러자 수십 개의 바늘이 율리우스의 척추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 순간 율리우스의 몸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구속구에 갇혀 움직임이 제한됐지만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짐작할 수 있는 몸짓이었다.

"좀비 지배."

주문을 외운 순간 내 반물질 코어에 동조한 배틀슈트의 초소형마력로들이 죽음의 기운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양손에서 뿜어져나온 검은 연기는 내 머리 위에서 뭉쳐 검은 마법식을 이뤘다.

'지금 내가 느끼는 율리우스 내부의 좀비인자를 시각화 해.'

< 율리우스 내부의 좀비인자를 시각화하여 영상으로 출력합니다 >

< 기존의 2레벨 좀비인자는 율리우스의 생명력과 결합해 온몸에 퍼져있습니다. >

< 초록색으로 표시합니다. >

< 척추에 주입한 3레벨 좀비인자는 적색으로 표시합니다 >

기계안으로 들어오는 영상에 좀비인자의 색이 추가됐다.

마치 율리우스의 몸에 녹색과 적색 레이저를 쏘아댄 것처럼 선명하게 표시됐다.

적색으로 표시된 척추 쪽의 좀비인자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려는 것을 초록색으로 표시된 좀비인자가 충돌하며 막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좀비지배 스킬을 사용해 명령했다.

'멈춰라!'

그 순간, 2레벨 좀비의 좀비인자와 융합한 율리우스의 생명력과 3레벨 좀비의 좀비인자가 충돌을 멈췄다.

< 유니크 등급 스킬 [좀비 지배]로 강화시술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

< 죽음의 기운을 공급해 좀비인자 체화를 도우시겠습니까? >

'아니.'

그건 이전에 한번 해본 방식이었다.

샤를의 연구결과를 보지 않았다면?

이전처럼 3단계 강화시술자의 한계를 넘어서는 육체능력을 선물해주고 특이능력도 하나 정도 강제발현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좀비인자 안에서 여러 유전형질이 충돌하고 있다는 걸 알았는데, 이대로 강화시술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거칠게 치솟아올라 좀비 지배 마법식으로 빨려들어가던 죽음의 기운 중 일부가 율리우스에게 닿았다.

그 순간 율리우스의 생명력과 융합한 2레벨 좀비 스프린터의 좀비인자가 품은 유전형질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 조밀한 뼈

- 탄성 높은 근육

- 생명갈망

- 둔탁한 감각

- 미약한 사멸저항

그것들은 무엇 하나 쓸모없는 짜투리에 불과했다.

이대로 발현시켜도 2레벨 엘리트 좀비에 비하면 쓸모없는 능력들인데, 아직 발현조차되지 않은 상태였다.

'2단계 강화시술 과정에서 서로 다른 형질의 유전인자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약화됐겠지.'

내가 직접 개입하지 않은 강화시술의 결과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난 시스템 메세지를 무시하고 내 좀비 지배 마법식에 의해 율리우스의 척추라는 한정된 공간에 갇혀 있는 3레벨 좀비의 좀비인자를 보았다.

- 버서커

- 가속

- 유독가스 호흡

확실히 3레벨 좀비 머슬의 유전형질이라서 그런지 율리우스가 품은 2레벨 좀비 스프린터의 유전형질들보다는 수준이 높아보였다.

< 2레벨 좀비인자보다 3레벨 좀비인자의 유전형질이 뛰어난 이유는 [포식진화]에 있습니다. >

< 좀비들은 [포식진화] 스킬을 이용해 다른 유전자를 수집하고 그 진화과정에서 더 나은 특이능력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

시스템은 아직 발현되지 못한 특이능력 중 유독가스 호흡에 관한 메세지를 띄워올렸다.

< 팔미라 시의 용병들은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 중 숨을 쉴 때마다 유독가스를 생산하는 특이능력 [유독가스 호흡]을 발현한 좀비를 가장 꺼립니다. >

< 모든 [디스트로이어] 중 해당 좀비 사냥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

< [유독가스 호흡]을 발현한 [디스트로이어]의 현상금이 다른 디스트로이어들의 현상금보다 50% 이상 비싼 이유이기도 합니다. >

시스템은 내 시야로 무색무취의 유독가스를 내뿜는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를 상대하다 이유도 모르고 쓰러지는 용병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건 인간 입장에선 정말 끔찍한 특이능력이었다.

하지만 난 유독가스 호흡을 보자마자 그게 조절할 수 있는 특이능력이 아니란 걸 직감했다.

용병이 평소에도 유독가스를 뿜어낸다면 어떻게 될까?

'강화시술에 성공해도 마인으로 오인받아 결국 살해당하겠지.'

유독가스 호흡이란 특이능력 자체가 인간에겐 치명적이지만 이미 죽어버린 좀비들에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난 유독가스 호흡을 배제하고 다른 재능들을 살폈다.

< [가속]은 체력을 소모해 신체의 속도를 최대 10배까지 높일 수 있는 특이능력입니다. >

< 체력을 모두 사용할 시, 무방비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

그건 익숙한 특이능력이었다.

테리가 발현한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 [버서커]는 순간적으로 힘을 3배 올려주고 물리공격에 대한 저항력도 3배 올려주는 특이능력입니다. >

< 해당 특이능력 사용 시, 몸 안의 피가 빠르게 돌기 때문에 시전자가 쉽게 흥분할 수 있습니다. >

난 유전자 단위에서 어떤 유전형질을 버리고 어떤 유전형질을 발전시켜야할지 결정했다.

'좀비의 유전형질 변화도 어떻게 보면 언데드 개조라고 볼 수 있지. 마법식을 이렇게 바꾸면...'

나는 언데드 개조가 뼈와 살뿐만아닌 DNA급의 미시의 세계까지 변경할 수 있도록 마법식을 개조했다.

< 사령술에 관한 천부적인 재능이 빛을 발합니다! >

< 언커먼 등급 스킬 [언데드 개조]를 사용해 해당 언데드의 유전형질을 개조합니다. >

< 해당 행위는 언커먼 등급의 한계를 넘어선 능력입니다. >

< 불가사의한 사령술 재능이 언커먼 등급 스킬 [언데드 개조]를 유니크 등급 스킬 [언데드 개선]으로 강제 진화시켰습니다. >

그 순간 유독가스 호흡, 생명갈망, 둔탁한 감각, 미약한 사멸저항에 관한 재능들이 유전자 단위에서 분해되기 시작했다.

난 이미 율리우스가 품고 있는 조밀한 뼈와 탄성 높은 근육에 관한 유전형질에 죽음의 기운을 쏟아부었다.

< 유니크 등급 스킬 [언데드 개선]으로 강화시술자의 근육과 뼈를 개량합니다. >

< 3레벨 엘리트 좀비 크랩의 근육 표본을 참고합니다. >

< 경고! 율리우스가 가진 바이오매스로 3레벨 엘리트 좀비 크랩의 근육을 구성할 경우 확보할 수 있는 근육은 13그램입니다. >

시스템은 10센치 정도의 근육 한 가닥을 보여줬다.

이대로 강행하면 율리우스는 죽고 크랩의 근육 한가닥만 남는다는 소리였다.

'카라페이스의 근육은?'

< 카라페이스의 근육 표본을 참고할 경우, 율리우스의 체중이 35% 줄어들 수 있습니다. >

'그 정도면 죽지는 않겠군. 뼈는 카라페이스의 넙적다리 뼈를 토대로 구성한다.'

< 율리우스가 가진 뼈조직이 부족합니다. >

< 이대로 카라페이스의 뼈조직을 모사할 경우, 카라페이스의 넓적다리 뼈 강도의 40%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

'본 마스터리.'

난 곧바로 율리우스의 몸을 유전자 단위에서 개선하기 시작했다.

< 유니크 등급 스킬 [좀비 지배]를 사용하셨습니다. >

< 유니크 등급 스킬 [언데드 개선]을 사용하셨습니다. >

< 레어 등급 스킬 [본 마스터리]를 사용하셨습니다. >

< 레어 등급 스킬 [본 마스터리]가 콜라겐 나노섬유와 엘라스틴 나노섬유 그리고 칼슘기반 나노 결정을 재조립합니다. >

< 율리우스가 가진 뼈조직이 부족합니다. >

< 카라페이스의 넙적다리 뼈 강도에 비해 80% 수준의 강도로 개량되었습니다. >

< 개선된 율리우스의 뼈는 마그니움 함유량 29% 수준의 합금과 같습니다. >

세 가지 마법식은 내가 만든 죽음의 기운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빨리 빨아들이는지 척추 후면에 위치한 초소형마력로가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율리우스의 몸에서 드드드득! 하는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율리우스의 키가 눈 깜짝할 사이에 20센치미터 이상 줄어 150센치미터 중반까지 작아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몸 자체가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의 여자 아이만큼이나 왜소해졌다.

그때 강화시술 보조시스템 듀라한을 컨트롤 하며 시술을 돕던 엘리엇 암셀이 급격한 변화에 놀랐는지 부릅 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눈을 마주치며 끄덕하고 괜찮다는 턱짓을 하자 그제야 엘리엇 암셀은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그 순간에도 세 가지 마법식은 내가 만든 죽음의 기운을 끝도 없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럴수록 율리우스의 키는 눈에 띄는 속도로 다시 자라나고 있었다.

***

칠흑 같은 어둠의 기운이 아서의 손에서 샘솟았다.

스톨즈에게 듣고도 믿을 수 없었던 얘기가 엘리엇 암셀의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어떻게 인간이 죽음의 기운을 다룰 수 있는 거지?'

엘리엇 암셀의 상식으로는 죽음의 기운이란 산 자가 부릴 수 없는 에너지였다.

일반인은 닿기만해도 피부가 괴사하고 골수가 말라붙을 정도로 파괴적인 힘이기도 했다.

전설 속에서만 회자되는 데스나이트나 리치 정도되는 고위급 언데드가 아니라면 죽음의 기운을 자유자재로 사역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5급 네크로맨서일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이건, 그 정도가 아니잖아? 사령술에 저렇게 엄청난 죽음의 기운을 소모하는 주문이 있었나?'

죽음의 기운을 사역하는 아서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심령이 억눌리는 듯 했다.

'이건 마치... 저항저하 주문을 썼던 지난번 강화시술이 그냥 소일거리처럼 보이는 수준이잖아?'

2단계 강화시술로 3단계 강화시술자에 준하는 능력을 갖게 만든 저번 강화시술만해도 놀랄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서가 보여주는 역량은 그조차도 우습게 보이게 만들었다.

'도대체 율리우스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이게... 발렌틴 학파의 강화시술법인가?'

피시술자의 육체를 근본적인 수준에서 강제로 발전시켜버리는 방식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이 사람은 한낯 학파원일 수 없어. 이 사람이야말로 발렌틴 학파의 마이스터다!'

엘리엇 암셀은 자신이 깨달은 충격적인 사실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아서라는 이름의 사령술 마이스터를 쳐다 보았다.

그러자 그와 눈이 마주친 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바로 발렌틴의 마이스터라는 듯이!

***

< 기간트워리어급 배틀슈트 AW-100W의 잔여마력이 62%까지 떨어졌습니다. >

율리우스는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 20기를 일으킬만한 죽음의 기운을 흡수하고나서야 유전자 개선을 마칠 수 있었다.

데스윙을 일으킬 때 사용한 죽음의 기운의 80% 수준이었다.

율리우스의 키는 10센치미터나 커져있었고 그의 몸은 기아상태로 보일만큼 뼈에 가죽만 덮어놓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 눈엔 찬란하게 빛나는 율리우스의 특이능력이 보였다.

< [유독가스 호흡]과 관련된 유전형질과 대량의 죽음의 기운을 흡수한 결과, [버서커] 그리고 [가속]과 관련된 유전형질이 개선되었습니다. >

< 해당 개체가 폭발성 가스를 생산하고 저장할 수 있는 내장기관을 형성했습니다. >

< [버스트 버서커]는 광폭화할 시, 몸 속의 가스를 폭발시켜 더 강한 힘을 얻는 특이능력입니다. >

< 한번에 많은 가스를 폭발시킬 경우, 폭사할 수 있습니다. >

< [폭발가속]은 모공을 통해 가스를 배출하고 폭발시켜 가속을 촉진하는 특이능력입니다. >

< 적정량 이상의 가스를 폭발시킬 경우 모공과 함께 해당 신체부위가 훼손될 수 있습니다. >

율리우스는 양날의 검을 쥐고 말았다.

'한발만 잘못 디뎠다간 요단강 건너는 특이능력 같은데?'

< 상당한 숙련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내가 율리우스를 걱정한 순간이었다.

깡! 하는 쇳소리와 함께 율리우스를 묶었던 구속구들이 깨져나가버렸다.

"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별로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

당황한 율리우스는 엘리엇 암셀과 나 그리고 잠깐 사이에 키가 10센치미터나 크고 몸은 기아처럼 말라버린 자신의 몸을 번갈아보며 중얼거렸다.

"율리우스 멈춰라!"

그때 엘리엇 암셀이 외쳤다.

스톨즈가 허공을 터치하자, 천장에서 두께 30센치미터 짜리 원형 방탄유리벽이 내려와 율리우스를 가두려했다.

몰라보게 강해진 자신의 힘을 느끼고 희열에 찬 표정이었던 율리우스는 방탄유리벽을 보곤 참담한 표정으로 변해버렸다.

"연구소장님! 제가 마인이 되어버린 겁니까?"

"율리우스, 진정해라. 모든 3단계 강화시술자들은 시술 이후 테스트를 거쳐야한다. 너도 알고 있지 않니?"

엘리엇 암셀은 침착한 표정으로 율리우스를 다독이려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쿠궁! 하는 굉음과 함께 방탄유리벽이 바닥에 맞닿은 후에도 엘리엇 암셀과 스톨즈는 방탄유리벽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이미 마인화가 진행되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율리우스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방탄유리벽을 긁으며 소리쳤다.

"아, 아서님! 아서님을 따르면 살 수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아서님!"

난 그 모습을 보고 엘리엇 암셀에게 말했다.

"강화시술은 성공했습니다. 율리우스가 마인화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서님... 저건 3단계 강화시술자가 부술 수 있는 구속구가 아닙니다. 아서님도 아시다시피 마인화의 전조증상 중엔 단계에 맞지 않는 신체능력이 공통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까?"

엘리엇 암셀은 내 말을 듣고도 물러나지 않았다.

"신체능력은 카라페이스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일 겁니다. 특이능력은 두 가지 정도 발현시켰고요."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듀얼 탤런트를 발현시키셨단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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