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블랙마켓
다음 날, C- 10 구역 중심상업구역의 밀러쉴더스 본사의 대회의실.
"오늘 수납한 공헌도가... 14만 점? 평소의 2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잖아?"
대회의실 상석에 앉은 대표가 기분 나쁘다는 듯 말끝을 올렸다.
그가 눈살을 찌푸리자, 검은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시리디 시린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저 미친 놈이!'
4단계 강화시술자, 휴고 가르시아는 그 모습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윌리엄 밀러의 몸에서 거센 냉기가 뿜어져나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테이블에 살얼음이 끼고, 대회의실의 유리창이 얼어붙다 못해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거미줄 같은 금이 가버렸다.
그 순간 윌리엄 밀러의 뒤에 서있던 백발의 블랑코 집사가 그에게 한걸음 다가섰다.
"도련님, 이번 회의에 참석한 임원들 중 국지전에서 부상당하지 않은 자가 드뭅니다."
그는 밀러 그룹의 16번째 집사 블랑코 아모르였다.
그 순간 윌리엄 밀러의 몸에서 뿜어져나온 냉기가 무형의 원형 돔에 갇힌 것처럼 그 안으로만 맴돌았다.
'블랑코 집사 덕분에 얼어죽는 꼴은 면했군.'
휴고 가르시아가 안심한 순간이었다.
- 외부의 기온이 급격하게 하락 중입니다.
- 영하 30도!
- 영하 45도!
- 영하 65도 돌파!
- 영하 70도 돌파 시, 배틀슈트 내부 전력이 끊길 수 있습니다.
- 영하 80도 돌파 시, 초소형마력로가 작동을 멈출 수 있습니다.
- 경고! 현 위치에서 빠르게 이탈하셔야 합니다!
그가 입은 배틀슈트의 전투보조시스템이 빠르게 경고 메세지를 띄워올렸다.
블랑코 집사의 원형 돔이 막지 못한 일부 냉기만으로 대회의실의 온도가 영하 65도를 돌파해버린 것이다.
'저런 초상능력을 가지고 왜 장벽 밖에 나가지 않는 거야? 저 미친 놈만 있었으면 저번 전투에서 힘 없이 물러나는 일은 없었을텐데...'
휴고 가르시아는 헬맷에서 자라는 하얀 고드름을 신경질적으로 부숴버리며 생각했다.
장벽방어군 소속 골렘과 기간트들이 마운틴 퀸이 보낸 4레벨 엘리트 좀비 브레이커들과 맞서 싸울 때였다.
로두스 성국의 성기사들이 측면을 공격해왔다.
동부사막에서 발발한 국지전에서 골렘들이 이끈 팔미라 시의 병력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이유였다.
휴고 가르시아와 많은 용병들은 전투에 참여조차하지 않은 귀족들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 빌딩의 온도관리시스템이 냉기를 배출합니다.
- 기온이 상승합니다.
- 현재 온도는... 영하 43도 입니다.
휴고 가르시아는 전투보조시스템의 메세지를 보고 배틀슈트의 헬멧을 투명화시켰다.
"이번 국지전으로 많은 공헌도를 얻었지만, 부상당한 용병도 셀 수 없을만큼 많습니다."
말을 할 때마다 3레벨 엘리트 좀비 크랩의 손에 뜯겨져나간 왼쪽 턱과 왼쪽 눈이 아려왔다.
수복용 젤로 대충 덮어놨지만, 말할 때마다 고통이 덮쳐오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회의에 참여하려면 더 강력한 진통제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윌리엄 대표는 매서운 눈으로 휴고를 노려봤다.
하지만 휴고를 그럴수록 대표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고통이라곤 느껴본 적도 없는 놈이 용병들을 대표한다니...'
그가 속에서 치솟는 울분을 가까스로 참는데, 맞은 편에 앉은 2팀장 세사르 알마챠의 헬멧이 투명하게 변했다.
그는 휴고와 함께 밀러쉴더스를 대표하는 4단계 강화시술자들 중 하나였다.
밀러쉴더스의 대표는 누가 뭐래도 윌리엄 밀러였다.
하지만 밀러쉴더스에 소속된 모든 용병들이 믿고 목숨을 맡기는 사람은 휴고와 세사르 같은 팀장들이었다.
"대표님, 임원들 중에 회의에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부상이 심한 인원만 여섯 명입니다. 여기서 더 쥐어짜시면... 이탈하는 인원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갈색수염을 멋들어지게 다듬은 세사르까지 동조하자, 윌리엄 밀러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쳐버렸다.
꽝! 짜자자장! 하는 소리와 함께 얼어붙었던 대회의실의 테이블이 유리조각처럼 산산조각나버렸다.
"내가 월초에 말했을텐데? 이번 달 말에 공헌도 쓸 일이 있으니, 3천만 점 만들어놓으라고 했던 말 기억 못하는 건가?"
"하지만 그땐 국지전이 발발하기 전이었고..."
"휴고!"
휴고가 반박하려하자, 윌리엄 밀러가 그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저길 봐! 시정부에서 공헌도를 다섯 배나 쳐주겠다는데, 다 지난 전투 핑계를 대며 머뭇거릴텐가?"
휴고의 상처를 보고 눈쌀을 찌푸린 윌리엄 밀러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곤 회의실 한 가운데 띄워진 홀로그램 공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 사막정화 용역사업
- 동부사막에 몰려든 좀비집단 정화에 귀사의 협력을 요청합니다.
- 기간 : 앞으로 2달
- 보상 : 위 기간 동안 수거한 좀비의 머리는 평시에 제공하는 공헌도의 5배로 책정합니다....
하지만 그 공문을 읽은 2팀장 세사르는 윌리엄 밀러와는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용병들을 앞세워 대규모 전투를 야기시키고 그 틈을 노린 로두스나 마운틴 퀸이 나서면 그 뒤를 치겠다는 수작 아닙니까?"
"세사르, 시정부가 언제 우릴 생각해서 작전을 짠 적이나 있었나?"
윌리엄 밀러는 당연한 소릴 한다는 듯 2팀장 세사르에게 되물었다.
"대표님, 저희가 평시에 임무를 거절한 적 있습니까? 이 몸 상태로 동부사막으로 가란 건, 그냥 그 자리에서 죽으라는 말입니다!"
세사르와 휴고 모두 닳고 닳은 4단계 강화시술자들이었다.
그들은 윌리엄 밀러가 집기를 때려부숴도 그에게 끌려다닐 생각이 없었다.
휴고가 대회의실을 돌아봤다.
입을 다물고 있는 14명의 임원들은 눈빛만으로 그와 세사르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 꼴을 보는 윌리엄 밀러의 눈에 다시 새파란 빛이 번뜩이려 할 때였다.
"도련님,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보시면 어떨까요?"
"다른 방향?"
부하들의 반항에 답답했던 윌리엄 밀러는 블랑코 집사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
"네. 우리 임직원들이 부상이 심하듯, 다른 기업의 사냥팀들도 상황은 비슷할 겁니다."
집사 블랑코는 동의하냐는 표정으로 배틀슈트 차림의 임원들을 돌아봤다.
그들을 바라보는 백발 노집사의 눈빛엔 그쯤하라는 듯한 무언의 메세지가 담겨있었다.
휴고는 매번 윌리엄 밀러의 뒤치닥거리를 해야하는 그의 심정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럼... 직원들에 대한 감시망도 느슨해질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윌리엄 밀러는 집사의 말을 바로 이해했다.
"이 틈에 다른 기업의 용병들을 스카웃하자?"
"부상이 심하지 않은 용병을 스카웃하면 즉시전력으로 투입할 수 있습니다. 세사르, 휴고. 내 생각이 어떤가?"
노집사가 이렇게까지 배려해주는데 더 이상 뻗댈 수가 없었다.
"부상자들도 인맥까지 사라진 건 아니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은 못해봤는데, 똘똘한 녀석들이 몇 명 생각납니다."
세사르와 휴고가 호응하자, 짝짝! 소리를 내며 윌리엄 밀러가 박수를 쳤다.
"좋아. 그럼 가능한 인맥을 다 동원해서 인재를 쓸어담아보자고! 인사팀장?"
"예."
윌리엄 밀러가 부르자, 왼쪽 줄 제일 끝에 앉아있던 배틀슈트가 일어나며 헬멧을 투명화했다.
"준비된 인원부터 사막정화 용역으로 투입시켜."
"넵!"
"그리고... 저번에 그 건을 해결한 용병도 부상 중인가?"
"그 용병은... 국지전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인사팀장은 다른 임원들의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 제법 실력있는 것 같던데... 아니, 오히려 잘됐군. 이번 사막정화 용역에 참여시키도록."
"네? 네. 알겠습니다."
윌리엄 밀러는 그 대답을 듣곤 대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집사 블랑코까지 나갔지만, 임원들 중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시의원도 못 될 놈이 왜 공헌도에 저렇게 집착하는 거지?"
휴고가 인사팀장에게 물었다.
인사팀장은 머뭇거리며 대답을 주저했다.
"핀, 네가 입을 다문다고 집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냐? 우리 몰래 초상능력이라도 각성한 거야?"
세사르가 인사팀장 핀에게 따져물었다.
"휴... 이건 이 자리에서 나가시면 다 잊으셔야 합니다?"
"핀이 한 얘기는 밖으로 옮기지 않는다."
인사팀장 핀이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휴고가 결정짓듯이 말했다.
임원 중 누구 하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인사팀장 핀은 그 모습을 보고 그게 휴고의 명령에 따르겠다는 뜻임을 알아차렸다.
"사모님의 고향인 팔츠 시를 교역도시로 미는데 공헌도를 쓴다더군요."
"되지도 않을 일 때문에 우리만 죽어나가게 생겼군."
그 말을 들은 세사르는 고개를 내저으며 일어나버렸다.
***
철컥! 하고 에어로트럭의 문이 닫혔다.
소파에 앉은 아서는 조셉 메를린에게 잔을 권했다.
"이 정도면 자네 형들에게서 자네와 내 사업을 지킬 수 있겠나?"
아서는 조셉 메를린의 잔을 다 채우기 무섭게, 자신만만한 태도로 물었다.
'고작 하루만에 듀얼 탤런트를 9명이나 만들다니... 내가 본 게 꿈이나 환상은 아니겠지?'
조셉 메를린은 자신이 직접 강화시술에 참관하고도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돌이켜봐도 그건 사실이었다.
'분명 마법을 사용해서 강화시술을 돕는 것 같았어. 그런데... 네크로맨서가 집도하는 강화시술을 도울 정도로 오귀스트 가문의 강화시술 수준이 올라갔나?'
망명귀족의 후예이자, 마법사인 조셉 메를린은 죽음의 기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네크로맨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앞에서 아서가 죽음의 기운을 뿜어내는데도 그가 네크로맨서란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조셉 메를린이 아는 건, 암셀 학파가 D 구역을 벗어나지 못한 하급 네크로맨서 학파란 사실 정도였다.
하지만 팔미라 시에 공개된 바로는 3대 가문이 쌓은 강화시술에 관한 기술은 하급 네크로맨서 학파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오귀스트 가문의 독문마법인 염력 마법을 사용하고, 볼드윈 가문 못지 않은 신체복원기술을 보유한 것으로도 모자라 강화시술을 보조해서 듀얼 탤런트를 양산할 정도로 강화시술에도 조예가 깊다?'
도대체 아서의 정체가 뭔지 그를 알면 알수록 아리송해질 뿐이었다.
조셉 메를린은 아서를 바라봤지만, 직접적으로 그에게 묻지는 못했다.
이미 아서가 자신에게 공개한 정보만으로도 위험수준을 한참 넘어섰기 때문이다.
'나한테 이런 비밀들을 서스럼없이 공개하는 이유는 뭘까? 날 믿어서? 아니면... 내가 배신하기도 전에 죽일 자신이 있는 건가?'
그 순간, 끔찍한 금제방법이 그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정말 내 몸에 스파이럴버그를 심어둔 건가?'
스파이럴버그.
그건 고대유물이었다.
누구 하나 믿기 어려운 귀족들이 망명귀족을 휘하로 받아들일 때 쓴다는 금제로 뇌의 특정 부위에 삽입한다고 알려져있다.
이미 충성심을 증명한 망명귀족도 스파이럴버그를 심지 않으면 집사로 들이지 않는 게 팔미라 시의 3대 가문이었다.
주인을 배반할 생각만 해도 뇌를 소용돌이 형태로 파먹는다는 스파이럴버그가 머리에 심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덜컥! 하고 멈추는 것 같았다.
그때 꿈인 줄 알고 넘겼던 장면이 그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잠결에 본 자신의 몸엔 수 많은 튜브가 연결되어 있었다.
깨어난 후에 본 자신의 몸엔 아무런 상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꿈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한 가지만 발설해도 죽을 수 있는 비밀을 세 가지나 알려줘놓고도 태연하기만 한 아서의 표정을 보니, 확신이 섰다.
'한 가지만 발설하려해도... 난 죽는다.'
그 순간 조셉 메를린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속으로 되뇌였다.
'난 내가 살길만 생각하자. 사실 아서님을 배반할 생각도 없었어!'
조셉 메를린이 대답도 없이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데도 아서는 그에게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단지 여유로운 표정으로 조셉 메를린이 든 잔을 턱짓으로 가리킬 뿐이었다.
섬뜩한 무언가를 본 듯 놀란 조셉 메를린은 엉겁결에 잔을 비우고 나서야 입술을 뗐다.
"아서님을 상대하려면... 형님들도 죽을 힘을 다 해야할 것 같긴 했습니다."
"그건 나와 한 배를 타겠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이미 아서님을 대신해서 바이오 기업을 설립할 사람이라고 소개하시지 않았습니까?"
조셉 메를린은 장난스럽게 대답하며 아서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
다음 날, D-135 구역 공장지대 물류창고.
"조셉, 신체복원기술을 사용해서 사업을 시작하려면 얼마나 필요하지?"
"D 구역에서 사업을 시작하실 겁니까?"
"아무래도 내 손이 닿는 구역에서 시작하는 게 낫겠지."
"그럼 건물을 빌리는데는 큰 돈이 필요하지는 않을 겁니다. 현재 신체복원할 수 있는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난 곧바로 조셉 메를린 뒤에 거치된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에게 통신을 연결했다.
'샤를, 한번에 신체복원할 수 있는 인원은 어느 정도야?'
- 인간형태라면... 약 4천 명 정도이며 복원에 필요한 시간은 최대 21시간입니다.
그러자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의 장갑 속에 숨은 연구정령 샤를이 통신을 보내왔다.
'뭐?'
- 코소브 생명과학 연구소는 바이오매스가 부족해서 실험체 대부분을 폐기하거나 동면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검색해보니 팔미라 시에선 아주 싼 값에 바이오매스를 판매하고 있더군요?
그 순간, 시스템이 내 왼쪽 시야에 여러 기업들이 생산하는 단백질 바와 배양육 따위를 보여줬다.
싼값에 대량생산할 수 있는 식품들로 F 구역의 주민들이 즐기는 식품들이었다.
'이런 싸구려 배양육만 제공해주면... 4천 명의 팔다리를 복원할 수 있다고?'
- 네. 신체훼손 정도와 환자가 강화시술자일 경우, 그에 따라 많은 바이오매스가 필요하긴 합니다. 하지만 충분한 배양육만 있으면 얼마든지 복원할 수 있습니다.
샤를의 대답은 날 충격에 빠트렸다.
그녀가 요구한 건 고작 몇 크레딧에 불과한 식량들이었기 때문이다.
'팔미라 시에서 현재 서비스 중인 신체복원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이지?'
내가 묻자, 시스템이 메세지를 띄워올렸다.
< 현재 팔미라 시에서 가장 뛰어난 신체복원기술을 지닌 기업은 [볼드윈 메딕스] 사 입니다. >
< [볼드윈 메딕스] 사는 환자의 신체훼손 정도에 따라 30일 코스, 60일 코스, 90일 코스 세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 사용자님처럼 팔다리를 모두 잃고 한쪽 눈까지 잃으신 경우 60일 코스로 회복할 수 있으며, 비용은 125억 크레딧입니다. >
'샤를, 의체인 내 몸을 생체조직으로 복원한다면 얼마나 걸릴까? 그리고 비용은 얼마나 들겠어?'
- 연구소장님의 신체는 강화시술을 받지 않은 몸입니다.
- 신체복원에 필요한 바이오매스는 볼드윈 미트 사의 A+ 등급 소고기 배양육 45 킬로그램입니다.
- 배양육 구매에 필요한 비용은 450 크레딧입니다.
- 신체복원에 필요한 시간은 8시간 43분입니다.
연구정령 샤를의 대답을 듣고나니, 더 어지러워지고 말았다.
450 크레딧 대 125억 크레딧!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거기다 볼드윈 메딕스 사는 60일이나 걸리는 일을 고작 8시간만에 해결할 수 있다?
'이대로 출시했다간, 볼드윈 메딕스 사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겠군.'
볼드윈 그룹은 싸구려 배양육 생산부터 값비싼 신체복원 서비스까지 생명과학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손을 뻗치고 있었다.
팔미라 시에선 돈이 곧 힘이고 무력이었다.
내가 볼드윈 메딕스 사의 매출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그 순간, 귀족들의 습격을 대비하던 용병협회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용병협회도 대놓고 공격하는 놈들이 D 구역의 신생 바이오 기업 따위를 봐줄 리는 없겠지.'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데, 조셉 메를린이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괜한 질문을 했군요."
내가 샤를과 대화하느라 가만히 있자, 조셉 메를린은 자신이 기술수준에 대해 물어본 것에 내가 기분이 나빠진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아니, 자네때문이 아니라 볼드윈 메딕스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었네."
내말을 듣자, 조셉 메를린은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했다.
"흠... 확실히 우리가 두각을 나타내면 볼드윈 메딕스의 눈에 들긴 하겠군요. 저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그들과 맞서긴 일러. 다른 방법이 없을까?"
조셉 메를린은 잠깐 동안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아...! 방법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뭔가? 볼드윈의 견ㅁ제를 피할 방법이."
난 가문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신세인 조셉 메를린이 찾아냈다는 방법이 뭔지 궁금했다.
"망명귀족들 중에는 3대 가문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블랙마켓에서만 활동하는 자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도 블랙마켓에서 영업한다면 귀족들뿐만 아니라 대기업들의 이목도 속일 수 있을 겁니다."
"블랙마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