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90화 (88/152)

90화. 루키

'듀얼 탤런트?'

내가 속으로 중얼거리자 제니퍼가 정신파를 보내왔다.

- 주인님, 혹시 4단계 강화시술자가 평균적으로 몇 가지 특이능력을 발현시키는지 아십니까?

'글쎄... 한 다섯가지쯤 되려나?'

3단계 강화시술에 쓰이는 좀비인자가 세 가지 특이능력에 관련된 유전형질을 가지고 있었으니, 4단계면 그보다 많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제니퍼의 대답은 내 예상 밖이었다.

- 한 가지입니다. 두 가지 특이능력을 발현시킨 자들은 4단계 강화시술자들 중에서 고작 5% 미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4단계 강화시술자들 중에서도 특이능력 2가지를 발현시킨 사람이 드물다? 그럼 이번 시술은 아주 성공적이란 소리군?'

- 단순히 성공적인 정도가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 3단계 강화시술 과정에서 듀얼 탤런트를 발현한 경우는... 강화시술 역사상 채 열 명이 되지 않습니다.

'강화시술 역사상?'

내가 놀라서 되묻자 제니퍼가 대답했다.

- 네. 그리고 현존하는 4대 기사는 모두 3단계 강화시술 과정에서 듀얼 탤런트를 발현했습니다.

'설마... 듀얼 탤런트가 5단계 강화시술의 성공가능성을 점치는 데 사용된다는 건가?'

- 그렇습니다. 이 사실이 네크로맨서 학회에 보고되면 모든 네크로맨서와 강화시술자들이 율리우스를 5단계 강화시술도 견뎌낼 루키로 볼 겁니다.

제니퍼의 설명은 내 계획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난 엘리엇 암셀에게 율리우스를 가둔 방탄유리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저 감옥부터 치웁시다. 율리우스가 5단계 강화시술에 도전할만 한 인재라면 저렇게 대우를 소홀히해서야 되겠습니까?"

"다, 당연히 그래야겠군요!"

엘리엇 암셀은 다급히 스톨즈의 어깨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스톨즈가 허공을 터치하자, 위잉! 하는 기계음과 함께 방탄유리벽이 천장으로 올라갔다.

율리우스는 유리감옥에서 풀려나자마자 내게 다가와 오른쪽 무릎을 꿇었다.

"아서님,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락가락한 경험이 그의 심경에 상당한 변화라도 준 모양이었다.

"고생했다."

내가 율리우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자, 녀석의 눈가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져내렸다.

"아서님, 율리우스의 신체능력과 특이능력부터 테스트해봐도 되겠습니까?"

엘리엇 암셀은 율리우스의 심경변화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듯, 허공을 터치하며 물었다.

그는 율리우스의 능력에 대한 내 말이 사실인지 한 시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 순간, 바닥에서 케이블과 연결된 손잡이가 올라왔다.

난 율리우스를 보며 물었다.

"할 수 있겠나?"

"실망시켜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율리우스는 엘리엇 암셀을 한번 노려보더니 손잡이 앞에 섰다.

그리곤 엘리엇 암셀이 명령하기도 전에 손잡이를 잡고 당겨올렸다.

***

10분 후.

- 이름 : 율리우스

- 등급 : 3단계 강화시술자(듀얼 탤런트-미확인)

- 근력수준 : 8.45톤...

"겨, 겨우 이두 근육만으로 8 톤을 들어올리다니!"

강화시술 보조시스템 듀라한이 띄운 홀로그램창을 본, 엘리엇 암셀의 눈동자가 떨리는 게 보였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 표정, 음성, 호흡, 심박수 등을 분석해 엘리엇 암셀의 감정상태를 예측합니다. >

< 72%의 경악, 28%의 환희가 감지되었습니다. >

'이게 그렇게 대단한 성과인가?'

< 통합 데이터베이스에서 관련자료를 검색합니다. >

< 일반적인 3단계 강화시술자의 근력수준은 900킬로그램에서 1.6톤 수준입니다. >

< 30톤 이상인 4단계 강화시술자들의 근력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3단계 강화시술자의 한계를 벗어난 수치입니다. >

시스템 메세지를 읽고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다, 당장 특이능력도 검사해야합니다!"

엘리엇 암셀은 뭔가에 취한 사람처럼 조급하게 굴었다.

지난 시술에 이어 3단계 강화시술에서도 단계를 뛰어넘는 완력을 보이자 나를 완전히 신뢰하는 듯 했다.

'아직 특이능력을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이미 믿고 있군.'

난 손을 들어 흥분한 엘리엇 암셀을 멈춰세웠다.

앙상한 상태로 익숙하지도 않은 특이능력 시전했다가는 양측 모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율리우스의 특이능력은 자신의 몸에 저장한 폭발성 가스를 폭발시키는 데서 옵니다. 율리우스는 강화시술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잘 먹이고 폭발성 가스를 다루는 법을 연습시킨 후에 테스트 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엘리엇 암셀은 내 말을 듣고나서야 조금 진정된 모습이었다.

"그, 그렇군요. 폭발성 가스라... 그건 저도 처음 들어보는 특이능력이군요."

그는 초점 잃은 눈으로 뭔가에 홀린듯 중얼거렸다.

그리곤 갑자기 고개를 내젓더니, 뭔가 깨달은 것처럼 내게 소리쳤다.

"아서님, 됐습니다! 신체능력과 특이능력 모두 '규격 외' 등급이라면, 네크로맨서 학회가 주목할만 합니다."

본래 내 계획은 3단계 랭커 9명을 배출해서 암셀 학파가 내가 원하는 주문을 구해올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는 거였다.

하지만 율리우스가 단순한 3단계 랭커를 월등한 수준으로 뛰어넘는 순간, 계획이 어그러져버렸다.

'5단계 강화시술자는 귀족들조차 위협적으로 생각해서 회유하는 존재들이랬지?'

- 그렇습니다.

'5단계 강화시술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루키라면... 귀족들과 대등한 지위에 오르고 싶은 4대 학파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겠군?'

- 아마 학회에 율리우스의 능력을 발표하는 순간, 그들이 접촉해올 겁니다.

난 제니퍼의 설명을 듣고 암셀 학파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기로 했다.

"앞으로 이 친구가 나를 대신해 바이오 기업을 설립할 겁니다."

난 그렇게 말하며 조셉 메를린을 쳐다보았다.

내 말을 들은 조셉 메를린은 당황한 듯 고개를 들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서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율리우스와 앞으로 내가 강화시술할 용병들은 이 쪽 바이오 기업에서 관리하겠다는 말입니다."

엘리엇 암셀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쏟아내었다.

"하, 하지만... 저희 학파가 배출해낸 강화시술자라고 발표할 수 있게 해주신 거 아니었습니까? 설마 학회에 직접 진출하시려는 겁니까?"

나는 네크로맨서 학회에서 명성을 얻는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플라즈마윙보다 강력한 강화시술자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3단계 랭커인 플라즈마윙으로 레전드 등급 언데드 데스윙을 만들었지. 그보다 강한 율리우스를 재료로 언데드를 만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상상만해도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네크로맨서 학회에 발표도 암셀 학파가 하고, 주목도 암셀 학파가 받으셔도 됩니다. 명예는 암셀학파에서 갖고. 강화시술자는 우리쪽이 관리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엘리엇 암셀은 뭔가 아쉬운 듯 말끝을 흐렸다.

"암셀 씨, 3단계 랭커와 듀얼 탤런트를 발현한 3단계 강화시술자를 같은 저울에 올려놓고 비교할 수 있습니까?"

"무, 물론 비교할 수 없을만큼 듀얼 탤런트의 가치가 높다는 건 압니다..."

"암셀학파는 강화시술 과정에서 특이능력을 발현시켜본 적도 없고, 폭발성 가스를 다루는 율리우스의 특이능력에 대한 노하우도 없잖습니까?"

내가 율리우스의 특이능력을 내세워서 묻자, 엘리엇 암셀은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엘리엇 암셀은 한참 고민하더니 율리우스를 보고 뭔가 깨달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사실 율리우스는 제 노예나 실험체가 아닙니다. 이번 강화시술도 그가 자원했죠. 그러니 거취 문제 또한 그가 결정하는 게 옳을 것 같군요."

갓난아이때부터 암셀학파를 위해 키운 용병이라더니, 그 충성심을 자극할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엘리엇 암셀은 이미 율리우스를 마인으로 오해하고 폐기처분할 뻔 했었다.

그리고...

'아머드 스켈레톤들만큼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믿음직스럽다는 기분이 드는군.'

시체를 일으킬 때 모자란 제물 대신 내 죽음의 기운을 사용했듯 강화시술과정에서 내가 만든 죽음의 기운을 사용했었다.

내가 나도 모르게 율리우스를 언데드처럼 대한 게 아닌지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아서님을 따르겠습니다."

율리우스가 내 옆으로 다가오며 고개를 숙였다.

"유, 율리우스! 친구들을 버리고 혼자 아서님을 따르겠다는 거냐?"

엘리엇 암셀은 내 눈치를 보며 티내지 않으려했지만 서운함을 감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율리우스는 오히려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서려했다.

앞서 방탄유리감옥에 갇혀 폐기처분될 뻔했었던 기억때문에 감정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난 앙상하게 마른 율리우스의 앞을 막아 그를 제지하고 엘리엇 암셀에게 말했다.

"명성은 암셀학파가, 실리는 내가 갖겠습니다. 대신 강화시술 하는 과정에서 내 어깨 너머로 무언가를 배워도 돌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죠. 어떻습니까?"

엘리엇 암셀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입술은 짓씹어댔다.

그의 머릿 속에서 슈퍼루키가 된 율리우스를 넘기기 싫은 마음과 그를 만들어낸 내 강화시술에 대한 욕심이 충돌하는 듯 했다.

***

"어깨 너머로 무언가를 배워도 돌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죠. 어떻습니까?"

아서의 팔에 가로막힌 율리우스를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서의 말은 그의 피를 한순간에 차갑게 식혀버렸다.

'아서는 신체능력을 측정하기도 전에 율리우스의 힘이 2레벨 엘리트 좀비 카라페이스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라는 걸 알아냈어.'

그건 엘리엇 암셀뿐만 아니라 팔미라 시에서 활동하는 모든 네크로맨서의 상식을 벗어난 능력이었다.

'발렌틴 학파의 네크로맨시... 도대체 어느 단계까지 올라간 거지?'

엘리엇 암셀은 듀얼 탤런트를 발현한 율리우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바라마지않는 건...

'이번 기회에 다른 차원에 접어든 발렌틴 학파의 사령술을 훔쳐배울 수만 있다면?'

그 순간 엘리엇 암셀의 뇌리에 몇 가지 단상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3레벨 엘리트 좀비 크랩을 생포해올만 한 무력.

2단계 강화시술에선 3단계 강화시술자에 준하는 강화인간을 만들어내고 3단계 강화시술에선 듀얼 탤런트라는 슈퍼루키를 만들어낸 강화시술 기술.

둘 중 하나만 얻더라도 암셀 학파는 네크로맨서 학회의 랭킹 10위 안에 발도장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학파의 미래가 먼저다.'

엘리엇 암셀은 생각을 정리하고 아서에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아서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발렌틴 학파의 고귀한 가르침을 내려주시겠다니 암셀학파를 대표해서 감사인사 올리겠습니다."

***

16시간만에 드디어 아홉 번째 시술이 끝났다.

< 기간트워리어급 배틀슈트 AW-100W의 잔여마력이 4%까지 떨어졌습니다. >

마지막 강화시술자 드리슈가 얻은 특이능력이 시스템 메세지로 올라왔다.

< [동결]와 관련된 유전형질과 대량의 죽음의 기운을 흡수한 결과, [안개화] 그리고 [괴력]과 관련된 유전형질이 개선되었습니다. >

< 해당 개체가 열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내장기관을 형성했습니다. >

< [서리안개화]는 안개로 변해 물리공격을 피하고 안개에 휩싸인 적의 열을 빼앗을 수 있는 특이능력입니다. >

< [동결괴력]은 적의 열에너지를 빼앗을 수록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특이능력입니다. >

< [서리안개화]와 [동결괴력]과 관련된 유전형질을 저장했습니다. >

내가 마지막 강화시술자 드리슈의 유전형질을 살피는데, 시스템이 새로운 기술을 얻었음을 알려왔다.

< 반복적인 유전자 개선 결과, 언커먼 등급 스킬 [유전공학]을 습득하셨습니다. >

< [유전공학] 스킬은 유전자를 사용자의 목적에 맞게 합성, 변형하는 걸 도와줍니다. >

< 반복적인 유전자 개선 결과, 레어 등급 스킬 [유전자조작]을 습득하셨습니다. >

< [유전자조작] 스킬은 유전자를 재배합하거나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더 강한 유전자를 만들어냅니다. >

아홉 번째 강화시술자 드리슈가 움직이자, 철제구속구가 쩌정! 소리와 함께 깨져나갔다.

그 순간 우웅! 하는 울림이 강화시술실을 뒤흔들었다. 돌아보니 두꺼운 방탄유리벽 너머로 치열하게 치고박는 듀얼 탤런트들이 보였다.

고작 5시간만에 피골이 상접한 모습에서 근육질의 몸으로 탈바꿈한 율리우스가 하얀 기체를 터트리며 돌진했다.

그 순간 키가 3미터에 달하는 황동거인이 율리우스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허공에서 퍼벙! 하는 폭발음이 터지고 율리우스가 달리던 방향에서 무려 90도나 방향을 꺾으며 황동거인의 주먹을 피해내버렸다.

"이젠 제법 익숙해졌군."

"배틀슈트를 입지 않고도 저 정도 전투력이라니... 이대로 학회에 보고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강화시술 보조시스템인 듀라한을 조작하던 엘리엇 암셀은 방탄유리벽 안에서 대련하는 두 사람을 보며 걱정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십대 소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서님, 저도 야코프와 싸워보고 싶습니다!

- 무슨 소리야? 회복은 내가 빨랐으니까 대련도 내가 먼저야!

- 회복 순서 말고, 강화시술 순서대로 정하자!

강화시술실 밖에서 율리우스와 야코프의 대련을 구경하던 여섯 명의 소년들이었다.

"한명 정도 보고해보시고, 그 이후에도 제가 요구한 사령술 주문을 얻기 어려우시면 추가로 한 명 씩 보고해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 아이들을 우리가 보호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엘리엇 암셀은 듀얼 탤런트란 말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사람들이 벌써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암셀 씨와 스톨즈에겐 제 부하들을 붙여드리겠습니다."

"그럼, 아서님만 믿겠습니다."

엘리엇 암셀은 습격과 납치를 걱정했다.

하지만 난 준비된 상태에서 받는 공격은 내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암셀학파를 쳐들어올 정도의 습격자라... 어쩌면 이번 기회에 수준 높은 시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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