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히든카드
그 순간, 사냥 1팀장 휴고와 사냥 2팀장 세사르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그리곤 두 사람의 헬멧이 검게 변해버렸다.
< 사냥 1팀장 휴고 가르시아 님이 [보안통신]을 요청해왔습니다. >
< 사냥 2팀장 세사르 알마챠 님이 [보안통신]을 요청해왔습니다. >
'보안통신?'
< [보안통신]은 [전술 통신망] 내에서도 암호화한 개인 간의 통신을 의미합니다. >
< [보안통신] 요청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
'휴고와 가르시아 두 사람과 삼자대화로 연결해.'
< 3인 [보안통신]을 연결했습니다. >
< 지금부터 나누시는 대화는 휴고 가르시아, 세사르 알마챠 그리고 사용자님 외엔 아무도 듣지 못합니다. >
그때, 사냥 1팀장 휴고와 사냥 2팀장 세사르가 앞다투어 질문을 쏟아냈다.
- 저 트럭, AAT-300 아닌가? 저 로봇들의 무게는 논외로 치더라도 80기를 싣기엔 공간이 모자랄텐데?
- 로봇 크기를 감안하면... 우겨넣어도 7,8기 정도 실으면 꽉 찰 것 같은데 80기라니, 무슨 뜻인가?
두 사람은 내 에어로트럭과 워슈트 두 기를 번갈아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두 분이 보안통신을 요청하신 거 보면 이유가 있으셨을 것 같은데... 여기서 다 꺼내도 되겠습니까?"
- 아론, 다른 부하들 물리고 3팀 팀원들만 데리고 아서 단장의 에어로트럭에 대형텐트 설치해.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냥 1팀장 휴고 가르시아가 공용 전술통신망에 명령했다.
< 아론 다린은 사냥 3팀장입니다. >
- 워슈트 80대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다는 소리인 것 같습니다.
그때,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오고 데스윙이 정신파를 보내왔다.
그러자 내 에어로트럭과 워슈트들을 뒤덮고 있던 용병들이 한순간에 거리를 벌렸다.
그리곤 10여 기의 배틀슈트가 날아올라 순식간에 높이 10미터 반경 30미터에 달하는 대형텐트를 내 에어로트럭 위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 아서, 들어가지.
휴고는 대형텐트가 설치되자마자 날 입구로 이끌었다.
난 휴고를 따라들어가다 천막에 손이 스쳤다.
< 난연 성능 및 레이더 교란 성능을 가진 원단을 발견했습니다. >
< 이 원단은 폭발과 화재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갖췄습니다. >
< 이 원단은 적외선을 산란, 흡수, 반사하는 기능을 통해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도록합니다. >
난 시스템 메세지를 읽고나서야 휴고와 세사르가 단지 휘하의 용병들뿐만 아니라 장벽방어군의 레이더까지 피할 생각으로 대형텐트를 쳤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가 휴고의 뒤를 따르자, 세사르가 따라들어오며 입구를 닫아버렸다.
그 순간 대형텐트 위를 뒤덮는 배틀슈트들이 느껴졌다.
- 워슈트의 수가 레이더에 감지되는 걸 막기위해 전술기동하는 겁니다.
그때 데스윙이 그들의 비행하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레이더 교란기능이 있는 대형텐트로도 장벽방어군의 시야를 가리기 어렵다고 생각하나보군.'
난 속으로 베레랑 용병들의 치밀함에 감탄하며 연구정령 샤를에게 명령했다.
'샤를, 80기 다 내보내.'
그 순간 에어로트럭 짐칸에서 워슈트가 한 기씩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
아서가 몰고 온 에어로트럭에서 내린 로봇만 20기가 넘었다.
그건 에어로트럭 AAT-300의 적재용량을 넘어선 규모였다.
휴고는 곧바로 세사르를 바라봤다.
그와 눈이 마주친 세사르는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어보였다.
"세사르와 개인 보안통신 연결해."
- 외부 통신을 차단하고 세사르 알마챠와 개인 보안통신을 연결했습니다.
휴고는 전투보조시스템의 메세지가 뜨자마자, 세사르에게 물었다.
"저 로봇들... 아공간 아티팩트로 수납할 수 있는 규모인가?"
- 내가 알기론 불가능해. 아공간 관련 아티팩트는 배틀슈트 한 기 넣을 수 있을 정도만되도 100억 크레딧 이상으로 거래된다고 들었어.
"그럼, 아서란 놈이... 마법사란 뜻이군?"
- 휴고, 섣부르게 움직이지 마. 만약 아서가 마법사라면... 10미터 너머에 아공간 마법을 펼칠 수 있는...
"그래. 5위계 이상이란 뜻이겠지."
- 우리만으로는 처치하지 못할 수 있어. 팀장들을 소집할까?
"부정하고 싶지만 5위계 마법사라면, 녀석들 손을 빌려야하겠군."
휴고 가르시아가 허락하고 20초 정도 지난 순간이었다.
- 준비됐다. 바로 칠까?
"아니, 최소한의 확인과정은 거쳐야지. 본사에 끈을 댄 망명귀족이라면, 여기서 처치해도 문제가 없겠지만... 장벽방어군 쪽이면 건드리면 안돼."
- 젠장, 설마 3대 가문 소속은 아니겠지?
"아니길 빌어야지."
휴고는 긴장을 억누르며 아서에게 물었다.
***
- 아서 단장. 이건... 아공간과 관련된 아티팩트의 효과인가?
휴고는 계속해서 에어로트럭에서 내리는 워슈트들을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비슷합니다."
- 믿을 수 없군.
사냥 1팀장 휴고 가르시아는 단호한 목소리로 부정했다.
그는 내가 아티팩트를 사용했다는 말을 못 믿는 눈치였다.
"무슨 뜻입니까?"
- 내가 알기론 저런 크기의 로봇을 30기 이상 수납할 수 있는 아티팩트는 존재하지 않소. 마법사의 아공간이면 모를까 아티팩트로는 어림도 없지.
- 아서, 당신 망명귀족이오? 본사와 장벽방어군 둘 중 어디서 보냈지?
두 사람은 이미 날 망명귀족 출신 마법사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말투조차 반말에서 반존대로 올린 걸 보면, 이미 날 망명귀족으로 확신하는 것 같았다.
'샤를의 아공간이 상식을 넘어선 수준이란 걸 간과했군.'
하지만 그들에게 연구정령 샤를의 존재와 그녀의 아공간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수백 배 이상 크다는 걸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난 하는 수 없이 그들을 떠보며 다른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제가 망명귀족이면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되겠습니까?"
- 다른 작전은 몰라도, 이번 작전은 본사와 장벽방어군을 속여야하는 일이니 망명귀족을 믿을 순 없는 일 아니겠나?
- 아서, 당신이 망명귀족이면 귀족과 가깝겠지. 우리 작전을 귀족들에게 누설하도록 내버려둘 순 없소!
휴고에 이어 세사르까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날 추궁해댔다.
"제 아공간 아티팩트가 조금... 뛰어나긴 합니다. 하지만 저도 이런 오해를 안고 팀장님들과 작전을 함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 입장을 이해해준다니 고맙군. 그럼 편하게 말하겠소. 작전이 끝날 때까지 통신이 불가능한 차량에 머물러줘야겠소.
휴고는 내게 구금당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30만 명의 베테랑 용병들과 함께 300만 마리 이상의 좀비떼와 마음 놓고 전투할 수 있는 기회와 카라페이스의 뼈무덤을 회수할 기회를 포기할 순 없었다.
그때 테리에게 들었던 이 세상의 상식 한 가지가 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제가 망명귀족도 그렇다고 마법사도 아니란 걸 증명하면, 제게 단독작전권을 주시겠습니까?"
난 단지 그들을 속이는 것을 넘어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생각이었다.
좀비를 사냥하고 카라페이스의 뼈까지 확보하려면 내 마음대로 병력을 운용할 작전권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마법사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란 걸 증명하겠다는 거지?
그때 휴고가 내가 던진 미끼를 물었다.
"단독작전권."
-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당신이 귀족도 마법사도 아니란 걸 증명하면 단독작전권을 주고 한 구역을 맡기지.
난 휴고의 대답을 듣고나서 휴고와 세사르를 보며 말했다.
"마법사는 절대! 기계의체를 이식하지 않는다."
휴고와 세사르는 내 말을 듣고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기계의수나 기계장기가 마력운용에 방해가 된다는 상식은 두 분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 기계의체는... 마력뿐만 아니라 혈통에 따라 전해지는 초상능력의 각성도 저해한다고 들었다.
세사르가 고개를 조금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제가 사이보그라는 걸 증명하면, 마법사니 망명귀족이니 하는 오해는 풀리는 거 아닙니까?"
내가 양손을 펼치자, 내 배틀슈트가 어깨부터 손끝까지 열리더니 철컹!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의수분리.'
< 경고! 기계의수를 분리하실 경우, 적의 공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실 수 있습니다. >
'분리해.'
< 기계의수를 분리합니다. >
시스템 메세지와 함께 내 어깨에서 위잉~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맨바닥에 검은색 기계의수 두 개가 터덕! 하고 떨어져내렸다.
- 이, 이게 어떻게 된...?
- 아서, 자네 정말 사이보그였나?
휴고와 세사르는 내 양팔이 떨어진 걸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원하시면 직접 만져보셔도 좋습니다."
두 사람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가와 내 기계의수와 내 팔의 접합부 등을 자세히 살폈다.
- 자네가 안드로이드 제작자란 얘긴 들었지만, 사이보그일 줄이야...
- 사이보그라서 안드로이드도 모자라 전투병기까지 제작할 수 있었던 거로군?
휴고와 세사르는 내 어깨와 분리된 의수를 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전처럼 경계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드로이드 제작자가 사이보그인 게 놀라운 일입니까?"
- 으하하하! 하긴 누구보다 기계에 대해 잘 아는 부류가 사이보그겠지. 내가 실수했군.
- 휴고, 우리가 괜한 오해를 했군. 아서, 내가 사과하겠네.
두 사람은 그제야 긴장이 가신 투로 말했다.
< 상대가 배틀슈트를 착용했기 때문에 상대의 바이탈 사인 확보에 장애가 있습니다. >
< 투명화 한 두 사람의 헬멧을 통해 확인가능한 동공반응, 표정, 호흡, 목소리만을 분석합니다. >
< 휴고의 감정은 안도 75%, 당황 15%, 의아 6%로 해석됩니다. >
< 세사르의 감정은 안도 85%, 의아 11%로 해석됩니다. >
< 두 사람의 감정은 배틀슈트 헬멧을 통해 그들이 보여준 바이탈 사인을 가지고 분석한 결과입니다. >
< 안면근육의 긴장도가 15% 탐지되었습니다. >
<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감정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
시스템이 빠르게 두 사람의 속마음을 분석하는데 데스윙이 정신파를 보내왔다.
- 팔미라 시에서도 용병으로 활동하는 사이보그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능력이 뛰어난 사이보그들일수록 부품 교체가 어려운 장벽 밖으로 나오길 꺼려한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두 팀장이 보기엔 사이보그이신 주군께서 주로 장벾 밖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의외였을 겁니다.
난 그제야 두 사람이 안심하는 이유를 납득했다.
"그럼 단독작전권은...?"
- 저 로봇들이 워머신 급 성능이라면... 사냥팀 세 팀이나 네 팀 정도의 전력은 보여줄텐데 단독작전권을 못 줄 것도 없지.
휴고가 말하며 세사르를 보자, 그도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 휴고 가르시아가 작전정보를 보내왔습니다. >
< 이번 정화작업에서 사용자님께서 맡으실 부분은 T-85 구역 중에서 가장 아랫부분인 T-85F 구역입니다. >
내가 시스템 메세지를 읽으며 속으로 환호하는데 두 사람이 내게 물었다.
- 아공간과 관련된 아티팩트는 그 가격이 천문학적이라던데 용케 저렇게 큰 로봇을 수십 기나 수납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구했군?
- 혹시 가문에 전해져내려오는 보물인가?
"블랙마켓에서 운 좋게 구한 물건인데, 생명체나 다른 물건은 보관이 불가능하고 로봇만 넣을 수 있습니다."
난 한번도 방문해본 적 없는 블랙마켓을 주워섬겼다.
하지만 그 효과는 상당했다.
- 로봇만 넣을 수 있다니, 그런 하자가 있는 아티팩트라면 흠... 블랙마켓에서 유통될만 한 물건이군.
휴고는 블랙마켓이란 말에 물건의 출처를 납득한 것 같았다.
- 그나저나 블랙마켓이라니, 이 친구... 생각보다 위험하게 노는 친구로군.
- 본사에서 우리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건 자네도 알겠지?
휴고가 놀라자, 세사르가 내게 물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전속용병들을 이끄는 두 팀장들도 감시를 받는다고?'
- 대기업들이 용병들을 부리는 방식이 보통 그렇습니다. 오너일가는 대부분 망명귀족 출신인데, 용병들은 대부분 강화시술자니 출신 자체가 서로 섞이기 어렵습니다.
'수준 높은 강화시술자들은 귀족들도 경계한다더니... 같은 맥락인 모양이군.'
난 데스윙의 설명을 듣고나서야 용병들의 고달픈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감시하는건지 신기하긴 했습니다."
- 우리도 초상능력이나 마법적인 방법이라고 추측하는 거 외엔 아직 파악하지 못했네.
세사르는 고개를 내저어보이며 말했다.
그리곤 날 보며 말을 보탰다.
- 자네가 블랙마켓에 들락거리는 걸 들키면 본사에서 제재를 가할거네. 우리가 본사 몰래 강해지는 걸 누구보다 경계하는 자들이거든. 가능하면 방문하지 않는 게 좋겠지만... 블랙마켓을 이용하려면 감시망을 조심하게.
세사르는 블랙마켓보다 본사를 더 경계하라는 듯이 얘기했다.
내가 망명귀족이 아니라 사이보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목격하고나선 완전히 같은 편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조언 감사합니다."
- 음... 작전 중엔 8기 정도만 운용해도 괜찮겠나?
그때 사냥 1팀장 휴고가 내게 물었다.
"80기를 모두 운용하지 않아야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아까 설명했듯이 우린 장벽방어군의 작전계획과 다르게 움직일 걸세.
"좀비떼를 포위하지 않고 적정한 선에서 치고 빠진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 그래. 우리가 그렇게 치고 빠지기만 하면 장벽방어군이 어떻게 행동할 것 같나?
휴고는 서쪽의 팔미라 방향을 가리키며 물었다.
"포위하라고 위협하지 않겠습니까?"
- 위협하고 강권해도 안되면... 극단적인 방법으로 우릴 궁지에 몰아넣을 수도 있네.
"예를 들자면?"
- 치고 빠지는 우리 방향으로 좀비떼를 유인해서 쉴 틈을 안 준다던가? 아니면... 좀비떼가 우리를 포위하도록 개수작을 부릴 수도 있지.
휴고는 이번 작전에서 좀비떼만큼이나 장벽방어군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장벽방어군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올까?'
- 귀족들은 낮은 등급의 시민들을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작전은 애초부터 죽은 귀족들의 복수를 위해 계획됐으니, 휴고 팀장의 예상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용병생활에 잔뼈가 굵은 데스윙은 휴고 가르시아의 예측에 무게를 실어줬다.
그때 세사르가 설명했다.
- 우리 병력은 이미 장벽방어군과 본사가 다 파악하고 있네. 하지만 자네가 가진 전투병기는 두 기만 노출됐지.
세사르는 대형천막으로 가려진 시야를 가리키며 말했다.
- 우리가 좀비떼에게 포위된다면 누군가 포위망을 뚫어줄 사람이 필요해. 장벽방어군이 예상하지 못하는 히든카드 말이야!
"납득했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휴고가 내 워슈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 우리 사정을 이해해주니 고맙군. 저 로봇들부터 다시 입고해주게. 여기서 시간을 더 끌면 장벽방어군과 본사에서 의심할 거야.
휴고의 부탁을 듣고 내가 손짓하자, 워슈트들이 다시 에어로트럭 짐칸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12시간 후, 4군단 지휘통제실.
"군단장님, 용병 놈들이 부상을 이유로 야간행군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짧은 갈색머리의 레이너 아킨 소령이 흑발의 미청년에게 보고했다.
어깨에 별을 세 개나 단 흑발의 동양인 남성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첩보대로군. 시간만 끌면서 내 작전을 망칠 속셈이야."
그는 조슈아 빌헬름 중장이었다.
"군단장님, 당장 용병 몇 놈의 목을 날려버리면 놈들도 깨닫는 게 있을 겁니다."
그때 어깨에 별 하나를 단 50대 남성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는 일전에 장벽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서 앞에 등장했던 4군단 참모장 울리히 모스치토였다.
하지만 조슈아 빌헬름 중장은 손사래를 치며 그를 자리에 앉혔다.
"아니, 전투가 일어나기도 전에 용병들의 사기를 죽인다면 좀비들과 싸우는 것 자체를 거부할 수 있어."
하지만 바짝 긴장한 울리히 모스치토 참모장은 자리에 앉기는 커녕 오히려 동부사막쪽을 가리키며 목에 핏대를 돋궜다.
"제깟놈들이 감히 4군단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장벽 밖에서 항명은 즉결처분대상입니다!"
"화낼 것 없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
참모장 울리히는 군단장 조슈아 빌헬름의 말을 듣자마자, 허리를 깊게 숙이며 물었다.
"혜안이 있으십니까?"
"놈들의 야영지에 블러드 클라우드를 형성해라."
하지만 군단장의 지시는 참모장 울리히나 작전참모 레이너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사령관님! 블러드 클라우드면... 사막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좀비떼가 몰려들 수 있습니다. 그럼 용병들이 좀비들을 포위하는 게 아니라 용병들이 포위당하게 됩니다."
참모장 울리히는 블러드 클라우드가 불러올 참상이 우려되는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군단장 조슈아 빌헬름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을 뿐이었다.
"우리 뒤통수를 치려는 놈들을 걱정해줘야하나?"
"그렇지만, 이번 작전을 위해서라도..."
"우린 놈들이 좀비떼들과 맞붙어서 로두스 성국의 면전에 꼬리를 흔들어주기만하면 그만이야. 이대로 시행해!"
군단장 조슈아는 참모장의 조언을 무시하고 명령했다.